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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 QT_비처럼 내리는 것
2021-06-19
주말칼럼_비처럼 내리는 것 어린 시절, 우리 집 지붕에는 검은 기름종이를 덮었습니다. 그 당시, 기와를 올리지 못하는 가난한 집들은 대부분 ‘루핑’이라고 부르는 검은 기름종이를 지붕에 덮었습니다. 그리고 루핑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못을 박거나 시멘트 벽돌 같은 것으로 군데군데 눌러놓았습니다. 루핑은 잘 찢어지기 때문에, 비가 조금 많이 오기만 하면 찢어진 루핑 사이로 비가 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지붕에 올라가 기름종이 남은 쪼가리를 군데군데 덧붙이셨습니다.빗물이 새는 방안에서는 대야, 요강, 양동이를 동원했습니다. 천정에서 빗물 새는 곳이 늘어나면, 깡통, 양재기, 주전자, 바가지, 심지어 밥그릇까지 갖다 놓아야 했습니다. 용기마다 재질과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그 떨어지는 리듬과 가락도 제각각이었습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젓가락으로 깡통들과 용기들을 함께 두들기는 재미도 또한 쏠쏠했습니다. 어릴 때 비 오는 날엔, 이런 ‘음악’이 있었습니다.비가 내리면, 저는 마루에 앉아서 비를 구경했습니다. 처마 밑 마루에 앉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면, 비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집이 하늘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 없는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빗방울을 계속 맞은 땅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패여 갔습니다. 패인 모양이 연결되면서 조그만 골이 생기고, 그 골을 따라 물의 흐름이 생기고, 그 흐름이 서로 만나기도 하고 다시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걸 한참 동안 들여다보면서, 그게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상상하기도 했습니다.파란 종이우산을 쓰고 마당에 나가 꽃밭에 쪼그려 앉으면, 달팽이들이 기어 나와 풀잎을 따라 산책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은 홍수를 맞은 개미들이 집을 찾아가느라고 우왕좌왕하는 꼴도 보고, 비 맞은 꽃잎 사이사이에 맑은 물방울들이 맺혀 반짝이는 것도 보았습니다. 우산을 타고 흘러내린 굵은 물방울들이 어떤 꽃잎을 ‘꽝’ 때리는 것도 보고, 그 바람에 땅에 떨어진 달팽이가 놀라서 온몸을 껍질 속에 숨기고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어릴 때 비 오는 날엔, 이렇게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황홀함이 있었습니다.세월이 흘러 우리 집이 아파트로 이사하고,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는 제 삶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더 이상 대야와 깡통에 떨어지는 빗소리의 음악도 들을 수 없었고, 비 내리는 마당에 쪼그려 앉아 바라보는 황홀함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비가 온다는 것이 오히려 제 생활에 불편을 주기 시작했습니다.비가 오면 자동차가 금방 더러워지고, 교통 체증이 심해지고, 비를 맞아 옷이나 몸이 젖는 게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비는 제게서 멀어져갔을 뿐 아니라 불편하고 싫은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몇 해 전 여름,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그 여름날,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창 안으로 살짝 튀어 오르는 빗방울도 느껴보았습니다. 오랜만에 제 마음속에 되돌아온 빗소리의 음악을 듣고, 빗소리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때 친근했던 비가 제게로 되돌아와 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빗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법률이나 신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을 몇 권 골라 읽었습니다.얼마나 평안한 시간인지요. 제게는 중요한 안식이었고, 질식하고 있던 제 영혼이 숨 쉬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떨어지는 비처럼 제게도 차별 없이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렸습니다.저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감하기 시작했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순진한 믿음을 가졌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 섞여 살아가는 이 세상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이 제 마음속에서 점점 식어가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하나님의 은혜나 하나님과의 교제가 삶의 걸림돌이 되어, 그것이 불편하고 싫은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던 겁니다.그날 하루,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의 비를 흠뻑 맞았던 때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비처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을 되살리고,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영혼 속에서 들려주시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은혜 속에서 느끼는 오묘한 평안 속에 살아가는 그런 하루가 매일 계속되기를 기도했습니다.작성자 : 최형구 목사(보리떡교회)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또 다시 망할 수 없습니다
2021-06-18
느헤미야 11장 20-36절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본국에 돌아와 정착할 때 그들은 주어진 각자의 업무를 감당하게 됩니다. 어떤 이는 노래하는 일을, 어떤 이는 행정 업무를, 어떤 이는 기술 업무를 담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땀 흘리는 당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20. 그 나머지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유다의 여러 성에 흩어져 각자 자기 소유지에서 살았고 21. 성전 봉사부들은 예루살렘의 오벨 언덕에 살았는데 그들의 책임자들은 시하와 기스바였다. 22. 예루살렘에 사는 레위 사람들의 감독은 성전에서 노래하는 일을 맡은 아삽의 자손 웃시였다. 그는 바니의 아들이며 하사뱌의 손자이고 맛다냐의 증손이요 미가의 현손이었다. 23. 그리고 그의 성가대원들은 다윗왕이 정한 규정에 따라 매일 자기들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24. 또 유다 지파의 세라 집안 사람인 므세사벨의 아들 브다히야는 페르시아 황제의 지시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25.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농장에서 가까운 성과 그 주변 일대의 마을에서 살았다. 유다 지파 사람들이 흩어져 산 곳은 기럇-아르바, 디본, 여갑스엘, 26. 예수아, 몰라다, 벧-벨렛, 27. 하살-수알, 브엘세바, 28. 시글락, 므고나, 29. 엔-림몬, 소라, 야르뭇, 30. 사노아, 아둘람, 라기스, 아세가, 그리고 이상의 성들과 그 주변 마을이었다. 이와 같이 유다 사람들은 남쪽 브엘세바에서부터 북쪽 힌놈 골짜기에 이르는 지역에서 살았다. 31. 그리고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흩어져 산 곳은 게바, 믹마스, 아야, 벧엘과 그 주변 일대의 마을, 32. 아나돗, 놉, 아나냐, 33. 하솔, 라마, 깃다임, 34. 하딧, 스보임, 느발랏, 35. 로드, 오노, 그리고 기능공들의 골짜기였으며 36. 유다 지파의 땅에 살던 일부 레위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의 땅에 정착하였다. 느헤미야 11장은 예루살렘을 재건한 뒤 여기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인구 재배치 사업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당시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을 마다하고 각 지방에 정착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상위계층의 특혜를 막고 불공정을 척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자원과 차출로 선발했습니다. 지도층들은 먼저 나서서 사람들이 거주하기 꺼리는 지역에 거주하길 희망함으로써 서민들의 모범이 되었고, 나머지 인원은 제비뽑기로 선출하여 공정하게 인구 재배치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지금의 한국사회를 보면 갑, 을 관계로 인해 많은 서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파괴된 땅에서 희망을 일구고 재건한 이들이 다시 국가를 세워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신 계명을 뒤로 한 채 끝없는 욕심과 탐심을 앞세워 우상을 숭배했고, 착취와 억압을 일삼으며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였다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뒤로한 채 타인의 희생과 착취를 당연시하고 그들을 짓밟고 올라서야만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라면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이런 포기, 이런 자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러다 망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망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복이며, 또 다시 망하지 않는 복된 길입니다.작성자 : 정혜민(성교육상담센터 “숨,” 대표)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헌신과 축복
2021-06-17
느헤미야 11장 1-19절예루살렘의 온전한 재건을 위해 그곳에 살 충분한 숫자의 거주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백성 중 제비를 뽑아 10분의 1은 예루살렘에 살게 했습니다. 각자의 성에 살아도 되는 사람 중 스스로 예루살렘에 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하나님의 전을 더 우선시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 때, 나의 계획을 가장 우선하진 않나요?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잠잠히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1. 이제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고 백성 가운데 제비를 뽑아 10분의 1은 예루살렘에 와서 살게 하며 그 나머지 백성은 각자 자기 성에 머물러 있게 했는데 2. 백성들은 자진해서 예루살렘에 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칭찬하였다. 3-4. 또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과 제사장, 레위인, 성전 봉사자들, 그리고 솔로몬을 섬기던 신하들의 자손들은 자기들의 본 성에 정착하였고 유다와 베냐민의 일부 사람들도 예루살렘에서 살았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살게 된 유다 각 지방의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다. 유다 지파 중에서는 아다야와 마아세야였다. 아다야는 웃시야의 아들이며 스가랴의 손자이고 아마랴의 증손이며 스바댜의 현손이요 마할랄렐의 5대손으로 베레스의 자손이었다. 5. 그리고 마아세야는 바룩의 아들이며 골-호세의 손자이고 하사야의 증손이며 아다야의 현손이요 요야립의 5대손이며 스가랴의 6대손으로 셀라의 자손이었다. 6. 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살게 된 베레스의 자손들은 모두 468명으로 다 유능한 인물들이었다. 7-8. 베냐민 지파 중에서는 살루와 그의 가까운 친척인 갑배와 살래였다. 살루는 므술람의 아들이며 요엣의 손자이고 브다야의 증손이며 골라야의 현손이요 마아세야의 5대손이며 이디엘의 6대손이고 여사야의 7대손이었다. 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살게 된 베냐민 사람들은 모두 928명이었다. 9. 그리고 시그리의 아들 요엘이 그들의 지도자였으며 핫스누아의 아들 유다는 그 다음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10. 제사장 중에서는 요야립의 아들 여다야, 그리고 야긴과 11. 스라야였다. 스라야는 힐기야의 아들이며 므술람의 손자이고 사독의 증손이며 므라웃의 현손이요 성전 책임자인 아히둡의 5대손이었다. 12. 그리고 성전 업무를 수행하는 그들의 친척 822명도 예루살렘에서 함께 살았다. 또 여로함의 아들이며 블라야의 손자이고 암시의 증손이며 스가랴의 현손이요 바스훌의 5대손이며 말기야의 6대손인 아다야와 13. 그의 친척인 족장 242명과 또 아사렐의 아들이며 아흐새의 손자이고 므실레못의 증손이며 임멜의 현손인 아맛새와 14. 그들의 친척인 용사 128명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사는 이들 제사장의 지도자는 하그돌림의 아들 삽디엘이었다. 15. 레위 사람 중에서는 핫숩의 아들이며 아스리감의 손자이고 하사뱌의 증손이며 분니의 현손인 스마야, 16. 성전 바깥 일을 맡은 레위 사람의 두 족장 삽브대와 요사밧, 17. 미가의 아들이며 삽디의 손자이고 아삽의 증손으로 기도와 감사의 찬송을 인도하는 맛다냐, 그를 돕는 박부갸, 그리고 삼무아의 아들이며 갈랄의 손자이고 여두둔의 증손인 압다였다. 18. 이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살게 된 레위 사람들은 모두 284명이었다. 19. 성전 문지기 중에서는 악굽과 달몬과 그들의 친척들이며 이들은 모두 172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귀환한 후에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과 성벽을 다시 세웁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살아가야 할 장소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거주하기 시작합니다.그 당시에 예루살렘에 산다는 것은 다른 민족의 침입을 염려하고 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사람들은 그 모든 위험과 책임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에서 살기를 자원했습니다. 바로 이 헌신적인 사람들은 하나님께 칭찬과 함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가르치고 함께 하셨으며, 승천 후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닌 매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실 때 그가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들이 무엇을 했는가를 보신 것이 아닙니다.예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시고 헌신하게 하시며, 그들을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맡긴 사명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부르심에 민감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헌신하며 쓰임 받는 복된 삶이 되어야겠습니다.작성자 : 박을용(서예가)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예배 준비
2021-06-16
느헤미야 10장 28-39절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로 약속한 이들은 이제 그들의 삶 속에서의 ‘변화’를 말합니다. 안식일을 지키고, 7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빚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그들의 소유 중 일부를 드리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그들의 삶의 시선이 자신의 유익과 번영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돌려지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유익과 욕망을 채우는 것에 나의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28. 그리고 그 나머지 백성들, 곧 제사장, 레위인, 성전 문지기, 성가대원, 성전 봉사자,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기 위해서 그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의 아내와 또 알아들을 만한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29. 이 지도자들의 성명서에 따를 것을 결의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순종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과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기로 맹세하고 만일 지키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30. 그리고 우리는 우리 딸을 이방 사람들에게 시집보내지 않고 또 우리 아들을 위해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않기로 했으며 31. 만일 이방 사람들이 안식일에 곡식이나 상품을 팔려고 가져와도 우리는 안식일과 그 밖의 거룩한 날에는 그것을 사지 않기로 합의하였고 또 7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일체의 빚을 받지 않기로 하였다. 32. 그리고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자진해서 해마다 은 약 4그램의 성전세를 내어 33. 항상 차림상에 거룩한 빵을 차려 놓고 매일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와 불로 태워 바치는 번제를 드리며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기적인 명절에 쓸 거룩한 물건과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씻는 속죄제와 그 밖의 성전에 필요한 비용으로 쓰게 하였다. 34. 그런 다음 우리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제비를 뽑아 집안별로 해마다 정한 때에 성전으로 나무를 가져와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하나님의 제단에 불을 피우게 하였고 35. 또 해마다 우리가 수확한 첫 농작물과 모든 과일 나무에서 딴 첫 열매를 성전에 바치기로 하였으며 36. 그리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우리 맏아들을 성전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에게 데려다 주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게 하였고 우리 양과 소와 그 밖에 가축의 첫 새끼도 제사장들에게 주기로 하였다. 37. 우리는 매년 처음 생산된 밀가루와 과일과 새 포도주와 감람기름과 그밖의 예물을 제사장들에게 가져가 성전 창고에 넣어 두고 우리 농산물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에게 주기로 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모든 성에서 그것을 받을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8. 그리고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거둘 때에는 아론 자손의 제사장 하나가 입회하도록 했으며 레위인들은 그 십일조의 10분의 1을 성전 창고에 두도록 하였다. 39. 또 레위 사람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물로 바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감람기름을 성전 기구가 보관된 골방과 그리고 제사장과 문지기와 성가대원이 머물고 있는 골방에 갖다 두도록 하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성전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였다. 가끔 성경을 읽다 보면 예배를 위해 준비하고 갖춰야 할 것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걸 발견하곤 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예배가 다행스럽게 여겨지다가도 오히려 그렇기에 가벼워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금지하고 지켜야 할 서약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예배를 위해 섬겨야 하는 역할들을 세부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열거하면서 예배가 단순히 성전 안에 정한 시간에 머무는 것 이상으로 우리에게 충성된 헌신과 각자 맡은 사명에 본분을 다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지금 우리는 예배당에서의 예배가 불가피하게 어려워지고, 손쉽게 인터넷으로 예배하는 것이 일반화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이 우리 삶의 터전이 그분을 예배하는 자리가 되고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정체성과 각자의 본분을 새롭게 각인하여 우리가 어떤 역할로 주님과 성도들을 섬겨야 할지 새롭게 점검해 보길 바라본다.작성자 : 이진주(작곡가, 피아니스트)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이름
2021-06-15
느헤미야 10장 1-27절오늘 본문에 나오는 명단은 다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겠다고 결심한 이들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신 선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한 분입니다. 신앙은 우리 역시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일입니다. 당신이 사랑과 은혜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신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약속을 잘 지키겠다는 결단이 있기를 원합니다.1. 그 성명서에는 총독인 나 느헤미야가 먼저 서명을 했으며 그 다음으로 서명한 사람들은 이렇다 2. 제사장 중에서 시드기야,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3. 바스훌, 아마랴, 말기야, 4. 핫두스, 스바냐, 말룩, 5. 하림, 므레못, 오바댜, 6. 다니엘, 긴느돈, 바룩, 7. 므술람. 아비야, 미야민, 8. 마아시야, 빌개, 스마야였다. 9. 레위 사람 중에서 서명한 사람들은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인 빈누이, 그리고 갓미엘, 10. 스바냐, 호디야, 그리다, 블라야, 하난, 11. 미가, 르홉, 하사뱌, 12. 삭굴, 세레뱌, 또 다른 스바냐, 13. 또 다른 호디야, 바니, 브니누였다. 14. 백성의 지도자 중에서 서명한 사람들은 바로스, 바핫-모압, 엘람, 삿두, 바니, 15. 분니, 아스갓, 베배 16. 아도니야, 비그왜, 아딘, 17. 아멜, 히스기야, 앗술 18. 호디야, 하숨, 베새, 19. 하립, 아나돗, 느배, 20. 막비아스, 므술람, 헤실, 21. 므세사벨, 사독, 얏두아, 22. 블라댜, 하난, 아나야, 23. 호세아, 하나냐, 핫숩, 24. 할로헤스, 빌하, 소벡, 25. 르훔, 하삽나, 마아세야, 26. 아히야, 하난, 아난, 27. 말룩, 하림, 바아나였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선물처럼 얻어가는 것 중 하나는 ‘이름’일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입보다 다른 이의 입에서 더 많이 오르내리고, 나의 말보다 나의 글로 쓰임이 더 많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삶과 함께 다양한 곳에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나의 이름은 지금 어느 곳에 흔적을 두고 있을까요? 세속적인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와 그의 선하심 가운데 나의 이름이 있을까요?오늘 읽은 ‘느헤미야’에는 사람의 이름이 가득합니다. 지난날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따르기 위한 약속의 서명들입니다.그들은 수천 년이 지나 머나먼 나라의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마주하리라 생각지 못했을 테지만 기록되어 전파되고 또 그것이 새로운 약속을 끌어냅니다.무엇보다 그들의 이름을 아시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오늘 나의 이름을 불러주실 이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당신의 이름은 어디에 흔적을 두고 있나요?작성자 : 정다운(가수, 제이레빗)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당당함
2021-06-14
느헤미야 9장 16-38절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인도해주셨고, 지키셨으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는지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순종하지 않고 어떻게 하나님을 거부했는지 고백합니다. 우리의 기도 안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함’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해주신 그분의 신실함을 기억하고, 그 앞에 우리의 온전치 못함을 있는 모습 그대로 고백하는 ‘정직함’이 있어야 합니다.16.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교만하여 고집을 피우고 주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17. 그들은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 행하신 놀라운 일을 잊어버리고 자기들 멋대로 한 지도자를 세워 종살이하던 이집트로 되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주는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쉽게 화를 내시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18. 그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이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고 외치며 주를 모독했을 때에도 19. 주는 크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않으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으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의 갈길을 비춰 주셨습니다. 20. 또 주께서는 성령으로 그들을 가르치시고 끊임없이 만나를 주시며 목마를 때 마실 물을 주셔서 21. 그들이 40년을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게 하셨으므로 그들은 떨어진 옷을 입지 않았고 신발이 없어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습니다. 22. 그때 주께서 많은 나라와 민족을 정복할 수 있도록 하셨으므로 그들은 시혼왕이 다스린 헤스본과 옥왕이 다스린 바산 땅을 점령하였습니다. 23. 주께서는 그들에게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고 그 조상들에게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24. 그들이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나안의 모든 왕들과 백성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며 25. 그들의 요새화된 성들을 점령하고 기름진 땅과 온갖 좋은 물건을 가득 채운 그들의 집들과 이미 파 놓은 우물, 그리고 포도원과 감람원과 많은 과수원을 빼앗아 배불리 먹고 마시며 주께서 주신 복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26. 그러나 그들은 주께 불순종하고 거역하며 주의 법을 저버리고 주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예언자들을 죽여 주를 모독하였습니다. 2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넘겨 고통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환난 중에서 주께 부르짖자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큰 자비를 베푸셔서 지도자들을 보내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출해 주셨습니다. 28. 그런데도 그들은 평안을 누리게 되자 다시 범죄하였습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을 버려 원수들의 지배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다시 부르짖을 때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을 여러 차례 구출해 내셨습니다. 29. 주는 그들에게 주의 법에 순종하라고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교만하여 사람이 지키기만 하면 생명을 얻는 주의 법을 거절하고 주의 명령에 불순종하며 고집을 피우고 주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30. 주께서는 여러 해동안 참으시고 주의 예언자들을 통해 성령으로 그들을 경고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으므로 그들을 이방 민족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31. 그러나 주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므로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거나 버리지 않으셨으니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었습니다! 32.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고 두려운 분이시며 사랑의 계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앗시리아 왕들이 우리를 괴롭힌 때부터 우리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예언자들과 우리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들이 지금까지 당한 고통을 작은 것으로 여기지 마소서. 33. 그러나 주는 우리를 벌하시는 데 공정하셨습니다. 우리가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벌을 주셨습니다. 34. 우리 조상들과 우리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않고 주의 명령과 경고를 듣지 않았으며 35. 그들이 주께서 주신 넓고 기름진 땅에서 주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않았으며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36.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셔서 과실과 다른 좋은 산물을 먹게 하신 이 기름진 땅에서 우리가 이와 같이 종이 되었습니다. 37.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주께서 우리를 다스리게 하신 이방 왕들이 이 땅에 농산물을 먹고 우리와 우리 가축을 마음대로 하고 있으니 우리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38. 우리는 이 모든 일을 생각하며 다시 주를 섬기기로 합의하고 성명서를 작성하여 여기에 우리 지도자들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서명을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무척 낮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도 틀리면 어떡하나 걱정이었고, 질문을 할 때도 남들 다 알고 있는 것을 질문해서 뒷북치는 것은 아닌가 염려했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했고 심지어 전화 거는 일조차 부담스러워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되면서 나도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차 자신감 있게 남들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적으로도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죽을 필요없다고 생각을 하며 세상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합니다.하지만 가끔은 이 당당함이 지나쳐 교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내가 힘이 있는 것인데 나 자신이 능력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당당함을 갖는 것은 좋은데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아내와 산책을 하다 지나가는 개를 보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개들은 자기들이 사람인 줄 알아.” 자기 주인이 보살펴주니까 사랑스러운 것이지 만일 그 주인 품을 떠난다면 그 개도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그 개나 우리나 명심해야 할 말입니다.작성자 : 주진홍(연극인)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모순, 믿음
2021-06-12
주말칼럼_모순, 믿음 쥐 잡으려고 독약 섞어놓은 고구마를 / 쥐는 먹지 않고 강아지가 먹었어요 / 강아지는 마당에 사지를 퍼덕이며 / 앞산 메아리와 함께 죽어가요 / 강아지가 죽어가는 마당 울타리의 / 꽃들이 미쳤어요 / 종일 웃고 있어요 / 어머니는 그 울타리에 빨래를 널어요 / 웃고 있는 꽃들에게 찬물을 끼얹어요 /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 마당을 지켜보던 / 뇌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나더러 여보라 불러요 - 최명란 <모순에 대해>순리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 다음에 저것이 따라야 하고, 이런 모양은 저런 모양과 어울려야 합니다. 그래야 합이 좋고, 보기에 좋고, 마음도 편합니다. 저것이 이것을 앞서거나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 뒤섞이면 이걸 어쩌나 싶고 불편해져요. 그런 관찰은 이해도, 해석도, 적용도 어려운 묵상이 됩니다. 그런데 삶이라는 게 꼭 순리를 따라 되는 건 아니지요. 까닭을 알 수 없고 의미를 새길 수 없는 ‘모순’이 덩어리 채 굴러올 때가 많거든요. “쥐 잡으려고 독약 섞어놓은 고구마를 / 쥐는 먹지 않고 강아지가 먹었어요.”, “강아지는 마당에 사지를 퍼덕이며 / 앞선 메아리와 함께 죽어가는데”, “마당 울타리에 핀 꽃들은 종일 웃고 있어요.” 이 마당에 어떻게 저리 활짝 웃으며 필 수 있을까요. 이러면 안 되는 거죠. 꽃들이 미친 겁니다. 모순입니다.꽃들만 미친 게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울타리에 빨래를 널며 꽃들의 ‘미친 웃음’에 찬물을 끼얹는데”, “마루 끝에 우두커니 앉아 마당을 지켜보던 / 뇌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나더라 여보라 불러요.” 마루 끝에 앉은 아버지도 제정신 아닌데, ‘아버지의 여보’가 된 딸도 정신 차리기 어렵습니다. 미칠 것 같은 세상, 이러다 미쳐 버려도 괜찮을 것 같은 날입니다. 머리를 풀고 땅을 치며 통곡이 쏟아지는 날, 집 앞 가까운 산머리가 아득하고 희미해집니다. 안구보다 마음이 더 뿌연 날, 뭐가 눈에 들어와 뭘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눈 밝아질 턱이 없고. 산해진미에 입맛 돌 리 없습니다. 한 끼, 두 끼 몇 날 밥상을 거르다가 사지 퍼덕이는 강아지마냥 마당에 쓰러질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 마당에는 또 어떤 꽃이 ‘활짝’일까요.그러다 몇 날이 지나면 꼬르륵 허기를 알리는 신호에 밥숟가락이 떠올라가고, ‘꿀떡’ 마른 목으로라도 밥은 넘어가겠지요. 어떻게 이 상황에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가는지, 그게 또 못 견딜 만큼 환장할 일이 됩니다. 아도르노(Theodor Wiesengrunt Adorno)는 그런 말을 했다지요.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가스실과 생체실험으로 희생된 사백만 명의 현실은 ‘야만성’의 민낯입니다, 그 야만의 현장을 두고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간다면, 그 밥상도 야만스러운 거지요. 흘러가는 구름과 이제 막 피어난 꽃 한 송이를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건 ‘야만(스런 인간)이 없는 세상’에서나 통용되어야 할 문법일 겁니다. 그럼에도, 그렇더라도, 밥은 꿀떡 넘어가고 꽃밭 가득 환한 봄날은 ‘환장할’ 만큼 아름답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고약한 현실을 비껴 서정을 노래한다는 건 그저 인간의 ‘야만스러움’ 뿐인 걸까요. 아도르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는 광기난 비정상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여겼던 ‘이성’ 혹은 ‘합리성’ 때문에 발생”한 일이랍니다. 그가 설명하는 <부정변증법>을 다이해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세상은 ‘이성’ 혹은 ‘합리성’으로 다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따지고 보면 ‘광기’도 ‘이성’의 연장인 거지요. 출발점에서 미쳐 시작하는 현실은 없겠으니 말입니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 함께 미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앞마당에 실은 ‘이성의 꽃’이 “종일 웃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 웃음에 “빨래를 널며 찬물을 끼얹어” 본다지만, 실은 그 둘 사이가 빨랫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여러 날 시편을 묵상했습니다. 솔직히 시인의 탄식이 지겹기도 했습니다. 믿음은 굴뚝같은데 현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목이 터져라 애원하고 때로 잠잠히 기다려 보기도 하지만, 시인은 괴롭고 시인을 괴롭히는 현실은 멀쩡합니다. 그 하늘에 해가 뜨고 별이 진다는 게 수긍되지 않습니다. 이건 야만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현실이 아무래도 모순 같아 보였습니다. 짧은 ‘이성’과 턱없이 모자란 ‘합리’로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습니다. ‘모순’을 풀 해법이 없습니다. ‘모순’은 설명될 수 없어서 ‘모순’인 거지요. 삶의 여러 장을 넘겨가며 시인은 ‘설명’이 아니라 ‘고백’과 ‘기도’와 ‘노래’를 이어가더랍니다. 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어 “뇌수술을 마친 아버지가 나더러 여보라 불러”도 ‘노래’가 나오는 걸까요. 그것도 ‘믿음’의 ‘모순’일까요.이창순 목사(서부침례교회)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내 ‘회개의 무게’는 몇 그램?
2021-06-11
느헤미야 9장 1-15절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모여서 금식하고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설 때 우리에게서 나오는 반응은 회개입니다. 내 안의 죄를 고백하고 정결하게 해주실 것을 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할 수 있습니다. 애통해하는 회개의 마음과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의 예배가 오늘 당신의 삶을 세우기를 소망합니다.1. 그 달 2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모여 금식하며 삼베 옷을 입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2. 모든 이방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은 채 자기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고백하였다. 3. 그들은 그대로 서서 3시간 동안 낭독하는 여호와의 율법의 말씀을 듣고 그 다음 3시간 동안은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4. 이때 레위 사람 여수아, 바니, 갓미엘, 스바냐, 분니, 세레뱌, 또 다른 바니, 그리고 그나니는 단상에 서서 여호와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기도하였으며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 갓미엘, 바니, 하삽느야, 세레뱌, 호디야, 스바냐, 브다히야는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자, 일어나 영원히 계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합시다!' 그러자 에스라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의 이름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합니다. 6. 주는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며 하늘과 별, 그리고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시므로 수많은 하늘의 천사들이 주께 경배를 드립니다. 7. 주는 아브람을 택하시고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해 내어 그에게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8. 주께서는 그가 주 앞에서 신실한 것을 보시고 그와 계약을 맺어 가나안족, 헷족, 아모리족, 브리스족, 여부스족, 기르가스족의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셨으니 참으로 주는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9. 주는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홍해에서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10. 주께서 놀라운 기적을 행하여 바로와 그 신하들과 그 땅 백성들을 치신 것은 그들이 주의 백성을 잔인하게 학대한 것을 주께서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로 주께서는 오늘날까지도 잊혀질 수 없는 명성을 얻으셨습니다. 11. 주는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 주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그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셨으며 그들을 추격하는 원수들을 깊은 물에 돌을 던지듯이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12. 그리고 낮에는 그들을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갈 길을 비춰 주셨으며 13. 시내산에 내려오셔서 주의 백성과 말씀하시고 훌륭한 주의 법과 규정을 주셨습니다. 14. 또 주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가르치시고 주의 종 모세를 통해 그 모든 것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5. 그들이 굶주릴 때 주께서는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고 그들이 목마를 때 바위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먹이셨으며 또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뉴스를 보면 정치인들이 잘못한 일을 사죄하는 방법이 참 가볍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도대체 뭘 잘못했다는 건지… 별로 뉘우치는 것 같지 않다. 마치 아님 말고 식으로, 한번 질러본 것을 마지못해 거두어들이는 방식으로 유감을 표명한다. 그뿐일까? 참 많은 사건 사고의 당사자들이 뉘우치는 모습도 거의 비슷하다. 아마 ‘속으로는 비웃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뉘우침의 무게를 달아본다면… 깃털같이 가벼울 것 같다.오늘 본문의 장면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들은 금식하며 거친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지은 자신들의 죄는 물론 조상들의 죄까지 고백한다. 생업을 위해 거래하던 이방인들과의 관계도 과감하게 끊어버린다. 그리고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들의 죄를 철저하게 고백한다. 더 나아가서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제사장들의 대표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한다. 거기에 이스라엘 과거 역사를 통해 함께하신 하나님의 행적을 드러내며 찬양하고 감사한다. 그들의 애절한 회개의 뜨거움이 절절하게 느껴진다.이런 회개와 감사가 과연 오늘날에도 가능하기나 할까? 이 회개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수만 톤의 무게가 나갈 것이다.과연 ‘내 회개의 무게는 몇 그램이나 될까?’ 오늘은 그 무게를 깊이 묵상하며 하루를 지내야겠다.작성자 : 이대철(문화기획 헤리티지)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2021-06-10
느헤미야 8장 1-18절성전의 재건이 예루살렘 회복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 에스라는 율법을 읽어 주고 해석해 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울기 시작합니다. 성전의 재건에 이어 백성들의 영혼에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믿음을 다시 세우며 삶을 회복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시선과 관심은 우리가 처한 환경의 변화에만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삶을 회복시키시기 원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 말씀에 반응하며, 다시 회복하는 기회가 되세요.1. 7월 1일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학자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하였다. 2. 그래서 제사장 에스라는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남녀 모든 군중들 앞으로 그 율법책을 가지고 가 3. 그 곳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그것을 읽어 주었으며 백성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었다. 4. 그때 에스라는 특별히 마련된 나무 강단 위에 서서 그것을 읽었으며 그 오른쪽에는 맛디댜, 스마, 아나야, 우리아, 힐기야, 마아세야가 서 있었고 그 왼쪽에는 브다야, 미사엘, 말기야, 하숨, 하스밧다나, 스가랴, 므술람이 서 있었다. 5.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에스라가 강단에 높이 서서 그 책을 폈을 때 백성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자 모든 백성들은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며 응답하였다. 그리고서 그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였다. 7-8. 에스라가 그 율법책을 읽을 때 레위 사람 예수아, 바니, 세레뱌, 야민, 악굽, 사브대, 호디야, 마아세야, 그리다, 아사랴, 요사밧, 하난, 블라야는 백성들 가운데 서서 그 뜻을 해석하여 낭독하는 것을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9. 백성들이 그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울기 시작하자 총독인 나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와 백성들을 가르치는 레위인들이 그들에게 ‘오늘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므로 슬퍼하거나 울지 마시오.’ 하였다. 10. 그리고 나 느헤미야는 다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집으로 가서 잔치를 베풀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십시오. 오늘은 여호와께 거룩한 날이므로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의 힘이 될 것입니다.’ 11. 그리고 레위 사람들도 백성들을 진정시키며 거룩한 날에 슬퍼하지 말라고 하자 12. 모든 백성들은 집으로 가서 음식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들은 율법의 말씀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3. 그 다음 날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율법의 말씀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에스라를 찾아갔다. 14. 그들은 율법책을 보다가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7월의 초막절 기간에는 초막에서 지내라고 명령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15.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과 다른 모든 성에 이렇게 공고하였다. ‘여러분은 산으로 가서 감람나무, 도금양, 종려나무, 그 밖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지를 꺾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초막을 지으시오.’ 16. 그러자 백성들은 가서 나뭇가지를 꺾어와 옥상이나 마당, 성전 뜰, 수문 옆 광장 또는 에브라임문 곁의 광장에 초막을 지었다. 17. 이와 같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모든 사람들이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지냈는데 눈의 아들 여호수아 시대 이후로 초막절을 이처럼 성대하게 지킨 적이 없었으므로 모든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18. 에스라는 이 명절 7일 동안 매일 율법책을 낭독하였으며 8일째 되는 날에는 모세의 율법에 규정된 대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엄숙하게 폐회 예배를 드렸다. 살아가는 것이 아무리 고단해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웃는다면, 그동안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피로감이 날아가고, 뿌듯함과 행복이 쌓여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두터워진다. 반대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중에도, 견뎌야 할 고단함과 피로가 있다는 뜻이 된다.하나님과 서로 사랑하는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나의 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내가 아프고 괴로우면 옆에서 함께 울고 계신다. 우리의 잘못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았지만, 모진 채찍질과 죽음을 앞에 두고 괴로워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거다. 두렵고, 고통스럽고, 아프지만, 사랑을 지키려고 불편함을 감내하고 희생한 것이다.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도 비슷하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어렵고,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건 무섭고, 성경을 읽고, 빠짐없이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건 귀찮고. 분명 하나님은 사랑하지만, 애정을 표현하기에는 불편한 것들이 한 가득이라, 가끔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마음도 든다.(힘들고, 어렵고, 불편하고, 하기 싫고, 귀찮고, 지쳐도)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좋은 점이 더 크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기꺼이 감수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도 기쁨을 선택하려 애쓰는 것. 그게 사랑 아닐까?(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 살기에는 번거로운 게 참 많지만) 하나님이 웃으면 나도 좋아요!! 평소의 저라면 하기 싫지만, 하나님이 좋다면 그래도 한번 해볼게요!작성자 : 한지현(동화작가)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와플 QT_동화의 마지막처럼
2021-06-09
느헤미야 7장 60-73절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출신도 직업도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돌아온 땅에서 예물을 바치고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합니다. 사는 모습은 다를지라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신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회복하게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일하십니다. 각자에게 주신 위치가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를지라도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60. 이와 같이 성전 봉사자들과 솔로몬왕 신하들의 자손들 중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392명이었다. 61. 이때 페르시아의 델-멜라, 델-하르사, 그룹, 앗돈, 임멜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다른 집단도 있었으나 그들이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62. 이들은 들라야와 도비야와 느고다 자손들로 모두 642명이었다. 63. 그리고 제사장들 중에서 호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 그리고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하여 처가집 이름을 딴 바르실래의 자손들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64. 그들도 족보에서 그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부정한 자로 취급을 받아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지 못했으며 65. 유다 지도자는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판결을 물어 그들이 실제로 제사장인지 아닌지 밝혀낼 때까지는 제사장이 먹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66-67. 이상과 같이 유다로 돌아온 사람들은 노예 7,337명과 남녀 성가대원 245명 외에 42,360명이었다. 68-69. 또 그들은 말 736마리, 노새 245마리, 낙타 435마리, 당나귀 6,720마리도 함께 끌고 왔다. 70.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예물을 바쳤다. 그들의 지도자들이 바친 것은 금 8.4킬로그램과 대접 50개와 제사장복 530벌이었고 71. 족장들이 바친 것은 금 168킬로그램과 은 약 1,256킬로그램이었으며 72. 그 밖에 백성들이 바친 것은 금 168킬로그램과 은 1.142킬로그램과 제사장복 67벌이었다. 73. 이렇게 해서 제사장, 레위 사람, 성전 문지기, 성가대원, 그 밖에 모든 백성들이 각자 자기 성에 정착하였다. 한 독서모임에서는 처음 참석한 회원의 소개 시간에 참석자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으려는 방법으로 나이와 직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전통이며 규칙이라고 한다. 우리는 교회나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으로 인한 편견과 선입견이 계급과 신분으로 생성되어 대접받는 일을 종종 경험하곤 한다.느헤미야 7장은 바빌론에서 포로로 있다가 귀환한 사람들의 인구조사로 시작된다. 이때 느헤미야가 개수한 백성 중에는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 그리고 솔로몬 신하의 자손들을 포함해 여러 민족이 섞여 있었고 가문이 불확실한 사람도 많았다.재미있는 점은 여기에 느디님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느디님 사람은 7장 전체에서 총 세 번 언급되는데 이는 히브리어 ‘나탄’에서 파생된 말로, 성전 봉사를 위해 주어진 노예들을 말한다. 그 이름이 왜 세 번이나 언급될까 하는 궁금증은 마지막 절에서 해소된다.“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느헤미야 7장 73절, 개역개정).”빈부귀천 없이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데 ‘노예’ 만큼 적절한 신분이 있을까 싶다. 우리의 삶이 한 권의 동화라면 그 이야기는 지금 나의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계획하고 완성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 분명하다. 천국의 계보나 하나님의 족보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온 자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공주가 주인공인 동화의 마지막처럼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작성자 : 김택환(온맘닷컴)출처 : 맛있는 QT 문화예술 매거진 <와플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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