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비관적인 종교
by Jerry Riendeau2024-02-02

“똑같은 신을 숭배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근본적인 면에서 동일한 핵심을 갖고 있다.”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교회 개척 사역을 하는 나는 이런 주장을 자주 접한다. (디어본은 북미에서 아랍인이 가장 많이 밀집된 지역이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주로 젊은 무슬림인데, 그들의 의도는 나쁜 게 아니다. 나름대로 문화와 종교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로의 신앙을 향한 상호 이해와 존중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기독교의 근본 원리를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나는 종종 이렇게 반문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유한다는 ‘핵심’이 과연 뭘까요? 기독교와 이슬람이 정말로 그렇게 비슷합니까?”


그러면 보통 듣는 대답이 있다. “글쎄요, 결국 우리는 다 신을 기쁘시게 하고, 그래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런데 말이죠. 내가 지금 기독교라는 종교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면 어떨까요? 사실 난 세상에서 가장 비관적인 종교가 기독교라고 생각하거든요.” 


기독교의 핵심에 있는 비관주의


내 반응은 종종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내가 왜 그리스도인을 그토록 비관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정말로 궁금해한다. 대화는 보통 이렇게 흘러간다. 


“그리스도인이 비관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글쎄요, 당신은 우리가 다 신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죄를 지은 인간은 결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부분에서 조심하지 않으면, 당신은 이런 질문을 전도의 기회로 착각할 수도 있다.


농담이지만, 이게 단지 기독교와 이슬람교만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기독교의 뿌리 깊은 비관주의는 기독교를 거의 모든 다른 세계관과 차별화시킨다. 대부분의 비기독교 신앙과 철학은 완벽함을 (또는 적어도 적절함을) 추구하는 다양한 전략을 제공한다. 오로지 기독교만이 자기 정당화의 시도라는 측면에서 인간은 완전한 패배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을 의미있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이 부분만 정확하게 구분되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많은 차이점이 쉽게 설명된다. 다음은 두 가지 예이다. 


첫째, 무슬림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순히 하나님이 보내신 여러 선지자 중 한 명이라고 주장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무슬림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주장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지시 사항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메신저, 사자이다. 하나님이 직접 내려와서 그런 지시를 한다는 건 극도의 과잉 조치이다. 


둘째, 무슬림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믿지 않는다. 결국, 예수님은 위대한 선지자였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보낸 선지자가 그런 식의 불명예를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다른 사람이 예수를 대신해서 죽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수는 단지 잠시 죽은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정신을 차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이런 견해는 완벽하게 합리적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기독교의 비관적인 견해를 제외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험에 처하지 않은 사람을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죽음을 영웅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말도 안 되는 헛된 죽음이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기독교의 인간관을 공유하지 않는 무슬림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터무니없이 들리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만 잘 정리하면 환상적인 대화의 문을 열 수 있다. 


반짝하고 전등이 켜지는 순간


“잠깐만요.” 내 친구 하산이 대화 중에 끼어들었다. 하산은 내가 디어본 캠퍼스에서 만난 레바논 대학생이다. “그럼 그리스도인은 천국에 가려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 때문에 이미 천국에 가게 하신 것에 너무 감사해서 선한 일을 한다는 소리인가요?” 


하산에게 이건 완전히 새로운 이야이였다.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다른 게 있다면 단지 해당 경로를 따라가는 방법에서 만나는 세부 사항의 차이 정도라고만 본 것이다. 


나는 그가 지금 내린 기독교에 대한 평가가 옳았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뭔가를 생각했다. “그게 훨씬 나아요! 천국에 가려고 선한 일을 한다면, 그건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소리잖아요. 하지만 당신 말이 맞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선한 일을 할 수 있겠네요.” 


하산이 그날 그리스도인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처음으로 기독교가 무엇인지, 더 중요한 건 그리스도가 그에게 제시하시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기독교의 복음이 바람직하고 심지어 아름답다고까지 생각했다. 


커지는 연결점


이런 대화는 얼마든지 디어본 밖에서도 가능하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는 다른 점보다 유사점이 많다는 견해가 무슬림 공동체 내에서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지금은 대부분의 미국인이 무슬림 인구가 많지 않은 곳에 살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상황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우리가 믿는 신앙에 관한 의미 있는 대화에 무슬림 이웃을 참여시킬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첫 단계는 그리스도인이 갖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견해를 잘 설명하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이 나쁜 소식이 어떻게 복음이라는 좋은 소식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선포하는 복음의 귀한 도구로 당신을 언제 어떻게 들어서 쓰실지 말이다. 



원제: The Most Pessimistic Religion in the Worl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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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Jerry Riendeau

제리 리엔도는 Virginia Tech와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수학했다. Virginia Tech와 James Madison University에서 13년을 대학생선교회(Cru) 간사로 섬겼다. 현재 가족과 함께 Dearborn(Michigan)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