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J. 사이더의 유산

변혁적 선교를 형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by Al Tizon2024-02-03

로잔에서 서울까지_로잔 글로벌 분석

2024 서울 제4차 로잔대회를 준비하며   

선교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와 실천에 대한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의 여정의 역사는 북미 신학자이자 활동가인 로널드 J. 사이더(Ronald J. Sider)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그는 2022년 7월 27일 82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죽음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던 그를 기념하고 그의 업적이 교회 선교에 끼친 지속적인 영향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준다.


그는 거의 45년 동안 필라델피아 인근의 파머(Palmer) 신학교에서 신학, 통전적 사역, 공공 정책 분야의 저명한 교수이자 사회행동을 위한 그리스도인(Christians for Social Action)의 설립자이기도 했지만, 다문화 선교사로 섬긴 적이 없었다. 영혼과 사회를 모두 다루는 온전한 기독교에 주목하던 그의 연구와 사역은 주로 북미라는 자신의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북미 대륙은 그의 메시지를 담아낼 수 없었고, 사이더의 영향력은 대륙의 경계를 넘어 교회의 세계 선교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는 순전한 우연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그는 국제 로잔대회에 세 차례 모두 참석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2010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에 그와 함께했다. 제1차 대회와 제2차 대회 사이 1980년도에 사이더는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Fellowship, 현재는 World Evangelical Alliance)의 윤리 및 사회 부서(Unit on Ethics and Society)에서 일하며 단순한 생활방식과 공동체 개발에 관한 두 차례의 협의를 조직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문화적 맥락에 적절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그의 시야 안에는 전 세계가 담겨 있었다.


그는 변혁의 운동을 촉진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함으로써 세계 선교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는데, 이는 인페미트(INFEMIT, International Fellowship for Mission as Transformation), 옥스퍼드 선교 연구 센터(Oxford Centre for Mission Studies), 그가 초대 편집장을 역임한 저널 트렌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국제 레그넘 북스(Regnum Books)와 같은 지속적인 단체에서 잘 드러난다.


변혁 운동 혹은 ‘변혁으로서의 선교’는 신학적인 학문에 뿌리를 둔 통합적, 상황적, 관계적 선교를 실천하는 성찰하는 실천가들의 느슨한 글로벌 네트워크라고 정의될 수 있다. 변혁주의자들은 평화, 정의, 구원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해방 없는 복음화, 구조의 변화가 없는 마음의 변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수직적 화해가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화해, 공동체의 구축이 없는 교회 개척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1]고 주장한다.


이 운동의 뿌리와 열매를 파헤치다 보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리고 매번 로널드 J. 사이더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물론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르네 파디야(Rene Padilla), 사무엘 에스코바르(Samuel Escobar), 비나이 사무엘(Vinay Samuel), 멜바 마가이(Melba Maggay), 콰메 베디아코(Kwame Bediako), 피터 쿠즈믹(Peter Kuzmic) 같은 인물들도 친구 혹은 ‘협력자’로써 함께 ‘변혁으로서의 선교’에 동참했다.


온전한 복음에 대한 변혁적 이해를 기초이자 배경으로 삼아, 사이더가 이 운동을 형성할 때 기반으로 한 다섯 가지 주요 방법을 살펴보자.


변혁과 제자도: 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다


첫 번째 요소는 복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제자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이더를 사회 정의와 연관시킨다고 해서 그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이더의 대답은 분명했다. “나는 사회 운동가가 아닙니다.”[2] 이 답변은 선언적이면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사이더가 스스로를 사회 운동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주의 구주이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3] 사회 변혁에 대한 그의 동기는 인본주의적 이타주의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도, 즉 세상에서 예수님을 신실하고 근본적으로 따르고자 하는 깊은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부와 빈곤: 기아 시대의 부유한 그리스도인


이제 여섯 번째 판을 출간한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Christianity Today의 복음주의 세계를 만든 50대 도서에 선정되었다. 그 영향력만 놓고 볼 때, 사이더가 복음주의 선교의 중심이 되는 경제적인 삶을 위해 그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부의 추구는 신처럼 떠받드는 소와도 같으므로 이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같다! 그러함에도 사이더는 부를 복음의 사역을 방해하는 강력한 우상이라고 불렀다. “점점 더 풍요로워지는 생활 수준은 21세기 북미의 신이며, 광고인들은 그들의 메신저이다.”[4]


사이더의 비판은 성경적 신앙의 규칙이 아닌 자본주의의 규칙에 따라 의심 없이 부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그는 “풍요와 빈곤의 시대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 성경적 진리보다는 사회의 물질주의적 가치를 따르는 이단에 굴복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5]고 적었다. 성경 속 선지자들의 정신에 따라 사이더는 교회가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경제를 실천하는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고, 즉 예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유한 그리스도인에게 책임을 묻는 사이더의 추궁은 교회의 전 세계 선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이는 나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부를 팔아 그 수익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요청으로 해석되었다(참조. 막 10:17-27; 마 25:31-40). 여기에 함축된 의미는 우리의 부가 선교의 자산이라기보다는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조나단 봉크(Jonathan Bonk)의 저서 ‘선교와 돈’[6]은 부유함이 선교 사역에 미치는 영향에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라면, 사이더의 ‘부유한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직접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선교 공동체 전체가 물질적 자원에 대한 태도와 관리에 대해 더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경제적으로 의식적인 선교에 영감을 주었다. 우리에게 맡겨진 풍부한 자원은 복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가?[7]


단순한 생활방식: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대로 살기


의심할 여지 없는 부의 추구에 대한 경고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의 실천적인 헌신은 선교적 신실함에 필수적인 단순한 생활방식에 대한 그의 부르심과 맞닿아 있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우리가 세계 속 가난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준다. 사이더는 전 세계 복음주의 공동체에서 이러한 신념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이 겪는 빈곤에 우리 모두가 충격을 받으며, 이 빈곤의 원인인 불의에 대하여 분개한다. 우리 중에 풍요한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이들은 검소한 생활양식을 개발해서 구제와 전도에 더욱 공헌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임을 확신한다”(언약 9항)는 로잔 언약의 내용을 마음에 새겼다.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영감을 받은 사이더는 1979년 미국 뉴저지와 1980년 런던에서 두 차례에 걸쳐 단순한 생활방식에 관한 협의체를 조직했다. 이 모임을 이끌었던 주된 질문은 “부유한 이웃의 생활 수준이 아닌 가난하고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필요를 기준으로 우리의 생활방식을 측정할 수 있는가?”였다.[8]


단순함(Simplicity)은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누리며 더 행복하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사이더에게 있어 단순함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보여주고, 이는 교회의 사명에 신뢰성을 준다. 실제로 단순함은 우리의 마음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향하게 한다. 또한 여유로운 시간과 자원으로 선교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한다. 그리고 제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마음을 키운다.


평화와 비폭력: 예수가 주님이시라면


비폭력에 대한 사이더의 신념은 그에게 책임이 있는 또 다른 선교의 윤곽을 제시한다. 확고한 평화주의로 유명했던 사이더는 비폭력 행동을 ‘“적”의 인격까지 존중하며 악에 맞서는 활동가로서, 비폭력적인 방법을 통해 억압을 종식시키고 억압하는 자와 화해를 도모하는 것’[9]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저서 ‘비폭력 행동(Nonviolent Action)’에는 1980년대 중반 필리핀의 잔혹한 권위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피플 파워 혁명(People Power Revolution) 등 비폭력이 사회 변화를 일으킨 역사의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10]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이더는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사이더가 비폭력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따분한 평화주의 대 정당 전쟁(just war)의 논쟁에만 국한하지 않고, 교회 전체가 평화를 만드는 데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진정한 정당 전쟁의 관점에서는 폭력의 사용을 전술 목록의 제일 마지막에 두며, 이는 어쩔 수 없이 폭력에 의존하기 전에 모든 비폭력적 가능성을 시도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폭력 행동에 대한 요청은 평화주의자, 정당  쟁 이론가,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 땅에서 ‘평화를 쟁취’하라고 손짓한다.


예수의 정치: 사회정치 참여[11]


마지막으로 사이더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정치에 부합하는 자세로 공공의 문제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주로 북미 지역의 신자들에게 사회정치적 참여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각자의 상황에서 정치 과정에 참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옹호하고 권력에 진실한 목소리를 내며 하나님의 평화, 정의, 공의를 반영하는 사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라는 그의 메시지는 세계 교회에도 뚜렷하게 전달된다.[12]


이는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일반적인 오해에 도전한 것이다. 또한 단순히 교회됨을 통해 대안 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사회 윤리적 책임을 줄이는 일부 아나뱁티스트(Anabaptist)와도 대립하였다. 카터 행정부의 정책입안팀에서 일했던 사이더는, 교회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치의 주된 흐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긴 하지만, 사이더는 당파적 정치를 반대했다.[13] 그리스도인의 사회정치 참여는 정당을 초월해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당파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따금 나에게 “알, 정치 노선의 양쪽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화나게 하면 자네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거야!”라고 말했다. 이념적으로 어딘가에 사로잡히거나 당의 노선을 따르기를 거부한 그는 ‘예수님의 정치’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런 정치는 “친생명, 친빈곤, 친가족, 친인종정의, 친평화, 친창조세계돌봄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 모두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14]


강력한 기반 위에 구축


요약하자면, 나는 오늘날 복음주의 세계 선교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 로널드 J. 사이더의 업적에서 다섯 가지 요소를 강조했다. 선교에 대해 진정한 총체적, 상황적, 관계적, 신학적 접근을 지지한 변혁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사이더가 크게 기여한 바는 다음과 같다. (1) 통합적 선교를 제자도의 영역에 위치시킨 것; (2) 부와 빈곤의 문제를 선교 의제로 집중시킨 것; (3) 단순한 생활방식에 관한 로잔 언약의 선언을 개발하는 데 다른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4) 세상에서 교회의 정의 사역의 일환으로 비폭력 평화 만들기를 외쳤다는 것; (5)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변화와 취약 계층을 위해 각자의 상황 속 정치의 과정에 참여하도록 촉구했다는 것이다.


나에게 로널드 사이더의 추도식에서 연설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나는 그에게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을 마음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과 복음에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풍성한 자원을 제공해 준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1. Al Tizon, Transformation after Lausanne: Radical Evangelical Mission in Global-Local Perspective (Oxford et al: Regnum, 2008), 6.


2. See Ronald J. Sider, I Am Not a Social Activist: Making Jesus the Agenda (Scottdale, PA: Herald, 2008). 

3. Sider, I Am Not a Social Activist, 21. 


4. Ronald J. Sider, Rich Christians in an Age of Hunger: Moving from Affluence to Generosity. Sixth edition (W Publishing, 2015), 28. 


5. Sider, Rich Christians, 25. 


6. Jonathan Bonk, Missions and Money. Revised and Expanded (Maryknoll: Orbis, 2006). 


7. Editor’s Note: See article entitled ‘A Holistic Approach to Poverty Alleviation in Asia’ by Kumar Aryal in Lausanne Global Analysis, July 2022, https://lausanne.org/content/lga/2022-07/a-holistic-approach-to-poverty-alleviation-in-asia. 


8. Ronald J. Sider, ‘Introduction,’ in Living More Simply: Biblical Principles and Practical Models, ed. Ronald J. Sider (Downers Grove, IL: IVP, 1980), 16. 


9. Ronald J. Sider, Nonviolent Action: What Christian Ethics Demands but Most Christians Have Never Really Tried (Grand Rapids, MI: Brazos, 2015), xv. 


10. Sider, Nonviolent Action, 63-77. 


11. This section is adapted from ‘Leading Evangelicals for Social Action,’ in Religious Leadership: A Reference Handbook, ed. Sharon Henderson Callahan (Los Angeles et al.: Sage reference, 2013), 459-460. Used by permission. 


12. Editor’s Note: See article entitled ‘Working for Freedom in a World of Exploitation and Trafficking’ by Marion L. S. Carson in Lausanne Global Analysis, July 2022, https://lausanne.org/content/lga/2022-07/working-for-freedom-in-a-world-of-exploitation-and-trafficking. 


13. 그렇지만 그는 트럼프를 분명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매우 드문 이런 경우에도, 그는 특정 정당의 입장에서 그를 반대하지는 않았다. See The Spiritual Danger of Donald Trump: 30 Evangelical Christians on Justice, Truth, and Moral Integrity, ed. Ronald J. Sider (Eugene, OR: Cascade, 2020). 


14. Sider, I Am Not a Social Activist, 203. 



원제: The Legacy of Ronald J. Sider

출처: lausann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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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Al Tizon

알 티존은 North Park Theological Seminary(Chicago, Illinois)의 선교 및 글로벌 리더십 학과의 부교수이자 Grace Fellowship Community Church(San Francisco, California) 담임 목사이다. 알은 9년 동안 로널드 사이더와 함께 파머 신학교와 ‘사회행동을 위한 그리스도인’에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