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법은 아주 명확합니다. 뭐냐면 오늘 주시는 말씀 앞에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 변함없이 신실하신 또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어제의 간증과 기억 그리고 내일의 약속과 기대를 연결하는 맥락 속에서 오늘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 거예요. 마리아는 좀 자기 생각에 깊이 빠져들고 몰두하는 소위 우리 식으로 덕후 같은 스타일이라면 마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 열심 이런 게 특별한 아주 성실한 아줌마 스타일이었어요. 이 마르다는 자기랑 예수님을 이렇게 분리하려고 해요. 어떤 식의 분리냐면 오빠의 죽음으로 이제는 더 이상 희망을 말할 수 없게 됐다는 게 분명한 자신과 아직은 절망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예수님과 이렇게 분리를 해요. 이후의 내용을 보면 나사로가 당장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어쨌거나 마르다는 어제의 아쉬움에 여전히 묶여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희망을 말했던 거죠. 주께서 뭐든지 하신다면 될 줄 저는 믿습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거죠. 그리고 담대한 희망은 곧 예수님의 응답과 만나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예수님의 응답, 너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살아나리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