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CITY CATECHISM뉴시티 교리 문답

Question 28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은 자들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심판 날에 무섭지만 정당한 정죄의 심판을 통해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선고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에서 쫓겨나 지옥으로 떨어지고, 공정하면서도 지독한 형벌을 영원히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쫓겨나 지옥으로 떨어지고, 공정하게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3장 16-18, 3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 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 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해설

J. C. 라일 지옥이라는 주제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나는 감히 잠잠히 있지 않을 것이며, 잠잠히 있을 수도 없고, 잠잠히 있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그 누가 지옥 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그렇게나 분명히 말씀하셨다면, 어떻게 평온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겠는가?

... 몇몇 사람은 지옥이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장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지옥은 하나님의 자비와 양립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옥이란 몹시 끔찍하기 때문에 사실일 리 없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귀는 당연히 그런 사람들의 견해를 기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마귀의 왕국을 엄청나게 돕는 것이다. 그들은 마귀가 좋아하는 해묵은 논리를 소리 높여 외친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말하느냐”다. 당신은 성경을 믿는가? 그렇다면 성경을 신뢰하라. 지옥은 참으로 실존한다. 이는 천국만큼이나 참이다. 이신칭의,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으심, 사해만큼이나 사실인 것이다. 지옥을 믿지 못한다면, 당신이 의심하지 못할 사실이나 교리는 없다. 지옥을 믿지 못한다면, 당신은 성경의 모든 것을 해체하고 어지럽히며 뒤흔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즉시 성경을 옆에 던져두는 편이 낫다. “지옥은 없다”와 “하나님은 없다"의 간격은 불과 몇 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묵상

존 린 성경에서 가장 난해하면서도 종종 오해되는 가르침이 있다. 바로 지옥이 의식할 수 있고 실재하는 영원한 형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오해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친구, 가족, 이웃, 동료 중에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미래가 지옥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실, 역사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지옥이라는 개념을 불편해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가 성경에서 읽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내용들과 전혀 들어맞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경은 지옥에서 의식이 있는 상태로 영원히 고통 당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사실 지옥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첫째, 이 땅에서 살아간 사람들 가운데 가장 사랑 많으신 분인 예수께서 다른 성경 기자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생생하게 지옥을 말씀하셨다. 예수는 지옥을 “게헨나"(Gehenna)라고 하셨다. 게헨나는 쓰레기를 쌓아 둔 곳으로, 불이 끊이지 않는다. 또한 “바깥 어두운 데"라고도 하셨는데, 이것은 어떠한 빛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고통만 있는 곳을 뜻한다. 예수께서 들려주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에서 지옥은 의식할 수 있는 실제적인 고통이 있는 곳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옥에 대해 거듭 경고하셨다(마 13:41-42, 막 9:42-48, 눅 16:19-31).

둘째, 지옥의 존재는 우리가 죄의 결과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어떤 면에서 지옥이란 죄악 된 자들인 우리가 언제나 바라던 것이 실현된 곳이다. 즉 하나님을 떠나 독립적으로 자치권을 누리는 것이다. 지옥에서는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모든 것과 단절된다. 따라서 지옥에는 사랑도, 우정도, 기쁨도, 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은 모두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지옥의 실재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십자가의 의미를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님의 진노의 실재를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이 사랑하는 것을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확정되고 통제된 적대심과 증오다. 하나님의 진노는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탐욕, 이기심, 부당함, 악에 분노하신다. 그런 것들이 창조 세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창조 세계와 인간을 파괴하는 것이 있다면,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신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실 거거든"이라는 말과 “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이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셨거든"이라는 말은 많이 다르다. 첫째는 사랑의 감정이고, 둘째는 사랑의 행위다. 우리가 지옥과 하나님의 진노의 실재를 축소시켜서 하나님을 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축소시키는 셈이다. 실존하는 지옥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치르신 참된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참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면, 참된 사랑도 없고, 참된 은혜도 없으며, 예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참된 찬양도 없는 것이다.

지옥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께서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직접 지옥을 경험하셨다. 자신의 아버지와 분리되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는 부르짖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예수는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상실하셨을 때, 우리가 지옥에서 영원히 겪게 될 것보다 훨씬 엄청난 고뇌와 붕괴와 단절을 겪으셨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당해야 할 그 붕괴와 단절을 직접 짊어지셨다. 지옥을 믿지 않고,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겪으신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절대로 깨달을 수 없다.

진짜 문제는 어떻게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지옥을 허용하셨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지옥을 경험하셨다면, 참으로 그분은 사랑 많으신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하나님이 지옥을 허용하셨느냐?"가 아니다. “왜 하나님이 나를 위해 지옥을 경험하셨느냐?”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다.

기도

온 땅의 심판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언약에 속하지 않은 모든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심판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너무 늦기 전에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이 주님과 화목하여 그들의 몫인 형벌을,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떠나 있을 때 우리의 몫이기도 했던 그 형벌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