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이 아닌가?복음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복음’이라는 단어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다양한 ‘복음’에 대한 정의가 있지만, 팀 켈러는 센터처치(Center Church: Doing Balanced, Gospel-Centered Ministry in Your City)를 시작하면서 “복음은 모든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복음을 설명한다. 왜 ‘복음은 ~이다’라는 긍정문으로 시작하지 않고, 이처럼 부정문으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면 ‘복음은 ~이다’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오늘 이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은 나를 그들의 어께 위해 세워 준 형들 덕분이다. 지나온 53년의 내 인생에서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은 나를 가르치고 사랑해 준 지혜롭고 경건한 여러 형들에게서 거의 전부 비롯되었다. 그러니 지금 나누려는 PCA(미국장로교) 교단의 미래에 대한 나의 짧은 생각들은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들의 어깨를 내어준 형들에게서 빌려 온 것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여기서 ‘형’이라는 단어는 사회 계층이나 나이 차이 이상의 것을 표현한다. 특히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형과 동생 사이에 일어나는 깊은 애정, 신뢰, 헌신, 희…
한 문장이 삶을 바꾸기도 한다“한 문장이 우리 마음에 너무 강력하게 박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만들 때, 바로 그 한 문장이 끼친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존 파이퍼“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겔 22:30)내게는 소위 말하는 “인생 구절” 또는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구절을 통해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그런 구절이 없다는 건, 내 기억력의 지속 기간…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글에서 나는 다른 문화와 배경을 가진 신학자와 성경 주석가들로부터 통찰력을 얻고 싶어 하는, 점점 더 그 숫자가 늘어나는 복음주의자들이 가진 열정에 관해서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이러한 변화(development)가 우리와 성경 본문 사이의 문화적 거리를 과장함으로 우리를 특정한 사회적 위치(social location)에 가두게 되고, 그 결과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텍스트를 접할 때 갖는 “선이해”를 최소화해서는 안된다. 해석을 좀 더 정교…
지난 첫 번째, 두 번째의 글에서 나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조심해야 할 두 가지 위험에 관해서 지적했다.- 첫 번째는 포스트모던 관점 이론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읽는 경우이다. 이럴 때 우리는 사회적, 문화적 위치 또는 특정 공동체의 “살아있는 경험”의 영향을 강조하는 해석학을 채택함으로, 애초에 철저한 본문 해석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상대주의적 해석 방식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는 텍스트를 대할 때 가지는 “선이해”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또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대화 상대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는 시대를 맞았다. 이 말은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어떤 태도나 행동을 “죄”라고 부르려고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라는 단어가 이제는 너무도 구닥다리로 느껴진다. 얼굴을 붉히고 손가락질까지 하면서 기운 빠진 회중들을 향해 죄에 대해 꾸짖는 설교자를 한번 상상해보라.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설교 또는 그런 설교자와 엮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그러나 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될 때,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해 …
고난을 잘 이겨내는 것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준비를 필요로 한다.돈 카슨(Don Carson) 교수는 “크리스천이 감당 못할 정도로 슬퍼하고 혼돈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의 기대 수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고통과 악의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우리 스스로가 비극에 당면하기 전까지는 결코 제대로 생각할 수 없다”라고도 말했다(‘How Long O Lord?’, 11).이 세상 그 누구도 인내를 가지고 점점 더 집요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는 한 슬픔에 빠져 있으면서 동시에 “항상 기뻐하…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하나의 방식으로 전달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으로 또 ‘생명’, ‘칭의’, ‘양자됨’, ‘속량’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다. 모두 동일하지 않고 작은 차이를 보이는데 사이먼 게더콜은 “공관복음이 미래 지향적이기 때문에 ‘영생’ 보다는 ‘나라’라는 개념을 더 자주 사용했다.”라고 말한다. 설교자나 교사들이 복음을 풍성하게 전달하려면, 빛이 프리즘을 통해 다양하게 비치듯이, 다양한 주제를 통해 복음을 다채롭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D.A.카슨은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를 중심으…
그리스도인은 ‘미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인생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다.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전 9:3). 이렇게 쉽사리 단정하는 전도자의 판단이 혹 의심스럽다면, 특별히 한 가지 죄를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러면 솔로몬이 옳았다고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 죄란 바로 ‘교만’이다.우리 모두는 흙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이 땅에서 스스로를 과시하며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다. 노골적으로든 교묘하게든 그러한 자세를 드러내…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것만 찾는 시대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던(행 17:21) 옛 아테네 사람들과 같아지고 있다. 어쩌면 이미 그들을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IT와 디지털 혁명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즉 문자 그대로 “뉴스”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오래된, 영광스럽도록 오래된 진리들을 붙든다. 이 진리는 뉴스에 탐닉하는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