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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문제를 대하는 기독교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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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R. C. Sproul  /  작성일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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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악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고전적인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져 왔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과 같은 철학자는 주장하기를, 악의 존재는 하나님이 전능하시지 않거나, 또는 선하시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사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서 벗어난 악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하나님이 악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심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그분의 성품을 선하다고 할 수 없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악의 문제가 함축하는 이러한 논리 때문에, 교회는 소위 신정론(theodicy)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변증 작업을 시도해 왔다. ‘신정론’이라는 용어는 두 가지 헬라어 단어가 합성된 개념이다. 즉 하나님을 의미하는 ‘데오스’(theos)와 정의를 의미하는 ‘디카이오스’(dikaios)가 조합되었다. 결국 신정론은 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도는 이를테면 존 밀턴(John Milton)의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신정론은 악을 인간의 자유 의지에서 비롯된 직접적인 결과라고 이해하는 단순한 설명에서부터 라이프니츠(Leibniz)가 철학적인 접근으로 제시한 더욱 복잡한 논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중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은 볼테르(Voltaire)의 캉디드(Candide)에서 풍자적으로 다뤄지기도 했는데, 라이프니츠는 거기서 세 가지 유형으로 악을 구분했다. 바로 자연적 악, 형이상학적 악, 그리고 도덕적 악이다. 라이프니츠는 이러한 3중 도식에서 특별히 도덕적 악에 대해서는 유한성(finitude)의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즉 완전한 존재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론적 결여가 불가피하게 그와 같은 악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모든 피조물은 무한한 존재에 이를 수 없는 부족함을 지니기에, 그 부족함이 우리가 목격하는 도덕적 악과 같은 결함을 낳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이 신정론은 성경이 규정하는 악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만일 피조물이 그 존재상 필수불가결하게 지닐 수밖에 없는 조건이 악이라면, 아담과 하와는 타락 이전부터 악을 내포한 상태에 처하고 만다. 심지어는 천국에서 영화된 후에도 피조물로서 악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학자들이 “불법의 비밀”(the mystery of iniquity)이라고 부르는 문제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제공하는 경우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역주: 원래 “불법의 비밀”이라는 표현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7절에서 사용되었으며, 이 어구가 KJV 영어성경에서 “the mystery of iniquity”라고 번역되어 전통적인 표현으로 굳어졌다. 여기서는 악의 문제를 가리키는 개념으로만 언급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설명이 인간의 자유 의지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설명하는 일에 얼마나 큰 부담이 따르는지를 놓치고 있는 듯하다. 자유 의지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는 악의 기원을 설명해 낼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선한 존재가 어떻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악을 선택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경향이 의지에 있는 한, 이미 죄악이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악의 문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접근이라면, 어거스틴(Augustine)이 처음으로 개진하고 나중에 아퀴나스(Aquinas)가 발전시킨 신정론을 들 수 있다. 이 신정론을 통해 그들은 악이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논증했다. 악은 그 자체로 어떤 대상이나 실체 혹은 존재로 규정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 대신에 악은 하나의 행위, 즉 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행위로 규정된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는 악을 선의 부정(negatio) 또는 결핍(privatio)으로 정의해 왔다. 그리고 악의 개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선에 대한 이해가 선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 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어거스틴의 주장처럼 악은 선에 기생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악은 정의상 선에 의존하고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기독교인이 비록 세상에 존재하는 악을 설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이교도는 그 어려움이 배나 되는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악의 문제를 설명하려면 선의 존재부터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나님을 상정하지 않고는 선에 대한 궁극적 기준을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사람들은 악과 선을 둘 다 부정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을 취해 왔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악한 행동으로 실제적인 고통을 가한다면, 유지되기가 매우 어렵다. 자신이 악한 행동의 피해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악의 존재를 부인하기가 쉬운 법이다.


결국 우리가 악의 기원에 대한 완전한 답변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전능하심과 선하심 속에서만 악의 존재를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결코 악을 행하지 않으신다. 그러면서도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 즉 악을 행하지도 만들지도 않으시지만, 악이 존재하도록 주관하신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므로, 당연히 악이 존재하지 않도록 막으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악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허용하셨다. 그렇다면 악의 존재는 그분의 주권적 결정을 반영한다고 봐야 한다. 또한 그 주권적 결정은 그분의 완전한 성품을 따른 일이었기에, 우리는 악의 존재를 허용하신 그분의 결정이 선한 결정이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악을 선하다거나 선을 악하다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악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신 결정이 선하다”라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다. 나의 요점은, 악이 존재하도록 허용하신 결정은 선하며 그 결정에서 벗어난 다른 악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정론 조차도 ‘어떻게’ 악이 피조 세계에 유입되었는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 접근은 오직 ‘왜’ 악이 존재하는가만 설명할 뿐이다. 우리는 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 행동 가운데 악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악의 세력이 현저하게 드러나 이 세상에 큰 고통과 아픔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 악을 다스리시며 마지막까지 악이 득세하도록 허용하지 않으시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악은 언제나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선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 가운데 악을 최종적으로 정복하시며 우주에서 그 악을 제거하기로 작정하셨다. 바로 이 구속 계획에서 우리는 안식과 기쁨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계획이 이뤄지기까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갈 뿐이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Mystery of Iniquity

번역: 장성우

작가 R. C. Sproul

R. C. 스프로울 박사는 Ligonier Ministries를 설립했으며, 플로리다 주 샌포드 시에 위치한 Saint Andrew’s Chapel의 창립목사로, Ro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총장으로 봉직했다. 평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성’(The Holiness of God)을 비롯하여 백여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