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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맞습니다. 그러나’의 지혜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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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최원준  /  작성일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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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and the woman of Canaan_Sebastiano Ricci (1659–1734)/WIKIMEDIA COMMONS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이방 여인을 ‘개’라고 하신다. 참으로 불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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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계시고자 했지만 숨길 수 없었다이미 명성이 두로와 시돈까지 널리 퍼졌다예수에 대한 소문이 한 여인에게도 미쳤다여인은 소문을 듣자마자 예수님을 찾는다.

 

예수님을 찾아온 여인은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출신”이다여인은 시리아 지역에 속해 있는 페니키아 이방인이었다(마태복음은 가나안 여인으로도 표현한다). 여인은 예수님께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애원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자녀들의 빵을 취해서 개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막 7:27). 


예수님은 자신을 찾아온 이방 여인을 “개”라고 하신다인종차별 발언이 아닐 수 없다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아, 예수님도 사람을 차별하시는구나예수님도 유대인이시니사랑을 베푸는 대상은 불쌍한 이스라엘 사람들이지 이방인이 아니구나.’

 

오늘 우리에게는 참으로 불편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어떻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

 

이 불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어떤 학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예수님의 이 언행은 인종차별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예수님 당신의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억압적 체제를 짐짓 빗대신 것흉내 내기(simulation) 하신 것이라고 해석한다예수님의 이 발언은 인간을 비극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 세상의 의식과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몸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쉽게 말하면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또 당시 유대인의 식탁 문화를 배경으로 이해할 필요도 있다예수님과 여인의 대화에 등장하는 개는 썩은 고기를 찾아다니는 사나운 들개가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이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퀴나리온은 작은 개를 의미한다.) 당시에 애완견은 식탁 밑에서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었다여기서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나사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허기를 면하려고 했을 때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았다이 개들 역시 집에서 기르는 개다당시 유대인들은 수염을 길게 길렀는데식사할 때 음식이 수염에 묻으면 식후에 빵으로 털어 냈다그리고 그 빵을 개에게 주었다그러나 어떤 주인도 ‘먼저’ 자녀에게 빵을 주지 개에게 주지는 않는다먹고 남은 것을 줄 뿐이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하신 말씀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구원이 제시되고 그 후에 이방인에게 차례가 돌아간다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병이어 이적 이후에 칠병이어 이적이 나오는 것도 그렇다오병이어 이적에서 남은 빵을 담은 바구니가 열둘이라는 사실은 이 이적이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암시한다반면에 칠병이어 이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있었고또 일곱 광주리가 이방 세계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여인은 대답한다.


“주여맞습니다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먹다 떨어뜨리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막 7:28) 


여인은 예수님을 “주님”(퀴리에)이라고 부른다인격모독적인 발언을 듣고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예수님을 높이고 있다또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한다사람은 모욕을 당하게 되면 수치심을 느끼기 마련이다그때 나타내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된다첫 번째, ‘그래내가 그렇지내 주제에.’ 이전보다 더 자기를 비난하고 숨어 버린다두 번째자신을 모욕한 사람에게 분노하고 그를 비난한다이 두 반응은 자신을 모욕하는 현실을 극복하기 어렵다그런데 여인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현실을 직면한다이 가나안 여인은 자신을 개 취급하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현실에 대한 체념이나 막연한 분노가 아니라현실을 마주하고 인정한다문제 해결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여인은 현실 직시 및 인정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간다이제 여인은 불의한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 아래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들을 먹습니다.” 여인은 개의 권리를 주장한다자녀가 우선되어야 하는 현실인정합니다그러나 개처럼 취급받는 사람들에게도 권리가 있습니다그것이 부스러기라도! 여인은 우리가 “부스러기 은혜”라고 부르는 바로 그 은혜를 자신에게 베풀어 달라고딸을 고쳐 달라고 애원한다.

 

놀라운 지혜가 아닐 수 없다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급식 이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막 6:52; 8:14-21), 또 정결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우둔함과 대조된다또한 여인은 자기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예수님의 대답에 좌절하지 않고 겸손히 자비를 구하는 믿음을 가진 자라는 점에서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받은 제자들(막 4:4)과 대조된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 보아라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지혜와 믿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막 7:29)같은 내용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에 따르면예수님은 여인의 지혜와 믿음에 놀라기까지 하신다“오 여자여네 믿음이 크도다네 소원대로 될 것이다”(마 15:28, 개정개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지만헬라어 원문에는 감탄사 ‘오’가 있다).

 

예수님은 여인의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다”고 말씀하신다여기서 쓰인 ‘나갔다’의 헬라어(엑세레뤼쎈)는 현재완료시제다예수님은 귀신 축출을 위한 그 어떤 말씀이나 행동도 하지 않으셨다예수님과 여인 사이에 대화가 진행되고 있을 때이미 귀신은 떠나갔다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내다보신 것이 아닐까이미 요청은 이뤄졌다그러나 여인은 모른다여인에게는 거쳐야 할 테스트가 있었다그리고 여인은 그것을 잘 통과했다.


   

이 글은 최원준 목사의 ‘마가복음(홍성사, 2021)의 일부를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갈무리하여 다시 엮은 것입니다.

여인은 우리가 ‘부스러기 은혜’라고 부르는 바로 그 은혜를 자신에게 베풀어 달라고, 딸을 고쳐 달라고 애원한다. 놀라운 지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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