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쀼’의 세계
by 양혜원2024-01-30

커플 걱정하는 거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헤어진다느니, 더는 같이 못 살겠다느니, 남친이나 남편에 대한 불평과 하소연을 잔뜩 늘어놓던 친구의 말을 기껏 들어주고 위로해 줬더니, 불과 며칠 후 헤헤거리며 다시 짝꿍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본 싱글들이 만들어 낸 말이지 싶다. 자식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버지 흉을 잔뜩 보는 어머니에게 맞장구를 칠라 하면 이내 아버지 두둔을 하고 나서는 어머니를 보며, 그들의 세계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보다 하는 어느 작가의 감상을 읽은 적이 있다. 


문득, 지난 12월, 선배 언니 아들의 결혼식에서 본 광경이 떠오른다. 16년 전,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이 대학 가는 거까지라도 보고 싶다고 하던 언니가, 계속 항암 치료를 받으며 암과 동거하는 생활을 해오던 중에 그 아들이 대학도 가고, 군대도 다녀오고, 결혼까지 하기에 이르렀으니, 가지 않을 수 없는 결혼식이었다. 곱게 한복을 입고 혼주 차림을 한 언니를 보고 괜한 감동에 울컥 눈물이 나서 급하게 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감정을 추스르고 식장에 들어갔다. 이 뜻깊은 결혼식을 제대로 보고 싶어 가장 잘 보이는 좌석을 찾는데, 마침 혼주 하객 테이블이 단상 바로 가까이라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테이블에는 혼주 중에서도 아버지 쪽, 그러니까 선배 언니 남편의 지인들이 나머지 자리를 채우는 바람에 실로 오랜만에 홍일점으로 앉아 식사를 하며 식을 지켜보았다. 


육칠십 대는 되어 보이는 이 혼주 쪽 지인들은 서로들도 아는 사이인 듯,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그중 한 사람이 “저는 오늘 김장하는 날이라 좀 일찍 들어가 봐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 김장은 여자들의 일이고, 남자는 집에 있어봤자 걸리적거리는 존재라 집을 비워주는 게 차라리 도움이 되는 게 오랜 가부장제 문화의 패턴인 줄 알았는데, 나이 지긋한 분이 김장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니 신선했다. 그러자 그 옆에 앉은 분이, “우리는 어제 했어요. 거기도 절인 배추 사서 하세요? 그걸로 하니까 훨씬 편해요.” 이런다. 아, 이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은퇴한 중산층 남자들의 대화란 말인가. 부부 관계의 신풍속도를 보는 듯했다.


선배 언니의 남편은 운동권 출신이라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지인들의 대화 중에 누가 옛날에 감옥 갔다 와서 어쨌고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다. 강남의 부잣집 딸이었던 언니는 가진 거 하나 없는 시골 출신 운동권 남자에게 반해서 결혼을 했고, 그 후에 적잖이 고생을 했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언니가 덜컥 암에 걸리자, 집안일 한번 안 해본 남편이 살림과 간병에 뛰어들었고,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에 앞서는 마음과 서투른 일처리에 못 따라오는 몸 때문에 빚어지는 갈등도 있었다고 들었다.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어도, 언니는 그런대로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했고, 아픈 와중에도 정말 같이 못 살겠다 싶은 순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부부로 지내고 있다. (언니는 아직도 항암 중이다.) 


2023년이 이런 이야기로 그럭저럭 훈훈하게 마무리 되어가던 무렵 또 다른 선배 언니가 암에 걸린 것 같다며 전화를 해 왔다. 기침이 생각보다 오래가서 병원을 찾았다가 덜컥 폐암 4기일지도 모르니 얼른 검사를 받으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마침 언니랑 아는 후배 하나랑 같이 셋이서 여행을 가기로 한 바로 전날이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서둘러 예약한 숙소와 기차를 취소하려는데, 언니가 호기롭게, 어차피 지금 아픈 거도 아니고 검사도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예약 일까지 기다려야 하니 그냥 여행을 가자고 고집해 우리는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워하면서도 같이 길을 나섰다. 정말 암이라면 치료하는 동안 여행은 힘들 테니 갈 수 있을 때 가자는 심산도 있었던 것 같다. 푸짐한 저녁과 뜨끈한 온천으로 몸과 마음이 노곤해진 우리는 언니로부터 평소 듣지 못했던 이야기도 들으면서 하룻밤을 보내고 왔다. 그 후 언니는 다행히 폐암은 아니지만 역시 암은 암인 것이 밝혀져 항암 치료를 시작했고, 커플이 아니었기에 남편 대신 요양병원의 간호를 받으며 나한테 전화해서, 여기 아주 편하고 좋다, 라면서 만족스러워했다. (이 언니도 계속 항암 중이다.) 


그리고 해를 넘겨 2024년 첫 주에, 어머니도 갑자기 암 진단을 받으셨다. 예후가 아주 좋지 않은 뇌 쪽의 림프종으로, 진단이 나왔을 때는 이미 종양과 부종이 오른쪽 뇌를 가득 채운 후였다. 그렇게 갑자기 발현되고 확산이 매우 빠른 암이라 일주일 전과 후의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어머니는 기저 질환이 없으셔서, 몸에 이상이 생겨도 혈압약을 드시는 아버지 쪽일 거라 생각했지, 어머니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괜히 항암으로 고생만 하시다 가는 것 아닐까,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이대로면 일주일 안으로 돌아가신다는 의사의 말에 급하게 항암이 시작되었다. 뇌에 종양이 생긴 어머니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시기도 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해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착잡했고, 누구보다도 아버지가 힘들어하셨다. 


아버지는 자상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었고, 어머니가 한 번씩 나랑 길게 통화할 때는 주로 아버지에 대한 불평일 때가 많았다. 정말 이제는 같이 못살겠다는 말씀도 제법 진심을 담아 여러 번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지하게 들어드렸고, 정말 심각한 갈등이면 그냥 헤어지시는 게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도 해 보았다. 40대 때만 해도 부모님이 헤어지시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50대가 되고 나니, 뭐, 그리 큰일도 아닐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또한 쓸데없는 커플 걱정이었다. 


코로나 이후의 병원 규정 때문에, 어머니 옆에는 한 명의 지정 간병인만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간병을 고집하셨다. 그러나 돌봄 노동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는 간병이 서툴렀고, 그로 인해 하룻밤 새에 어머니가 세 차례나 낙상하는 바람에 골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엑스레이까지 찍으셔야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처음 하는 일이라 그랬다고, 이제는 잘할 수 있다며 계속 간병을 고집하며 병실 안에서 버티셔서 우리는, 도대체 엄마가 몇 번을 더 낙상해야 포기하시려나 하는 심정으로 물러섰는데, 결국 밤새 간병하며 힘이 드셨던지 간병인을 부르라 하고는 시골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의 서투름으로 낙상하여 눈가가 시퍼렇게 멍든 어머니가 되려 아버지를 계속 찾아댔다. 간병인 돌려보내고 대신 아버지를 오라 하라고 하시는데, 이분들이 이렇게 서로 애틋한 사이였던가, 그동안 내가 들은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불평불만은 다 뭐였단 말인가, 싶었다. 결국 아버지는 하루 만에 서울의 병원으로 돌아오셨고, 마침 간병인의 학대 정황도 잡히는 바람에 아버지의 간병 주장은 더욱 힘을 얻어 본격적인 아버지의 간병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올해 만으로 여든이신 데다가, 최근에는 정신도 오락가락하시는 아버지가 간병을 하게 되면서 자식들은 환자와 간병인 모두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더욱 정신이 없었다. 간병인 이외의 출입을 금지하는 병원 규정 때문에, 이리저리 눈치 보며 두 분의 상태 확인하고 필요한 것 나르고 하느라 동생과 나는 멘탈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병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아니 그것은 사랑이었던가. 


처음에는 간병이 서툴렀던 아버지는 이내 요령을 익히셨고, 일주일쯤 지나자 우리도 조금 마음을 놓게 제법 간병을 잘하셨다. 다른 일은 다 정신이 없으신데도 간병은 그런대로 잘 해내시니 그게 신기하기도 했고, 어머니도 심리적 안정을 얻으면서 만족스러워하셨다.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어머니의 뜻에 다 맞추었고, 전 같으면 언짢아하실 만한 일도 그냥 다 받아주셨다.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하는 것 부지런히 사다 나르고, 뒷일 처리며 부축이며 제법 능숙해지셨다. 다행히 항암이 잘 들어 최근에 2차 항암을 위해서 다시 입원을 하셨는데, 이제는 병원이 편하다며, 어머니랑 같이 있어서 좋으시단다. 잠시 쉬시게 하루라도 교대해 드린다 해도 다 괜찮단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랑꾼의 모습이다. 정말이지 부부에게는 부부만의 신비로운 세계가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친척 중에 평생을 남편에게 맞고 살았고, 나중에는 접근 금지 명령까지 내려놓고도, 결국 이혼을 안 하고 한집에서 (각방 쓰며) 같이 사는 부부도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친척은, 부인이 외국에서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남편은 은퇴 후에도 홀로 한국에서 인스턴트 음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매 끼니를 이어가며 몇십 년을 떨어져 사는 부부도 있다. 두 경우 모두 내가 공부한 상식이나 경험으로는 부부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없는데도, 이들은 부부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가톨릭 작가 소노 아야코는 부부 관계를 “불가사의한” (혹은 “알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은 이런 부부 관계의 속성에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남이 개입할 수 없는 ‘당사자들’의 문제라는 뜻이다. 


사실, 남이 개입할 수 없는 ‘당사자들’의 관계란, 비단 부부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소노 아야코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선택한 원칙이고 “하나의 성역이어서 어떤 사람도 침범할 수 없다”라고 했다(남들처럼 결혼하지 않습니다, 218쪽). 그러니 당사자들 이외의 사람이 개입하기 힘들다. 그런데, 심지어 부모 자식 관계도 서로를 떠나는 시기가 있다면, 부부란 중간에 헤어지거나 일찍 사별하지 않는 한, 그 누구보다는 긴 시간을 꾸준히 서로를 상대하며 지내야 하는 사이이다. 그렇게 쌓인 시간 때문에 부부는 정말로 굵은 물줄기처럼 아무리 잘라도 잘리지 않는 무엇으로 묶이게 되는 것 아닐까. 몸으로 안다는 것은 비단 섹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네 몸이 내 몸인 양 만져도 아무런 설렘이 없는 그런 시간의 물리적 축적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이런 관계는 밋밋한 관계라고, 부부간의 로맨스를 살리라는 조언들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 사실 이게 딱히 성경적인 말 같지는 않다. 바울은 정욕을 위해서 각자 한 명의 배우자를 두라고 했는데, 정욕은 로맨스와는 별개의 문제이고, 정욕이란 게 평생 있는 것도 아니고, 성별과 나이와 개인 성향에 따라 다 다르고, 한 대상에게만 느끼는 것도 아니라, 사실 이 규범은 그냥 혼자 살라는 대원칙을 따르지 못하는 대다수 사람을 위한 위안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가톨릭교회는 오늘날에도 소수의 독신 수도자를 다수의 결혼한 평신도보다 우위에 둔다). 성경에서 일상적 부부 생활의 사례는 의외로 찾아보기 힘든데, 그나마 오랜 세월 부부로 살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성경의 커플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떠오른다. 남편이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넘기지를 않나, 아내가 남편을 다른 여자에게 넘기지를 않나, 그러면서도 백세가 다 되도록 후손을 얻기 위해 성생활을 이어가는 이 부부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관계이다. 그렇게 보면, 부부는 사명으로 이어질 때 가장 단단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로맨스 운운하는 것은 역시 성경적이지 않다. 


C. S. 루이스가 그랬던가, 로맨스란 결혼이라는 차를 힘차게 출발시키는 엔진과 같은 것이라고. 아마도 그렇게 강력한 엔진의 발동이 없다면 결혼이라는 차는 제대로 출발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로맨스의 역할은 거기까지. 그러나 오랜 세월 그 차를 계속 같이 타고 가다 보면, 로맨스라는 말로는 담기 부족한, 불가사의한 “쀼의 세계”가 탄생하는 것, 그것이 곧 결혼의 신비가 아닐까. 오늘도 아버지는 항암 치료하는 어머니 곁에서 행복하게 간병을 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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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양혜원

이화여대 아시아여성학센터 특임교수.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여성학 석사 수료 후 미국 Claremont Graduate University에서 종교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세월 번역가로 일하면서 유진 피터슨, N. T. 라이트, 알리스터 맥스래스, C. S. 루이스, 헨리 나우웬, 미로슬라브 볼프, 일레인 스토키의 저서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출간하였고, 유진 피터슨 읽기: 삶의 영성에 관하여, 교회 언니,여성을 말하다,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 종교와 페미니즘, 서로를 알아가다,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