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Past Lives: 가벼운 로맨스 세상에서 발견하는 성숙한 지혜
by Brett McCracken2023-12-21

셀린 송의 Past Lives는 미묘하고 아름다우며 탁월한 영화로 올해 최고작 중 하나이다. 이 영화는 반대가 종종 권장되거나 적어도 반대하는 모습이 더 “진정성이 있다”라고 단정하는 세상에서 도덕적 자제와 자기 부인, 헌신의 고수라는 가치를 일깨우는 상쾌함을 준다. 


이 영화는 오랫동안 로맨틱 서사를 지배해 온 예측 가능한 대본(“당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가라”)을 180도 뒤집는, 매우 할리우드답지 않은 러브스토리이다. 


이십사 년에 걸친 세 번의 연결


영화는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열두 살 때 가족과 함께 북미로 이주한 여성 노라(그레타 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 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노라의 생애 중 세 시기를 다룬다. 첫 번째는 그녀가 한국을 떠나기 바로 전날이다. 노라(당시에는 나영)는 같은 반 남학생 해성과 절친한 사이로, 두 사람은 로맨스의 정점에 다다른 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로맨스가 결실하기는 힘들어 보이는데, 노라의 가족이 한국을 떠나고 이 두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 장면은 프레임 오른쪽 상단에서 한 세트의 계단을 올라가는 노라와 프레임 왼쪽 하단에서 골목길의 다른 계단으로 내려가는 해성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그려졌다.)


십이 년이 흘렀고, 노라는 이제 뉴욕에 사는 이십 대의 극작가 지망생이 되었다. 한국에서 사는 해성(성인 역할은 유태오가 연기)은 최근에 군 복무를 마쳤다. 두 사람은 페이스북과 스카이프를 통해 재회하고 장거리 로맨스가 꽃피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상 통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연결(이건 결국 2011년경의 인터넷 기술과도 관련이 있다)과 마찬가지로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먼 거리도 피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꿈꾸는 미래에 “올인”하고 싶었던 노라는 온라인 관계를 청산한다. (해성과의 관계가 강화되면서 노라는 자꾸 한국에서의 과거에 집중하는 거 같아서 불편해 한다.) 두 사람은 또다시 각자의 길을 걷는다. 


다시 십이 년이 흘렀고, 노라는 이제 아서(존 마가로)라는 유대인 작가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여전히 서울에서 살던 해성이 처음으로 뉴욕을 방문하고, 이십사 년 만에 노라를 직접 만나자, 갑자기 두 사람 사이에 잊혔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이 시점에서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라면 영화는 자연스럽게 삼각관계 플롯으로 바뀌기 마련이며, 노라는 결혼한 미국 남자와 그녀의 “소울메이트”가 될 수도 있는 한국 남자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가 아니다. 


‘이게 내 삶이야’


(스포일러 주의) Past Lives를 보면서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3부작 (1995년 비포 선라이즈, 2004년 비포 선셋, 2013년 비포 미드나잇)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삶이 대략 십 년 간격으로 서로 다른 세 가지 삶의 지점에서 해성과 노라를 만나는 것처럼, 링클레이터의 비포 영화도 대략 십 년 간격으로 세 가지 다른 장소와 시간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을 관찰한다. 


링클레이터의 비포 3부작과 셀린 송의 Past Lives는 둘 다 별(star)이 교차하는 로맨스[결코 맺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로맨스를 의미_번역 주]라는 개념을 탐구하며, 그럼에도 두 사람의 만남은 마치 “운명”이 가능하도록 한 것만 같다. 그러나 비포에서는 주인공이 “소울 메이트”(심지어 그 과정에서 이혼까지 감행하더라도)의 자석 같은 매력에 빠지지만, Past Lives는 “소울 메이트”라는 개념 자체에 도전장을 던진다. 


해성이 뉴욕을 방문하고, 노라는 불안감을 느끼는 남편 아서를 안심시킨다. “이게 내 삶이야. 내가 같이 사는 사람은 당신이야.” 그리고 그녀는 덧붙인다. “바로 여기가, 당신과 함께하는 삶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해성을 향한 노라의 복잡한 감정이 진심일지라도, 또 ‘만약에 해성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면?’ 등의 물음이 그녀의 마음을 스쳤다고 해도, 그것은 추상적이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일 뿐 “이게 내 삶이야…. 바로 여기가, 당신과 함께하는 삶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라고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실이 아니다. 그녀는 선택하지 않은 새로운 인생이 주는 “만약에…”라는 낭만보다 현재의 삶과 약속이라는 현실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녀에게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마냥 낭만적이며 모든 게 가능한 세상이 아니다. 바로 그녀가 사는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주도하는 정신은 그 반대를 외친다. 모든 선택의 여지를 열어 두고 또 모든 가능성을 즐기라고 한다. 약속은 언제라도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쓰지 결코 잉크로 쓰지 않는다. 


놀랍게도 노라의 여정은 이러한 시대정신에 저항한다. 관객이 이십사 년 전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말, “뒤에 무언가를 남겨두면 얻는 것도 있다”라는 지혜에 노라가 귀를 기울인 게 분명하다. 한국에서 살았던 노라의 ‘지나간 삶’은 실제였고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그러나 뒤에 남긴 상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녀는 지금 손에 쥔 현실이라는 ‘얻음’에 감사하기로 선택한다. 어떤 면에서, 이런 식의 과거와 현재의 긴장은 친숙한 위안과 매력을 지닌 우리의 “옛 자아”와 비록 원하지만, 종종 거슬리고 불편하며 생소하기까지 한 성령 안에 있는 “새 자아”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이 느끼는 익숙한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거 같다. 


영화는 시간이라는 한계 속에서 사는 삶이 가질 수밖에 없는 후회와 고통, 향수라는 진짜 감정을 결코 축소하지 않는다. 노라는 해성이 자신의 삶에서 가진 과거의 의미, 현재의 가치 그리고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꿈을 가지고 씨름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를 뛰어난 작품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복잡한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주인공은 단지 달콤한 로맨스를 위해 사랑을 버리지 않는다. 감정을 성숙한 지혜에 복종시킨다. Past Lives는 때때로 가장 스릴 있고 낭만적인 선택이 가장 “지루한” 일이 될 수가 있음을 상기시킨다. 바로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헌신하라. 그리고 신실하라. 


‘인연’ 그리고 인도함을 갈망함 


Past Lives는 사랑과 로맨스 이야기인 동시에 떠남과 다른 문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민이 가진 “중간” 성격에 대한 반자서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민자는 동시에 두 문화와 연결되고 두 문화로부터 함께 형성되는 느낌을 받는다. 노라에게 있어 해성과 아서 사이에서 느끼는 긴장은 한국 출신과 미국이라는 미래 사이의 긴장과 유사하다. 이야기 속의 두 남자가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두 개의 “집” 사이에서 느끼는 긴장을 강조한다. 


인연(영어에는 딱 맞는 단어가 없다)이라는 한국어 개념이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등장한다. 노라가 아서에게 설명하듯이 인연은 환생을 수반하는 불교적 개념으로 사람 사이의 운명적인 만남과 운명적인 관계를 가리킨다. “낯선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옷이 스치는 것도 인연이야. 왜냐하면 전생에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이거든. 두 사람이 결혼하는 건 팔천 생애 동안 팔천 겹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래.”


영화 제목은 환생과 인연이 만들어 냈을 수많은 ‘지나간 삶’에 대한 생각을 상기시키며, 수천 년을 거쳐 오늘날 노라, 해성, 그리고 아서 사이의 연결을 알리는 지점까지 울려 퍼진다. 노라와 해성이 브루클린의 회전목마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회전목마의 돌고 도는 움직임은 아마도 서양의 선형적 시간 개념과 반대되는 순환을 중시하는 동양적 시간 개념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던 거 같다. 


노라가 실제로 환생과 인연을 믿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비록 이 영화가 인간보다 더 큰 무언가(인연이든 신의 섭리든)가 인간의 삶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의 아름다움과 위안을 전한다고 해서 어떤 신비적인 색채를 띄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신비는 다름 아니라 만물을 하나로 묶으시는 주권자 하나님의 역사이다(골 1:16-17). 비록 기독교 세계관보다는 불교의 세계관을 더 많이 반영하지만, 무언가 가치를 주는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인간의 갈망을 이 영화가 어떻게 포착하는지를 보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의 삶은 더 장엄한 “계획” 안에서 만들어졌고, 그렇기에 우리의 관계는 단순한 무작위의 충돌 그 이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의 갈망을 다중 우주 추세와 “정경 사건”(canon eventt) 및 “필연적 교차점”이라는 가짜 영적 개념을 포함하여 대중문화의 모든 곳에서 발견한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세력이 무엇이든, 노라는 자신이 단지 삶에서 수동적인 플레이어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녀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녀가 사랑하기로 맹세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녀가 누리고 있지 않은 “만약에 그러면 어떨까”의 삶이 아니라 그녀가 실제로 사는 “내가 직면한 삶”(비록 불완전하더라도)을 포용하는 바로 그 선택이다. 바로 그 선택에서 그녀는 드물고도 신선한 지혜의 모습을 제시한다. 



원제: ‘Past Lives’: Mature Wisdom in an Indie Romance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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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Brett McCracken

브랫 맥크레켄은 미국 TGC의 편집장으로 Southlands Church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으며, 'Hipster Christianity: When Church and Cool Collide'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