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S. 루이스의 마지막 날들
by Trevin Wax2023-12-09

C. S. 루이스는 예순다섯 생일을 며칠 앞둔 1963년 11월 22일에 사망했다.


비교적 일찍 죽은 그의 죽음을 비극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십 년을 더 살았던 그의 형 워렌(와니)를 생각하면 더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고 있음을 잘 알았던 루이스는 자신의 죽음을 결코 비극적인 측면에서 보지 않았다. 그가 보낸 마지막 몇 달은 영원한 행복을 기대하며 죽음을 맞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 


쇠약


평생 건강 문제로 고통한 루이스는 1961년 6월 신장염을 앓았고, 이로 인해 패혈증이 발생해서 그해 케임브리지 가을 학기를 쉬었다. 1962년 봄에 다시 학교로 복귀했지만 건강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는 학생 중 한 명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심장과 신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전까지는 전립선 수술이 불가능하고, 전립선 수술을 받기 전까지는 심장과 신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병원과 나는 이상한 “악순환”에 빠진 상태이다. 

전기 작가 A. N. 윌슨은 루이스의 친구이자 의사인 로버트 하바드가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며, 루이스의 이른 죽음의 탓을 그에게 돌렸다. 그러나 다른 전기 작가들은 그러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1950년대 내내 하바드가 권장했던 음식 제한(루이스는 한번도 장기간 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을 제외하고, 당시에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루이스는 홍차를 과도하게 마셨다. 당시는 카페인 섭취와 고혈압 사이의 상관관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때였다. 오늘날 일반적인 전립선 비대 치료법은 그가 사망할 때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당시에도 일부 보고서를 통해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은 합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3년 여름


루이스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다가오는 죽음을 볼 만큼 현명하지만 그것을 견딜 만큼 현명하지는 않은 게 인간이라는 존재의 특징이다.” 1963년 여름, 루이스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는 6월 17일에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의지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메리 윌리스에게 썼다. “이 세상이 너무 좋아서 죽을 때 우리는 후회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 앞에는 우리가 뒤에 놓고 떠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편지에 “끝나가는 여행에 피곤을 느끼는 여행자”라고 서명했다. 


그달 말에 루이스는 메리에게 다시 편지를 보내 이 땅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다.


당신을 이 지구에서 인내심을 갖고 싹을 틔우길 기다리는 씨앗과 같다고 생각해 봐. 정원사가 정한 가장 좋은 타이밍에, 저기 진짜 세상에서, 진짜 깨어나서 꽃을 피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야. 그곳에서 돌이켜보면 우리가 사는 여기 생활은 아마도 여전히 잠에서 깨지 못하고 반쯤 조는 상태로 보일 거야.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꿈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거지. 그런데 닭까마귀가 오고 있어. 그날은 이제 내가 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어. 

루이스의 건강은 여름 동안 더 악화되었다. 그의 신장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수혈이 그나마 도움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투석 치료가 일반화되지 않았었다. 피로와 집중력 저하에 놀란 그는 7월 15일 다시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바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다음날 아침 거의 죽기 직전이라는 판단에, 그는 죽기 전 신자에게 행하는 종부성사를 받았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날 오후 2시에 깨어났고, 차를 마시고 싶다는 말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후 몇 주 동안 때때로 오락가락했지만, 그는 천천히 회복했다. 


무어 부인의 딸이자 그의 친구 패디의 여동생인 모린 블레이크가 병원에 있는 루이스를 방문했다. 루이스는 그녀를 어릴 때부터 잘 알았고, 그녀는 한동안 루이스의 집(Kilns)에서 같이 살았다. 그런데 모린이 스코틀랜드 Caithness에 있는 Hempriggs의 Baron Dunbar의 George Cospatrick Duff-Sutherland-Dunbar 경의 재산을 상속받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만난 적이 없었다. 


루이스는 모린을 알아보지 못했다. 조용히 병실로 들어온 모린이 “잭, 나 모린이에요”라고 말하자, 루이스는 “아니지요. Hempriggs가의 Lady Dunbar가 맞지요”라고 대답했다. 


깜짝 놀란 모린이 말했다. “아니, 잭,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해요?”


그러나 루이스가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기억하다니? 어떻게 그 동화 같은 이야기를 잊을 수가 있겠어요?”


다시 집으로


퇴원한 루이스는 집으로 돌아왔다. 계단 사용이 금지된 그는 침실과 서재로부터 차단되었다. 거실에 침대가 설치되었고, 루이스가 어느 정도 회복할 때까지 남자 간호사가 육 주 동안 집에서 같이 살았다. 


다시 가르치는 건 루이스에게 벅찬 일이었다. 결국 그는 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케임브리지에 사직서를 냈다. 평생 친구인 아서 그리브즈에게 9월에 쓴 편지에서 그는 형의 부재에 대한 실망감을 표시했다. “형은 나를 완전히 버렸어. 아마도 어디선가 죽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있을 거야.” 그는 자신을 “병자”라고 표현했지만, 동시에 “아주 편안하고 쾌활하다”라고도 썼다.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다음과 같은 외침으로 끝난다. “아서, 오 내 친구야, 다시는 너를 만날 수 없겠구나!”


여름이 가을로 바뀌면서 루이스는 이런저런 편지에서 자신을 “사화산이기는 하지만 나름 여전히 활발한 상태”라고 묘사하곤 했다. 죽음 바로 직전까지 갔다가 문턱을 넘지 않고 되돌아온 그였다. 그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는 슬픔을 느꼈다. 그는 그 경험을 언제가 자신이 두 번 죽어야 했던 원형 순교자 (protomartyr)라고 묘사했던 나사로의 경험과 연결 지었다. 당시 루이스의 서신을 살펴보면, 그는 끊임없이 “명랑하고” “자족한” 상태를 선언하고 있지만, 동시에 나빠진 건강 상태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루이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약함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의 세력을 상상했다. 한 악마가 다른 악마에게 이렇게 썼다. “만약에 말이야, 우리가 훈련한 대로 거짓말하는 의사, 거짓말하는 간호사, 거짓말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모든 인간이 값비싼 요양원에서 죽어간다면, 그 사람들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생명을 약속하고, 질병으로 인해 모든 죄(indulgence)가 다 사해진다는 믿음을 주입하고, 거기에 행여라도 사제가 진실을 말해서 환자가 자기의 진짜 상태를 알아채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일꾼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만 해준다면, 우리 일이 얼마나 편해질까?” 그러나 루이스에게는 그런 얄팍한 속임수가 통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의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나약함과 죽음을 직면했다.


와니는 10월에 돌아왔고, 동생의 삶에 남은 마지막 몇 주를 책임졌다. 종종 친구들이 방문했고, 또 드라이브를 시켜주기도 했다. 그달 어느 시원하고 화창한 날, 친구 조지 세이어가 가을빛으로 물든 너도밤나무를 보여 주겠다며, 루이스를 런던 로드 자락에 있는 비콘 힐로 데리고 갔다. 루이스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올해에 누릴 마지막 정취 속에 빠져든(soak) 거 같아.” ‘soak’는 시골길을 걷다가 잠시 쉬어가며 창조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는 기쁨을 표현할 때 그가 쓰는 단어였다.


대기실로서의 집


지상 생활의 마지막 몇 주 동안 루이스는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고(“나는 정원 산책보다 더 멀리 나가는 모험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라고 썼다), 편지에 답장을 보내거나 개인 도서관을 다시 방문했다. 10월 29일에는 “내가 과연 다시 이 집에서 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썼다. “그럼 뭐가 문제인데? 조금 전 일리아드를 다시 읽었는데, 이번만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없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가을 날씨를 만끽하고 있다.” 다음 주에 그는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과 테니슨의 ‘In Memoriam’을 다시 읽었다.


집은 루이스가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며 쉼을 누리는 조용한 피난처이자 대기실이 되었다. 10월 31일에 그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마지막 편지를 썼는데, 동정녀 탄생,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 속죄 이론,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질문에 답했다. 그 후 사망할 때까지 이르는 몇 주 동안 소통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나중에 팀 켈러가 아내가 된) 젊은 캐씨 크리스티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씩 편지를 보냈다. 


마지막 주


루이스의 생애 마지막 주는 조용했다. 11월 15일에는 Lamb and Flag(Eagle and Child 길 건너편에 있는 펍)에서 친구들을 만났고, Roger Lancelyn Green은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루이스의 집을 찾았다. 루이스는 Saturday Evening Post에 실린 그의 마지막 에세이가 될 “우리는 행복할 권리가 없다” 원고를 수정하느라 바빴다. 이 글은 무엇보다 ‘성적인 행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변하는 사회를 향한 놀랍도록 예지력 있는 분석이다. 


그 주 후반에 방문한 J.R.R. 톨킨과 그의 아들 존은 루이스의 건강 이야기 대신 토마스 말로리(Thomas Malory)가 쓴 ‘아서왕의 죽음’과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11월 18일 마지막으로 Lamb and Flag에 간 루이스는 콜린 하디를 만났다. 대부분의 시간을 루이스는 집에 머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형과의 시간을 즐겼다. 


와니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바퀴가 완전히 한 바퀴 돌아서 원을 이루었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스러운 슬픔을 겪으며 형제들끼리 서로 의지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한 번 더 우리는 작은 방에 함께 있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너무도 뻔한 이야기는 우리의 대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대신 알 수 없는 가능성으로 가득 찬 새 학기가 우리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잭은 용감하고 침착하게 새로운 시작을 직면했다. “형, 나는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했고, 이제는 떠날 준비가 되었어.” 어느 날 저녁 동생이 내게 말했다.

11월 21일, 그는 한 어린이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편지를 썼다. 그 아이의 편지를 “놀랍게도 좋은 편지”라고 칭찬함과 동시에 나니아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데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더불어서 재판에서 발견한 오타를 알려주겠다는 데에도 고맙다고 썼다. 


11월 22일


1963년 11월 22일 금요일은 정해진 루틴 그대로 흘러갔다. 루이스와 형은 아침 식사를 즐겼고, 후원자들에게 몇 통의 편지를 보낸 다음에 매일 나오는 십자말 풀이를 했다.


점심 식사 후 루이스가 의자에서 잠이 들었고, 와니는 침대가 더 편할 거라고 말했다. 거실 건너편 “음악실”은 루이스가 더 이상 위층에 올라갈 수 없게 되자 침실로 바뀌었다. 오후 4시, 루이스에게 차를 가져다준 와니의 눈에 루이스는 졸려보였지만, 한편 편안해 보였다. 


5시 30분에 와니는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발견한 건 침대 옆에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루이스였다. “약 3-4분 후에 루이스가 숨을 거두었다”라고 와니는 썼다.


그날 오후 루이스의 사망 소식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또 다른 사건, 즉 텍사스 달라스에서 발생한 존 F. 케네디의 암살로 인해 가려졌다.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도 이날 세상을 떠났다. 이 이상한 세 죽음의 합류는 피터 크리프트(Peter Kreeft)가 쓴, 세 가지 서로 다른 세계관을 대변하는 세 남자가 천국 외곽에서 나누는 가상의 대화를 담은 C. S. 루이스 천국에 가다의 배경이 되었다.


죽음을 앞둔 루이스가 남긴 유산


1963년 11월 26일, 루이스의 장례식이 그가 가장 자주 참석했던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그는 교회 마당에 묻혔다. 십 년 후 와니는 동생 옆에 함께 묻혔다.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이자 이야기꾼 루이스의 마지막 몇 달은 그가 열정적으로 옹호했던 소망, 즉 하나님의 품에 안긴 영생의 약속에 대한 가슴 아픈 그림을 보여 준다. 


마치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서 쪽배를 타고 파도 위로 향하는 리피칩이 그랬듯이, 루이스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들 때문에 슬퍼하면서.” 그러는 동시에 “행복에 떨면서.” 그의 시와 산문에 생기를 불어넣은, 위로할 수 없는 그리움의 찌름과 같은 기쁨은 그의 마지막 모습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조용하게 보낸 생애 마지막 몇 주 동안 그는 육체의 고통을 인내와 뛰어난 유머로 이겨냈다. 그는 이 세상이 단지 더 큰 이야기로 이어지는 서막에 불과하며 신성한 사랑의 깊은 마법으로 가득 찬 새롭고 경이로운 현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보여 주었다. 


더 높이 그리고 더 깊이!



원제: The Last Days of C. S. Lewi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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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