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상 기독교’ 현상

선교한국의 희망을 찾아서

by 김선일2023-12-04

선교한국의 희망을 찾아서  


언젠가 카페에서 지인과 대화를 하는 중에 옆 좌석에 앉은 청년들이 하는 얘기를 엿듣게 됐다. 그들의 대화에서 “교회~”가 언급되자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했다. 


“우리 부모님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신앙을 되게 중요하게 여기셔. 그래서 나도 어릴 때부터 교회에 잘 다녔지.” 

“그러면 너도 기독교 신자야?” 

“아니, 난 그 정도의 신앙은 없어. 그래도 기독교인이라고 볼 수 있지. 우리 집이 기독교 배경이고, 나도 교회에 적은 두고 있으니까.” 


이들의 대화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명목상 기독교 현상을 보여 준다. 한국 교회 내에서 우리가 흔히 ‘선데이 크리스천’ ‘나일론 크리스천’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목회데이터연구소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서 실시한 한국의 명목상 기독교 실태에 대한 첫 번째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명목상 그리스도인(nominal Christians)이란 교회에 다니거나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면서도, 신앙에 대한 명확한 이해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들, 또는 교회 출석 외의 실제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번 조사에서는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교회 출석자 1,000명 가운데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39.5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1) 신념 영역, (2) 신앙 활동 영역, 그리고 (3) 신앙 정체성 영역으로 나누어 명목상 교인 규모를 파악하고자 했다. 신념 영역, 즉 자신에게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근거’ ‘신앙생활의 목적’ ‘구원의 확신’에 관한 질문들을 명목적 교인의 기준으로  설정했다. 신앙 활동 영역에서는 예배 외의 다른 활동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평소의 기도생활 및 성경읽기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실천하지 않는’ 명목상 교인의 여부를 파악하고자 했다. 여기에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대답을 신앙 정체성의 결여로 인한 명목상 교인에 포함시켜, 최종 39.5퍼센트가 산출됐다(조사 결과의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 참조).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와는 달리 현재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명목상 그리스도인’보다는 ‘명목상 교인’으로 분류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 


명목상 교인에 관한 조사는 가나안 성도 조사와는 성격이 다르다. 가나안 성도는 현재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교회가 있는지의 여부로 비교적 단순하고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다. 그러나 명목상 교인은 ‘신앙의 정도’에 관한 질문이기에 좀 더 복합적인 접근을 통해 파악되어야 한다. 2018년 명목상 기독교에 관한 로잔위원회에서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범주를 (1)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교회 소속이 없거나’(not affiliated), (2) ‘규칙적으로 교회활동이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not practicing), (3) ‘회심, 또는 거듭남이 없는’(not converted, unregenerated), 그리고 (4) ‘헌신하지 않고 피상적인’(not committed, superficial)이라는 네 가지로 제시한다(Evert Van de Poll, “Defining Nominal Christianity,” 4-12). 따라서 이번 명목상 교인 조사는 위의 네 가지 범주에서 가나안 성도에 해당하는 (1)의 경우를 제외하고, (2)-(4)의 명목상 교인 범주들을 고려해서 한국의 명목상 교인 비율을 산출한 것이다. 


선교학자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그리스도인 됨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경계집합적 접근과 중심집합적 접근을 구분한다. 경계집합(bounded set)이란 교회출석, 세례, 신앙고백 등과 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기준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경우다. 그러나 히버트는 중심집합(centered set)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리스도인 됨을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심집합은 경계를 나누는 외적 표지보다는 중심으로부터의 거리 및 관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 됨의 진정성을 파악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with Christ)이 중심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부응하는 믿음과 삶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지를 통해 그리스도인 됨을 진단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경계보다는 중심을 향한 방향과 거리가 중요하다. 


명목상 교인에 관한 조사는 이러한 중심집합적 개념에서의 그리스도인 됨을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누군가를 명목상 교인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명목상 기독교 현상에 관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던 로잔운동에서도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는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술적으로 제안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해당 문서의 16페이지). 이번 조사에서도 명목상 교인을 산출하는 로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때문이 아닌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이들을 명목상 교인으로 포함해야 할 것인가? 명목상 기독교에 관한 조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신앙의 진정성을 묻는다면 단순히 신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긴다는 답변은 미흡해 보인다. 이들을 포함하면 명목상 교인의 비율은 50퍼센트대로 올라간다. 실제로 어떤 양육모임에 참여한 이들 30명을 대상으로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100퍼센트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때문이 그리스도인 됨의 근거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선행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최종 결과에서는 예수님,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라는 답을 하지 않은 이들만 명목상 교인으로 분류했다. 


이와는 반대로 구원의 확신이 없는 이들을 명목상 교인으로 포함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연구자들 내부에서 이견이 있었다. 확신이라고 단어가 주는 단정적인 어감 때문에 겸양적인 성향의 사람들은 비록 자신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원의 확신 여부를 명목상 교인 구분에서 제외하면 최종 결과는 30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단순히 신앙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믿음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간주하여 포함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개념이 교회에서 다소 인위적으로 쓰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미국 기독교에서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을 파악하는 데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의 여부를 묻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보다 구원의 확신이 설문조사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더욱 자주 쓰인다는 현실을 고려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이 상당 부분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복음주의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는 점도 감안해야 했다. 


가장 최근에 명목상 그리스도인에 관한 미국의 조사는 2022년도에 Personal Faith Journey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이 조사는 미국 전역에서 9,50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과 ‘명목상 그리스도인’이라는 두 집단을 분류했다. 분류의 기준 질문은 (1)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이상 교회(또는 신앙 모임)에 참석하는지의 여부와 (2) 자신들의 삶에서 신앙이 높은 혹은 가장 지대한 중요성을 지니는지의 여부였다. 이 조사는 두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했다. 그렇게 해서 응답자의 33.3퍼센트가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66.7퍼센트가 명목상 그리스도인으로 분류됐다. 일반적으로 서구권의 명목상 교인 조사는 교회에 다니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는 소위 ‘가나안 성도’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이번 목회데이터연구소 조사는 가나안 성도를 제외한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명목상 교인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가장 최근의 가나안 성도 비율이 29.3퍼센트가 나왔고, 이번에 파악된 명목상 교인 39.5퍼센트를 가나안 성도를 제외한 70퍼센트에 비례해서 산출하면 27.9퍼센트가 나오므로, 가나안 성도를 포함하는 서구식 명목상 교인의 비율은 57.2퍼센트가 나온다. 이는 미국의 66.7퍼센트에 비해서 약 10퍼센트가량 낮은 수치인데, 한국의 기독교 역사를 고려할 때 수긍할 만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이러한 명목상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통계는 없었는데, 이번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 교회 내부의 실질적 신앙생활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졌다는 의의가 있다. 사실 명목상 기독교의 문제는 오래된 관심 사안이다.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경고하셨다. 입술로만 표명하는 신앙이 아니라, 열매 맺는 신앙이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라는 주님의 교훈은 우리가 명목상 기독교의 문제를 다루어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역사적으로도 기독교 신앙이 관습화되고 힘을 잃을 때마다 명목상 기독교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청교도들은 명목상 기독교 현상을 넘어서기 위해 진정한 회심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명목상 기독교(nominal Christianity)는 주로 탈기독교세계(post-Christendom)에 접어든 서구 교회의 현상이었지만, 기독교가 전래된 지 4세대가 지난 곳에서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한 세대를 25-30년으로 볼 때, 기독교가 전래된 지 138년이 된 한국 교회에서 명목상 기독교 현상은 주목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가나안 성도와 탈교회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사실 명목상 교인은 가나안 성도와 탈 교회 현상의 전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목상 교인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고민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신앙은 있으나 자신의 가치관으로 인해 교회를 떠난 가나안 성도나, 심지어는 기독교에 대한 회의적 판단으로 무신론자가 된 이들보다도 더욱 약한 고리가 될 수도 있다. 명목상 교인 조사는 누군가의 신앙을 등급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인생 여정 가운데 명목상 신앙에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영적 변동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동적이며 불확실한 신앙생활을 하는 명목상 교인이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가 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아예 신앙을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명목상 교인은 교회 내의 양육 대상일 뿐 아니라 선교적 대상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명목상 교인들의 주요 특징과 사역 방향을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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