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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앞마당의 상실: 미국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포치에서 나누는 레모네이드 한 잔: 탈 기독교 사회에서 복음 전하기 1-2

by Tim Keller2023-04-27

이 글은 문화로서의 기독교(cultural Christianity)마저 퇴색하는 서구 세계에서 복음을 계속해서 나눌 방법을 모색하는 2부작의 첫 번째입니다. 


1-1. 교회 앞마당이 사라졌다

• 포치의 중요성

• 앞마당의 종말

1-2. 미국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 미국이라는 “예외”

• 미국 교회의 실패

1-3. 오늘의 교회가 갖춰야 할 새로운 앞마당

• 포치를 만드는 교회들

• 포치와 “전복적 성취” 

• 일반 은총의 기초 위에서 


포치(porch): 건물의 입구나 현관에 지붕을 갖추어 잠시 차를 대거나 사람들이 비바람을 피하도록 만든 곳. 출처_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미국이라는 “예외”


그러나 미국은 다른 서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던 이런 현상에서 예외처럼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거의 20년 동안 미국의 교회 출석률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기독교가 번창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15년간 카이퍼가 예견하고 유럽이 경험한 그 현상이 여기 미국에서도 시작되었다. 교회 출석률이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화 기관들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 노골적으로 적대적이고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미국의 연안 대도시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건 꽤 됐다. 예를 들자면, 1980년대 중반에 내가 버지니아 호프웰의 방앗간 마을에 있는 교회를 떠났을 무렵만 해도, 그 동네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다 앞마당에 나와 있었다. 우리 교회의 어떤 교인이 내게 말했던 것처럼, “우리 동네에서는 심지어 무신론자도 삶의 어느 시점에는 그리스도께 자기 삶을 바치기 위해 예배당 복도를 걸어서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1980년대 말에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맨해튼에 도착했을 때, 내가 이 대도시에서 보게 된 것은 문화적 앞마당이 완전히 사라진 현실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뜨거운 신자이거나 아니면 기독교 신앙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8]


그렇지만 미국의 내륙 중심부에 사는 신자들에게는 문화적 앞마당의 급속한 소멸은 지난 5년 사이에나 느끼기 시작한 충격이다. 대부분의 지역(특히 남부와 중서부 및 남서부의 일부)에 여전히 전통적인 도덕적 가치와 교회 및 성경적 가르침에 대하여 일반적인 개방성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문화적 앞마당이 있었다. 그러나 몇 가지가 바뀌었다. 2001년 이전에는 미국 민주주의의 적이 무신론 공산주의자였지만, 그 후 비행기로 건물에 충돌하는 종교적 광신자가 등장했다. 그 후 오베르게펠 대 호지 판결(동성혼을 인정한 연방대법원 판결)이 나왔고, 대기업과 정부는 모두 다 성경적 기독교 성 윤리를 위험한 편견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의 부상과 팬데믹은 사람들이 자기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더 멀어지게 했다. 우익 미디어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젊은 성인과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세속적이고 지나치게 진보적인 가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대한 반발로 특히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이 공개적으로 호전적인 어조를 사용하며 적나라한 권력 정치에 참여했다.


갑자기 특히 젊은 미국인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인은 부도덕한 사람들, 잔인한 사람들, 그리고 민주주의, 자유, 공감의 적이 되었다.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교회 성장과 교회 개척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견해, 특히 성과 젠더와 관련하여 공공의 표적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발생한 팬데믹이 교회를 텅텅 비게 했다. 다시 대면 예배가 시작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팬데믹 이전 회중을 회복하지 못하는 교회가 더 많다. 미국에서도 앞마당은 텅 비었다. 카이퍼의 예견이 미국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미국 교회의 실패


거의 1,000년 동안 서구 세계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의 “포치”에서 살았다. 유럽 국가에는 대부분 국가 교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교회에 반드시 참석해야만 했다. 미국에는 국가 교회는 없었지만(일부 주에만 있었다) “진정한 미국인”이라면 “자신이 선택한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강했다.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를 의미했다. 첫째, 사람들이 대부분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느꼈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람들을, 특별히 거룩한 날(성탄절이나 부활절)이나 중요한 삶의 전환점(결혼식, 장례식, 세례)에, 교회로 이끄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둘째, 그렇게 교회에 찾아온 사람들은 거의 다 다음 네 가지 근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목회자는 전제할 수 있었다. 1) 우리를 창조하시고 심판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계신다. 2) 우리를 심판하는 일종의 객관적인 도덕적 기준이 있다. 3) 그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용서가 필요하다. 4) 사후 세계, 즉 천국과 지옥이 있다. 이러한 믿음을 “점”으로 생각해보자. 서양에서 수 세기 동안 전도는 모두가 인정하는 단순한 이 네 개의 점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따라서 듣는 이의 죄책감을 증가시킨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해결책으로 제시함으로써 전도가 이뤄졌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죽으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확신하고 싶습니까(점 #4)? 그렇게 되려면 선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점 #2)? 그러나 나는 당신이 충분하지 않고 또 도덕 표준에 따라 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점 #3)? 그렇기에 하나님(점 #1)이 그의 아들 예수를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용서받고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전하는 이 구원의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 수 세기 동안 서양과 미국에서 전도가 행해진 방식이며, 기본적인 신학적 내용과 관련하여 이 메시지는 완벽하게 참되고 정확하다. 그러나 앞마당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 즉 “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귀에는 이런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도덕성을 구성하는 것은 사회이고, 옳고 그름을 나 자신이 정의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당신은 죄인이요’라고 선고할 수 있을까? 사후 세계란 존재하지 않고,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행복은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쾌락과 안락뿐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기독교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고 만물에 영적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구원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스스로 표현하고 정의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당신을 보면서, 당신이 전하는 메시지를 오히려 영적 학대이자 착취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점이 부족한” 미국인의 수는 모든 세대에 걸쳐서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오랫동안 써온 메시지와 방법은 그 효과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구 교회는 인도 선교 현장에서 갓 은퇴한 레슬리 뉴비긴이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하라고 요구했던 일을 아직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교회가 앞마당을 만들어주는 기독교 문화 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든 교회가 하루빨리 인식해야 한다. 단 몇 분 만에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청하는 방식은 이제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오히려 초대 교회와 비서구 세계의 교회처럼 서구의 교인도 자신의 포치나 앞마당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이 복음을 들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뉴비긴이 원했던 것이고 서구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오래된 습관은 잘 죽지 않는다. 교회들 대다수가 여전히 문화적 앞마당이 있다는 착각 속에서 반사적으로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사역과 메시지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교인의 인도로 또는 스스로 들어온 불신자에게 복음을 선포하면 그들이 이해하고 믿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가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치명적인 영적 실명이며, 우리가 지금 미국에서 목격하고 있는 교회 쇠퇴를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이다. 


8. 물론 그 당시 내 머릿속에는 “앞마당”이나 “포치”라는 은유가 없었다. 내가 섬긴 리디머 장로교회가 어떻게 ‘교회의 포치’를 개발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2부)에서 자세하게 소개할 것이다. 


원제: Lemonade on the Porch: The Gospel in a Post-Christendom Society

출처: quarterly.gospelinlife.com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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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im Keller

팀 켈러(1950-2023)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MDiv)와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DMin)에서 수학했으며, 뉴욕 맨하탄 Redeemer Presbyterian Church의 초대 목사로 섬겼다. City to City와 Faith & Work, The Gospel Coalition을 설립하여 교회 개척, 복음 갱신, 복음 연합에 큰 역할을 했으며,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와 ‘팀 켈러의 센터처치’ 등 다수의 책과 수많은 컨퍼런스 강연과 설교를 통하여 복음적 변증가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