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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애즈베리 부흥 앞에서 진짜 던져야 할 질문
by Trevin Wax2023-03-28

당신도 애즈베리 대학에서 일어나는 영적 각성의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평범했던 예배가 지속적인 찬양과 경배, 죄의 고백, 그리고 구원의 예배로 바뀌었고,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다른 대학에서도 비슷한 강도로 영적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주 초 내 아들이 다니는 시더빌 대학교(Cedarville University)의 영상을 보았을 때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 대학교의 전도팀이 오하이오와 미시간의 여러 주립 대학을 다니면서 전도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었다. 


정말로 부흥이 일어난 것인가?


애즈베리 신학교 총장 티모시 테넷(Timothy Tennent)은 “부흥”이라고 부르는 걸 주저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안락함에 물든 교회의 기반을 흔들고 진정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롭고 더 깊은 영적 세계로 인도하는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난 경우에만, 시간이 지나서 뒤를 돌아보면서, ‘아, 그때가 부흥이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흥인지의 여부는 시간이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지금 말씀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심령과 삶을 새롭게 하는 특별한 사건을 목격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건 놀랍지 않다. 1802년 예일 대학교에서 영적 운동이 시작되었고, 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했다. 당시 한 신입생은 이렇게 기록했다. “학교 전체가 흔들렸다. 한동안 학생 전체가 다 하나님 나라로 밀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실로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이었고, 모든 사람의 눈에 기이한 일이었다. 오, 얼마나 축복된 변화였던가!”


대각성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줄 때마다, 즉 하나님의 위엄을 경외하고 그분의 사랑에 압도되는 놀라운 조합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다양한 반응을 만나게 된다. 


첫째, 모든 게 혼란스럽다. 하나님의 숨결이 어떤 장소에 확실하게 임할 때, 종종 비정상적인 반응이 일어난다. 기도와 찬양 기간이 급속하게 늘어나거나, (신체적 그리고 영적) 치유에 있어서 하나님의 즉각적이고 가속화된 역사가 나타나거나, 마치 영원이 현재에 영향이라도 미친 것처럼, 누구나 느끼는 평소의 시간 감각이 무너진다. 사람들이 주님의 움직이심에 성실하게 반응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거짓 없는 헌신을 신학적으로야 엉성해 보일지 몰라도 다양한 표현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둘째, 부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없었던 시절은 없으며 그런 이들의 동기가 항상 순수했던 것은 아니다. 부흥을 조장하는 자(Hucksters)가 도착하여 권력을 확보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도구화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마다, 거기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은 항상 나오기 마련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마술사 시몬을 보라.


셋째, 종종 세상보다 더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교인이다. 열광하는 신도의 감정 표현을 비웃기도 한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사건을 조사하는 데 더 열심이다. 말씀과 찬양의 신학적 정확성을 분석하며, 성령에 의해서 “감동받는 것”보다 사기당해서 “속아 넘어가는 것”을 더 걱정한다. (첫 번째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부흥의 근원과 결과에 대해서 “오래된 빛”과 “새 빛”으로 첨예하게 갈라졌다.) 과거에 교회 또는 영적 사기꾼으로 인해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기 쉽다.


애즈베리에서 벌어지는 각성을 놓고 많은 질문이 생긴다.


이거 진짜야? 이게 진짜로 하나님의 역사인지 어떻게 알지?


참석자 중에 신학적으로 틀린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영적 조작이 벌어지고 있다면?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근거로 해서 어떻게 “영을 분별”할 수 있지? 


그냥 소셜 미디어에 의해서 감정주의가 퍼지는 거 아니야? 


내가 어디에 있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함께하시잖아? 부흥이 맞는다면, 기대해야 할 열매는 어떤 건데?


긴급한 질문


하지만 진짜 물어야 할 시급하고 절박한 질문은 따로 있다.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풍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에즈배리에 관해서 물어야 할 질문은 에즈배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건 당신에 관한 것이다. 당신의 심령, 당신의 갈망에 대한 것이다. 


중풍병자에게 던진 예수님의 질문은 겉으로만 보면 기이하기 이를 데 없다. 아니, 베데스다에 온 사람들이 다 낫고 싶어서 온 것 아닌가? 당연히 낫고 싶지, 그걸 꼭 물어야 아나? 


그리고 지금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흥을 원하냐고 묻는다면, 우리 중 대부분은 다음과 비슷한 대답을 할 것이다. 


주님, 안 보이세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헌신하는지,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또 매주 이렇게 교회에 성실하게 출석하는지 말이에요. 


우리가 부흥을 원한다고 주일마다 찬양하는 거 안 들리세요?


우리가 기도하면서 이 나라를 구하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건 부흥밖에 없다고 소리치는 거 모르세요? 


그럼에도 예수님의 질문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너희가 진정으로 부흥을 원하느냐?”


부흥에 대한 모든 표면적인 이야기와 우리가 성령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잊자.


부흥을 원한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는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은 하나님의 임재가 초래할 불편함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주일마다 부흥을 달라고 찬양할 수는 있지만, 당신은 마음 깊은 곳에서 결코 벗어버리고 싶지 않은 깊은 원한과 응어리를 품고 있을 수도 있다. 


교회의 분열과 신학적 부족주의(tribalism)를 은근히 즐기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은밀한 죄와 ‘나 정도면 괜찮지’라는 생각에 만족하는 뒤틀린 위로까지, 그리고 나날이 쇠퇴하는 교회를 보면서도 무감각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무관심까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곳에서 당신의 내면은 결코 안전할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네가 정말로 낫기를 원하느냐? 


중풍병자는 치유가 불가능한 이유에 대한 온갖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내 힘으로는 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나는 혼자라고.


이런 변명을 늘어놓는 데서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 교회가 너무 망가졌어. 하나님이 그런 곳에서 역사하실 리가 없다니까! 부흥이 일어난다면, 결코 이런 식일 수는 없는 거야. 하나님의 역사라면, 완전히 다를 거야. 


따라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정말로 부흥을 원하는가? 부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가? 정말로 나는 치유 받기를 원하는가?


하나님을 바라는 갈증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부흥이라는 개념에 감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이해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그런 그리스도인을 이해할 수 없다. 


애즈베리 대각성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든지 간에, 앞으로 역사가 그 현장을 목격하는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단 하나가 될 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싶은 간절한 목마름, 권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목격하고자 하는 억누를 수 없는 열망, 오로지 하나님만이 이루시는 역사를 향한 갈망이 나와 당신 속에 있느냐의 여부이다. 정통이 주는 감격은 팔짱을 끼고 분석할 때가 아니라 두 팔을 높이 들고 찬양할 때 따라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작은 체구의 시각장애인이었던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와 함께 찬양한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원제: The Burning Question from Asbury Isn’t About Asbur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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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Trevin Wax

트레빈 왁스는 LifeWay Christian Resources의 신학과 커뮤니케이션학과의 부학장이며 Wheaton College의 외래 교수이고, The Gospel Project의 편집자이다. '디스 이즈 아워 타임', '일그러진 복음', '우리시대의 6가지 우상', 'Gospel Centered Teaching'을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