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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부자 아니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세상에서
by 박혜영2023-03-03

투자니 성공이니 대박이니 이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열망을 품고 있다면 지금 중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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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에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만일에 모랫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이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애써 사람을 보내지는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므로.”


17세기 영국 사람 존 던이 남긴 시입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17세기 영국의 마을에서는 누군가 죽으면 애도의 표시로 교회의 종(鐘)을 울렸다고 합니다. 국교회 예배 시간도 아니고, 특별히 울려야 할 시간도 아닌데, 뎅그렁뎅그렁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시인은 ‘인간은 섬이 아니라’는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만약 인간이 저마다 섬처럼 존재한다면, 저 종소리는 나랑 아무 상관 없지만, 인간이 대륙처럼 서로 연결되었다면, 내가 그만큼 감소하고 있다는 종소리이며, 결국에는 내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누구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종을 울렸는지 굳이 알아보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마을도 없고, 종소리도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상관없는 옛날 표현이지만, ‘인간은 섬이 아니라’는 울림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무심한지…


이 대륙에서 일어난 어떤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이 떠오릅니다. 아빠와 엄마가 어린 딸은 정신을 잃게 만들어 놓고, 가장 어두운 밤에, 밤보다 더 어두운 바닷속으로 그대로 차를 몰아 한참 지나 발견된 일 말입니다. 어떻게 젊은 부부가 그런 결정을 내리고 실행할 수 있었는지…. 바다보다 깊고 어두운 절망(絶望)에 빠졌기 때문일 겁니다. 사건도 많고, 사고도 많지만, 이런 일은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시대의 지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그들만의 잘못이요, 그들만의 절망일까요?


보십시오. 화면을 열기만 하면 아무 데서나 나오는 유혹과 부추김이 무엇입니까? 부자가 되어야 사람이라는 광고 아닙니까? 교육방송을 보다가 우리는 다 부자가 될 권리가 있다고 유혹하는 광고까지 보았습니다. 실컷 교육과 교양으로 마음을 가다듬게 해놓고 그런 광고를 내보내고 있으니, 교육이든 교양이든 결국 부자가 못 되었으면 다 헛소리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종합편성채널이나 유튜브 채널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요즘은 직업이 무엇이든, 교수든 의사든 연구원이든, 모든 대화는 부동산, 주식, 코인 이야기로 수렴된다면서요? 누가 투자에 성공했다는 소리, 누구는 대박을 터뜨렸네, 누구는 40대인데도 직장에 다닐 필요 없는 자산가가 되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있다는 그런 소문이 평범해 보이는 한 젊은 부부에게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열망을 얼마나 불어넣었겠습니까? 안정되게 산다는 사람들도 그러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불안과 초조는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그래서 자신들도 한 번 나서 보았는데, 갚을 수 없는 빚만 남았으니, 이제 자신들과 어린 딸에게 남은 인생이란 가난에 대한 천대뿐일 테고, 앞으로 산다는 건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보여, 그 어두운 바다를 향해 그대로 차를 몰았을 것입니다. 이제 자신들의 자리는 아무 데도 없으며, 잡을 만한 누구의 손도 없다는 절망과 무력감에….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건 그 가족의 문제야’ 그렇게 잊고 만다면, 내가 사는 섬만 안전하면 된다는 식인데, 과연 그럴까요?


이런 비극이 이 한 가족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이번엔 우리와 멀리 떨어진 대륙 저 끝에서 일어난 일 같지만, 계속 이렇게 침식당할 뿐이라면, 이런 비극의 소식이 점점 가까이서 들려올 텐데, 그러다가 교인 중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교회에서 서로 알고 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고 지내는 일이 더 많아, 교회도 친구도 사회도 국가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그런 고립과 체념에 빠지는 교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투자니 성공이니 대박이니 이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열망을 품고 있다면 지금 중지하십시오. 아무렇지 않게 서로 나누는 그런 말이 이 사회를 부풀려놓고는 그냥 터지게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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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혜영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 말씀을 듣고 그 길로 행하자’ 외치는, 안양시 관양동에 있는 산오름교회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