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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창조세계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
by Scott Steltzer2022-07-08

하나님의 창조는 그분의 구속 찬송의 배경 음악이 아니다. 전체 멜로디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하모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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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지루해!”


큰소리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몇 번이고 그렇게 생각했다. 사냥은 처음이라 10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가끔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다람쥐 두 마리, 새 한두 마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로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날은 진지하게 뭔가를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렇다. 사냥하던 동물을 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놓쳤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세계였다. 문제는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있지 않았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그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데 10시간 동안 쉬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단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나는 두 명의 여름 캠프 참가자가 다람쥐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한 사람은 “다람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아니잖아!” 그러자 다른 한 사람이 대답하기를 “다람쥐들도 영광을 돌려. 다람쥐들도 다람쥐로 존재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두 캠프 참가자는 같은 다람쥐를 보고 있었지만 그 순간에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경험은 크게 달았다.  한 사람은 영광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 현대인은 더운 여름날 오후의 바람보다 에어컨의 편안함을 선호한다. 그 젊은 야영자처럼 우리가 야외에 있을 때마저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장엄함을 놓치기가 너무 쉽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의 양들 말고는 말을 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들판에서 많은 밤들을 지샜다. 그 양들이 그 십대 소년에게 큰 영감을 주는 동반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서 밤하늘과의 교제가 천천히 그리고 아마도 갑자기 다윗 안으로 들어왔다. 다윗은 자기 시선을 사로잡는 무엇인가를 보고 들었다. 하늘은 말하고, 그는 그것을 썼다. 



자세히 찾아보아야 하는 네 가지 이유


시편 19편의 처음 네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의 광채에 흠뻑 빠지게 하는 네 가지 진리를 우리의 스마트폰 성경에서 찾아보며 접하게 된다. 


1. 창조세계는 말한다(1절) 


다윗은 창조세계가 하나님을 계시한다고 선언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선포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계심과 아름다움과 능력을 나타낸다. 창조세계의 음성을 들은 다윗은 우리더러 귀를 쫑긋 세우라고 권한다. 시편 19편은 자연이 외치는 목소리들의 합창을 듣고 기대어 보라는 낭랑한 외침이다. 하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만물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창조세계는 끊임없이 말한다(2절)


다윗은 또한 창조세계가 밤낮으로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늘과 궁창은 휴가가 없다. 하늘과 궁창은 그 창조된 목적을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실행한다. 하늘과 궁창의 발언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물방울이 아니라  넘쳐흐르는 샘물처럼 풍성하게 쏟아지고 있다. 


3. 창조세계는 우리의 언어로 말한다(3절)


다윗은 우리가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어떤 문화에서 살아가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말한다. 모든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4. 창조세계는 어디에서나 말한다(4절)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말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암시한다. 시편 139편에 나오는 다윗의 질문을 생각해 본다. “내가 주의 임재를 떠나 어디로 갈 수 있으리이까? 세상 어느 곳에서나 자연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당신의 성경 읽기를 더욱 풍요롭게 하라

 

그런데 우리는 정말 경청하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그렇다. 타조처럼 내 머리는 너무 오랫동안 기술적 산만함의 모래속에 묻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하나님의 말씀 사이의 상보성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심오하게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창조세계의 노래에 맞춰진 마음은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위치에 더 잘 자리잡고 있다. 이것은 가장 간단한 용어로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잠시 내가 하라는 대로 여기 목록에 있는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 각 단어를 읽은 후에 눈을 감고 당신의 마음이 성경과 연결되도록 해보라. 


양. 잔디. 별. 해. 나무. 나뭇가지. 씨앗. 뿌리. 빛. 하늘. 바위. 개울. 모래. 파도. 폭풍. 구름. 번개. 천둥. 산. 언덕. 낭떠러지. 먼지. 돌. 메뚜기. 꽃. 참새. 사막. 바다. 불. 물.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창조세계로부터 물러난다면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하이킹을 하고 바위 절벽에서 바람을 피할 곳을 찾는 것은 시편 71:3의 “나의 피난처와 요새가 되어 주소서”를 경험하는 것이다. 급류 래프팅을 하다가 소용돌이 안에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이사야 43:2을 경험하는 것이다. 정원을 거닐며 마태복음 6장에서 새들과 꽃들에 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이나,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잘 생각해 보면 그 구절들이 생생하게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그분의 구속 찬송의 배경 음악이 아니다. 전체 멜로디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하모니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중추적인 순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본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되었고 하늘은 빛을 잃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질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시고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했다. 


캄캄함 하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이 아들에게 적용되었다는 진리를 확연히 보여주었다. 그 무섭고 놀라운 날에 흑암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어두운 하늘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선포하였다. 백부장은 육신이 되신 말씀이 어두운 하늘에 의해 펼쳐진 것을 보았을 때 유일하게 적절한 대답인 찬양을 했다.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라


우리의 문화가 성경적 정박지로부터 떨어져 표류하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세계와의 의미 있는 상호작용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윗은 이 둘을 연결지었다. 자연과 성경 둘 다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길러내는 것은 하나님을 더 친밀하게 알아가는 데 큰 가치가 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패턴과 내적인 경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겨울 스키, 더 많은 숲속 하이킹, 더 많은 낚시 여행, 이런 것들만으로는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다시 말하지만 차이는 경청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 상급은 어린 목자처럼 그들의 마음의 귀를 함양하여 창조주의 위엄을 듣게 하는 사람에게 오는 것이다. 시편 19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해 새롭게 놀라워하도록 초대한다. 


여름 캠프의 책임자로서 나는 창조세계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법을 배운 젊은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풍성한 열매를 보았다. 우리는 성경의 렌즈를 통해 삶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캠프 도우미들을 훈련한다. 우리는 또한 소그룹을 훈련하여 야영자들이 계곡을 건너고 산을 올라야 하는 바닷가의 “작은 만 여행”으로 데리고 간다. 나는 도우미들이 신선한 눈과 귀로 주변의 모든 것을 듣고 볼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작은 만 여행에서 창조의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우리의 창조주를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방식을 포함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경험하는 바로 그 방식이 바뀌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게 된다. 




원제: How God’s World Enriches My Experience of God’s Word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서은성 


자연과 성경 둘 다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길러내는 것은 하나님을 더 친밀하게 알아가는 데 큰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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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cott Steltzer

스콧 스텔처는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예배 담당 목사로 있다. 펜실베이아주 보스웰에 있는 기독교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Summer's Best Two Weeeks에서 전임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