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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위안이 되는 시편 103편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복음적 지혜 클리닉 4

What Psalm Gives Help to the Suff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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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David Powlison /  작성일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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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수많은 위로를 주고 나를 붙들고 격려하며 영적으로 먹여준 시편은 103편입니다. 이 시편은 흥미 있게 시작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에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다음 절은 보통 고어체의 효과를 살려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아무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죠. 저는 그것을 재번역하자면 ‘그가 행하신 모든 일을 기억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말씀이 그런 의미이니까요. 그 다음엔 좋은 일을 잔뜩 나열합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속량하시며”(4절)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점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고난과 죄를 올바르게 구별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가 죄로 인해 더 이상 기쁘지 않고 그것은 우리를 괴롭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죄악이 우리 마음 속에 가장 깊게 물들어 있는 광기라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3-4절) 병과 파멸은 우리가 스스로 초대한 투쟁 거리일 뿐입니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4절) 흥미 있는 것은 보통 긍휼을 단수형으로 번역한다는 겁니다. 긍휼(compassion)은 태도이고, 긍휼들(compassions)는 행동입니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는 실제로 그분이 호의를 베푸시는 겁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5절) 흥미롭게도 번역가들이 항상 ‘your adornment’(네 소원)를 생략합니다. 그것이 이상하게 들리기 때문인데요. 제 생각엔 그 의미는 ‘그가 좋은 것으로 네 삶을 장식하는 것처럼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우리 인생에서 가장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네 청춘, 네 에너지, 네 활력, 네 목적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신다는 겁니다. 독수리나 매가 솟아오르는 방식과 같이요. 

시편 기자는 이어서 말합니다. “아버지가” 물론 좋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의미합니다.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13절) 부모를 생각해 보면 정말로 좋은 부모를 보면 자녀들, 어린 아기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들은 어리석은 것들을 말할 수 있지만 그 아이들을 놀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한다고 질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상하고 우스운 것들을 말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두려움을 측은히 여기고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을 가엽게 여깁니다. 좋은 부모는 하나님의 형상이며 나직이 말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내가 너를 위해 있다. 너를 보호할 것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이처럼 시편 103편은 매우 포괄적으로 우리의 죄와 슬픔을 다룹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다루며 한결같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걸 말입니다.

스피커 David Powlison

데이비드 폴리슨은 하버드 대학교를 나와 웨스트민스터신학교(M.Div.)와 펜실베니아대학교(Ph.D.)에서 공부했다. 기독교상담교육재단(CCEF)에서 교수와 상담가로 활동하며,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상담학을 가르쳤고, The Journal of Biblical Counseling의 편집인이기도 했다. 저서로는 「악한 분노, 선한 분노」, 「일상의 성화」, 「일상의 영적 전쟁」, 「고통의 길에서 은혜를 만나다」(토기장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