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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앤드류 딜리_불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성경적 상담 시리즈

How Do I Overcome Anxiety and Dep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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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Andrew Dealy /  작성일 2023-04-09

본문

일반적으로 저는 감정과 느낌을 정보로 취급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현실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불안에 관한 주된 두 구절을 보자면 마태복음 6장 25-34절과 빌립보서 4장 4-9절일 겁니다. 이 두 구절에서 사도 바울과 예수님은 불안에 대해 직접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 공중의 새를 보고 하나님이 돌보시는 피조물들을 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들의 풀들에게 제공하시는 것들 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머리카락의 색깔이나 무엇이든 바꿀 수 있겠느냐는 거죠. 이 말씀은 매우 놀라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자신으로부터 돌리게 하시고 피조물을 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 보며 너희는 필요로 하는 만큼의 힘이 없다는 걸 깨달으라는 거죠. 하지만 그 구절을 보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염려하는 대신 다른 것을 느끼라고 말하시나요? 그분은 염려하지 말고 대신 이러한 것들을 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실천을 하라는 겁니다.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4-9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바울도 우리의 감정을 다루는 실천 방법을 말해 줍니다.  
바울은 염려하지 않는 대신 기쁨과 행복을 느끼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불안이 느껴지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성경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불안이 어떻게 작동하며 불안이 오면 우리가 그것을 느끼고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은 말할 겁니다. ‘위험이 느껴지니 자제력으로 대응해. 자기보호적으로 대응해. 불안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해 봐’라고요. 하지만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은 불안을 다스리려고 하거나 불안이 우리를 다스리게 하지 말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분이 다스리고 계시니 그분께 의지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이 느껴지면 그것은 사실 첫 번째 유혹입니다. 저는 그것을 유혹이라 부르고 죄라고 부르지 않는데요. 불안이 느껴지면 우리는 살고 작동하고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상황을 평가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 순간에 유혹을 받거나 우울과 불안을 다루고 있을 때, 그 순간 우리가 받는 유혹은 벌어지고 있는 일을 우리가 제어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불안을 그런 식으로 다루게 되면 만일 불안이 오면 이런 느낌이 들면 뭔가가 나를 압도하는데 내가 그것을 다룰 수 없을 것 같다면 우리는 이렇게 합니다. ‘좋아요, 하나님, 이 순간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저는 지금 현실을 보고 당신이 이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을 상기시켜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알려 주는 건 고통스럽지만 감사한 거네요. 이런 알림에 감사하는 건 그것이 제게 주 하나님을 보여 주시고 당신이 이 일에 관여하고 계심을 잊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이 이 상황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걸 인정하면 제가 불안할 때 당신이 이 상황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면 당신은 결코 압도되지 않고 결코 혼란스러워한 적이 없으며 결코 길을 잃은 적이 없으니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지 알고 계시겠네요. 하나님,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그러면 우리가 불안할 때 그것은 실제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할 겁니다. 하나님을 향하고 그분께 나아가게 할 겁니다. 그분을 떠나기 보다는요.
대적은 종종 우울과 불안감을 사용하여 우리가 이미 이 게임에서 졌다고 믿게 합니다. 불안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 분명히 내 믿음이 약한 거야’ 혹은 ‘끔찍하게도 내가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또는 ‘내가 뭔가 분명히 심각하게 잘못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렇게 불안하지 않을테니까’라고요. 그 대신 우리가 깨닫기를 불안과 우울이 싸움의 시작이며 첫 번째 경고 표시라는 거라면 우리가 마치 하나님이 거기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고 행하도록 유혹받고 있는 거라면 그 느낌이 우리를 실제로 주님께 향하게 하여 그분께 의지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다른 예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불안과 감정을 정보로 여기는 방식이 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요.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을 살펴보면 그는 그 동산에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세 번이나 묻는다고 합니다.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있다면 이 일을 이루는 다른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원합니다’라고요. 누가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 다른 길을 애원하고 있던 그 순간에 그의 몸은 말 그대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순간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솔직하게 말하면 그 상황에서 예수님 이름 대신 밥이라는 이름을 넣고 내가 ‘밥은 그 순간 어떤 느낌일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쉽게 ‘그 순간 그는 불안하겠죠’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 순간 그가 가장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었을 겁니다.
불안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정의를 보자면 앞을 내다볼 때 내가 압도되는 느낌이 든다면 잠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인류 역사 상 불안을 느끼는 것이 이보다 더 적절하고 건강한 상황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이 순간 십자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죗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끔찍한 죽음의 고통을 당하시려고요. 거기에다 아버지와의 분리됨을 경험하고 계셨습니다. 앞으로 있을 일이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순간 예수님의 몸은 건강하고 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던 겁니다. 그의 몸이 ‘나는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 나는 이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아. 나는 죽고 싶지 않아’라고요. 그의 몸은 당연히 해야 할 걸 하고 있던 겁니다.
재차 말하지만 이것이 제가 불안한 것과 불안의 지배를 받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을 느끼고 우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앞을 내다보며 압도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것은 믿음은 우리가 느끼는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을 때도 그는 아버지께 기도하였지만 아버지께서 ‘아니다. 이게 그 길이다’라고 하셨을 때도 몸은 아직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에도 그가 한 일은 일어나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는 겁니다. 이것은 우울과 불안을 다룰 때 따라야 하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소망입니다. 우울과 불안은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지배할 수 없고 우리 미래를 결정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한계를 둘 수 없습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불안과 우울이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입니다. 불안과 우울은 당신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제어하는 한다고 믿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은 우리가 불안과 우울을 느끼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우리는 여전히 설 수 있고 신실함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있는데요. 그것은 우리가 실패한 그곳에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다는 겁니다. 우리가 불안에 실패하고 불안과 우울이 우리를 지배하더라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더 나은 길을 주십니다.
스피커 Andrew Dealy

앤드류 딜리는 오스틴스톤 상담센터(Austin Stone Counseling Center)의 이사장이며 Austin Stone Community Church 의 영혼돌봄부터 책임자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