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아침 8시 매일 큐티

모든 것이 헛되다
2018-11-12

전도서 1장 1-11절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1절)


전도서는 "헛되고 헛되니"(1:2)라는 유명한 문구로 시작한다. 이 문구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오늘의 본문을 비롯해 전도서 전체의 가르침을 옳게 이해할 수 있다. 많은 해석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이 문구는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거니와, 타락한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가 모두 궁극적으로 헛되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문구는 우리의 삶을 올바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전도서 1장 2절의 "헛되다"는 "증기," 또는 "숨결"을 뜻하는 히브리어 "헤벨"을 번역한 것이다. 전도서에서 이 말은 한 줄기의 증기나 숨결과 같이 잠깐 있다가 곧 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울러 그렇게 사라지는 것은 내 힘으로 붙잡기가 어렵다. 따라서 전도서의 "헤벨"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현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이해력을 지니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온전히 파악하기가 어렵다. 삶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전도서 저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우리의 삶은 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로 채워져 있을까? 그 이유는 개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피조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웅장한 계획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우리가 항상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 속에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측면이 있다는 개념은 오늘의 본문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전도자는 3절에서 인간이 수고를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 말은 노동이 무의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도자가 말하려는 요점은 스스로의 노동으로 지속적인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노동은 세상의 많은 좋은 것을 누리는 데 필요한 재물을 벌어들이는 수단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덧없다. "재물은 무덤까지 지고 갈 수 없다"라는 명언은 진리다. 그 누구도 죽을 때 재물을 가져갈 수는 없다. 재물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 된다. 물론 그것이 그 자체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기를, 선한 사람은 그 기업을 "자자손손"에게 물려준다고 하였다(잠 13:22). 그러나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 줄 것을 쌓기 위해 그토록 수고롭게 노동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이 세상의 관점에서만 삶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전도서는 "해 아래에서"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해 아래" 있지 않은 삶으로 우리의 생각을 이끈다. 즉,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불어 다른 현실의 존재 가능성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코람 데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전도서가 말하는 삶, 곧 "해 아래" 있는 삶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만물을 창조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이 세상에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롬 8:28).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Vanity of Vanities

번역: 조계광 (매일배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 공유하기
  •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