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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덮는 환상

오늘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

저자명 강산 · 서정걸 · 윤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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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  출판사 무근검 / 작성일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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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교회 부교역자 목사들의 에스겔서 강해이다. 부교역자의 설교집이고, 한 명이 아닌 세 명의 목회자가 함께 한 내용이라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에서 부교역자의 위치는 담임목사를 서포트하는 정도의 역할만 감당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강단에서 연속 강해설교를 하고 또 책으로 출판된다는 것은 좋은 선례를 보여준다. 또 연합해서 함께 한 설교라 더 의의가 있어 보인다. 이런 과정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에스겔서 전체를 연속 강해했다는 것이다. 에스겔서에 중요 구절들을 설교하는 것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강해를 한 설교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이 과정 자체가 ‘폐허를 덮는’ 하나님의 환상같은 일인 것 같다. 


이 책은 환상, 우상, 심판, 회복이라는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 환상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간 그곳에서 환상을 보여주신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환상이다. 에스겔의 신분은 제사장이었다. 그가 좋은 시절에 제사장이 되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포로로 끌려가 성전이 없는 그곳에서 제사장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비전과 환상을 보여주신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아, 내가 예루살렘에만 묶여 있는 줄 알았느냐? 나는 못 가는 데가 없다. 내가 못 있을 곳이 없다. 나는 이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이다. 나는 모든 만물과 인류의 역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다.”(48쪽) 


에스겔의 환상은 가장 어려운 시대이지만 여전히 당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며, 하나님이 온 세상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상은 아름다운 소망만을 그려주지 않는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이야기 하고, 390일 동안 왼쪽으로 누워있어야 하는 어려운 순종을 이야기 하신다. 에스겔의 삶은 앞으로 임할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참혹한 일을 몸소 겪는 것이다. 이것이 에스겔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포로로 끌려간 시간을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면 응답이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인내하며 살아야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환상을 본 에스겔이 선포해야 하는 내용은 소망이 아니라 심판이었다. 어쩌면 코로나와 같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인내일 것이다. 우리는 늘 자신을 주인공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70년 포로 기간에 태어나서 70살에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의 평생은 늘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다리는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다. 에스겔은 이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인내해야 함을 보여준다. 에스겔서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우리가 보기에 절망적인 상황,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너의 주인이신가? 신앙이란 답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가는 것이다. 


2부 우상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자신에게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겼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있었고, 성경은 그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한다. 우상이란 머리에 뿔 달린 동산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마음에 품는 상태이다. 그럴 때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선언하신다. 이것은 싸워서라도, 반드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며 가슴 아픔의 고백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기를, 돌이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 남북 이스라엘의 멸망에 즈음하여 그토록 많은 선지자가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듣지 않고 돌이키지 않아 결국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경고하신 ‘그날’에 이르게 됩니다.”(208쪽)


이스라엘이 잘못된 우상숭배를 하는 결정적 이유는 거짓된 가르침 때문이었다. 심판이 코앞에 다가온 상황에서도 거짓 선지자들은 “평안하다. 평안하다.”만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는 때론 사람들의 평판이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거짓된 가르침은 인간의 본성에 영합하여 스스로를 눈 멀게 한다. 


이런 우상숭배가 치명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피 흘리는 핏덩이를 살려서 멋진 성인으로 만든 후에 혼인한 결혼관계로 표현하신다. 그러나 결혼한 신부가 신랑을 배신한 것이다. 그들은 신랑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의 또 다른 신인 우상을 닮아가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가 신으로 섬기는 것을 닮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니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가증한 우상을 섬기다보니 그들이 우상같이 가증해졌다고 하나님이 지적하십니다.”(370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인간의 위로로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 비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이 비참한 것은 자신이 비참한 존재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비참함이다. 


3부 심판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는데 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는 회개를 촉구하는 호소의 목소리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우상을 섬기다가 결국 심판의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마솥에 고기를 넣고 끓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가마솥에 고기를 끓이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가마솥은 먹을 수가 없다. 그 속에 녹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피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하나하나 꺼낼지어다”(겔 24:6) 


하나님은 나무를 더 넣고 계속 끓이라고 명령하신다. 왜 이렇게 하나님은 먹지 못하도록 계속 고기를 끓이라고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녹을 없애고 싶어 하신다. 하나님은 더러운 이스라엘을 깨끗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비록 뜨겁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가마솥을 버리지 않고 계속 불로 정결하게 하신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사랑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이유없는 시련을 주시는 것 같을 때가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정결하게 될 것이다. 


“우리 삶에도 이런 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무서운 때입니다. 이 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우리를 붙들어 준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다 설명될 것입니다. 이 순간은 끝장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그것이 드디어 온다고 해서 삶이 산산조각으로 허공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더 나은 자리로 나아갑니다. … 그렇게 새 그릇으로 바뀌는 것이 신자의 인생이라고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436쪽)


4부 회복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포로로 끌려갔다. 그때 이방민족들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 나라가 자신들의 기업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셨다. 심판의 자리, 포로의 자리를 허락하시지만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두 땅은 다 내 것이며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셨느니라”(겔 35:10) 


이스라엘은 연약해서 이방이 조롱하는 대상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그런 세상의 방식을 뒤집는다. 세상의 치욕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로 세워 가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완성된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오늘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러한 미래를 염두에 두고 오늘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꾸 미래를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밝고 밝은 힘찬 미래입니다. 그렇게 밝은 미래로부터 현재를 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소망입니다.”(579쪽) 


오늘을 절망을 이기는 것은 내일의 소망이며 그것은 인간의 무엇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이 뼈들이 능히 할 수 있겠느냐 질문하신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선포하게 하고 에스겔이 순종하여 말씀을 전하자 주님이 말씀하셨던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마른 뼈가 단순히 살아난 것을 넘어 군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에게 역사적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가? 남북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가 되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스겔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회복의 메시지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바로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진 회복을 가리킨다. 결국 에스겔은 단지 혈통적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온 열방이 구원을 얻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보여주신다. 비록 지금은 악이 성행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힘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에스겔이 본 성전의 환상 또한 단순한 예루살렘의 회복이 아닌 새 예루살렘에 대한 그림자이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배신하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신부로 만드셔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여실 것이다. 우리의 넘어짐까지도 사용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에스겔서는 정말 ‘폐허를 덮는 환상’을 통해 오늘의 현실에서 미래를 바라보게 해준다. 오늘 삭막하고 힘든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비전이며 하나님의 환상이다. 그 장래의 은혜를 가지고 오늘을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은 우리 인생을 축소판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에스겔을 통해 우리는 나만의 이익을 위해 좁은 소견으로 살아가던 삶 속에 더 큰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음을 보게 해준다.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오늘 내 삶은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내 인생과 나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도 내 인생 속에 흐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나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역사 안에 동참하는 것이다. 에스겔서는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소망을 품게 하는 비전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코로나로 힘들어 하는 이 시기에 가장 적절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폐허 속에서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아야 한다. 우리를 살리는 유익한 길은 환경과 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환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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