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그가 니느웨로 갔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흥미롭게도 어쨌든 이것이 그의 복음 제시입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간결하고 관심을 끕니다. 그리고 매우 ‘실천적’이죠? 아닙니다 아니죠. 그는 ‘실제로 너희가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요나가 그들에게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 지 말했을 거라고 하지만 본문 말씀에 그가 한 말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가 다입니다. 그는 더 구체적으로 말했어야 했습니다. 본문은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
제가 드릴 말씀의 제목은, 여러분은 이미 알고 오셨지만, ‘소선지서, 요나서가 인종, 은혜, 선교에 대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입니다. 제가 요나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는 걸 어떤 분들은 알고 계실 텐데요. 저는 제 생애 동안 요나서 전체를 세 번 설교했습니다. 사실 요나서는 많은 이야기 형식의 성경책처럼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명확히 말합니다. ‘빌립보에 사는 …에게 편지하노니 너희는 이것 이것 이것을 하라’고요. 문제는 요나서가 저술된 목적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주제가 무엇…
요나서는 아주 특이합니다. 마치 구약 성경 버전 탕자 비유 같습니다. 탕자 비유는 아버지를 떠난 작은 아들에 관한 비유죠.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고 떠나서 창녀와 살며 아버지께 불순종합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있는데 그는 집에 머물러 있으며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또한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합니다. 이 비유엔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는 두 가지 방식이 나옵니다. 하나는 불순종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하지만 ‘이제 아버지는 내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는 방식이죠. 탕자의 방식과 바리새인의 방식이죠. …
제가 요나서에 관한 책을 저술할 때 ‘요나와 하나님 자비의 신비’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책 전체를 읽어보면 그리 길지 않은 책인데 책 전체에 걸쳐 요나의 고뇌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공의로우면서 동시에 자비로울 수 있는가?’입니다. 앗수르 백성 같은 사악한 백성에게 말입니다. 그는 항상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당신이 자비로운 하나님이라는 걸 알지만 또한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공의로우면서 또한 자비로울 수 있습니까? 이 간교하고 사악하며 침략적인 난폭한 앗수르 백성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