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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대한 총 19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폭력적인 영화를 즐겨도 되는가
[예술과 문화] 작성자 by Kathryn Butler 작성일 2020-04-20

난 영화를 추천한 친구를 믿었다. 그런데 영화는 처음부터 아주 끔찍한 살인 장면으로 시작했다. 나는 이내 친구를 째려보았다. 이어서 추격 장면이 나왔는데 길에 서 있던 무고한 사람을 난자하고 몽둥이로 때렸다. 영화의 마지막, 끝까지 살아남은 주인공은 악당을 펜치로 고문했다.내 친구는 팔꿈치를 무릎에 올리고 스크린을 향해 몸까지 기울이며 완전히 영화에 빠져 있었다. 반대로 나는 소파에 파고드는 자세로 앉아있었다. 감독은 관객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도록 자극적인 복수의 언어를 사용하여 해설했다. 잔혹함을 엔터테인먼트로 위장한 영화를 보며…

이 시끄러운 세상에서는 수사(修辭)가 더 필요하다
[목회] 작성자 by A. Trevor Sutton 작성일 2021-05-29

세상에는 수사(修辭)가 더 있어야 한다.다시 강조하건대, 정치도, 언론도, SNS도, 그리고 우리의 일상 대화 역시 수사가 필요하다.하지만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물론 있다.요즘 세상에서는 수사가 오히려 ‘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종종 사람들은 오늘날의 무례한 문화가 도래한 이유 중 하나가 수사라 생각하여 수사는 이제 사람들이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말이 되고 말았다.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트위터에서 누군가를 욕보이기 위해 당신이 휘두르는 것이 바로 수사라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들을 그저 …

성경을 읽는 데 시적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
[예술과 문화] 작성자 by Jessica Hooten Wilson 작성일 2021-02-16

“누구든지 들을 귀 있는 자가 듣게 하라” 예수님은 말했다. 그러나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씀하신다면, 만약에 우리가 그의 음성을 향해서 귀머거리가 되어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하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상황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만약에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만약에 비유적인 설교를 해석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를 듣지 못하는 상태라고 경고했다. 베일러 대학(Baylor University)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데이비드 라일 제프리(Dav…

시각의 시대가 우리를 장님으로 만든다
[예술과 문화] 작성자 by A. Trevor Sutton 작성일 2019-07-25

우리는 하루 중 평균 얼마나 되는 시간을 미디어와 함께 보낼까? 스마트폰, 태블릿, 텔레비전 그리고 노트북에 쏟는 시간이 하루 평균 11시간이다.최근 세계보건기구는 2살 미만의 아이들은 스크린을 봐서는 안 되고, 2살에서 5살 사이의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시간을 하루에 한 시간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권고 내용을 발표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스크린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사실이다. 한 최근 보고에 의하면, 성인은 하루에 평균 150번 스마트폰을 확인한다고 한다. 스크린에 쏟는 시간을 조절하기 위해 스크린…

나니아 이야기에서 그려지는 존재론적 증명
[예술과 문화] 작성자 by Gavin Ortlund 작성일 2019-01-18

내가 참 좋아하는 문학 작품의 한 단락이 있는데, 바로 C. S. 루이스의 ‘은의자’(The Silver Chair)에서 퍼들글럼(Puddleglum)이 녹색 마녀(the Lady of the Green Kirtle)에게 대답하는 장면이다. 이 이야기에서 녹색 마녀는 지하세계에 몇몇 캐릭터들을 가두어 두고, 자신의 마법으로 그들을 꾀어 나니아(Narnia)나 아슬란(Aslan)이나 지상세계(the Overland)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바로 그 캐릭터들이 마녀의 논리에 넘어가기 직전에, 퍼들글럼이 마법의 불길 위를 걸…

하나님의 새 창조가 우리의 창조성에 중요한 이유
[예술과 문화] 작성자 by Thomas Terry • Ryan Lister 작성일 2019-01-10

창조성은 낙원 건설을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였고, 앞으로도 계속 가장 훌륭한 도구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적 작업을 통하여 에덴동산의 아름다움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드셨다. 하지만 죄가 끼어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낙원 건설을 중단하고 우리 자신의 낙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창조성으로 낙원 건설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낙원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가 이기적인 목적 달성을 위하여 창조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은 더 나은 일을 하도…

작년에 나는 ‘크리스천이 신학에서 아름다움을 무시하는 5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리고 아름다움에 관한 기독교적인 연구의 첫걸음을 제안하고 싶다.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관한 대부분의 생각과 글은 난관에 봉착해 있다. 신학과 철학 및 전문 분야로서의 미학을 전공한 사람들 때문이다. 심지어 이 철학자들 중에는 아름다움은 폐기되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하지만 아름다움은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크리스천은 아름다움에 관해 뚜렷한 기독교적 관점을 공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는 자주 등한시되는 주제이지만 이 세계와…

예수님의 눈물에서 예술을 생각하다
[예술과 문화] 작성자 by Makoto Fujimura 작성일 2018-12-28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 나온다. 나사로의 죽음과 마리아와 마르다의 근심을 보며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말 그대로 진(truth), 선(goodness), 미(beauty)로 가득하다.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고” 베다니로 오셨다(요 11:4). 예수님이 도착했을 당시, 마르다는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요 11:25). 만약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곧 자신이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권능을 갖고 있는 메시아라는 …

악의 문제는 오랫동안 크리스천에게 도전거리였다. 모든 이를 사랑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선한 피조물에게 고통을 허락하실 수 있을까? 물론 이 질문은 결코 논리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나에게 피할 수 없는 고통이 찾아온다면, 나는 그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혹 미래에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기 위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언뜻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제안은 ‘미술관에 가라’는 것이다.미술은 늘 영성 형성과 교회 갱신의 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