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ck

사이트 내 전체검색

tgck

검색버튼
사이트 내 전체검색
Articles

하나님 선물로서의 몸과 영혼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Robert Cutillo  /  작성일 2020-03-11

본문

Photo by Robert Collins on Unsplash
오늘날 교회는 대부분 몸과 영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고 있다. 몸과 영혼의 분열은 오늘날 교회의 심장부를 흐르는 새로운 단절을 가져오고 있다. 영지주의라는 여전히 매력적인 이단 사상과의 투쟁은 기독교 역사에서 오래 지속되었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몸과 영혼의 친밀한 결합을 잘못 해석하거나 무시하는 일에 교회는 주로 방관했다. 이로 인해 육체는 이 시대의 그릇된 사상의 쉬운 먹잇감이 되어왔다. 육체에 대한 의미는 빠르게 물질적인 의미로 축소되었고, 우리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육체의 질병과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게 했다. 우리에게 몸과 영혼에 대한 생각을 흐리게 하고, 추상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육체와 정신의 상호작용을 단절시켰다. 몸과 영혼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합 된 것이며, 창조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기독교적인 믿음은 놀랍게도 점차 흐려졌다.

인간이 육체의 올바른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연약한 육신에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으며, 삶의 본질적인 본성에서 육체를 제거하려는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이다.

육체가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좋은 것은 무엇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상처받기 쉬운 육체

육체를 따로 떼어 생각하려는 것은 신체의 약점을 방어하고 최소화하려는 본능에서 나온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각자의 개성으로 인해 상처 입는 현실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것을 감수하기보다는 회피한다. 우리는 길가에 상처 입고 쓰러진 개인과 직접 교류하기보다 프로그램화된 방식으로 자선활동을 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만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어떤가? 선을 행하고자 하는 우리 내면의 성품이 연약한 관계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면 어떤가? 하나님을 향한 삶의 여정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영지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다른 이들과 친밀한 교제와 연약함을 보완하는 상호작용이라면 어떤가?

성경의 이야기는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만남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라. 찰스 테일러는“아가페 사랑은 배에서 나온다. ‘불쌍히 여기다’를 뜻하는 신약성서 단어(splangnizesthai)는 창자에서 반응한다."라고 언급한다.

복음서에서 나타난 몇 가지 예는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성육신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셨던 순간을 생각해보라.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고 지쳐서 기운이 빠져있는 그들을 보았을 때(마 9:36) 또는 수천 명이 사흘 동안 먹을 것 없는 것을 보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마 15:32). 하나뿐인 아들의 시신을 무덤으로 옮기는 과부의 눈물을 불쌍히 여기시는 장면도 있다(눅 7:11-15). 예수님 사역 초기에 설교하려고 하실 때(막 1:40-41)도,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도 그러하셨다(마 20:29-34). 낫기를 원하던 문둥병자와 보기를 갈망했던 두 명의 맹인을 위해 예수님은 가던 걸음을 멈추셨다. 이런 모든 상황에서 예수님은 상처받은 이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셨다. 깊은 연민(splangnizesthai)을 느끼셨다. 성육신으로 인간의 모든 감정을 가지셨기 때문이다.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성경의 비유 가운데 잘 알려진 것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 있다.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서 연민으로 가득한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먼 곳에서부터 달려가 그를 안아주었다(눅 15:20).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길에서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들과는 달리 사마리아인은 그를 데리고 가서 보살펴준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눅 10:33)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는 말씀을 하셨다. 예수님은 근본적인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시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모델을 제시하셨다.

세상의 삶으로 익숙한 내가 예수님을 따르려 할 때, 나의 처음 “본능적 반응”은 돌보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토미가 노숙자 클리닉에 왔을 때 나는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있기를 바랐다. 서른 살인 그는 필로폰에 찌들어 있었다.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샤워도 하지 않아서 더럽고, 냄새가 났다. 그의 모습 중 가장 최악은 싸움으로 다친 손을 그대로 두어 곪아 터진 그의 상처였다. 누가 자신의 몸을 이렇게 학대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한참 후 나는 그의 차트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버려진 그는 위탁가정에서 자랐다. 자신이 믿고 의지할 사람들에게 성적 학대를 받은 토미는 사랑보다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되풀이해서 학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책 ‘사랑의 행위’에서 두 예술가의 비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예술가는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사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만한 가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만나 본 사람들은 각각 불완전한 모습이었고, 어딘가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두 번째 예술가는 아무 데도 여행하지 않았지만 그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서 그림을 그릴 만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키에르케고르가 언급하기를 두 번째 예술가는 인간의 만남을 재정의하는 다른 관점, “어떤 무언가”를 그가 마주친 모두에게 발견했다고 했다.

토미의 상처를 씻기고 붕대를 감아 준  후에 그의 앞에 앉았을  때, 나는 그에게서 전에는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았다. 자기 자신을 학대한 그의 눈에 비친 슬픔을 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는 연민의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치유적 존재로의 육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누군가를 대한다면 내가 모르는 치유능력에 놀랄지도 모른다. 수년 전,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에서 가정의학과 교육을 받고 있을 때, 멜빈이라는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멜빈의 아내는 2년 동안 멜빈의 치료를 위해 동행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남편의 간암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을 때도 그녀는 함께 있었다. 멜빈이 죽던 날 밤, 멜빈 부부는 마지막을 함께 하려는 듯 나를 집으로 불렀다.

내가 돌본 첫 번째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의 장례식이다. 장례예배가 다 끝났을 때, 친구들과 가족들은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 내가 함께 있어 준 것에 고마워했다. 그 날 밤, 내가 한 일은 없었다. 젊은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그곳에 있어 주며 안타까워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치유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건강을 위해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바울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기술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이후에 육체와 영혼, 지식과 경험, 자연과 초자연과 같이 분리할 수 없는 것을 분리하려고 분열의 악한 영은 열심을 내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믿음과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이웃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딜레마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사마리아인과 같이 “내가 가까이 가지 않으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고민하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내가 가까이 간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것을 걱정한다. 성육신하시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이러한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함께 있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한다.


원제: The Healing Power of Bodily Presence
번역: 송유희
 
작가 Robert Cutillo

로버트 커틸로 박사는 Denver Seminary에서 건강과 문화를, University of Colorado School of Medicine에서 의대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노숙자들을 위한 치료 사역에도 헌신하고 있다.

최근 건강 관련 글

바쁨, 그리고 참 안식

by Kevin DeYoung / 2021-07-1121-07-11

상처입은 치유자

by Joni Eareckson Tada / 2021-04-1721-04-17

정신 질환에 관한 기독교인의 고찰

by Heath Lambert / 2021-02-01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