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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승천이 갖는 특별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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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Eric B. Watkins  /  작성일 2019-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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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Katrina_S from Pixabay

짧은 분량이지만 시대를 앞서간 통찰을 담은 책,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에서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은 기독교를 ‘사건 중심의 종교’라고 정의했다. 역사 속에서 실제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고,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이 누구이고 그들이 무엇을 믿었고 어떤 행동을 했는가가 기독교를 이루는 사건들의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이루는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만약에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느니 차라리,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 15:32) 하면서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기에 기독교인은 그 부활에 비추어 가치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오로지 부활한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반영하는, 부활의 삶을 살고 있다.


부활이 기독교인의 삶의 중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의 마지막은 아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이후, 그리스도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이 증거하듯이, “하늘로 올라가셨다.” 승천이 주는 특별한 뉘앙스는 부활하시고 또 부활 후 여러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고 난 이후에,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라가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셨다”(사도신경)는 것이다. 부활이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였다면, 승천은 세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약속한 보좌, 다윗의 보좌에 예수님이 앉으셨음을 의미한다(삼하 7장).


제자들에게 반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죽음에서 부활할 뿐만 아니라 영광 중에 하늘로 승천할 것을 말씀하셨다(요 20:17 등). 그의 승천은 성령님이 오시기 위해 꼭 필요한 선행 과정이었다(눅 24:49-52). 사도행전 1장은 승천만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 2장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셨듯이 성령 강림을 예언하고 있다. 성령님이 교회 위에 임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먼저 하늘로 올라가셔야 했다. 승천이라는 사건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야만,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중에 거하실 수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인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또한 성령님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연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믿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마 28:20).


승천에는 생각해봐야 할 실용적인 측면이 하나 더 있다. 시편 68편은 하나님을 정복하는 전사로 표현한다. 68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1절). 그러나 의로운 자는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3절). 왜 그럴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마치 성을 떠나 적들과 싸울 준비를 마친 왕처럼 전쟁의 사람이 되어서 성전에서 나왔다. 68편에 따르면 하나님은 단지 적들을 물리칠 뿐 아니라 포로가 된, 억울한 그의 백성을 구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고아의 아버지이며 과부의 재판장이다(5절). 그는 또한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언약의 백성을 적으로부터 구하시는 분이다. 시편 68편이 보여주는 전쟁의 모습은 놀랍고 또 두려울 정도이다. 하나님의 발소리에 땅이 진동하고(8절), 하나님은 왕들을 흩으시며(12절), 그리고 마침내 승리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거룩한 언덕과 성소로 다시 올라가 포로들들 이끌어내며, 그가 사로잡은 자들(captives)로부터 선물을 받는다(18절).


어떤 이들은 ‘사로잡은 자들’이 하나님의 적, 그러니까 강제로 붙잡힌 자들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해당 구절이 일종의 정복당한 자들이 벌이는 죽음의 행진을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로잡은 자들’에 대한 훨씬 더 타당성 있는 이해는 그들이 하나님의 적에게 잡혔던 자들, 다름 아니라 애초에 하나님이 전쟁을 치러서라도 구하려고 했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할 때 해당 시편의 주제와 흐름과 더 자연스러워질 뿐 아니라, 하나님을 단지 신적 전사로만이 아니라 신적인 구원자로도 바라볼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해석만이 바울이 에베소서 4장에서 인용하고 주해한 시편 68편 18절과 조화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어떻게 그리스도가 시편 68편을 성취했는지 설명하면서, 그것이 단지 부활만이 아니라 그의 승천을 통해서도 성취했음을 말하고 있다(엡 4:8-10). 그리스도는 죄와 (가장 큰 적인) 죽음을 정복했을 뿐 아니라 사로잡힌 자들을 구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단지 자유를 준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온갖 은사까지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68편 18절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서 선물을 ‘받으셨다’라는 구절 때문에 시험에 들기도 하는데, 에베소서 4잘 8절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물을 ‘주셨다’라고 썼다. 그럼 뭐가 맞는 걸까? 둘 다 맞다. 하나님이 구한 사람들도 하나님에게 선물을 주었다. 바로 그들 자신이 선물이다. 그들은 또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교회에서 봉사하는데 필요한 은사를 받았기에, 부활하고 승천한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에 주는 선물이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면 그는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재창조하신다(엡 2:10). 그의 형상에 따라 새롭게 하신다(엡 4:23-24). 그래서 우리가 단지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받기만 하는 수혜자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 필요한 은사를 소유한 존재가 됨으로 이제는 선물을 주는 자로 바꾸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단지 부활 이후에 일어난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왕이 자신에게 합당한 보좌로 다시 복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 왕은 그가 구원한 백성들에게 은사를 제공함으로 그의 왕국에 필요한 자로 만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주시는 가장 중요한 선물은 바로 그 분 자신이다. 이와 관련해서 웨스트민스터 요약 교리 문답서의 질문 23은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삼중 직분(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왕)을 “이 땅에서도 또 하늘에서도”(both in his estate of humiliation and exaltation) 수행하시고 있음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승천해서 영광을 받는 중에도 선지자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그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질문 24).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간구”하신다(질문 25). 왕으로서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며 보호하시고 자신 및 우리의 모든 원수를 막아 이기도록” 하신다(질문 26).


부활이 기독교 역사의 가장 주요 사건이자 기독교 서사의 클라이막스라면, 승천은 영광의 보좌에 그가 앉으시면서 면류관을 쓰는 사건이다.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에게 많은 훌륭한 선물을 주시며, 그 중 가장 훌륭한 선물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그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 거룩한 구원자이자 우리 영혼이 가장 갈망하는 왕 중의 왕이요, 주 중의 주에게 우리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은 우리가 신앙의 기반으로 삼아야 할 역사적인 사건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구성하는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메이첸이 주장한 것처럼 부활과 승천이 없다면, 기독교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들이 역사 속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 생활과 마찬가지로 확고부동한 닻을 지니게 된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며 지금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다.




출처: www.ligonier.org

원제: The Ascension of Jesus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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