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스와 룻에게 결혼에 관하여 물어보다
by Vivian Hyatt2019-02-20

우리가 룻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교훈이 결혼식에서 불려지는 달콤한 노래가 전부라고 본다면 오산이다. 룻기는 연애와 결혼에 관하여 현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낯설면서도 한편 담대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현재 기독교 문화는 결혼 전에 낭만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관점을 존중한다. 하지만, 룻의 이야기는 이와 달리 ‘그(녀)가 내게 맞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접근하는 더 나은 방법을 묘사하고 있다.  


두 과부의 이야기


룻기의 이야기는 두 과부가 생계 수단을 찾는 에피소드로 그 핵심은 결혼 개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굶주림과 법적 권리를 강력히 추구하는 면에서 보여진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의 핵심이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의 고귀한 모습이라는 그림을 그려준다.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이제 모압의 며느리들과 함께 과부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스라엘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그녀는 며느리들에게 그들의 가족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백성 중에서 남편을 찾으라고 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복을 빌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중략]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 1:8-9). 남편을 찾아서 과부로서의 힘든 삶을 마감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룻은 나오미를 따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모압 신에게서 떠났다.


그들이 이스라엘에 도착한 때는 보리 수확을 시작하는 시기와 맛물렸다. 이것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율법과 율법의 여호와가 이 과부들을 보호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분의 계획을 수행하셨다. 그분의 계획은 나오미의 두 아들이 죽은 이래로 펼쳐지고 있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룻 1:6) 듣고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에 알맞은 시기에 도착했다.      


연애와 결혼의 개념


룻기는 남편을 얻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대의 연애 개념에 대하여 무언가를 말해준다. 


수혼제(Levirate marriage, 신 25:5–16)는 죽은 남편의 형제가 형수를 자기 아내로 삼아야 한다는 법이다. 이 율법은 우리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 법이지만, 과부를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게 하며, 그녀가 자녀를 낳으면 그 가족의 대를 있도록 하는 ‘자비’의 법이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기에 이스라엘의 결혼법과 수혼제를 통해 자신의 복지를 계획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시어머니를 따랐던 여인이다. 룻은 결혼 문제에서도 낯설지만 아름다운 시나리오를 계획하여 지시하는 시어머니를 따르는 순종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추수 때에, 룻은 자진하여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이삭 줍는 밭에 나갔다. 본문은 룻이 나오미의 죽은 남편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한편, 보아스는 그의 밭을 점검하러 마을에 왔고, 그때 그의 눈에 룻이 들어왔다. 그는 “이는 누구의 소녀냐?”라고 물었다. 그는 그녀가 모압에서 나오미와 함께 돌아 온 젊은 과부임을 알게 되었다. 보아스에게 이것은 좋은 정보였다. 그녀는 누구에게 속해 있지 않았고, 그녀의 평판은 베들레헴 전역에 이미 퍼져 있었으며, 그 소식이 그에게도 들려왔다. 이 여성은 단순한 외국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따르는 여인이었다.  


추수 때에, 보아스는 룻과 나오미를 보호하고 양식을 공급했다. 그는 종들에게 그녀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일부러 곡식을 뽑아 버리라고 명하기까지 했다(룻 3:16). 보아스는 세심하고 정중하고 신사 중의 신사였다. 한편 나오미는 보아스와 룻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수혼제 법에 호소할 계획을 세웠다.


프로포즈 방식 


마침내 보리 추수는 안전하게 마쳐졌다. 보아스는 잔치를 열어 축하하였고 이제는 그의 곡식 창고를 지키기 위하여 그 근처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 그림은 마치 우리 앞에 벌어지는 결혼 잔치와 이를 보호하려는 신랑의 모습 같다. 단지 신부만 없을 뿐이다. 


나오미는 룻에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가장 좋은 옷을 입으라고 지시하였다. 그녀는 아직 누구에게 선택되지 않았고, 약혼을 하지도 않았으며, 아마 결혼을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된다면, 그녀는 흠없는 신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오미의 지시는 우리의 귀에 점점 더 이상해 졌다.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룻 3:4).   


그래서 그녀는 타작 마당에 조용히 나가, 잠자고 있는 보아스의 발끝의 이불을 들고 거기에 누웠다. 그는 한밤중에 깨어나서 그의 발끝에 누운 한 여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의 옆이 아니라 ‘발끝에’ 누워 있었다. 이것은 유혹의 몸짓이 아니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는 말은 당신과 결혼하여 당신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있기를 원하는 한다는 나오미의 계획(룻 3:1)을 보아스에게 전하는 룻의 신호였다.


신실함으로 얻은 사랑


하지만 더 가까운 친족이 그녀를 구하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 율법에 의하면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과부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보아스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 지 모르기 때문에, 그녀에게 구애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가 룻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면, 바보같아 보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 그는 마치 곡식 알갱이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이 그녀를 놓쳐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보아스는 구애 ‘없이’ 그녀를 얻게 되었다. 그는 이미 스스로 보호자이며 공급자임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룻은 보아스에게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룻 2:13)라고 말했다. 룻은 구애를 하지 않고 사랑을 얻었다. 이 시나리오에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보아스는 룻의 복지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 참 사랑이었다.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 [중략]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룻 3:12-13).


보아스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는가? 그는 여성들을 귀하게 여기며 보호하는 것을 이스라엘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룻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기 위하여 그는 말 그대로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아직 그의 여인이 아니었고 영원히 그의 여인이 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아스는 율법에서 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의 의무를 이행했다.     


보아스는 룻에 대하여 지나치리 만큼 신실하게 행했다. 그는 사실 그녀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놀랐다(룻이 시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순종했던 결과였다). 그는 그녀의 놀라운 품성과 평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이 성취되기 전에는 쉬지 않았다(룻 3:18).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나오미의 기업을 무를 권한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게 되지만, 그것이 아내가 될 사람을 데려오는 일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이를 거절했다.      


보아스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법적으로 10 명의 증인을 세워 룻이 그의 아내가 될 것을 선언했다(룻 4:10).


룻의 이야기는 디즈니 영화가 아니다. 결혼에 대하여 현대 서양의 낭만적인 관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들은 율법 안에서 신실하게 행함으로 그의 훌륭한 성품을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에 적용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성글지만 무게감이 있는 말로 묘사된다.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룻 4:13)의 순서대로 묘사된다. 본문은 이 연합에 복을 빌어 주는 증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먼저 공동체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나서 독립하고 동거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것은 우리가 현대에 볼 수 있는, 먼저 동거하기를 선택하고 독립한 다음에 공동체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경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결혼을 늦추고 온라인으로 데이트를 하는 오늘날, 룻의 이야기에는 이성적 ‘끌림’에 기초하여 이성 친구를 선택하거나 거절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크리스천들이 살펴보고 적용할 만한 지혜가 많이 있다.


보아스가 잘생겼는지 룻이 예쁘게 생겼는지, 그들이 진지했는지 혹은 ‘재미’로 만났는지, 혹은 자유시간에 그들이 무엇을 하기 좋아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품성’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 성취 과정을 이제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룻과 마찬가지로, 현대 여성들도 배우자를 얻기 위한 ‘대책’은 ‘결혼 상대’가 있는지 없는지와는 상관없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이에 순복할 필요가 있다. 만일 한 남성이 당신을 마음에 두고 따르기 시작하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알아보라. 당신을 존중하고 성실하며 당신의 필요를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하려는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를 살펴보라.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라.  


신실한 남성은 여성을 어떻게 찾아나서야 할까? 최고의 존중과 청렴함과 순결함으로 하라.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직접 알아보라. 시간을 두고 인내로 기다리라. 그녀는 하나님과 사람들이 축복하는 결혼식을 치를 때까지 당신의 여인이 아님을 기억하라.


그 다음에는 함께 잘 살아라.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원제: Whom Should I Marry? Ask Boaz and Ruth

번역: 정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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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Vivian Hyatt

비비안 하야트는 CCC 국제 선교사로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39년 동안 사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