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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로서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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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Kevin DeYoung  /  작성일 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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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iguel Henriques on Unsplash

필립 브룩스(Phillips Brooks)가 설교를 가리켜 “개성을 통한 진리 전달”이라고 정의했을 때, 나는 그가 다른 누군가의 개성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개성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믿는다. 한 동안의 기간이 지난 후에, 마침내 나는 설교단에서 자기 나름의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운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내 설교가 더 좋아지거나 나빠졌음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의 설교를 한다는 것은 내 설교가 보다 진실하고, 보다 편안하며, 또한 내 설교 자원이 더 풍성해짐을 뜻한다. 비록 설교자로서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음을 스스로 알고 있으며, “당신의 설교가 10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어요”라는 어색하지만 참된 칭찬을 10년 후 즈음에나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마침내 나 자신의 개성을 통해 진리를 설교하고 있다는 느낌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 설교자들처럼, 그리고 적지 않은 연로한 설교자들처럼, 나는 설교자로서 내 “목소리”를 찾기 위해 애써 왔다. 대학 시절에 나는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탐독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의 느낌은 마치 내가 읽은 글 전부가 수백 년 된 내용이거나 수백 년 전에 번역된 것 같았다. 그 결과, 내 글은(당시에는 내가 설교를 자주 하지 않았다) 라틴어를 곧바로 번역한 듯 어색했고, 문장들은 역시 유난히 길었다. 또 구식 문법과 너무 많은 단어들을 사용했다. 한 교수님이 내게 여러모로 조언해주며 이르기를, 내가 영웅이 되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글을 쓰라고 했다. 당시에 그것은 내게 고통스러운 조언이었고, 심지어 그 교수님의 말을 신뢰할 것인지를 확신하지 못했다. 내가 고전적이고 다소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했던 이유는 그것이 경건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서였지만, 사실 그것은 경건의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청교도적인 분위기를 추구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일 필요가 있었다.

  

신학교에서 나는 많은 급우들이 설교학 교수들을 흉내내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은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하다. 설교학 교수들은 자신의 복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강의를 할 때가 있는데, 이 비난의 일부는 자신의 설교 방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수들에게 돌려질 수 있다. 이 같은 강조는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모든 학생들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 비난의 일부는 학생들에게도 돌려진다. 우리는 자신이 존경하여 모델로 삼는 사람들을(특히 자신에게 설교를 가르치는 사람들을) 마구 복제하려 한다. 고든콘웰신학교에서 나는 작은 해돈 로빈슨(Haddon W. Robinson)들을 많이 보았다. 그 학생들 모두가 나쁜 설교자인 건 아니지만, 그들은 분명 해돈 로빈슨이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설교자로서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로빈슨의 설교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는 만큼, 다른 설교자들도 본받고 싶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할 무렵에는 가끔씩 존 파이퍼(John Piper) 흉내를 냈다. 파이퍼의 설교를 워낙 많이 들었던 까닭에, 내 기도와 설교 주제, 그리고 심지어 “기쁨!”이라고 외치는 모습까지 파이퍼를 닮았었다. 나는 파이퍼에게서 배우거나 그의 영향을 받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할 수만 있으면 그와 똑같은 설교를 하고 싶다. 하지만 내게 맨 먼저 다음과 같이 말할 사람이 바로 파이퍼일 것이다. “내가 전하는 복음과 똑같은 복음을 전하세요. 즉 복음의 진리를 변형하거나 훼손하지 마세요. 하지만 당신이 나랑 똑같이 설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 해가 걸렸지만, 이제 나는 존 파이퍼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파이퍼와 은사 면에서는 물론이고 성격 면에서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본받기를 원했던 다른 유명한 설교자들도 있었다. 나는 성경 본문을 설명하면서 앨리스테어 벡(Alistair Begg)처럼 유머를(물론 그 특유의 억양까지) 구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팀 켈러(Tim Keller)처럼 생각이 창의적이며 교양이 풍부했으면 좋겠다. C. J. 매허니(C. J. Mahaney)처럼 재미있고 겸손하기를 원한다.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리스콜(Mark Driscoll)의 흉내를 내거나 카슨(D. A. Carson)처럼 재치 있게 행동하고 싶다. 심지어 랍 벨(Rob Bell)처럼 시원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지난 여러 해에 걸쳐, 나는 여러 가지 설교 방법들을 실험해 보았다. 원고 없이, 절반의 내용만 적힌 원고를 가지고, 혹은 전체 내용의 원고를 가지고 설교했다. 내가 좋아하는 설교자들도 이런 여러 방법들 중 하나를 사용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내가 찾은 가장 좋은 방식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원고 전체 내용을 준비해두고서 설교하는 것이다. 설교학 교수들은 이렇게 말하면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 우리는 자신에게 유효한 방법을 다양한 접근을 통해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좋은 설교를 규정하는 특정한 원칙들이 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이것이 내게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많음을 기억해야 한다.

  

목사 안수를 받은 2002년 이후로, 나는 거의 500회 정도 설교했다(우리 교회에서는 저녁 예배도 드린다). 약 450회의 설교를 하고 나서야 이제 비로소 내 목소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내 목소리를 찾기 전의 설교들이 모두 나쁘거나 나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바울의 지혜로운 고백을 깨닫는 데 이처럼 오랜 시일이 걸렸다. 설교자가(특히 젊은 설교자가) 배우기 가장 힘든 것들 중 하나는 자기 나름의 설교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열정이나 유머나 학식을 모방하지 말라. 당신 자신의 개성을 벗어던지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이 본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신의 개성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모범적인 설교자에게서 배우라. 하지만 주일에 당신의 회중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이 본받기를 원하는 설교자의 흉내가 아니라 당신의 설교이다. 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령으로 부단히 다듬어지게 하고, 당신 자신의 개성을 통해 그분 말씀의 진리가 빛나게 하라. 자기 나름의 설교를 결코 잊지 말라.




출처: www.9marks.org

원제: Learning to Be Yourself as a Preacher: From One Still Trying to Do Just That

번역: 김태곤 (개혁된실천사)


작가 Kevin DeYoung

케빈 드영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마태에 위치한 Christ Covenant Church의 담임 목사이며, 미국 TGC의 이사로 섬기고 있다. University of Leicester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고, 현재 샬롯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Just Do Something을 비롯하여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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