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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죽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예수의 부활은 더더욱 ...
by Steve Bateman
2024-03-28
마크 트웨인이 믿음(faith)을 설명한 유명한 말이 있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believe) 것.” 그는 아마도 많은 그리스도인의 그런 모습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럼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은 어떨까? 그들은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육체의 부활을 믿는 걸까, 아니면 증거 때문에 믿는 걸까? 오늘 그 점을 살펴보자. 게다가 지금 이 시점은 부활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주장에 대한 몇 가지 증거를 고려하기에 아주 좋은 날이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3월의 이데스(Ides of March, 3월 가운뎃날—에 수십 명의 로마 원로원 의원들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했다. 그날로부터 거의 77년 후인 서기 33년 4월 5일 일요일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역사가가 과거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사용하는 네 가지 관행을 따르면 우리는 두 사건 모두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다.1. 두 가지 방법의 구분과학적 방법은 관찰을 기록하고, 가설을 세우고, 예측하고, 반복 가능한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한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적 사실은 과학적 방법을 활용한 반복 실험이 불가능하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49년 1월에 루비콘 강을 건넜다거나, 조지 워싱턴이 1776년 12월 25일에 델라웨어 강을 건넜다거나, 연합군이 1944년 6월 6일에 영국 해협을 건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합리적인 사람은 이러한 사건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역사적 방법으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역사가 루이스 고트샬크(Louis Gottschalk)는 역사적 방법을 “과거의 기록과 자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양심적인 역사가’는 개인적인 편견을 버리고, 문서를 연구하고, 유물을 조사하고, 사실을 수집하고, 증거를 따른다. 귀추법(Abductive reasoning)을 통해 역사가는 사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설명을 제시한다. 기독교의 핵심에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 주장이 있다. 과학에 호소하여 이 주장을 거부하는 것은 과학의 한계를 무시하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다”(고전 15:14)라고 인정했다.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의 핵심 주장은 역사적 방법을 통해 검증과 반증이 가능하다. 2. 두 간격의 조사먼저, 사건이 일어난 시점과 이를 보고하는 원본 원고 사이의 간격을 조사한다. 이 간격이 짧을수록 작성자는 실제 사건에 더 가깝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44년에 암살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비록 우리가 그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과거 사건을 믿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 사실을 믿는다. 목격자들은 눈으로 본 사실을 썼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많은 사람이 카이사르의 암살을 믿는 이유는 단순히 고등학교 때 1599년에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를 읽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출처는 토마스 노스(Thomas North)가 1579년에 영어로 번역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Parallel Lives)이다. 하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의 암살 후 약 160년이 지난 서기 2세기 초에 가서야 그 책을 썼기 때문에 목격자가 될 수는 없다. 그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출처는 누구였을까?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기(Gallic Wars)를 일부 자료의 출처로 사용했다. 카이사르야 당연히 당사자로서 암살의 목격자였지만, 그가 거기에 관해서 글을 쓰는 건 말이 안 된다. 아마도 키케로가 목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운명적인 날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지 않은 채 일 년 후에 죽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 사건의 살아 있는 목격자를 접할 수 없었지만, 로마 사회의 저명한 구성원으로서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는 없는 여러 문서와 구전 전통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카이사르의 암살과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본 문서 사이의 간격은 약 160년이다. 이에 비해 신약성경은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과 그 가까운 동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카이사르가 죽은 지 160년 후에 글을 쓴 반면,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빈 무덤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 핵심 주장을 확인하거나 부인할 수 있는 목격자들의 생애 동안에 글을 썼다.서기 50년에 이미 바울은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기록했다(갈 1:1). 예수께서 서기 33년에 죽었다면, 부활과 이를 보고하는 최초의 원본 사본 사이의 간격은 고작해야 20년 미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고대 역사의 표준이 되는 플루타르코스나 신약성경 작가가 쓴 원본이 없다. 그래서 두 번째 간격이 중요하다. 두 번째는 원본 원고와 현존하는 원고 사이의 간격이다. 역사적 방법은 텍스트 비평을 사용하여 (손으로 쓰인) 현재의 사본을 검토하여 원본을 재구성한다. 이 간격은 짧을수록 좋다.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본 원고와 우리 손에 들린 가장 초기 원고 사이의 간격은 무려 800년 이상이다. 거기에 비해서 요한복음의 원본 사본과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요한복음 사본 조각 사이의 간격은 고작해야 50년이다. 신약학자 대럴 복(Darrell Bock)의 결론이다. “복음서는 예수와 카이사르에 관해 출처 간격의 증거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다른 어떤 고대 기록과 비교해도 뛰어나다. 고전과 카이사르 연구에 효과가 있는 연구 방식을 예수의 기록에 적용한다면, 예수의 기록은 신뢰성이 탁월하다.” 3. 두 숫자의 비교법정에서 믿을 만한 증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처럼, 사본도 많을수록 좋다. 아무리 신실한 증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보지 못한 세부 사항을 생략할 수 있고 또 봤다고 착각하는 세부 사항을 추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증언을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주변적인 세부 사항에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의 요지는 분명해진다. 신약성경 사본의 수를 다른 고대 문서와 비교하면 신약성경이 가진 역사적 증거의 우월성이 명확해진다. 신약성경은 다양한 부분을 망라하는 23,986개의 사본을 가진 것에 비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경우에는 사본이 채 열 개가 되지 않는다. 이건 엄청난 숫자의 차이이다.신약성서 학자 댄 월리스(Dan Wallace)는 현존하는 신약성서 사본들을 모두 합쳐서 쌓으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4개보다 더 높을 것으로 추정한다. 대조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고대 그리스 작품의 경우에 모든 사본을 다 쌓아도 높이가 1미터를 조금 넘을 뿐이다. 4. 두 동기의 검토원본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재생산 기록이 많더라도 작성자가 진실을 보고했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날조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일반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동기는 두 가지이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또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플루타르코스 시대에 카이사르 암살에 관한 이야기는 널리 받아들여졌다. 플루타르코스는 자신의 평판이나 사회적 지위에 해를 끼칠지 모를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정치적으로 위험한 글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는 글을 통해서 사회 엘리트 사이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였을 뿐이다. 그는 역사적 주장을 글로 써서 당시에 오늘날의 베스트셀러 계약에 버금가는 이익을 얻었다. 그는 잃을 것이 거의 없었고 얻을 것이 많았다. 예수의 초기 제자들은 진실 아니면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굳이 그들이 왜 거짓말을 할까? 그들의 대담한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고 정치적으로 위험했다. 목격자의 증언(행 1:22)으로 인해 그들은 지위와 부, 자유를 잃었고 어떤 사람은 생명까지 잃었다.역사가는 그러한 고통을 문서의 신뢰성에 대한 논거로 간주한다. 고트샬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진술이 증인, 그의 사랑하는 사람 또는 그의 대의명분에 해를 끼치는 경우 그것은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과 가족,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 큰 해를 끼쳤다. 일관되고 지속적인 그들의 증언을 가장 설명하는 방법은 그들이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광신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옳다고 생각해서 죽을 사람은 있어도 거짓임을 알면서 죽을 사람은 없다. 그들은 부활이 이익을 준다는 이유로 증언한 게 아니다. 부활이 사실이었기에 증언했다. 3월의 이데스를 기념하는 역사학자가 몇 명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은행조차도 쉬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부활절에 모든 대륙에서 수십억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할 것이다. 카이사르는 세상에 율리우스력을 주었지만, 1세기에 목수의 아들이 태어나면서 우리에게는 연수를 계산하는 새로운 방식이 생겼다. 그건 랍비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다. 그의 죽음 때문도 아니다. 예수 외에도 로마가 십자가에서 죽인 적의 숫자는 적지 않다. 2068년 전 3월 15일,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세계는 이를 하나의 역사적 각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로부터 불과 77년 후,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그리고 세상은 그날을 기점으로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원제: I Believe in the Death of Julius Caesar and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그리스도인을 위한 심미안 기르기
by 서나영
2024-03-27
어린 시절부터 악기들을 다루고 듣다 보니 얻은 것은 예민한 귀다. ‘예민’의 다른 말은 섬세한 구분이 빨리 가능한 상태다. 초등학교 때는 3년간 베이스 리코더로 리코더부에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소리만 들어도 아는 텅잉 기술과 섬세한 핑거링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3년간 현악부에서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는데, 포지셔닝의 손가락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음색, 활털의 재질, 브릿지가 정확한 위치에 놓여 음이 울리는지, 심지어 연주자 팔 길이에 따른 다이나믹 차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다룬 피아노는 물론, 기타는 음색만 들어도 대충 어떤 회사의 제품인지 구별이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리움미술관의 상설전시관을 자주 들여다 보니 드라마에 등장하는 달항아리가 왜 모조품인지 지나가는 화면 찰나에도 구별이 가능해졌다. 많은 경험과 감상의 시간들은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을 선물해줬다.‘심미안’이란 ‘아름다움을 살피는 안목’을 말한다. ‘안목’이라는 단어는 눈의 보는 활동을 넘어 “포괄적으로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견식”을 의미하고, ‘살핀다’는 말은 우리의 의지가 개입되는 적극적 행위를 뜻한다. 즉 심미안을 풀어 이야기하면, 아름다움을 분별하고 애써 찾으려는 열정적인 눈과 귀와 그 외의 감각적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심미안라는 단어는 그리스도인에게 무척 어울리는 단어다.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사람들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마주했던 성경인물들은 그를 향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했고, 거룩의 내적 의미는 ‘다르다’라는 사실에 대한 감탄이다. 그분을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면 죄로 타락한 ‘우리와는 다르다’라는 구별이 가능해진다(이사야 6장). 구별된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다름과 차이에 민감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삶의 방식을 취하는 것을 목표로 사는 그들의 삶은 세상과는 다르다. 전인격적 영역을 포함하며, 가정과 일터와 사회와 나라 속에서, 그리고 모든 관계와 행위와 선택들이 세상과는 구별된다.개혁주의 기독교 전통은 가톨릭 신학자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의 ‘신학적 미학’의 역사를 애써 외면해 왔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영역이라 신학의 영역에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지금도 거두지 않았다. 개신교의 신학적 입장을 변호해 보자면,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개인의 주관적 감정에 속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좋은 예로 인류를 대표하는 화가인 반 고흐(Vincent can Gogh)나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그들의 작품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을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반 고흐는 사후 15년 뒤에 스데델리크 뮤지엄에서 열린 회고전(1905)을 시작으로, 바흐는 사후 100년 후 멘델스존의 마태수난곡(바흐, 1729 초연) 재연(1829)을 계기로, 지금까지 꺼지지 않는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된다. 즉, 예술작품의 아름다움은 감상자의 맥락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며 다양한 해석을 낳게 된다는 것에 그 복잡함이 있다. 맥락에는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 개인의 믿음과 취향과 세계관이 포함되어 있어 추적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왜 어떤 아름다움은 더 강렬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지, 왜 역사는 특정한 작품에 가치를 부여했는지 분석하는 것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아름다움에는 익숙하지만, 인간이 만든 예술을 대할 때의 태도와 취향은 극과 극을 오간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심미안이라는 단어가 가능한 말인지를 늘 의심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의 심미안 형성은 중차대한 일이다.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감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이해하길 거부하는 사람은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알기를 거부하는 것과도 같다. 심미안은 순례길에 있어 장식품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것들도 꼼꼼하게 볼 수 있고, 다름과 차이에 그 누구보다 민감해지는 것, 그 길은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성화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심미안, 즉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은 눈으로 분별하여 아름다움을 찾는 눈은, 섬세한 훈련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꼭 가져야 하는 눈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심미안이라는 바다는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도달해야 할지 큰 강줄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시작은, 순금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열망은 세례받은 심미안 시작의 모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잊지 못할 장면들이 있다. 그중 예전 한 미국의 다큐 프로그램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 가운데 트럭에 매달려 목숨을 담보로 레이싱을 즐기던 한 소년의 인터뷰가 기억난다. 마약 기운에 초점 없는 눈빛을 하고 “I’m Christian”(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고백을 한 장면이다. 그 외에도 많다. 평생에 새벽예배도 빠지지 않고 온갖 헌신과 봉사로 교회를 떠나지 않았던 한 여집사님이, 14년간 이어온 불륜 내연남과 호텔에서 심정지로 사망한 참담한 사고의 기억이다. 설교 강단에서 몇십 년을 가르쳤지만 동성애를 지지하고 애완견에게 세례를 주는 목사들이 존재하는 등의 놀라운 경험들이다. 후에 세계관에 관한 공부는 내가 놀랐던 이유를 꽤 명확하게 말해줬다. 현대사상들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 안에 ‘섞여 있는 세계관들’이 그 이유다. 성경의 진리 말고도 동양의 범신론적 일원론 사상, 유신론적 실존주의 사상, 자연주의 이신론 사상, 뉴에이지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 등 다른 믿음들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바알을 섬겼던 고대 이스라엘 왕들과 백성들처럼, 한 사람 안에 두 마음 세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약 4:8). 이러한 세계관의 공존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모든 일에 정함이 없게 만든다(약 1:8), 그리스도인 속에 숨어서 때로는 아주 오랫동안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그만큼 분별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선과 아름다움으로 가장한 죄악의 은밀한 공존은 남도 자신도 특별한 노력의 시선이 아니면 알아챌 수 없다.성경의 진리와 함께 갖가지 다른 세계관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먼저다. 연단의 과정을 거쳐 정금같이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기를 바란다. 죄가 세련된 멋으로 가장해 가짜 아름다움을 진짜라고 믿게 하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 제임스 사이어(James W. Sire)의 유작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개정 6판이 출간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성경의 진리를 지키고자 쓴 (대학 축제 비판에 관한) 작문 과제물에 대해 F 성적을 받았던 한 학생은, 후에 기독교 세계관의 순전함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사이어와 같이 순전한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주옥같은 학자들의 책들이 많이 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장해 매섭게 파고든 현대사상들을 공부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외의 다른 사상들을 쪼개어 다듬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두 번째는 훈련된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모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 기독교 예술학과가 개설되고 학생들을 뽑을 때, 첫 번째 조건은 예술에 대한 학위가 있는 자들이었다. 신학적 철학적 역사적 이해를 위해 읽어야 하는 문헌들의 양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한 ‘예술적 심미안’이 어느 정도 길러진 사람을 뽑겠다는 심사였다. 그러나 공부를 하며 마주한 사실은 어차피 감당하지 못할 양의 문헌들이 평생을 괴롭힐 것이라는 슬픈 진실이었다. 머리를 쥐어짜며 고군분투한 세월에서 내가 다다른 결론은 “많이 경험한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이었다. 평생을 미술관을 다니며 얻은 심미안을 엿보고 음악이 인생의 전부였던 사람의 글을 외우는 것은, 목적지를 향해 대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죄로 가득한 세상은 탐욕의 엔진으로 돌아간다. 채워지지 않은 갈망으로 한 우물을 팠던 사람들의 경험을 읽어라. 그리고 경험해야 한다면 그 안에서 선별해서 경험하기를 추천한다. 그리스도인은 게걸스럽게 모든 세상 문화 예술 콘텐츠를 즐기고 경험할 시간이 없다. 구별하는 시각을 갖겠다고 매력적인 모든 것을 깊숙이 자세히 경험하고자 하면 너무 많은 죄악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결국 탐욕의 주인이 될 확률이 높다. 예술 세계의 마지막은 소유다. 소유만이 만족을 주기 때문에 결국 세례받지 않은 심미안의 끝은 원작을 끊임없이 소유해야 하며, 라이브로 들어야 만족을 느끼고, 거창한 건축물을 지어내야만 만족의 마침표를 찍는다. 이런 소유의 과정은 심미안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면 덕이 되지 않는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많은 세계관을 아는 것은 무척 중요하지만, 기독교 세계관이 아닌 다른 사상들은 최대한 간단히 핵심만 보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지혜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 심미안을 훈련하는 일에는 반드시 이러한 절제가 필요하다. 잊으면 안 된다. 작은 십자가라도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마지막 큰 줄기는,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다. 아름다움은 늘 감춰져 있다. 그 숨은 의도를 발견하고 감춰진 내용을 들춰보는 것이 심미안의 묘미다. 그리고 어떤 아름다운 작품을 대하든 그 숨겨진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은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자만 획득할 수 있다. 음악, 미술, 댄스, 사진, 영화와 드라마, 시와 소설, 건축 등 수많은 영역의 예술이 존재하고 각자 다 다른 색과 맛의 미학적 노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본질을 파헤치기를 원하는 자, 성경을 열정적으로 알아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와 손을 통해 주신 최고의 예술작품이다. 성경은 쉽지만 어려운 말씀이다. 누구나 명확하게 복음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지만, 알수록 깊어지며 수많은 연구와 묵상의 과정이 필요한 책이다. 살아 있는 거룩한 언어가 문자로 남겨져 있는 것이 성경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본질을 파헤치는 자만이 그 안의 생명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 빛과 색과 소리와 움직임은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요소로 모두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데, 실로 생명의 아름다움은 실존하는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은 일차로 하나님으로 말씀으로부터 온다. 많은 버전의 성경을 읽어보고, 충분히 묵상하며, 쉬운 주석부터 통독해 보기를 권한다. 그 일이 가장 즐거운 일이 되기를 기도하라. 심미안을 가장 온전하게 형성해 가는 가장 아름다운 경험이 될 것이다. Soli Deo gloria!
설교자여, 쉼 없이 회중을 사로잡는 설교를 갈망하라
by Trevin Wax
2024-03-26
몇 주 전, 나는 The Keller Center 설교 섹션에 목회자가 설교를 준비할 때 “모서리를 찾는 것”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모서리를 찾는 것은 다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성경 본문 속 전제, 태도 및 적용이 우리가 세상에서 “상식”으로 간주되는 요소와 어떻게 대조되는가? 이 본문이 세상적 또는 삶의 사고방식과 충돌하거나 대립하는 지점이 어디인가? 모순이 가장 날카롭게 부각되는 곳은 어디인가? 모서리 탐구는 설교자가 지나치게 길고 종종 지루한 설교에 안주하지 않고 교인들의 관심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설교에 매력이 있어야 한다거나 모서리를 찾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을 타협의 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인의 유익이라는 미리 정해진 조건에 따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여라도 이런 접근 방식이 사람들이 꼭 들어야 하는 것보다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지나치게 신경 쓴다는 의미일까? 사람들이 느끼는 “필요”에 기초하여 설교를 작성하는 건 아닐까? “구도자에게 민감”해지도록 성경의 거친 부분을 깎아내거나, 설교를 “매력 있게” 만들려고 노력함으로 설교자로서의 신념을 희생하는 건 아닐까? 이런 우려를 함부로 일축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신약성경에도 가려운 귀를 만족시키려는 유혹을 받는 목회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제쳐두고,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정치 또는 사회 문제를 가지고 사람들을 결집하려 하거나, 복음과는 동떨어진 조언이나 제공하면서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설교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교인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설교의 목적이 인기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는 것이라면, 그런 설교자가 성경 본문을 얕고 피상적으로만 파악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견고하고 성경에 충실한 설교가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 리는 없다.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고, 내용의 심각성이 어조에 잘 반영되도록 열정을 담아 전달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 주석가의 영원한 관심사였으며 지금도 그렇다.유창함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On Christian Doctrine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썼다. 애정의 표현이라고 해서 반드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정해진 건 아니다. … 또는 반드시 다양한 담론이 듣는 이들이 짜증 내지 않고 주의를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 동경하거나 회피하게 하는 마음을 만드는 것은 발명되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존 카바디니는 그의 글 “The Sweetness of the Word”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접근 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주요 목표는 단지 배운 것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건전한 가르침”을 제시받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기쁨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단순히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르침이 “지혜”롭거나 “건전”한 경우라면, 거기에 유창함이 더해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설득이 목표가 아니라면 연설은 아예 할 필요가 없다. 몸을 더 강하게 만들지 않는 운동, 접시가 절반만 찬 식사, 쓴맛 때문에 환자가 삼킬 수 없는 약 등등, 이 모든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의학적 비유를 사용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달콤하게 말하고, 현명하게 말하는 사람은 건전하게 말한다. … 그러나 치유의 힘이 있는 달콤함, 혹은 달콤한 치유의 힘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단맛을 더욱 간절하게 갈구할수록, 치유의 힘은 더 쉽게 발휘된다. 유창함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찬사는 교만에서 비롯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설교를 듣고 나가면서 교인들이 “저 설교자 참 대단하지 않니?”라고 말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 설교자의 메시지가 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의 아름다움을 더 잘 알고 진리와 더욱 사랑에 빠지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쉼 없이 흥미로울 것나는 설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몇 년 전, 나는 우리 교회에서 초대 목사로 섬겼다. 2021년부터는 두 번이나 임시 목회직을 맡아 주간 메시지를 전했고, 또 전국 각지의 여러 교회나 콘퍼런스, 대학에서 설교할 기회가 있었다. 어디에서 설교하든 내 목표의 하나는 설교가 시종일관 흥미롭게 하는 것이다. 설교가 너무 흥미로워서 사람들이 주의를 집중하지 않는 게 힘들게 하는 것, 그러면서 그들이 계속해서 성경 본문을 보도록 하는 것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설교가 쉼 없이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딴짓하는 게 집중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잘한다는 건 아니다. 이 목표가 쉽지 않기에 나는 되도록 설교를 길게 하지 않는다. 이삼십 분 정도면 목표를 달성할 거 같지만(물론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삼십오 분을 넘기면 아주 힘들어진다. 설교 길이에 관해서 물었을 때, 한 설교학 교수가 말했다. “정해진 길이는 없습니다. 교인들의 집중력을 잃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설교하세요. 그런데 기억하세요. 설교자들 대부분이 자신이 실제보다 교인의 집중력을 십오분 정도 더 오래 잡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설교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의 하나는 신뢰할 수 있는 몇몇 출처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이다. 피드백 없이 발전은 힘들다. 교인들이 당신의 설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당신이 과연 교인들의 주의력을 붙잡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나님과의 만남설교의 목적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기에 설교 내용과 전달은 중요하다. 존 스토트는 모든 설교자의 열망에 대해 이렇게 썼다.설교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경험은 설교 중간에 회중에게 임한 이상한 침묵을 목격하는 것이다. 자던 사람이 깨어나고, 기침하던 사람이 기침을 멈추며, 산만하던 사람이 갑자기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 누구의 눈도 또 마음도 흔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듣고 있지만, 그들이 귀를 기울이는 대상은 더 이상 앞에 선 설교자가 아니다. 어느새 설교자는 잊히고, 교인들은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다. 팀 켈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설교가 기록할 가치가 있는 통찰로 가득 차야 한다는 건 맞다. 그러나 그 설교에 펜과 메모지를 다 제쳐두고 우리의 구원을 이룬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경외에 차서 멍하게 만드는 지점이 없다면, 결국에는 실패한 설교이다. 레이 오틀런드(Ray Ortlund)는 이렇게 상기시킨다. 설교를 듣는 것은 강의 듣는 것과 다르다. 그것은 살아계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당신은 그의 영광을 보고 그것을 느끼고 변화될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그에게 집중하고 설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다시금 주목하자. 사람들을 휘어잡지 못하는 설교는 자격이 없다. 우리가 정말로 교인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길 원한다면, 설교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야 한다. 영광을 보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 영광에 걸맞은 설교를 하자.원제: Preachers, Aspire to Be Relentlessly Interesting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작은 자로 살아가기
시편 131편 묵상
by 고명환
2024-03-25
1 미국의 한 주립대학에서 가르치던 젊은 한국인 체육 교수가 점심을 먹던 자리에서 각진 자세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저는 한국 체육계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위인전의 끝을 장식할 만한 문어적 수사를 써서 밝힌 포부였다. 사람이 운집한 공식 석상에서 들을 법한 선언과도 같은 말을 몇이 둘러앉은 조촐한 식사 자리에서 듣게 되니 머릿속이 다소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말이 의미하듯 그 젊은 교수는 성공하여 큰 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두 나라를 오가며 인맥을 만들기에 부지런히 움직였고 자신의 이름을 여러 방면으로 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젊은 교수처럼 큰 자가 되어 보겠다는 사람을 탓할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칭찬할 마음은 더욱 없다. 다만, 왜 큰 자가 되고 싶어 하는지는 알고 싶다. 그 동기와 목적을 알고 싶은 것이다.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 아니면 이름을 남기고 싶어서. 여기에 더해, 누구를 위해 큰 자가 되려고 하는지도 묻고 싶다. 자신인가, 아니면 그 누구인가.사람을 줄곧 영향권 아래 두어 왔던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이 시대에도 큰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한다. 곧,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많은 것을 가지거나, 유명해지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후회 없는 만족한 인생이라고 속삭인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대우해 준다고 강조한다. 큰 자로 살라는 세상의 가르침은 일찍이 교회의 울타리도 수월하게 뚫고 진입했다. 사람의 욕망을 숙주 삼아 성경적 가치인 양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각 분야의 으뜸이 되어야 한다고. 교회 안에도 큰 자가 있으니 큰 자로 쓰임 받기를 사모하라고. 장로, 권사가 되어 권위를 가지라고. 교회를 부흥시켜 큰 목회를 하라고, 아니면 자신을 확대해서 큰 교회의 담임이 되라고. 그런데, 교회의 머리시요 심판 날의 재판장이신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의 문화와 제도가 인정하는 큰 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시다. 그분의 나라에서 인정받는 큰 자와 다를 뿐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과 상반된다. 주님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큰 자가 되려면 작은 자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앞서간 진실한 성도들 역시 큰 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주님께서 받으실 만한 그릇이 되고자 힘썼을 뿐이다. 오히려, 큰 자가 되어 세상의 영화와 사람의 영광을 얻는 길을 경계했다. 2 다윗은 큰일을 이룬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런 겸손한 마음을 시편 131편은 잘 보여준다.시편 131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1주님, 이제 내가교만한 마음을 버렸습니다.오만한 길에서 돌아섰습니다.너무 큰 것을 가지려고나서지 않으며,분에 넘치는놀라운 일을이루려고도 하지 않습니다.2오히려, 내 마음은고요하고 평온합니다.젖뗀 아이가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내 영혼도 젖뗀 아이와 같습니다.3이스라엘아, 이제부터 영원히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새번역)1절에서 다윗은 교만한 마음, 오만한 길, 그리고 큰 것을 이루려는 욕망을 버렸다고 고백한다. 모두 마음의 평안을 빼앗는 신앙의 독소들이다. 경험에 의하면, 사람의 영혼을 쉬지 못하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고,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하며, 눈을 높은 곳에 두고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살 때 영혼은 피곤하다. 즉 교만한 마음과 오만한 기준으로 살면, 영혼은 안식하지 못하고 평안은 모두 빼앗기게 된다. 더불어, 커다란 것을 계획하고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영혼은 쉴 새가 없고 피폐해져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위해 가지는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이 오히려 자신을 해치고 망가뜨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다윗은 아마도 1절에서 언급한 마음과 태도로 인해 영혼의 전쟁터를 분명히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져다준 것은 명성이나 부였지 영혼의 안식과 평화는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더더욱, 안정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것이다. 오로지, 평화와 안정은 주님 안에서만 영혼이 자리잡을 때 주어지는 것이며, 높아진 마음이나 분에 넘치는 야망과 함께 그분이 계시는 평강의 영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에게서 떠나 주님의 영역으로 간 다윗에게 찾아온 것은 영혼의 평화와 안정이었다. 젖 뗀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듯이 고요하고 평안했다(2절). 젖뗀 아이에게 여전히 어머니의 품은 필요하다. 어머니의 품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한 곳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한 안식처이다. 다윗에게 주님의 품이야말로 진정으로 안전한 쉼의 장소였다. 그 어떤 것이 줄 수 없는 영혼의 안식과 완전한 안전을 보장해 주는 안식처인 것이다. 이 시는 여러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 중 하나로 불리며 사랑받았을 것이다. 주님이 계신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무리에게 참으로 적절한 찬양이 아닐 수 없다. 영광의 하나님을 뵈러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정리하지 않은 부정한 마음과 세상의 욕망을 그대로 안고 다가갈 수는 없다. 교만한 마음과 오만한 길로 집약되는 주님께서 대적하는 마음은 물론, 욕심과 후회 원망 분노 등의 격정을 모두 비워내야 한다. 다윗의 본 시는 순례길에 오른 성도들이 읊조리고 노래하며 올라갈 때 충분히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고 주님을 향한 뜨거운 갈망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짐작한다. 3열왕기하 4장에 한 부유한 여인이 등장한다. 수넴에 살고 있던 그 여인은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성심껏 섬기기 시작했다. 엘리사가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음식을 대접했고 거처를 마련해서 머물러 편히 쉴 수 있도록 특별한 편의를 제공했다. 어느 날, 엘리사는수넴 여인의 남다른 정성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그녀가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왕이나 군사령관 같은 권력자도 그의 말이라면 들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했다. 그때, 그 여인은 의미심장한 대답을 한다.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열왕기하 4:13, 개정개역). (새번역은 “저는 저의 백성과 한데 어울려 잘 지내고 있습니다”로 풀어서 번역했다.) 여인의 대답은 하나님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아쉬울 것 없이 만족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구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수넴 여인은 부유한 환경에서 남편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에 허전한 구석 없이 완벽하게 채워졌기 때문에 엘리사의 호의를 에둘러 사양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쩌면 가장 큰 것을 갖지 못한 불행한 여인이었을 수도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해 대를 이어줄 수 없는 약점을 가진 여자였다. 당시의 관점에서 수넴 여인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저주받은(복 받지 못한) 여자라는 사회적 편견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그늘 아래 보통의 여자 같으면 될 수 있는 대로 사람의 눈을 피해 고립된 삶으로 자신을 몰아가기 쉽다. 하지만, 대답에서 보여주듯 그녀는 동족과 어울리며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오히려, 엘리사가 여인에게 아들이 없는 것을 알아내고는 딱하게 여겨 아들을 낳게 해 준다. (수넴 여인은 열왕기하 8장에 다시 등장하며, 성경은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한 여인과 관련한 이야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수넴 여인은 마음을 높여 백성을 분리하고 멀리하며 충분히 특권 의식 속에 살 만한 위치에 있었다. 왕의 마음까지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엘리사라는 큰 인물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력한 여인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마음은 백성 중에 있었다. 백성의 한 사람으로 평범하게 사는 삶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또 그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수넴 여인의 낮고 겸손한 눈 높이가 더 가질 수 있고 더 높아질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 줄 엘리사의 호의도 정중하게 거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로, 평범한 여인 같으나 비범한 인물이었고, 작은 자인 것 같으나 큰 자였다. 복음서는 드문 경우이지만 제자들 사이에 빚어진 다툼을 기록했다. 다툼의 원인은 자기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자냐 하는 논쟁이었다. 그들이 다툰 이슈는 서열이 필요하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누가 더 크냐’였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들 간에 그래도 서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마 그들은 부름을 받은 순서나, 배운 정도, 혹은 가문, 아니면 다른 어떤 기준을 대면서 각자의 상위를 주장했을 것 같다.“제자들 사이에서는, 자기들 가운데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툼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그들 마음 속의 생각을 아시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곁에 세우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누가복음 9:46-48).먼저, 제자들이 왜 서로 간의 서열 문제로 다투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찾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제자들이 살았던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나 계급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거대한 제국의 일원이었던 유대 사람들 역시 그리스-로마의 문화와 사회 질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함께 모이거나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서로가 가지는 사회적인 위치를 묻고 거기에 맞는 예우를 해 주어야 했다. 당연히,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우선 사회적인 위치를 물어보아야 했다. 이에 따라 상대방이 나보다 나은 위치나 계급에 있는 사람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낮은 자세를 보여야 했다. 바로 제자들의 다툼은 이런 문화 사회적인 배경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왜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초기에는 관심이 없었던 이슈를 부각시키고 논쟁을 벌였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간단한 대답은 예수님께서 그들 사이의 서열을 정해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같으면 열두 명이 효과적으로 조직되고 움직이기 위해 적어도 팀장 정도는 세웠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웬일인지 그들 사이에 서열을 정해 주시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시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제자들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수님의 인기가 치솟고 그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무언가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자 제자들의 계산은 저마다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서열 문제는 그들 안에 크게 떠올랐다. 서열에 의해 미래에 차지할 지분이 각각 달라질 거라는 공통의 계산이 충돌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장차 세상의 권세를 정복하고, 기대하는 강력한 왕국이 세워지면 그들이 얻게 될 지위와 영예에는 분명 차등이 있을 것이다. 이때 더 큰 자리와 권세를 꿰차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누가 더 높은 위치에 앉게 되느냐’는 단순한 논쟁 같아 보이나 그 안에는 영예와 권세와 대접을 좋아하는 이기적인 마음들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들의 속된 마음을 간파하신 예수님은 기존의 관행과 질서를 뒤집는 방법으로 대처하신다.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 곁에 세우셨다. 예수님이 직접 어린아이를 데려와 그분 가까이에 세운 일은 그 시대의 관행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보통은 어린아이를 직접 지적하여 이리 오라 명령하면 될 일이었다. 어린아이는 신분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아래층에 속하는 부류 중 하나였고, 종처럼 대우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는 사회였다. 가정에서조차 소유물로 취급했고 심지어는 팔기까지 했으니 예수님께서 손수 데려다 곁에 세우신 행동은 매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의 또 다른 저자인 마가는 그 어린아이를 껴안아 주셨다고 기록한다(마가복음 9:36). (어린아이를 어떻게 대우하셨는지 직접 본 제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어린아이들을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꾸짖다가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되는 잘못을 범한다(마태복음 19:13-15).) 어린아이를 곁에 세우신 뒤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이 말씀은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물론, 어린이 주일 설교 본문의 주제로 적합하지 않다.) 어린아이처럼 세상에서 작은 자여서 무시당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주님을 영접하듯이 받아들이고 친절하게 대접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는 엄격한 신분 사회에 던지는 혁명적인 말씀이었다. 우월한 위치의 사람이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을 영접하는 일은 없었다. 최소 나와 지위가 같거나 높을 경우에만 영접할 대상이었다. 어린아이들이나 천한 신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손님이 오면 때론 손님의 발을 씻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었다. 헌데, 주님은 작은 자가 되어 그들을 환영하여 영접하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그 일은 나를 보내신 분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논쟁을 종식하는 역설로 말씀을 마무리하신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의 뜻이 내포된 것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겠다. 같은 문제를 다룬 마가의 복음서를 따라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작은 자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마태가 기록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자’라는 말씀에 따라 이중적 의미를 갖는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주님 나라의 가치와 원리를 가르쳐 주는 동시에 그것을 땅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즉, 하늘 나라의 큰 자들은 세상에서 작은 자로 사는 사람들이고(마태복음 18:4), 아울러 작은 자가 되어 자신을 낮추고 모든 사람을 영접하고 섬기는 사람들이다(마가복음 9:35). 그러므로, 유한한 세상의 가치와 제도 아래에서 권세와 영화를 얻겠다고 큰 자가 되려 하기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인정받을 남을 섬기는 작은 자로 살아야 함을 교훈하신 것이다. 사실,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그 원리대로 사셨다. 그리고, 스스로 섬기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마가복음 10:45).말씀처럼 예수님은 섬기러 오셨고 자신을 낮추어 작은 자로 섬기며 사셨다. 어린아이, 종, 여인들과 동등한 사회적 위치에서 그들을 영접하고 친근하게 대하셨다. 스승이 제자보다 낮을 수 없는데도 제자들보다 자신을 낮추어 그들의 발을 씻어 주기도 하셨다. 고난의 시간이 임박해 올 때, 제자들 사이에는 누가 큰 자냐는 논쟁이 재점화되었다. 이때도 주님은 그들을 꾸짖는 대신 타이르듯이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누가복음 22:26).이어서 말씀하신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복음 22:27).주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섬기는 사람”으로 제자들 가운데 계셨던 것이다. 다만,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분은 나사렛의 평범한 목수로 사시다 메시아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 이후, 일관되게 작은 자들을 섬기는 작은 사람으로 사셨다. 4제자들의 예가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이 말씀한 작은 자로 겸손하게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주변에 적극적으로 작은 자를 영접하고 대접하며 섬기는 삶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많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우리가 지닌 육신(flesh)의 속성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큰 자가 되어 영접받고 대우받기를 원한다. 사람이 가진 본능과 의지로 체질화하고 실천할 수 있는 쉬운 덕목 정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처럼 실패를 거듭하다 아예 포기하는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 미국 남부의 한 한인교회를 방문했다. 선교관이란 이름의 조그만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어 하룻밤 신세를 질 요량으로 찾게 되었다. 저녁 시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젊은 부목사가 반갑게 맞아 주며 소소한 안내를 해 주었다. 잠시 거실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중 그 부목사는 내게 어느 나라에서 일하는 선교사인지 물어 왔다. 선교관에 묵게 되니 당연히 선교사인줄 알았나 보다. 이에 나는 선교사가 아니라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부목사는 기대가 무너졌는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에서 고압적이고 가르치려는 태도로 변해 갔다. 이후 성의 없는 몇 마디 하고는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부목사에겐 선교사는 최선을 다해 섬겨야 할 큰 사람이고 나 같이 공부하는 신학생은 별 볼 일 없는 작은 자라 그리 환대할 존재가 아니라고 여겼던 모양이다.‘나이로 따지면 내가 그 부목사보다 십년은 족히 넘을 텐데…’ 푸대접을 넘어 훈계를 받았으니 한동안 그때를 기억하면 울화가 치밀었고, 지금도 그 앙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작은 자로 살아가는 데 실패하고 있나 보다. 작은 자로서 받아야 할 어쩌면 당연한 대우를 받고도 그 정도보다는 큰 자라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어 그런가 보다. 그 젊은 목사 역시 작은 자가 되어 섬기는 일에 실패했다. 자신은 작은 자보다는 큰 자라고 여겼을 터이고 이로 인해 작은 자가 되어 영접하고 섬기는 일에 실패했던 것이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잊는 길 밖에 작은 자로 살 방법은 없다. 우리의 타고난 자아를 가지고는 작은 자가 될 수도 작은 자로 살 수도 없다. 흉내를 낼 수 있지만 그도 오래 가지 못한다. 수양과 훈련이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실패를 피하지 못한다. 삼 년 동안 스승을 따라 다니며 그분을 배웠던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에서도 누가 큰 자냐는 갈등으로 마음이 분열되어 있었다(마태복음 20:20-28). 여전히, 권세를 즐기고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의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육신의 자아를 처리하지 못한 채 헛된 기대를 안고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었다. 작은 자로 살기 위해서는 시편의 다윗이 육신의 소욕을 모두 뒤로하고 주님께 오듯이,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께 와서 그분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자신을 비우고 종의 모습을 취하여 사람으로 오셔서 평생을 그렇게 사셨던 분, 섬기던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으나 그들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기 전까지는 작은 자로 살아가기란 요원할 뿐이다. 5우리 중에 작은 자로 살겠다고 세상의 권세와 지위를 일부러 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큰 자, 작은 자는 세상에서 일컫는 지위의 고하 혹은 성취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다.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높은 지위에 있어도 작은 자로 살 수 있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큰 자로 살 수 있다. 나는 세상에서 힘없고 그리스도인 공동체에서도 능력 없는 자라고 스스로 비하하며 주님을 섬기는 일에 물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언자로 부름받지는 않았지만 예언자를 알아주고 섬기면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는다고, 의인을 알아보고 의인으로 맞아들이면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뿐인가? 주님의 제자라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면 이를 잊지 않으시고 상을 주시겠다고 하셨다(마태복음 10:42). 작은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닌 것이다. 주님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기적을 일으켰던 대 예언자 엘리야나 그를 정성으로 섬겼던 사르밧 여인이 한 일을 동일하게 큰일로 여겨 주시고, 기적의 예언자 엘리사가 행한 일이나 그를 알아주고 섬겼던 수넴 여인이 한 일을 다 귀하게 보시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말씀을 따라 작은 자로 살아가는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주님 나라의 사람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우리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겸손하게 일하다 거기에서 내려온 뒤에는 작업복으로 손수 망치를 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집 짓는 일에 참여하고, 주일이면 주일학교 교사로 평범한 사람들을 섬겼던 하나님 나라의 큰 자를 익히 들어 안다. 어느 다른 한편에는, 자신을 잊고 사람이 닿기 힘든 오지나 음지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작은 자로 일하는 드러나지 않은 무명의 주님 나라 일꾼들은 얼마나 많은가. 세상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도덕적 표준으로 삼으라 하고, 보편적인 종교는 넉넉하면 적선을 실천하라는 수준의 가르침에 그친다. 헌데,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고 작은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높이고 섬기며 살라고 가르치셨다.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도덕률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세상의 상식과 관행을 뒤로하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라고 하셨다. 이렇게 사는 것은 단지 높은 수준의 도덕을 실천하는 것을 지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교훈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곳곳에 많아질 때 주님의 나라는 점점 확장되고 그곳에 천국의 삶이 구현될 수 있다고 본다.우리는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직접 행하신 분을 믿고 따른다. “나를 본 받으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사도의 본에 감동하며 마음을 다진다. 주님과 사도들은 가르침대로 자신을 낮추고 작은 자가 되어 희생하고 섬기며 살았다. 진실하게 주님을 믿고 따랐던 앞서간 분들 역시 그 길을 그대로 밟았다. 이제는 우리에게 바통이 넘겨져 왔다. 주님과 앞서간 신앙의 선배들이 본으로 가르쳐 왔던 천국 시민의 도덕률을 우리가 실천해야 할 때이다. 낮은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을 높이고 섬기는 작은 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세상과 사람이 알아주고 말고에 상관없이 자신을 잊고 묵묵히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러면, 그날에, 자신은 몰랐지만 작은 섬김 하나라도 기억해 주시는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분이 반드시 고마워하시고 칭찬하실 것이다(마태복음 25:31-46).
성 주간을 위한 묵상과 기도
by Scotty Smith
2024-03-25
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 요한복음 12:27-32 화: 예수께서 우시었다 - 누가복음 19:41-42수: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 마태복음 22:41-42목: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 요한복음 13:1, 34-35금: 다 이루었다 - 누가복음 23:34, 마태복음 27:46, 요한복음 19:30토: 사흘째 되는 날까지는 - 마태복음 27:62-64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 베드로전서 1:3-6
소셜네트워크의 몰락과 현대인의 세 가지 욕구
by 이춘성
2024-03-22
지난 2월 4일로 대표적인 소셜네트워크(SNS)인 페이스북이 설립 2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20년 동안, 페이스북은 폭발적인 성장으로 전 세계 30억 이상의 사용자와 시가총액 1.2조 달러의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페이스북 등장 이후에 이와 유사한 형태의 소셜네트워크들이 개발되었으며, 페이스북을 포함한 소셜네트워크 앱은 현재 스마트폰 평균 사용 시간의 1/4을 차지하고 있다.초기 소셜네트워크는 개인과 개인의 사적인 의사소통과 개인과 불특정 다수 사이의 대중적 의사소통을 통합하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매체로 주목받았다. 소셜네트워크 이전의 커뮤니케이션 매체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첫째는 편지, 유선 전화와 휴대 전화 등과 같이 개인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사적 매체들이 있었으며, 둘째는 신문, 라디오, 책, 텔레비전과 같은 개인 혹은 단체와 다수 간의 일방적인 전달을 위한 대중 매체 혹은 레거시 미디어로 이분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두 미디어는 용도와 윤리적 책임의 정도, 사회적 의미에 있어 확연히 구분되었다. 예를 들어 사적 매체는 소문과 사적 대화가 허용되는 공간이었다면, 대중 매체는 사실과 진실에 기초한 높은 윤리적 기준과 공적 역할이 요구되었다.소셜네트워크의 명과 암하지만 소셜네트워크의 등장은 이러한 구분을 통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소통 방식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전통적인 소통 방식을 무너뜨리는 미디어 혁명을 일으켰다. 예컨대 2010년에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은, 대중 매체가 그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을 때, 개인이 소셜네트워크 상에서 일인 미디어가 되어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과 동시에 사적 통신 수단 역할도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랍의 봄’은 정치적 혁명과 동시에 네트워크 혁명이었다. 소셜네트워크 혁명은 긍정적인 면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도 있었다. 전통적인 소통 방식의 해체로 일어난 부정적인 결과도 있었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첫 번째 결과는 대중매체와 레거시 미디어의 공적인 역할이 해체되고, 언론이 개인과 대중의 기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진실에 대한 전달과 비판 역할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결과는 오히려 사적인 의사 표현에 공적인 책임을 강하게 요구하게 되어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약화되고 자기 검열이 강화되었다. 공적 미디어는 대중에 영합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개인은 개인의 의견을 억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의 출현과 발전은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분이 불분명하게 되는 혁명적인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재발견하게 하였고 사적인 영역에서의 공적 책임감을 확대시키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편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의 이면에서는 사실과 진실의 기준을 낮추고 기대하지 않는 상대주의적인 진리관이 강화되는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것은 공적 영역의 축소를 의미했으며, 결국 서로 다른 의견를 제시하고 사실과 논리를 통해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만을 강화하고 대결하는 정체성의 대결 정치를 강화하였다. 소셜네트워크 탈출 현상 위와 같은 이유로 현재 젊은 층은 소셜네트워크를 탈출하여 자신의 의견을 더욱 강화하고 지지해 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소규모 단위의 대화방과 모임을 중심으로 모일 수 있는 인터넷 가상공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거의 반수가 소셜미디어를 떠나고 있으며(40% > 28%), 텔레그램과 같은 메신저 내의 대화방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작년 갤럽 조사(2023년 11월 16일)에 따르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30퍼센트 중반이지만 모바일 메신저 이용자는 93퍼센트로 압도적으로 높다. 이제는 전화나 편지와 같이 사적인 매체에 가까운 메신저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메신저가 현대인의 의사소통에서 핵심 수단이 된 이유는, 단순히 문자 기능을 넘어서, 개인이나 작은 공동체의 생각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나눌 수 있는 ‘대화방’ 때문이다. 메신저 대화방의 최대 장점은 대화의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 있어서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메신저 대화방은 사적 매체가 지닌 거짓 소문의 진앙지가 될 수 있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동시에 자유와 안전을 보장한다는 긍정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적절한 범위의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와 달리 현재 소셜네트워크는 각각의 극단적인 생각을 강화하거나 상품을 선전하는 일종의 광고판 역할로 변질되어 있다. 일부 영향력 있는 사람과 단체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개인은 소비자일 뿐이다. 소셜네트워크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거대한 온라인 광고판이 되어 버렸다.자유와 안전, 인정현재 일어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의 약화와 메신저 앱이 강화되고 있는 현상은 인간의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욕구들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와 안전에 대한 욕구이다. 사실 이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욕구이다. 안전하게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는 현대인에게 늑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목장과 같은 위험한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 누구든 끼어들어 DM(Direct Message)을 보내고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답글을 달고, 원하지 않는 광고를 봐야 하는 위험하고 불편한 공간이 소셜네트워크인 것이다. 또한 개인의 의견에 과도한 공적 의무를 부과하고 혐오적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인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열린 공간이 아니라, 안전한 문과 벽이 있는 집과 같은 곳을 원하게 되었다. 메신저 앱은 이러한 현대인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메신저 앱은 자신이 남긴 글들이 60초 안에 사라지고, 지정한 사람들만 볼 수 있으며, 추적이 불가능한 안전한 장소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더해 메신저 앱은 인간의 인정 욕구의 복고풍을 소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셜네트워크의 성공은 개인이 불특정 다수에게서 받은 ‘좋아요’의 숫자를 통해 인정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는 절대다수가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추측을 만들어내었다.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억측인 것이다. 인정 욕구의 무제한은 미움과 증오의 무제한이기도 하다는 것이 소셜네트워크의 ‘좋아요’의 함정이다. 언제나 ‘좋아요’를 누르는 분자의 수보다 누르지 않는 분모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분모의 수가 제한적이고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소규모 공동체와 메신저 앱의 대화방은 소셜네트워크에 비해서는 ‘좋아요’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 할지라도 가성비에 있어서 더 큰 만족과 인정 욕구를 채울 수 있다. 현대 젊은이들은 메신저 앱의 대화방을 통해 소수의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자신들의 인정 욕구를 충족했던 과거 마을 공동체의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진리 없는 자유, 안전, 인정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진실의 측면에서 보면 결코 환영할 만한 현상이 아니다. The Economist는 네트워크가 엔터테인먼트로 전환된 이후에 인터넷 이용자들이 보는 내용의 3퍼센트만이 뉴스이며, 젊은이들의 거의 절반이 소셜미디어와 메신저를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고 통계를 인용하면서 보도하였다. 그러므로 비교적 자유롭고 안전한 메신저 앱으로 이동한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진실과 사실의 측면에서 본다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현대인은 자유와 안전, 인정이라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디지털 유목민처럼 이런저런 미디어를 찾아 배회하고 있으며, 그 결과 진리의 영역은 더욱 축소되고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현대인에게 진리 안에서 자유와 안전, 인정의 욕구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이 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와 메신저 앱과 같은 현대인의 의사소통 수단의 변화와 가상 세계를 통한 소통의 강화는 진리를 희생하면서라도 자유와 안전과 인정을 얻으려는 현대인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리 없는 자유와 안전과 인정은 과연 진짜 자유와 안전과 인정일까? 끝으로 페이스북이 처음 나왔을 때 팀 체스터는 페이스북과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얼굴을 나타내며, 보여준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준다. 성경은 진짜 페이스북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궁극적인 인스턴트 메시지이다. 교회는 진정한 소셜 네트워크이다. 복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의 빛을 보는 장소이다.복음은 이렇게 주장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기초 없이 바다 위를 떠다니는 빙산의 어름 잔해처럼 곧 녹아 없어질 자유와 안전, 인정(‘좋아요’)의 세계 속에서 교회와 성도는 영원히 녹지 않고 떠다니지 않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바로 이 진리의 소식인 복음이 현대인의 진정한 소셜네트워크와 메신저가 될 날이 오길 기도한다.
로마서 8:28이 없다면
by Tim Challies
2024-03-21
나는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제시하기에 로마서 8:28이 적절하지 않다는, 그 구절이 진리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기 전까지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러나 나와 관련해서 고백할 수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나는 로마서 8:28을 먹고 살았다. 마치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탐하듯, 목마른 사람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나는 이 구절을 의지해서 살았다는 게 나의 분명한 고백이다. 나에게는 로마서 8:28이 필요했고 그 말씀은 내 영혼을 위로하고 슬픔을 덜어주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친숙한 구절 가운데 하나이고 많은 사람이 암기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는 당신이 혹시라도 로마서 8:28이 없는 세상이 어떨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로마서 8:28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경험을 놓고 “선을 이룬다”고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의 경험 중 일부가 해를 끼치며, 사탄과 하나님이 우주적으로 내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또 우리의 경험 중 어떤 건 아예 아무 소용이 없으며 삶에는 그 어떤 목적도, 의미도, 또 구원도 없는 마구 일어나는 자의적인 요소로만 가득하다고 믿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 슬픔과 고통을 바라보며 “여기에는 그 어떤 선함도 없어. 여기서는 아예 선함이 나올 수도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우리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이 구절이 없다면, 우리의 경험 중 어떤 것은 결국 선을 이룰 것이지만, 또 어떤 것은 결국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건 선을 이루지만, 어떤 건 공허하고 무의미한, 하나님 섭리의 블랙홀이라고 믿을 수도 있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우리는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없을 것이다.“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곳에는 그 일을 이루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일하려면 일꾼이 필요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우리도 우주와 같은 비인격적인 힘이 궁극적으로 모든 상황의 배후라고 가정할 수 있다. 이 우주에 자신의 섭리를 수행하는 신이나 지적인 존재는 없고 단지 냉담하고 비인격적인 운명이 있을 뿐이라고 가정할 수도 있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우리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 구절이 없다면, 우리가 시련을 겪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건 하나님께 그런 시련을 통하여 성취하실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진리를, 그리고 우리가 모든 시련을 강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통과한다면 우리가 그분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제대로 숙고하지 못할 것이다.로마서 8:28이 없다면, 고통은 참을 수 없고 모든 슬픔이 무의미하다고 내리는 결론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로마서 8:28이 있다.하나님은 은혜의 선물로 우리에게 이 구절을 주셨다. 고통을 겪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려면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황에 맞는 진리를 선택해야 한다. 과거 많은 이들이 범했던 오류, 이 구절에 대해 가혹하거나 부정확한 해석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내게 이 구절보다 더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는 말씀은 거의 없다. 로마서 8:28이 있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은 그분이 삶의 모든 환경을 통해 일하셔서 악에서 선을, 어둠에서 빛을, 슬픔에서 기쁨을 가져오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이 상황을 조종하는 데 능숙한 일종의 우주 PR맨처럼 특별히 민첩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목적만큼이나 수단을 중시하는 계획자, 엔지니어, 그리고 설계자이시다. 하나님은 고요와 폭풍, 어둠과 새벽, 기근과 절기를 정하신다. 그러므로 의미 없는 사건은 없고, 목적 없는 상황은 없고, 궁극적으로 절망적인 조건은 있을 수 없다. 어두운 날, 어려운 시련, 상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선한 뜻을 이루시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서’ 이루신다. 그렇기에 겉으로 보기에 좋지 않은 모든 상황은 그분이 자신의 좋은 계획, 즉 완전한 목적을 형성하고 구체화하는 데 사용하시는 원재료일 뿐이다. 하나님의 특기는 선에서 선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로마서 8:28은 내가 눈물 가운데에서도 그를 신뢰하면 내게 반드시 웃을 이유를 주실 것이라고 부드럽게 속삭인다. 고통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내 입술에 찬양을 가져다주실 것이다. 슬픔 중에도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나중에 그 슬픔과 괴로움을 통해서 얻은 게 결국에는 얼마나 좋은 것이었는지를 보여 주실 것이다. 그분은 메마른 사막에 핀 귀한 꽃, 날카로운 가시에 맞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그리고 폭풍우 속에서도 건재한 부드러운 꽃잎을 보여 주실 것이다. 모든 검은 구름 뒤에는 노란 해가 있고, 모든 어두운 밤 뒤에는 밝은 낮이 있으며, 눈살을 찌푸리는 모든 섭리 뒤에는 웃는 얼굴이 숨어있다. 누구일까? 자기를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을 선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의 웃는 얼굴이다. 원제: Life Without Romans 8:28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조선 유교의 중심을 흔들다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 안동교회
by 이종전 · 장명근
2024-03-20
이 땅 첫 교회들을 찾아대한 강토에 선 첫 세대 교회들을 찾아 떠납니다. 그 이야기들에서 우리 신앙의 근원과 원형을 찾아보려 합니다.한반도의 선교 역사에서 경상도 지방은 선교 루트가 조금 다른 접촉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선교구역에 따른 영향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한 경북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조금 늦게 복음이 전해지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주요 도시들이 1900년 이전이거나 적어도 1900년대 초기에는 복음이 전해지는 데 비해서 안동지역은 조금 더 늦은 편이다.안동 읍내에서 최초 교회는 1909년에 설립된 안동교회이다. 안동지역에는 1908년 미국 북장로교회의 선교부가 1908년에 설립되고 소텔(Chase C. Sawtell) 선교사가 정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1907년 대구 선교부에서 부임해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1년 뒤에 안동선교부가 설치되면서 27세의 나이에 자원하여 미지의 안동에 주재하는 선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안동지역에 북장로교회 선교부가 설치되기 전 부산에 선교부를 마련한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와 대구 선교부에서 활동했던 아담스(James Edward Adams)가 이미 1890년대부터 순회전도를 했던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베어드는 1893년에 이미 이곳을 순회하면서 전도했고, 아담스는 1902년에 순회하던 중 읍내 장터에서 복음을 전했다.하지만 안동의 경우도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게 읍내보다는 외곽지역에 먼저 교회가 설립되고 나중에 읍내로 복음이 전해졌다. 즉 안동 읍내가 아닌 일직면 국곡교회(1902), 풍산면 풍산교회(1902) 등이 먼저 설립되었다. 그리고 1903년에는 바렛(William Marshall Barrett)과 브루엔(Henry Munro Bruen) 선교사가 순회 선교를 하면서 와룡면 방잠교회(1906), 이듬해에는 영주 지곡교회(1907)를 각각 설립했다. 이처럼 중심인 안동 읍내보다도 먼저 주변에 복음이 전해졌고, 그 열매가 맺혀 교회들이 설립된 것은 안동 읍내의 유교적 정서와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1908년 안동선교부가 설치되고 소텔 선교사가 주재하면서 복음을 전한 결과 원입 교인들이 생겼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1909년 한 초가에 7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현재의 안동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읍내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교회가 읍내에 없었기 때문에 영주의 지곡교회까지 왕래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아담스 선교사가 풍산교회의 권서인 김병우를 안동으로 보내 서문밖에 5칸짜리 초가를 구입하게 해서 그곳에 서점을 열게 하고, 동시에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작된 것이 오늘의 안동교회이다.그러한 의미에서 아담스와 김병우는 이 교회의 설립에 있어서 실제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처음 예배를 주관한 김병우(권서인) 외 강복영, 원홍이, 권중락, 박끝인, 정선희, 김남홍 등이 1909년 둘째 주일에 첫 예배를 드렸는데, 불과 1년이 지난 1910년에는 70명이 회집하는 교회로 성장을 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1월에 시작된 이 교회는 그해 11월 더 이상 권서인에 의해서 인도될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웰번(Arthur Garner Welbon) 선교사와 김영옥 조사가 안동에 주재하면서 이 공동체를 이끌게 되었다.웰번 선교사가 주재하게 되면서 1910년 선교사 주택을 마련했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공동체는 더욱 성장하게 되었다. 그곳이 현재 안동교회 교육관 자리에 있었던 한옥이었다. 그러나 예배 처소는 선교사의 주택이 옮겨지는 것과 함께 옮겨 다니다가 1911년 ㄱ자 초가 11칸 규모의 예배당을 지어서 예배를 드렸다. 두 번째로 지은 예배당은 1914년 2월에 완공한 현 안동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곳에 목조건물로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했다. 그리고 공동체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1937년 현재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을 지었다. 물론 해방 이후 1959년 증축은 했지만 그 규모나 예배당 디자인이 특별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한 규모의 예배당을 지을 만큼 많은 신자가 모였고, 그 영향력 또한 매우 컸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하다.지금도 안동교회 예배당은 건재하다. 석조건물로서의 위엄과 멋을 가지고 있어서 지나는 이들의 눈을 멈추게 한다. 그런데 이 예배당은 우리나라 근대건축사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미친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s) 선교사가 설계했고 건축 시행은 화교인 왕공온(王公溫)이 맡았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양식 건축을 위한 조적이나 석공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보리스 선교사가 국내에 남긴 건물들 대부분은 중국인들이 시공을 맡았고, 설계와 감리는 보리스와 그의 제자인 강윤이 맡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재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안동교회 석조 예배당은 국내에 보리스가 지은 180여 채의 건물들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서 사용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특별히 안동이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조선시대를 지배했던 실세들의 고향이다.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예안 이씨, 풍산 류씨 등으로 대변되는 권세가들의 고향이고, 전통문화와 재력까지 대단한 곳이었다. 그런 곳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갔고, 그 공동체가 발전하면서 유교의 정서와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안동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한국 선교 초기에 세워진 교회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것들 가운데 하나가 민족을 깨우치는 일과 식민지 시대에 앞장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이다. 안동교회도 다르지 않았다. 백성이 주권을 갖는 개념은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물론이요, 한반도 전 역사에 존재하지 않던 사상이었다. 그 이유는 한반도에 명멸했던 많은 나라들, 그리고 그 역사를 이어 개국한 조선까지 모두가 군주국가로 역사를 이어왔기 때문이다. 군주국가에서 국민은 국가의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다. 다만 군주를 위해서 존재하는 백성, 신민(臣民)으로서의 위치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선교사들을 통해서 깨닫게 된 국민 의식과 특별히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국가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면서 교회와 기독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독립과 관련한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깨달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의식이 자기 안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안동 읍내에 유일한 교회로서 신문물을 접촉할 수 있었고, 신교육을 받을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안동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동경에 유학하고 있었던 강대극이 일본 동경에서 2.8독립선언에 참여한 후 돌아와 안동 군청 서기 김원진과 당시 안동교회 담임인 김영옥 목사, 그리고 김중희 장로와 만세운동을 모의하였다. 또한 안동교회 설립을 주도한 김병우 장로의 아들이면서 연희전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던 김재명이 고향에 내려와서 교회 지도자들과 청년들이 비밀리에 모의했다. 또한 교회 여성 지도자 김정숙, 김병규, 이권애 등이 계명학교 여학생들과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들어서 3월 18일 안동 장날을 기해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사건으로 안동교회 신자들로서 김병우 장로는 2년 형을 받았고, 김익현은 1년 형, 김재성, 김계한, 이인홍, 황인규, 권점필 등은 6개월 형을 받고 복역했다. 안동교회 신자들이 주동이 된 이 사건은 안동 시민들에게도 크게 자극을 주었고, 독립운동에 대한 성원이 더해졌다. 그러한 의미에서 안동교회는 어려운 시기에 나라의 독립을 외치며 분연히 나섰을 뿐 아니라 안동 시민을 깨우는 일에 앞장서는 모습을 남겨주었다.더 나아가 안동교회는 지역을 깨우는 일에 앞장섰다. 초기 선교부의 정책도 교육시설을 운영하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실시했던 것처럼 교회가 시작되자마자 1911년에 교회 내에 초등학교 과정인 계명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했다. 3년제로 남녀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했고, 1927년 5년제로 학제를 바꾸어서 일제가 요구하는 학교의 면모를 갖추면서 신앙과 민족의식을 깨닫게 했다. 선교사들과 안동교회 신자들 가운데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봉사했다. 1937년도 재학생이 남자 76명, 여자 56명, 총 132명이 공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 학교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계명학교(초등과정)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서 안동에 중등 과정의 학교가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고, 1924년 경안중학교를 설립했다. 처음 교사 4명에 학생 100여 명이 입학하여 공부했다. 하지만 이 학교는 안동교회만이 아니라 노회 차원에서도 힘을 모아서 제대로 된 중등 과정의 학교로 양성하기를 원했지만 재정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러나 이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안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흩어져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먼저 배운 자로서 각각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하는 일에 보이지 않게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해방 이후에는 1948년 유아교육을 담당하는 역할을 자처하여 교회 내에 현 교육관 자리에 있던 건물에 안동 최초의 유치원을 개원해서 어린 시절부터 복음을 알게 하고, 기독교 차원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왔다. 시대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때인지라 담임인 김광현 목사와 당시 안동지역 애국부인동지회 부회장이었던 최매지, 보모 이금석 등이 뜻과 힘을 모아서 함께 유아교육을 시작했다. 훗날 애국부인동지회는 유치원 운영에서 손을 떼면서 자연스럽게 교회가 감당하는 교육시설로서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안동지역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아 교회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자 노력했다. 1965년에 창립한 이 신용금고는 초기 가입자 34명이었고, 출자금은 4,260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신용금고를 통해서 경제적 약자들이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교회는 이 일을 통해서 실제적인 경제적 도우미로서 역할을 한 셈이다. 또한 안동선교부가 설치되면서 선교사들은 안동교회를 중심으로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그것은 병원 사역이다. 초기에 부임한 선교사들은 대부분 복음전도자들이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주재하면서 선교사들의 집은 예배 처소이면서 주중에는 진료소가 되었다. 1909년 1월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해 10월 1일 선교사의 주택에서 진료를 시작했으니 거의 같은 시기에 의료사업도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현 성소병원의 시작이었다. 이때 의료선교사로 부임한 사람이 플레처(Archibald G. Fletcher)였으며, 1910년 크로더스(John Y. Crothers) 선교사가 안동에 부임하여 교회와 병원을 세워 나갔다. 특별히 크로더스는 국광 품종 사과와 보리 사과 100여 그루를 들여와서 처음으로 재배하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사과, 특별히 대구 사과를 유명하게 한 장 본인으로 알려졌으니, 이 또한 우리의 먹을거리와 농업경제에 결정적인 전환과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성소병원은 스미스(R. K. Smith) 선교사가 원장으로 부임해서 1914년 현 위치에 베이커기념병원을 신축함으로써 경북 내륙지방에 획기적인 의료혜택을 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했다. 베이커(Cornelius Baker)는 당시 돈 1만 달러를 기증해서 병원 건물을 짓게 했고, 경북 최초의 종합병원을 만들 수 있게 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택호로 사용하여 기념병원으로 명명했다. 그 후 성소병원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경북 내륙지방에 소외된 사람들을 살피면서 영혼과 육신에 도움과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살피면서 챙김으로써 복음 전도에 크나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당신의 설교에 ‘모서리’가 있는가?
by Trevin Wax
2024-03-19
THE KELLER CENTER 설교는 위대한 소명이다. 우리는 열린 성경을 들고 하나님의 백성 앞에 서서 성령의 능력으로 권면한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서 말씀을 연다. 정기적으로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는 이 거룩한 책임에 대한 경이로움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의 메시지와 성경의 메시지가 일치하는 한, 우리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선포한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주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여 거룩함의 성장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이다.우리는 약을 조제하고,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질병을 완화하고 그들의 영적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올바른 성분을 혼합하는 약사이다. 우리는 또한 경건한 삶을 위해 사람들을 훈련하고, 그들의 영적 근육이 강해지고 체력이 증가하도록 위로하고 도전하며, 그래서 그들이 믿음의 경주를 더욱 효과적으로 달리도록 격려하는 체육관 코치이다. 모서리 실종여기에 모든 설교자가 직면하는 도전이 있다. 청중의 주의를 끌고 사로잡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현재의 관심사와 제대로 연결하지 못할 때,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의 효율성은 감소한다. 성경적이지만 얼마든지 지루할 수 있다.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에서도 성경 본문은 얼마든지 해석될 수 있다. 식사는 분명히 푸짐했지만, 너무 밋밋해서 손님들이 음식을 반 이상 남긴 채로 자리를 뜬다. 우리가 조제하는 약에 환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성분이 부족할 수 있다. 항상 쓰는 근육만 단련시키는 영적 훈련에 사람들은 당신의 메시지에 흥미를 잃고 들뜨기는커녕 오히려 지쳐 버린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기 위해 나는 좋은 설교의 몇 가지 필수적인 측면을 지적할 수 있지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좀 다르다. 없을 때는 당장 눈에 띄지만, 있을 때는 그 즉시 설교를 짜릿하게 만드는 그것에 관해서 말하고 싶다. 나는 그것을 예리한 “모서리”(edge)라고 부른다. 좋은 설교자라면 이 경쟁력을 놓치는 법이 없다. 설교를 준비할 때 꼭 자문하라. 지금 내가 본문으로 삼은 성경 구절, 즉 거기에 담긴 전제, 태도, 적용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을 어떻게 거스르는가? 이 본문이 세상의 사고방식 또는 삶의 방식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지점은 어디인가? 성경 본문과 세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이 가장 날카롭게 부각되는 곳은 어디인가? 모서리를 확보하라. 세상이 말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건 전혀 다르다. 그 모서리가 분명해질 때까지 설교 준비를 마치지 말라. 바로 그 모서리가 당신이 준비하는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이다. 바로 그 모서리가 당신이 조제하는 약을 만병통치약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게 훈련받는 사람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게 한다. 교인이 휴대폰을 보는 대신 설교에 집중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의 설교는 반드시 반문화적인 설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라. 성경은 단지 세상의 문화에만 반대할 뿐 아니라 우리가 교회 속으로 당연하게 갖고 들어가는 세상의 가정들(assumptions)에도 반대한다. 현대의 사고방식이 성경과 일치하는 부분, 그리고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부분을 보여줄 때, 성경 강해라는 드라마가 극적으로 고조된다. 단지 성경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왜 중요한지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설교를 듣는 성도를 어떻게 세상에서 구분되게 하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례 하나몇 년 전, 나는 Cedarville University의 예배당에서 주기도문을 가지고 두 번 설교했다. 첫 설교의 초안은 나쁘지 않았다. 개요는 본문과 잘 연결되어 있었다. 설교 원고는 확고한 성경 주석을 바탕으로 신학적으로 건전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원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뤄야 할 모든 기초가 담겨 있었지만, 리허설을 하는 내가 지루한데 그 설교를 들을 학생들이 몰입할 거라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더 많이 생각하고 기도한 후에 비로소 무엇이 빠졌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묻지 않았다. “모서리가 무엇이지?” 설교 메시지에 틀린 건 없었지만,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짓과 충돌하는 부분이 빠져 있었다. 일단 모서리를 찾기 시작하자 설교가 바뀌어 갔다. 나는 주기도문의 모든 구절을 다시 살펴보며 원래의 의미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더욱 예리한 적용을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지금 이 구절은 어떻게 세상의 상식 또는 교회의 현재 관행에 어긋나는가?• 아버지께 기도한다는 사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개인주의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늘에 계신 분에게 기도한다는 사실이 하늘과 땅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와 땅과 하늘의 관계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자기 이름이 영광 받는 것을 삶의 목적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독립과 자립을 중시하는 세상에서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등등모서리 탐색이 설교를 향상시켰고, 설교 이후에 몇몇 학생들은 내 설교가 그들의 기도, 특히 주기도문 암송에 미친 영향을 놓고 내게 연락하기도 했다. 문화적 서사 드러내기모서리를 찾는 한 가지 방법은 오늘날 서구의 지배적인 문화적 서사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팀 켈러의 작업이 필수적이다. 설교에 관한 책에서 그는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다섯 가지 믿음 또는 스토리를 설명한다. (1) 인간 합리성, (2) 역사, (3) 사회, (4) 도덕성, 그리고 (5) 정체성. • 합리성: 자연계가 유일한 실재이라는 관점은 오늘날의 기술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며, 객관적이고 분리된 인간 이성(사회학, 심리학, 기술, 과학)만이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 역사: 세계 사건을 과학, 기술, 심지어 삶의 도덕적 영역까지 진보를 향한 전개로 보는 관점으로 조상들의 미련하고 퇴행적인 견해와는 달리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더 낫다고 가정한다. • 사회: 우리 사회 질서의 목적이 어느 한 집단의 이익을 증진하거나 가치와 미덕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는 견해이다. 다만 이 자유는 더 높은 목적을 위한 해방이 아니라,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 도덕성 또는 정의: 인권과 정의를 위한 노력은 하나님의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창조한 도덕적 세계와 일치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 정체성: 정체성은 외부(의무 또는 공동의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응을 요구하는 외부 제약에 반대하여 나 자신을 찾고 표현하는 내부에서 기인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서사를 식별하는 것은 성경과 사회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선인 모서리를 더 잘 찾는 데 도움을 준다. 주의 사항모서리를 찾는 이유가 세상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켈러는 복음에 흠뻑 젖은 설교가 교인들에게 “전투라기보다는 탈옥”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문화적 서술의 허위를 드러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지금 아예 실행 불가능한 약속을 남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확하게 진단된 모서리 이후에 제시되는 약은 안도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모서리를 찾는 것이 “우리 대 그들”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마치 성경이 교회 밖의 모든 사람을 대적하고, 그 결과 교인들은 독선이 주는 안도감을 느껴도 된다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사회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문화적 내러티브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친구 또는 이웃과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 예를 들어, 켈러가 언급한 정체성 서술에는 표현적 개인주의, 즉 삶의 목적이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들어있다. 이것은 단지 저기 딴 세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모두에게 복음이 필요한 것처럼 (불신자는 구원을 위해, 신자는 성화를 위해) 신자와 비신자 모두에게 “모서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세상 철학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또한 모서리를 찾는다는 것은 모든 설교가 다 동일한 세상적 관점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설교를 주도하는 것은 문화가 아닌 언제나 본문이다. 모든 설교가 언제나 한두 가지 동일한 문화적 서사에 반대하는 틀에 박힌다면, 교인들은 더 이상 설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사회적 상식이나 현재의 교회 관행을 역행하는, 성경의 다양한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매주 설교 준비에서 반박해야 할 현대 사상과 실천 분야를 단 한두 가지 식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성경 공부와 더불어서 상당한 수준의 문화적 주석 연구까지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효약은 없다그렇다고 모서리 탐구가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설교를 위한 유일한 기술은 아니다. 성경적 충실성, 탄탄한 구조, 꾸준한 속도, 좋은 일러스트레이션, 목소리의 다양성과 같은 다른 많은 요소가 다 중요하다. 그러나 모서리 탐구는 오늘날 우리 세계와 성경의 필요한 만남을 촉진함으로써 설교를 향상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할 때 회중이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영은 말씀을 마음에 적용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단지 도구일 뿐이다. 성령은 하늘의 음식으로 우리를 살리신다. 성령은 하늘의 약을 내려주신다. 우리가 구원을 이루는 동안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모서리를 탐구한다. 그리고 그분이 살아서 움직이는 말씀의 검을 휘두르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원제: Find the Edge in Your Preaching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번역: 무제
고마워 빈센트, 너의 삶은 찬란했어.
by 필립 정
2024-03-18
대학 시절 젊은 작가 한 분과 티 타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느라 어둑해지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입해 있었다. 그런데 끝 무렵에 그가 한 말이 내 마음에 덜컥 얹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체기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작가가 되기 힘들 거예요.” 다음 말이 궁금해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면 삶의 고통이 다 하나님 뜻이라고 믿잖아요. 분노도, 슬픔도, 괴로움도 다 삭여 은혜로 치환해 버리지 않나요? 그래서 점차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없는 상상력의 부재가 생겨요. 그럼 어려워져요. 글쓰기가…”이후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나는 글쓰기에 치여 사는 목회자가 되었다. 일주일 내내 설교, 성경 공부 원고를 쓰느라 정신없이 살아야 했다. 그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어 내가 글쓰기라는 불치병을 앓는 환자 같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 봤다. 이런 상상력의 빈곤과 부재에서 오는 펜 끝의 머뭇거림을 벗어나려고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그러다 우연히 난 한 화가의 그림에 빠져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해져 그를 상상하기 시작했다.빈센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그림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달리는 기차의 경적 소리, 뭉개 구름의 꿈틀거림, 노란 밀밭의 거친 바람 소리, 새벽녘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빈센트에게 가자고 속삭인다. 그런 그가 그립고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어 두 권의 책을 사고 말았다. Van Gogh The Life (Steven Naifeh, Gregory White Smith)와 The Complete Paintings Van Gogh (Taschen)이다. 냉정과 분노 그리고 열정빈센트의 이야기는 그와 그의 어머니와의 해소되지 못한 관계에서 시작된다. 빈센트는 훗날 그의 어머니를 냉정한 여자라고 단정하였다. 빈센트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그녀의 차가움은 어디서 왔을까. 빈센트의 어머니 안나는 유럽의 잔인한 종교 전쟁들, 각지로 퍼진 혁명과 각종 전염병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은 가족의 생존자였다. 게다가 친언니의 간질 병력과 빈센트 사촌들의 정신 병력도 목격하였다. 이 불행은 곧 자기 자녀들에게도 나타났다. 첫아들을 바로 잃고 그 후로 낳은 6형제 중 빈센트를 포함해 4명이 정신질환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는 평생 불행이 닥칠 것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처럼 살았다.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안나가 빈센트를 위해 한 최선은 종교적 통제였다. 빈센트가 목사관 (빈센트의 아버지는 개혁 교회의 목사였다) 밖에 나가서 가난하고 거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하였고 사소한 일 하나에도 규칙을 정하여 의무화하였다. 그 규칙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자책과 회개의 기도를 하게 하여 용서를 받게 하였다. 이유 없이 평탄한 삶이 불편했는지 자주 빈센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삶이 아무 일 없이 잘되는 것은 신의 가호가 아니야. 그래서 이를 드러내어 기뻐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지나친 염려와 통제로 애정이 결핍된 빈센트에게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누릴 수 있는 자유도 허락되지 않자, 그는 자기감정을 격렬한 분노로 태워버리는 아이가 되어갔다. 어머니 안나의 차가움과 아들의 뜨거운 분노는 서로 섞이지 못한 채 원색의 강렬함으로 남겨지고 말았다.빈센트를 교양 있는 지성인으로 키우고 싶어 하던 안나는 일곱 살의 어린 그를 가톨릭 기숙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리고 예상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집에 보내 달라고 떼를 쓰다가 아이들의 귀를 막아 버리거나 소리를 지르다 퇴학을 당해 버렸다. 빈센트가 열한 살이 되자 빈센트의 부모는 그를 다시 한 개혁 교회의 기숙학교로 보냈다. 이때 빈센트는 자기의 심정을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고 밤새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그리스도 같았다고 표현하였다. 역시 심하게 담당 교사에게 저항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빈센트의 호기심과 열정을 불러일으킨 것이 있었다. 그는 자연이 드러내는 색채에 매료되어 버렸다. 그의 그림에 꽃과 풍경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관심 또한 어머니 안나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안나는 목사관의 정원에 각종 꽃을 심어 가꾸었고 그 꽃으로 집안을 꾸미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빈센트는 안나에게 배운 정원 가꾸기, 꽃꽂이와 수공예, 실내 장식에 열정을 보였다. 좀처럼 자연에 대한 호기심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목사관을 벗어나 들로 나가 온갖 풀과 벌레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전문가적 경지에 이르렀다. 주위에서는 빈센트가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가 될 거라고 할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훗날 그가 그림의 모티프를 얻기 위해 계속 따듯한 남부 프랑스를 옮겨 다닌 것도 역시 자연에서 강렬한 빛과 찬란한 색을 찾기 위해서였다. 빈센트는 자연을 보면 행복과 창의력이 샘솟아 먹는 것도 잊는다고 할 정도였다.빈센트는 훗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란색과 푸른색, 붉은색과 초록색의 대비를 통해서 무시무시한 인간의 감정과 정열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학교에서 거절당하고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던 안나의 차가운 눈빛, 애정이 결핍된 아이 빈센트의 빈 마음을 따듯하게 채워주던 자연의 빛과 색채들은 훗날 들이 되고 꽃이 되어 작품으로 활짝 피어날 수 있었다. 결핍을 채워준 지성과 신앙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그의 열정은 사실 지나친 집착에 가까운 병적인 것이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좌절과 희망의 끝을 잡고 살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의 열정은 쓰레기처럼 버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온전치 못한 정신을 달래며 10년 동안 900여 점의 작품과 1,000여 점의 스케치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의 지성 때문이었다.그는 독서와 글 쓰기에도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그가 글을 몰랐을 때부터 빈센트의 어머니는 그를 책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이 시절 그의 어머니가 자주 읽히고 외우게 했던 안데르센의 동화 ’‘The Story of Mother’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책의 내용은 이렇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죽음으로 잃는다. 그 어머니는 죽음이 데리고 간 아이를 찾으러 먼 길을 떠난다.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고 두 눈을 빼 주고 검은 머리까지 백발로 바꾸는 희생으로 그 아이가 있는 곳을 찾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이를 데리고 간 죽음의 신 앞에 선다. 그리고 그 아이를 살려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곧 그녀는 아이 살리기를 포기하고 그 아이의 죽음을 택하고 만다. 죽음의 신이 보여준 아이의 미래가 너무나 비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마치 빈센트를 향한 어머니 안나의 불안한 애착을 그대로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책으로 어머니는 자기 마음을 보여주고 빈센트 역시 그 텍스트를 이해하여 글과 그림으로 해소해 내는 지적인 작업을 할 소양이 있는 아이로 자라났다.빈센트의 글쓰기를 보면 그의 독서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자기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668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글들은 매우 간결하고 자기만의 창의적 문체로 쓰였다. 이 편지들은 대체로 두세 문장을 넘어서지 않는다. 길게 늘어놔야 할 내용을 새로이 단어를 조합하여 더 이상 가감이 필요 없게 글을 써냈다. 자기 그림에 대한 설명도 간단하다. 자신의 상상력들이 어떻게 색으로 입혀져 붓의 터치로 발현되었는지 시처럼 보여준다. 빠르고 두터운 그의 붓질처럼 그의 편지도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것 같다. 이런 그의 글이 담긴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한글로 번역되었다고 하니 읽기를 권하고 싶다.그가 지성인이었다는 근거는 분명하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작가가 150여명이나 되고 언급한 책도 300권 정도 된다. 책에서 인용한 문학적 표현은 800여개나 된다. 그는 고전에서 당대의 작가들까지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 나갔다. 러시아, 유럽, 미국 문학가들의 시와 소설 뿐 아니라 철학과 역사 서적도 탐독하였다 . 따라서 시대의 흐름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에밀 졸라, 볼테르, 빅토르 위고, 모파상, 찰스 디킨즈 등의 근대 문학을 통해 절대적 신 중심의 시대가 끝나고 계몽 시대 조차도 저물어 세속화로 가는 역사적 흐름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인상파 화가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흐름도 이론적으로 잘 꿰뚫고 있었다. 당시 자연을 그대로 그리거나 자연이 주는 인상만을 표현하던 기교적인 화가들 너머 화폭에 자기의 감정과 정신을 담아 내려 한 것도 시대를 앞서가는 그의 현대적 지성 때문이었다. 그의 단순하고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질, 그리고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색과 선을 단순화 시킨 것을 보면 이미 야수파, 입체파 화가들의 설자리를 마련해 놓고 기다리는 현대 화가들의 선배 화가임이 분명하다.그런데 이런 빈센트의 지성보다 더 압도적으로 그를 지배한 것이 있었다. 신앙이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세월을 앞서 갔지만 신앙만큼은 오히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가 왜 그랬는지 그가 탐독했던 책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가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성경이었다. 특히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의 노래’ 속 예수의 삶을 심히 동경하여 따라 살려고 노력하였다. 또 르낭의 예수전,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존 번연의 천로역정 같이 지난하고 원시적인 제자도에 관한 책들을 읽어 나갔다. 결국 주를 향한 지나친 헌신이 그를 사로잡아 그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의 눈에 산업혁명 이후 비참하게 살아가는 런던의 도시 근로자들, 시커먼 탄광의 광부들, 가난한 농부들이 어른거려 사치스런 그림 거래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급 목회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의 이런 점을 단지 무모한 열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가 자연에 자기 마음을 불어 넣어 화폭에 담은 상상력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는 역시 약자들의 고통을 자기의 마음에 그려 넣을 줄 아는 공감의 신앙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에 그려진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표정을 볼 때마다 연민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그의 신앙은 그의 결핍을 채우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밀어주었다.슬픔과 기쁨의 싸움빈센트는 17세 이후 파리와 런던에서 꽤나 잘 나가는 그림 거래 상으로 지냈다. 미술사와 비평에 해박하여 매우 인기있는 상인이었다. 그런 그가 직장에서 쫓겨난 이유는 갑자기 생긴 목회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때부터 간질과 발작, 분노 그 뒤에 찾아오는 참담한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갔다. 빈센트의 미친 듯한 열정은 목회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목회자가 되기에 필요한 라틴어, 그리스어 학습 과정을 견디지 못하여 정식 목회자가 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냥 바로 할 수 있는 벨기에의 탄광 지역에 무급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소원한 대로 헌신적인 목회를 하였다. 자기의 사택을 탄광 근로자들에게 내주고 먹을 것조차 나누어 최소한의 식량으로 살았다. 잠을 줄여가며 그들을 돌보았다. 그러나 부족한 수면과 영양 탓에 그의 정신은 더 나빠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를 파견했던 선교 단체의 감독관은 빈센트를 보고 도저히 선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품위가 훼손되었다고 보고 그를 그만두게 하였다. 그래도 목회자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빈센트는 몇 번의 시도를 더 해 보지만 온전치 못한 정신을 가진 그를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렇게 원하던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난 후 빈센트가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 그리기밖에 없었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재능도 있었기 때문에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화가의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해야 하는 외로운 작업을 하며 인정받지 못하고 팔리지 않는 그림을 계속 그려가며 동생에 대한 채무감만 쌓이는 긴 세월을 견디기 힘들어하였다. 이 시절에 그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 우울, 고뇌, 무력감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써 그의 심정이 어떤지 잘 보여주고 있다. 독서와 목회에 미친 듯한 열정을 보였던 것처럼, 빈센트는 그림에도 온 힘을 다하였다. 정신이 온전할 때 힘을 내어 집중하여 빠르게 그림을 그려 내었다. 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사랑, 확신, 힘, 격렬함, 열정 같은 단어들을 써서 우울감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단호하게 표현 하였다. 이 좌절과 희망, 슬픔과 기쁨의 교차를 빈센트는 격렬한 고뇌, 적극적 우울 같은 상반된 단어들을 조합하여 창의적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파랑과 노랑을 대비시킨 그의 그림같이 슬픔과 기쁨의 양가 감정이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그는 지독한 우울감을 몰아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마치 희망이라는 무기로 좌절을 무찌르는 전사 같았다. 빈센트의 삶의 모토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고후 6:10)였다. 그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찾아오는 근심 속에서 의도적으로 기쁘게 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이런 반복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그림에 몰두하였다. 화가 생활 10년간 이틀에 한 점씩 그렸으니, 그가 얼마나 쉼 없이 전쟁하듯이 그림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어두운 색을 쓰는데 찬란하게 빛나고, 그 붓질이 거친데 힘찰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찬란한 패배자이 글을 쓰다 오래전 본 영화 Loving Vincent에 나오는 대사가 떠올랐다. “살아봐, 삶은 어떤 강한 사람도 무너뜨려 버려.” 또 가수 Don Mclean의 노래 ‘Vincent’에 이런 노랫말이 있다. “이제 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을, 당신이 제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최근에 한 종합 격투기 선수의 은퇴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그가 이미 패배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떻게 싸웠는지 궁금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선수는 종 칠 때까지 몰매를 피할 길이 없다. 그래도 ‘그래, 맘껏 더 때려봐’ 하며 더 투지를 불살라야 비참해지지 않는다. 신앙인은 삶의 고통을 피해 패배에 자신을 쉽게 내어주는 선수가 아니라 맞을수록 삶의 의지를 불태워야 한다. 폭력을 쓸 수 없으니 남은 무기는 신앙, 지성, 의지, 열정, 말, 눈빛 같은 맷집밖에 없다. 내가 본 그 격투기 선수는 사실 두 번이나 챔피언에 도전하여 무참하게 꼬꾸라졌다. 심지어 팔이 빠진 상태로 싸우기까지 하였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도 비참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를 감히 누구도 패배자라고 부르지 못했다. 찬란하게 싸웠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그의 말년에 더 이상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생 레미 정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 시절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끝까지 얼마나 잘 싸웠는지 보여준다. 빈센트는 정신 병원에 갇혀 지내는 동안 밤이면 찾아오는 죽음의 충동을 견디고 눌러 새벽이 오기를 기다린 것 같다. 그러다 슬픔이 걷히고 기쁨이 찾아올 때쯤 병원의 창문 너머 비치는 새벽녘의 그 빛나는 별들을 캔버스에 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밤의 좌절과 새벽의 희망의 골은 너무나 깊어 그를 지치게 하여 헤어 나올 수 없게 하였을 것이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빈센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별까지 걸어가고 싶어 했던 그의 소망대로 말이다.이제 글쓰기에 지친 나를 불러낸 빈센트에게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당신을 큰 실패자라고 부르지. 평생 거절당하고 목회자로도 실패하고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하고(평생 그림 한 점 판매했다) 끝내 그렇게 갔으니. 그런데 빈센트 그대는 원하던 대로 살았어. 근심하는 자였지만 기쁨으로 이겨내려 하였고 가난한 자였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였고 아무것도 없는 자였으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고 떠났으니 말이야. 그대는 그렇게 살기 위해 다른 것을 다 포기했지.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다 빼앗아 버리셨다고는 하지 않을게. 그리 살면 얼마나 할 얘기도 많고 그릴 것도 많겠어. 나같이 메마른 사람들은 누구나 그대처럼 살아 보기를 꿈꿀 거야. 정말 고마워 빈센트, 어떻게 살아야 어떤 글이 써지는지 알려줘서. 그러고 보니 그대는 참 찬란하게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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