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되기 전에, 다시 세워야 한다
by 전재훈2024-04-01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보게 되는 표지판이 ‘아시안 하이웨이’다.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는 아시안 하이웨이 1번 도로이며 6번 도로의 경우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릉-원산-청진으로 북상해 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모스크바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지만 북으로는 철책이 놓여 있어 일본처럼 섬이나 다름없는 형국이다. 자연스레 이 땅의 젊은이들은 세계관이 다른 나라에 견주어 좁은 편이다. 하지만 이 하이웨이가 개통되고 오토바이 타고 유럽을 갈 수 있게 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젊은 친구들이 꿀 수 있는 꿈의 크기가 달라지고 세계관의 스케일이 달라진다. 


미국은 50년 동안 달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달에 깃발 꽂고 사진 한 장 찍은 것이 전부였다. 이것마저도 사기라며 음모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개의치 않고 달 탐사에서 한 발 더 나가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달 탐사 프로젝트가 가져온 결과는 비단 사진 한 장만이 아니다. 달에 가기 위해 극도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무수히 많은 기술적 진보를 이뤄냈고, 그 혜택을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다.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으로 생각의 지평을 넓혔고, 이는 다양한 문화적 확장을 이뤄냈다. 스타워즈의 시대를 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인식의 한계를 지닌 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듣고, 보고, 느끼는 세계는 매우 좁다. 너무 크거나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고, 너무 멀리 있거나 혹은 매우 가까이 있는 것들은 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의 귀는 20~2만 헤르츠 사이의 주파수대에서 소리를 듣고, 우리의 시야는 120도를 넘지 못한다. 0.03초 이내의 순간은 전혀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우리의 한계 속에서 규정된 세계였다. 


하지만 과학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매우 넓어진다. 광학 현미경으로 나노 크기의 원자를 보고, 천체 망원경과 우주탐사선으로 도움으로 화성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작은 소리는 키워서, 큰 소리는 줄여서 들을 수 있는 기계들도 많다. 야간에는 적외선 탐지기로 어둠 속을 보고, 엑스레이나 MRI로 몸속을 볼 수도 있다.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듣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손가락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분명 더 확장된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 


SNS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앞집 아저씨의 근황은 몰라도, 인도에서 선교하는 친구의 근황은 잘 안다. 내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무한대로 넓어졌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선물도 받았다. 페이스북의 친구들을 파도타기 하면 불과 다섯 번 만에 전 세계인을 다 만날 수 있는 시대다. 번역기는 언어의 한계를, 구글은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준다. 


지금까지의 과학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다. 앞으로 수년 내에 펼쳐질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지금 상용화를 앞둔 다양한 기술들은 불과 1, 2년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기술들이다. 과학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는 삶의 편의성만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사고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고, 세계관의 변화를 이끌게 되며, 가치관의 혼돈도 생겨날 것이다. 


과학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는 신학과 철학이 인간의 생각을 주도해 왔지만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철학적 사고보다 과학적 사고가 더 환영받는다. 어떤 신이 참 신인가에 대한 논쟁은 신이 있기는 한 것인가의 논쟁으로 바뀌었고, 진부한 싸움은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살게 했다. 이제 더 이상 신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생각들은 다시 한번 변화의 기회를 맞고 있다. 화성탐사프로젝트로 빅뱅이론이 근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원자 단위로 물체를 분리 추출하는 기술은 물체 에너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정리하고 데이터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선도하는 기술은 이미 가동 중이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자동차는 양산을 앞두고 있다. 3D 프린터는 가정용으로 만들어 판매되고 있다. 화상캠을 통하여 집에서 교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어하며, 미국 출장 가서 한국 집에 있는 보일러를 조작할 수 있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대화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공간과 시간 안에 갇혀 있던 우리의 생각들은 무한의 세계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4차원’이라는 말이 더 이상 바보를 뜻하는 말이 아닌 진보적이며 창조적인 의미로 바뀌고 있다. ‘절대적인 진리’라는 말은 더 이상 설 곳을 잃어가고, 엉뚱한 상상은 인류 발전의 밑거름이 되어가고 있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말은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종교의 울타리가 무너졌듯, 다가올 미래는 신학의 파괴를 부채질할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종교적 마인드로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설득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전에 재림이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면 믿음이라는 명목으로 묶어 두었던 종교적 세계관, 가치관, 인간관, 신관을 모두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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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재훈

전재훈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발안예향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히려 위로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