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 시대의 목회
by 전재훈2024-03-04

나는 식물에 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다. 화분을 선물 받으면 100퍼센트 죽게 된다. 그래서 교회 안에 식물은 이미테이션만 존재한다. 꽃꽂이도 싫어한다. 무엇인가가 내게로 와서 죽어가는 것이 너무 싫다.


시대는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꽃의 정보를 내가 알아보고 관리해야 했지만, 이제는 일방 소통의 시대가 종식됐다. 꽃을 파는 사람이 꽃에 대한 정보를 화분에 팻말 형태로 전달한다. 꽃 주인의 배려로 꽃의 이름과 물 주는 시기, 관리 방법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는 스마트한 시대이다. 화분에 팻말이 아닌 태그가 붙어있고 거기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꽃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스마트링크 기능을 통해 스케줄화 시킬 수 있으며, 알람 기능을 통해 물 주는 시기와 흙갈이 시기를 통보받을 수 있게 된다. 시기를 놓쳐 식물을 말려 죽이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더욱 광범위한 소통의 시대가 된다. 즉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다자간 소통이 가능해진다. 화분에 심어둔 센서가 꽃의 특성에 따라 흙의 상태를 파악해 주인에게 알려주게 된다. 물이 필요한지, 비료가 필요한지 즉각적인 안내를 해 준다. 가끔 교회에서 물을 이중으로 주어 꽃을 죽게 만드는 일 따위는 없어진다. 어느 정도의 물이 필요한지, 화분 온도는 어떤지, 앞으로는 화분이 내게 말을 거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물인터넷 시대의 다자간 소통은 화분이 스프링클러에게 대화하고, 전기스토브에게 말을 걸게 된다. 스프링클러는 화분의 요구에 따라 물을 정확하게 줄 것이고, 전기스토브는 온도를 조절해 줄 것이다. 나는 화분의 꽃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되진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물인터넷 시대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상용화되어 있어서 비닐하우스 농장에서는 현재 사용 중이다. 예전처럼 일일이 하우스마다 들어가 온도를 체크하고 습도를 조절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심어 두고, 때가 되어 거두기만 하면 된다. 


꽃에 말을 거는 친구들을 4차원이라고 놀렸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사물에게 말을 걸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사물의 인격화 놀이를 많이 해 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사물과 대화하는 날이 오고, 사물 간에 소통하는 일이 생겨난다. 밤이 되면 장난감들이 상자에서 나와 서로 놀다가 사람이 나타나면 상자 속으로 숨어 버리는 상상이 더 이상 상상만은 아닌 시대가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신학적인 생각 속에는 자연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믿음과,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숨결이 담겨 있다는 믿음까지 있었다. 자연은 우리가 숭배하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은혜를 받고 나면 자연 속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과 아름다움과 신비를 보고 찬양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런 사상은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과 종이 한 장 차이로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 세상이 온다면 자연 숭배 사상이나 범신론 같은 것은 더 이상 그 의미를 발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어 다자간 소통이 일어나면 신의 능력보다 과학의 능력을 더 많이 신뢰하게 될 것이고, 영적 영감보다는 객관적 데이터를 가진 빅데이터가 그 빛을 더 크게 발휘하게 된다. 이럴 때 앞으로 우리의 자녀들은 모든 사물을 통해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 과학을 생각하게 되고, 기도에 의지하기보다 정보에 의지하는 이들이 될 것이다. 이는 분명 신학의 큰 도전이 될 것이고, 시대에 맞게 신학을 재정립해야 할 때를 맞게 될 것이다. 


분명 과학의 발달은 인류를 윤택하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쓸데없이 고민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고, 천형 같았던 많은 질병도 극복하게 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과학에 의지해 살아갈 것이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게 될 것이고, 이런 현실들을 직시하여 목회를 다시 점검해 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되면 교회의 현장에서도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해도 당일 출석수를 예배 중에 실시간으로 인지하게 될 것이고, 주차장의 효율성을 높이게 될 것이며,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는 등 아주 효과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신학과 목회를 미리 정립하지 않으면 과학을 통해 힘과 에너지를 절약하듯 교인 수도 절약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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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재훈

전재훈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발안예향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히려 위로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