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 현장의 “허용된 죄들”
by Jen Oshman2024-02-08

우리 가족이 해외 선교사로 나가 있을 때, 우리가 있던 나라에서 죄악에 빠진 모습을 찾기란 매우 쉬웠다. 동남아시아는 거리 모퉁이마다 사원과 신사, 제물(祭物)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거짓 신을 숭배했다.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대낮에 버젓이 매음굴이 영업을 하고 불법 마약이 거래되었다. 우리 주변을 가득 메운 어둠을 보는 데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래서 우리는 탐욕, 술 취함, 성적 부도덕 등을 찬양하는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교회 개척을 시작했다.


이러한 노골적인 죄의 모습이야말로 복음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부르심에 응답하는 큰 이유이다. 우리는 어둠을 보고 언덕 위의 도시로 출발한다(마 5:14-16). 그러나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쉽게 진단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악은 너무 자주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보지만, 우리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7:3-5). 제리 브리지스는 Respectable Sins(허용된 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적 차원에서 부도덕하거나 비윤리적인 행위 속에 담긴 죄를 식별하는 건 쉽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죄가 있는데, 바로 ‘믿는 자들이 짓는 허용된 죄’이다. … 사실상 우리는 전반적인 사회와 마찬가지로 내가 짓는 죄를 부인하며 살고 있다.”


브리지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점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그런데 이 진리를 평신도를 넘어 국내외 사역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적용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정직하다면, 몇몇 “허용된 죄”에 관해서는 교회 지도자라고 해도 쉽게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죄에 너무 익숙해져서, 우리는 종종 당연하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 걱정한다


사역에는 돈이 많이 들고,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교회 지도자들에게 부족한 자금이라는 상황은 수시로 만나는 현실이다. 재정을 둘러싼 두려움은 종종 우리를 자린고비의 사고방식으로 사역하게 만든다. 자원을 비축한다. 불안에 사로잡혀 관대함에서 멀어진다. 걱정하는 마음을 현명한 청지기의 태도라는 식으로 위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불안과 걱정이 어떻게든 재정적인 바닥은 치지 않도록 지켜줄 거라는 심정에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용된다. 삶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믿음을 가져라.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 그분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다(마 6:25-34).


2. 소유권을 주장한다 


지금 다룰 허용된 죄도 자린고비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는 종종 흙이 건조한 곳에서 사역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척박하던 토양에서 싹이 트고 뿌리가 자라면 자기도 모르게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열매 맺는 사역 자체가 성공했다는 증거이고, 언젠가부터 나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다른 교회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내 사역을 더 키우려고 하고, 또 우리가 키워낸 제자들이 다른 곳에서 봉사하려는 것을 막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한 목사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우리를 독려하곤 했다. “우리만 성장하는 소문자 나라(kingdom)가 아니라 대문자 하나님 나라(Kingdom)을 추구합시다. 다른 교회도 열매를 맺도록 합시다.”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하는 것에 좌절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막 9:40).


3. 떠들고 비방한다


사역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게 있다. 비공개로 모일 때, 짜증을 분출하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거 말이다. 지혜와 기도 제목을 나눈다는 미명으로 우리는 같은 교회를 섬기는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주변의 다른 사역자나 교회까지 뻔뻔스럽게 비방한다. 사역 팀이라면 서로 통찰력과 정보를 공유하는 게 맞다. 하지만 때로는 선을 넘어 험담할 때도 있으면, 그럴 때면 기분이 좋다는 사실에 솔직해야 한다. 


누군가 내 자녀를 욕하고 다닌다고 할 때, 화가 나지 않을 부모가 있을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를 욕할 때,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화를 내실지 한번 상상해 보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뭐라고 하셨는가?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13:34-35).


4. 불평한다


어둠에 맞서려면 편안함, 안전, 편의성, 지위 등을 희생해야 한다. 불평은 해로운 습관이 될 수 있다. 다루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불평하는 게 얼마나 쉬운가? 감사가 부족한 사람, 문화에 얽힌 죄 또는 만연한 불의를 보며 한탄하는 건 어렵지 않다. 너무 뻔한 진실처럼 들릴지 몰라도, 불평하는 사람의 진짜 마음이 하는 말은, ‘하나님이 틀렸고 내가 더 잘 안다’이다. 


내가 생명의 떡이라는 예수님의 선포에 의문을 제기한 무리에게 하신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다. “서로 수군거리지 말아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을 마지막 날에 살릴 것이다”(요 6:43-44). 상황이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과 구조 속에서도 여전히 역사하시며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 


5. 과로한다


허용을 넘어서 존경까지 받을 만한 이 죄는 근면과 노력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는 참혹하다.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구원자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과 나의 방법에 의존할 때, 우리의 목회는 자립으로 변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안식과 성령님을 뒷전으로 미룬다. 사역으로 인한 탈진은 현실이며, 동시에 하나님만이 무한하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그의 이름으로 사역하도록 파송하신 후(막 6:7-13), 그들은 돌아와서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다 예수께 고했다”(30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31절)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한적한 곳에 혼자 가시는 습관이 있었다(마 14:13). 하나님은 우리를 제한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따라서 주어진 한계에 따라 섬기는 것이 그분의 뜻이다. 


허용된 죄를 회개하기


이런 죄를 나열하는 건 사실 내가 스스로 내 속에 오물을 넣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 역시 이 모든 죄에서 유죄이다. 이런 죄는 짓기 쉽다. 가면을 쓴 이런 죄들은 우리 마음속에서 자유롭게 활보한다. 그냥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존경받을 만하다는 느낌까지 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독과 다르지 않다. 각각의 죄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이 모든 하나하나의 죄가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동시에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상기시킨다. 


복음을 맡은 자로서 우리는 숨은 죄를 회개하고 모든 무거운 것을 벗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야 한다(히 12:1-2).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기는 자로서 우리는 입의 말 그리고 모든 마음의 묵상이 그분 앞에 열납되기를 바라야 한다(시 19:14). 우리의 믿음과 행동이 오로지 그분의 영광만을 드러내길 간절히 바란다. 



원제: Respectable Sins in Christian Ministry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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