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주객전도
by 전재훈2024-01-19

주인과 손님이 바뀌었다는 의미의 주객전도(主客顚倒).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집을 지키는 개가 아니라 개를 지키는 집처럼, 몸에 맞는 옷을 사기보다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 피시방에서 피시 이용료로 돈을 벌기보다 피시방에서 파는 음식으로 돈을 버는 것과 같은 일도 있다. 유재석이 다른 프로에 게스트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게스트로 간 유재석이 진행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말도 한다. 


교회 안에서도 주객전도 현상은 많다. 섬기라고 항존직을 뽑았더니 섬김을 받고 있더라 하는 식이다. 하나님께 받은 것에서 십일조를 떼어 다시 하나님께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예물이 오히려 하나님께 더 받으려는 투자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저녁이 되어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 하루를 일하고 저녁이 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아담은 창조 후 안식을 먼저 맞이하고 그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시내산에 들어가 1년을 예배하고 40년의 광야를 살아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면 하루가 끝난다. 일주일 내내 일하고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예배에 나와 위로와 치료를 받는다. 은혜를 받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아서 상을 받으려고 애쓴다. 


주일에 주 앞에 나와 주님의 힘을 얻어서 일주일을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간 사람은 다음 주일에 감사를 가지고 재단에 나오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주의 일을 하다가 지친 마음으로 주일에 나오는 사람은 자신이 일한 만큼의 보상을 기대하고 나온다. 예배에 감사를 가지고 나오기보다 자신의 의를 가지고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에 감사하여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열심히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려고 한다. 어떤 선한 결과물이 나오면 전자는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지만 후자는 자신의 공로로 돌린다. 


예배를 드리는 자세도 은혜를 받은 것에 감사하여 드리는 사람과 은혜를 받으려고 열심을 내는 사람이 있다.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지만, 불쌍히 여김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물개박수를 치며 찬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감동시켜 은혜를 받으려고 물개박수를 치며 찬양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잘 섬겨서 재물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재물이어야 하는데 도리어 재물이 목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박씨를 받으려고 제비 다리를 고친 놀부처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것을 얻으려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마 6:33) 이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말라 했더니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상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선포이다. 하지만 수많은 설교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의 태도를 선포하고 있다. 다윗을 들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을 선포하기보다 어린 목동 다윗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지는 설교한다. 어린 목동도 사용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된 다윗의 성공을 찬양하게 만들고 있다. 


모든 사람이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여리고 맹인 거지 바디매오조차도 만나주시고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의 사랑을 선포하기보다, 바디매오의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과 근성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면서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부르짖을 것을 설교한다. 하나님이 부족하고 죄 많은 우리를 사랑하신 것에 대한 선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변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전하는 것이 주객전도가 일어난 설교인 셈이다. 


구원에 있어서도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구원하신 자를 연단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연단에 통과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구원 얻은 자가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시인하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식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를 사랑하고 기뻐하시는 분이심에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는 것으로 바꿔 버렸다. 하늘의 생명책에 우리의 이름이 아닌 우리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천국을 주시는 하나님을 전하기보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전하는 것이 문제이다. 거기에 덧붙여 천국에서 더 큰 집과, 더 좋은 자리와, 더 많은 상을 얻는 방법이 있다는 식이다. 은혜여야 할 많은 것들이 수고에 대한 대가나 삯, 혹은 보상의 개념으로 바뀐 셈이다.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주객전도 현상의 백미는 역시 주인이신 하나님을 나의 종으로 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종의 모습이 아니라 어떻게든 하나님께 내 뜻을 알리고 내 기도대로 응답해 주시도록 만들려고 한다. 기도할 때는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기보다 내 기도대로 응답해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이 주를 이룬다.


이 시대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기보다 그들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바쁘실 듯하다. 마치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통해 내가 영화롭게 되며 그분을 영원토록 부려 먹는 것과 같이 되었다.


내 신앙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겠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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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재훈

전재훈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발안예향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히려 위로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