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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신학적인 시선
by 고상섭2023-12-13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현재까지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분쟁의 한가운데서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고통의 현장을 보고 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한 손에 성경을, 또 한 손에 신문을 들라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이 문제를 역사적인 시선과 성경적, 신학적 시선 모두를 통해 바라보아야 한다. 먼저 역사적인 시선을 살펴보았고, 오늘은 신학적 시선으로 이 전쟁을 살펴보려고 한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하는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고 교회 소그룹에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 중동지역에서 사업을 하는 성도 소수를 제외하고, 성도의 대다수가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광화문 집회를 할 때도 그리스도인들이 동원되는 집회에서 특이하게도 미국 국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동시에 등장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고, 북한 인권 통일문제를 위한 집회에서도 이스라엘 국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왜 유독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일까? 그 뿌리에는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와 이스라엘 간에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을 기독교가 지지하는 이유는 종말론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로 비롯된 연대감 때문이며, 이런 배경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을 현재 이스라엘과 연계하여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이스라엘의 건국을 성경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하는 종말론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첫 번째 오해: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이다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이 지시하실 땅과 민족,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약속하셨다. 창세기 12:3은 그 약속의 땅이 단순히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땅의 모든 족속’ 곧 온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모든 이방인이 너로 (아브라함)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갈 3:8; 3:14)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수립된 것이 구약 예언 가운데 일부가 성취된 것이며, 장차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서전을 건축할 것이고, 마지막 때 유대인들의 집단 회심을 통해 복음이 전 세계를 돌아 다시 예루살렘에 올 때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한국 교회를 어지럽혔던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이스라엘에서 복음이 시작되었는데, 복음의 서진을 통해 유럽이 변화되었고, 아메리카로 건너가 부흥을 이루었고, 다시 아시아로 와서 한국을 변화시켜 중국과 북한의 복음으로 변화되고 이슬람을 거쳐 결국 다시 예루살렘으로 지구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예수님의 재림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선교학적으로 보면 복음은 서쪽으로만 전진한 서진의 역사가 아니라, 전방위로 퍼진 역사이다. 


두 번째 오해: 이스라엘은 선택받은 백성이다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은 온 이방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려는 먼저 된 선택일 뿐이었지만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자신들만 특별한 존재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졌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잘못된 선민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갈 3:6-7). 


단순히 혈통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방 교회인 갈라디아 교인들도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한다. 계속해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고 말한 뒤에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라고 선포한다. 구약의 혈통적 유대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고 있다. 


또 바울은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하갈과 사라를 언급한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과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삭이다.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태어난 자라고 부르고, 이삭을 약속을 따라 태어난 자라고 말한다(갈 4:28-29). 창세기에서 어린 이삭을 이스마엘이 괴롭힌 사건을 통해 바울이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박해하고 있고,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다고 표현한다. 바울은 ‘육체를 따라 난 자’ 혈통적 이스라엘은 이스마엘을 상징하고, ‘성령을 따라 난 자’는 이삭 즉 믿음으로 구원받은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이삭은 혈통적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닌, 영적 이스라엘 즉 성령을 따라 태어난 자의 상징이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경은 세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선택했지만 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플랜 B를 계획해서 이방인을 구원하고 그 구원을 통해 결국 다시 이스라엘이 회복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창세기의 이삭이 태어날 때부터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곧 ‘성령으로 태어난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한다. 


세 번째 오해: 이스라엘의 회복과 종말 


로마서 11:25-26에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받고 마침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한다. 여기에 나오는 ‘온 이스라엘’을 혈통적 이스라엘로 해석하게 되면, 복음의 서진이 이스라엘에서 시작되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예수님이 재림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온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의미는 단순히 혈통적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다는 의미는 이방인 전체가 아니라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를 말한다. 그다음에 나오는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이방인들 가운데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가 차기까지 유대인들의 남은 구원받는 사람들을 계속 모을 것이며 이렇게 해서 ‘온 이스라엘’ 곧 구원받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을 총칭하는 모든 언약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 일부 번역이 로마서 11:26의 헬라어 ‘후토스’를 ‘그 후에’라고 번역하여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구원받고 그다음에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시간 순서처럼 보이지만, ‘후토스’는 ‘그 후에’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in this way)로 해석해야 하는 단어이다. 현재 개역개정은 ‘그리하여’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이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얻는 것처럼 유대인들도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종말론에 대한 다양한 오해들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련해서는 특히 로마서의 ‘온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단어만 떼어서 ‘온 이스라엘’이 혈통적 이스라엘이며 현재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구원받는다고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가 많은 해석이며, 문맥을 통해서 보면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중 구원받는 택자를 말하는 것이나, 유대인과 이방인을 총칭하는 모든 택자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 


지금까지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을 어느 한쪽 편을 들면서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현재 이스라엘 땅이 구약의 약속의 땅이거나, 현재 이스라엘이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따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어느 한 나라를 지지함으로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동지방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잘못된 유대 민족주의를 버리고 팔레스타인을 인정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팔레스타인도 더 이상의 무력 충돌과 전쟁이 아닌 타협점을 찾아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현재도 계속되는 전쟁 속에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이 전쟁이 속히 끝이 나기를 그리고 인간의 지혜로 풀 수 없을 것 같은 이 문제들 위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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