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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일

주일에 일해야 하는 직장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by 김선일·이금주2023-07-24

엉겅퀴와 가시덤불


그리스도인들이 일터에서 겪는 문제와 질문을 두고 김선일 교수와 이금주 교수, 두 신학자가 대화하며 그 답을 찾아 나선다.

현재 직장을 구하고 있는 40대 싱글여성입니다. 주일성수를 할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있습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 살고 있고, 생활이 넉넉지 못합니다. 주일에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사명이고 기쁨입니다. 서비스 업종(카페 매니저)에서 일해 왔는데, 제가 원하는 조건의 직장은 주일에 일할 것을 요구합니다. 주중에만 일하고 주일에 쉴 수 있는 곳은 그에 비해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 계속 주일에 쉬며 교회에 갈 수 있는 직장을 기다리는데 잘 나오지 않네요. 우리 교회에는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저녁 시간에 교회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해줍니다. 계속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주일에 일하는 곳에서 소명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할까요?  

 

이금주: 저는 이 질문이 한국적 기독교 신앙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미국에 있는 교회가 많이 느슨해졌지만, 과거에는 주일성수를 율법처럼 엄격하게 지켰죠. 한국에서는 여전히 주일성수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선일: 한국 교회도 과거보다 주일성수라는 개념이 조금 이완됐고, 사회 전반적으로 주일에는 일하지 않는 매장들도 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성도들이 있지요. 


: 먼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첫째, ‘주일성수란 무엇인가?’ 둘째, ‘일을 함에 있어서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 


: 주일성수의 의미와 일의 목적이군요.


: 먼저 스스로 주일성수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까? 교회당에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교인으로서의 습관입니까?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는 제쳐두고, 근본적으로 ‘내가 왜 주일성수를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한 주에 하루를 정해놓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는 일을 희생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까? 만약 후자라면 주일성수의 의미로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치 구약성경에서 공허하게 제물을 드리러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 이사야 1:12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고 경고하십니다. 


: 이 또한 큰 그림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두 번째로, 이 일이 왜 나에게 중요한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가 됩니다. 질문자가 주일에 일하는 문제로 고민하는 이유가 ‘원하는 조건’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일까요? 그 조건이 월급도 많이 받으면서 주일에도 교회 가도록 보장해주는 직장을 얻는 것이라면 주일성수는 어떤 순위에 있는가요? 중요한 질문은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입니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내가 주일에는 교회에 가겠다는 마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 질문자의 고민에 이미 우선순위와 가치의 문제가 반영되어 있군요. 


: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우상에 바친 고기를 알면서 먹지는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가 대접할 경우에는 묻지 말고 먹으라고 했습니다. 


: 예, 고린도전서 10장을 보면 27절에서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26절)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다음 구절인 28절에서는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합니다. 즉, 상대방을 배려해서 어떤 때는 먹을 수도, 어떤 때는 먹지 말아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그 원리가 이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신앙 가치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조건 때문에 교회를 빠진다면 그것은 신앙 양심에 배치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저녁에 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도 일터에서 하나님 앞에서 소명을 갖고 일하는 마음과 자세를 갖는다면 그것은 다른 사안입니다. 하지만 단지 조건 때문에 절충한다면 그것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 저는 주일에도 하는 일이 사람들의 생명과 기본 생활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대로 본인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자제하기를 권해요. 병원이나 대중교통, 안전을 위한 경비와 관리에는 상시 인력이 요구되니까요. 그런데 사실 주일에도 교회에서 예배 뒤에도 교인들끼리 주변의 식당이나 카페를 많이 이용합니다. 우리는 주일에 그런 곳들을 거리낌 없이 이용하면서 주일성수를 적용한다는 것이 모순이기도 합니다. 이는 안식일의 본질적 의미와도 연관되네요. 


: 맞습니다. 주일에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 마음의 자세입니다. 내가 주일에 일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신앙에 방해가 되느냐의 여부도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서 14:2에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먹느냐, 안 먹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시험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입니다. 


: 그 말씀이 이 질문자의 상황에는 어떻게 적용될까요?


: 질문자가 주일학교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사로서 아이들이 ‘왜 주일에 선생님 교회에 안오시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하는 큰 그림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주일성수에만 매달리면 안 됩니다. 


: 사실 주일성수라는 단어 자체를 재고해야 한다는 신학적 의견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야 하고,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좀 전에 말씀하신 로마서 14:5에서 바울도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 저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일성수만큼 교회학교 아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나로 인해서 그들이 시험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도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죄에 대해서 거듭 경고하셨지요. 


: 질문하신 분은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기쁘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일일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미국 교회에 다닐 때 목사님이 저에게 장년부 성경공부를 맡으라고 하셨습니다. 동양인인 저에게 미국인들 성경공부를 맡긴 것입니다. 몇 년간 장년부 주일 성경공부를 기쁘게 지도한 후에 좀 쉬어야겠다고 했더니, 목사님이 그럼 주일학교 아이들부터 가르치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부터 가르쳤는데 저에겐 잘 맞지 않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4학년 아이가 저에게 귀한 감사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아이는 자폐증이 있어서 당시 초등학교 선생이신 목사님의 사모님도 그 아이 때문에 너무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라 충고도 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그 아이에게 관심을 두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성경을 가르쳤더니 1년 만에 다른 아이가 된 것입니다. 교사를 하면서 많이 배우긴 했지만 그래도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회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입니다. 그래서 기쁨을 느끼는 겁니다. 


: 주일성수로 인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문제, 그리고 일의 소명과 은사를 탐구하는 과제로 이어지는군요. 


: 이처럼 여러 가지 관련된 사안들의 목록을 만들어서 성경적, 신학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 우리가 문제를 넓고, 깊이 고민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지혜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 우리는 날마다 기도할 때, 삶의 작은 경험과 일들을 묵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주일성수, 예배함의 의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일의 소명 등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웃을 섬기는 선택이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 지금까지의 대화를 토대로 질문자에게 제가 목회자로서 질문자에게 권면한다면, 좋은 조건을 포기하더라도 당신의 생애를 주관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어디에서 일의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하겠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얻은 기쁨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사이므로 거기에 충실할 때 하나님이 그 은사와 소명을 선하게 사용하시는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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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선일·이금주

김선일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사회와 복음의 만남을 위해 섬기며 전도학과 일터 신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전도의 유산: 오래된 복음의 미래한국 기독교의 성장 내러티브교회를 위한 전도 가이드 등이 있다. 

이금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핵물리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도미하여 세계적 금융투자사인 피델리티 매니지먼트에서 28년 근무했다. 그후 고든콘웰신학교에 진학하여 신학석사와 목회학박사를 취득하고, 아프리카의 여성과 교육을 위한 선교단체인 Matthew 28 Ministries를 설립하였다. 일의 신학과 변혁적 리더십을 전문으로 하는 바키대학원대학교(Bakke Graduate University)한국어 과정 위원장이며, 미국과 한국, 아프리카 등지에서 일의 신학을 가르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