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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암에 걸린 은사지속론자의 고백: 나는 여전히 신유를 믿는다
by Tim Shorey2023-07-20

나는 예후가 좋지 않은 4기 암 환자이다. 나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만지심으로든 또는 중보 기도를 통해서든, 신유를 믿는 사람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정상적인 상황을 초월하여 또는 우회하여 즉각적이고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순간이 있다고 확신한다(고전 12:7-9). 그리고 그런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에게는 그 어떤 다른 이유가 필요 없다. 오로지 사랑으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이 치유의 기적을 만든다고 나는 진심으로 믿는다. 그런 역사가 일어날 때 육신은 해방을 맞고 영은 기쁘게 뛰며 입술은 찬양하게 된다. 


한 가지 분명히 하자면, 나는 사기꾼 신유 은사자, 믿고 외치면 다 이뤄질 거라고 주장하는 종교 호객꾼, 번영 복음을 파는 행상인 또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종교 전문가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은 나의 믿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몸과 영과 마음을 치유하는 실제적이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신유 능력을 믿는다. 진짜로 병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이름이 가진 권위에 의해서 완벽하게 치료되고 또 종종 하나님의 백성이 믿음으로 기도하는 중보에 의해서도 치료가 촉진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암 환자이다. 나를 위한 수많은 기도가 있었다. 믿음도 충분하고 또 안수까지 받았음에도, 나는 여전히 암 환자이고 지금도 시계는 똑딱거리고 있다.


이런 현실은 나를 믿음의 곤경에 빠뜨린다. 


나는 치유의 은사를 확신하는 은사지속론자이지만 또한 동시에 낫지 않는 병이라는 현실에 빠진 사람이기도 하다. (콧물이나 모기에 물린 상처, 또는 종이에 베인 상처 등등의 자연 치료를 놓고 치유의 은사가 지속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치유도 나름 중요하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방을 차지한 두 마리 코끼리


치유 은사 신봉자로서 나는 방을 꽉 채운 거대한 코끼리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첫 번째는 35년 동안, 365일 24시간 7일, 나를 떠나지 않는, 의사가 진단한 신경 손상 유발 두통이다. 두 번째는 4기 암이다. 이 두 가지 다 치유되지 않았다.


아이러니는 고통스럽다. 나는 환자를 위해 기도했고 또 기도로 치유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치유가 내게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도 아마 나처럼 느끼지 않았을까? 바울도 치유의 하나님을 믿었지만 고쳐 달라는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다(고후 12:7-10). 마찬가지로 그의 동역자 드로비모도 낫지 않는 병 때문에 남겨져야만 했다(딤후 4:20).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울이 사랑한 디모데의 고통스러운 위장병과 (낫지 않는) 병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위해서 할 수 있었던 최선은 고작해야 적당한 양의 포도주를 처방하는 게 전부였다(딤전 5:23).


비록 내 경험이 전혀 다른 현실을 반영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치유하실 수 있고 또 반드시 치유하신다고 믿는 것은 내가 여전히 무언가를 믿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마땅히 우리가 가져야 하는 자세이다. 내 경험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믿어야만 한다. 성경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해석과 경험 그리고 선호도 및 인식은 종종 틀리기 마련이다. 


중간에서 살기


그러나 이런 현실은 나를 실존적 수렁에 빠뜨린다. 사랑이 많으신 하늘의 아버지, 치유하실 수 있고, 또 치유하고자 하는 자비로운 사랑도 있으신 아버지, 게다가 종종 치유하시기도 하는데, 왜 나는 아닌가? 이럴 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하나밖에 없다. 나를 위한 더 좋고, 더 현명하고, 더 사랑스러운 계획이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믿기 위해 나 자신과 싸우는 길밖에 없다. 내가 아직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 그분의 놀라운 목적, 내가 알려야 알 수 없는 신비, 내가 아직 분별할 능력이 되지 않는 계획, 그리고 내가 아직 볼 수 없는 영광이 그분 안에 숨겨져 있음을 믿어야 한다. 


나는 지금도 하루하루 암과 싸우며 살고 있다. 내 삶은 다음 두 종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끼어 있다. 겉보기에는 충만한 믿음으로 “믿고 선포하면 다 이뤄진다”며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뜻이면 낫게 하실 거야”라며 마치 하나님의 치유 능력을 믿는 것 같지만 사실상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면서, 변명에 지나지 않는 믿음을 읊조리는 사람들 사이에 말이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우리 중심을 아신다. 전자의 말투는 믿음을 가장한 주제넘음으로 들리고, 후자의 말투는 겸손을 가장한 의심으로 들린다. 


나는 최대한 중도를 취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의 하나님이 치유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성경과 실생활에서 그가 항상, 심지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전혀 치유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는 자기 백성이 영원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주 최강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용광로 속의 하나님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럽게 침묵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은 결코 예측할 수도 없고 내가 마음대로 길들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아간다. 그분은 회오리바람과 폭풍우 속에 계시고 천둥소리는 그분의 권능에 비추어 속삭임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무한히 자유롭고 길들지 않는 존재이다. 그분은 영원토록 거하시며 빛으로 어둠을 삼키시며 온 땅을 밤낮으로 두루 다니시며 자신의 강함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돌보심을 나타내시고 또 그때그때 목적을 이루어가신다. 그분은 무엇보다 자신의 영광을 펼치시는 분이다. 하나님 같은 분은 세상에 없다. 엇비슷한 존재도 없다. 할렐루야!(창 1:1-3; 대하 16:9; 욥 26:12-14; 사 46:9; 57:15; 나 1:3; 고후 4:6; 계 21:22-25).


비록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나는 내 병이 하나님의 가장 위대하고 시급한 관심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세상에는 처리해야 할 죄와 구원, 사탄과 사망의 문제가 있다. 하나님은 종종 질병을 사용해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고, 죄로부터 우리를 정화하고, 사탄과 세상에 신자의 삶을 유지하는 그분의 은혜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질병을 통해서 우리가 세상 물질을 향한 육욕적인 사랑에서 멀어지도록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궁극적인 목적지로 인도하신다. 죽음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를 더 이상의 질병과 죽음이 없는 영광 속으로 데려가신다. 


하나님은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는 우주의 119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고 항상 현장에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가 콧물감기 또는 암 4기에 걸리는지 아닌지의 문제보다 훨씬 더 깊고 개인적 또 우주적으로 중요한 일에 마음을 쏟고 있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이 모든 사실은 내게 세 명의 히브리 청년이 가졌던 믿음을 갖도록 했다. 하나님이 구원과 치유의 기적을 행하실 수 있으며, 또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확증하는 믿음이다. 그러나 나도 그들처럼 하나님이 언제 그렇게 할지 100퍼센트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오늘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변함없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단 3:17-18).


하나님은 용광로와 불 속에 빠진 나와 지금도 함께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상상하기에는 너무나도 놀랍고 지혜로운 무엇인가에 지금도 열중하고 계시다. 이것이 바로 영혼까지 지치게 하는 암에 걸려 약해지는 내가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싸워가며 지키는 믿음이다. 바로 이 믿음이 내 앞에 놓인 길이 치유일지 아니면 천국일지 몰라도 오늘 하루 나를 지탱하는 생명줄이다. 



원제: I’m a Continuationist with Cancer. I Still Believe in Healings.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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