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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그들이 목회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by Sarah Eekhoff Zylstra2023-06-17

팀 쿠퍼러스는 초짜 목사가 아니다. 무려 이십오 년 전임 목회를 한 베테랑이다. 그런 만큼 그는 교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논쟁과 도전에 익숙하다. 긴 시간, 힘든 대화,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관한 한, 그는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목회를 계속하는 게 맞는가. 이런 질문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의 말이다.


적어도 삼 년 전까지는 말이다. 


“끔찍한 정치적 상황에서 팬데믹이라는 절대적인 도전까지 맞으면서, 응축되어 있던 모든 게 한순간에 터져버렸습니다. 마스크를 쓰냐 마냐를 놓고 교회가 논쟁을 벌이면서 찢어질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백성이 되어 교회의 정체성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교회의 본질을 놓고 의문을 품게 됩니다.” 몬태나의 맨해튼 기독교개혁교회를 담임하는 쿠퍼러스의 말이다. 

 

쿠퍼러스만이 아니었다. 2021년 1월 바나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목회자의 29퍼센트가 지난 일 년 사이에 목회 포기를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로부터 십 개월이 지나고 그 수치는 38퍼센트까지 올라갔다. 2022년 3월에는 42퍼센트였다. 주된 이유는? 사역이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 외롭고 고립된 느낌, 그리고 현재의 정치적 분열 상황.


기독교개혁교회(CRC) 교단 내 자유주의로 인해서 “마흔 명의 목사가 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쿠퍼러스는 “사역의 기쁨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실제로 대규모 이동설에도 불구하고, 목회자 대부분이 그대로 머물렀다. 2021년 가을, 복음주의 목회자의 은퇴 이전 그만두는 비율은 1.5퍼센트로 2015년 1.3퍼센트에 비해 약간 증가했다.


“오늘날 정보가 너무 빨리 퍼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누구누구 목사가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두고 마치 교회를 휩쓰는 새로운 경향이나 유행병이 생겼다고 가정하기가 쉽다. 그러나 실제 백 명의 목회자가 그만둔다고 해도, 그건 한 달 평균 진로를 바꾸는 목회자 수의 일반적인 범위 내의 일부에 불과하다.” 라이프웨이 리서치(Lifeway Research) 전무이사 스콧 맥코넬의 논평이다.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은 바나의 조사에 응했던 목회자 세 명을 만났다. 그들은 어쩌면 전염병 기간에 “전임 사역을 그만두는 것에 대해 진지하고 진지한 고려”했다고 조사에서 말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왜 그만두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사역을 지속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물었다. 


목회 포기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오하이오 애슐랜드에 있는 Substance Church의 로니 마틴 목사의 말이다. “정직한 목회자라면 스스로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그만둘지를 놓고 고민할 것입니다. 각종 선택으로 가득한 세상, 기술과 원격 작업으로 모든 게 훨씬 더 쉽게 가능해진 세상에서, 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 다른 길을 상상하는 건 더 쉬워졌습니다.”


그가 담임한 교회는 마스크 정책 불일치로 약 예순 명의 교인을 잃었다. “목회 말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내 인생이 훨씬 더 쉬웠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를 떠난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누는 대화도 결코 쉽지 않았지만, 진짜 힘든 건 대화 속에서 느끼는 과도한 불안과 편집증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계속 궁금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 이후, 제레미 라이트볼이 사역하는 메트로 디트로이트의 Woodside Bible Church에서는 그가 인종차별 폭력에 대해서 기도한 이후로 350명의 교인 중 무려 절반이 교회를 떠났다.


라이트볼의 말이다. “교인들은 내가 인종 문제에 관해서 좌파 성향이라고, 비판적인 인종 이론을 옹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고, 마치 교회 전체를 날려 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자신에게 묻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도록 부름받은 게 맞나?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마틴도 같은 게 궁금했다. “내가 목회를 위해서 창조된 사람이 맞나? 아니면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는 게 아닐까?”


왜 사역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마틴은 오래 씨름하지 않았다. “어둠과 절망의 순간이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가 가족, 장로들, 그리고 네트워크에 있는 다른 목회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또한 병적인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걸 견뎌내면 어떤 일이 생길까? 주님, 내 안에서 지금 무엇을 드러내고 계십니까? 버틸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서 다시 태어나는지 꼭 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 안다. “물론 당시에 느꼈던 것보다 지금은 훨씬 더 낭만적으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낭만이 아니었다. 그가 매달린 것은 성경이었다.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기다리며 소망해야 한다고 성경에서 무려 227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다렸다. 


쿠퍼러스도 기다렸다. 육 개월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사역에서 이전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그 기쁨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계속 사역했다. 


“가정에서 평화와 휴식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나는 놀라운 배우자를 만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외부 환경이 어려워도 집은 항상 평화와 휴식의 장소였습니다. 이 사실은 나를 지키는 근본이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소명을 붙잡았다. “내가 목사가 된 건 어느 날 자고 일어나서 ‘목사 되어야지’ 하고 결심한 게 아닙니다. 나게는 깊은 내적, 외적 소명 의식이 있습니다.” 그가 내적 부르심과 씨름하는 동안 교인과 교단 사람들은 외적으로 그의 소명을 함께 확인시켜주었다. 교인들은 그들이 미처 알 수 없을 정도로 격려가 된 쪽지나 이메일을 그에게 보냈다. 매주 두 명의 장로가 그를 만나 격려하고 또 중보기도를 했다. 그는 결코 목회자와 장로들의 지역 모임인 노회에 가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교역자와 교인들 앞에 서서 ‘나는 끝났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차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미시간으로 돌아가서, 라이트볼도 장로들을 의지하고 있다.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장로님들, 내가 이 교회를 담임하면 안 될 정도로 지금 교회에 해를 끼치고 있습니까?”


그들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끝까지 나를 지켜주었고, 그 사실은 내게 매우 긍정적이고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그래요. 이제 떠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우리는 당신을 믿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함께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때때로 내 말이 도움이 되지 않거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를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들은 결코 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습니다.” 


마틴과 쿠퍼러스처럼 라이트볼도 소명에서 해방되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다른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어떤 것에도 부름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나는 바로 이곳에 부름받았다고 느낍니다. … 주님이 내게 맡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가 그 사실을 아는 한 가지 이유는 사례금이다.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정당한 사례금과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내게는 미국 회사로 옮길 수 있는 기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그 어떤 비전도 없습니다. 나는 이십 년 넘게 사역했습니다. 사역은 나의 소명이자 경력입니다. 나는 다른 일을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필요한 재정이 충분한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사역을 해야 합니다. 사역은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일이고, 우리 가족을 재정적으로 공급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역에 머물렀는가


머물기 위해 때때로 목회자들은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마틴은 주로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자매가 쓴 고전 소설에 빠졌다. 쿠퍼러스는 목공이나 스포츠 사진 촬영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또한 성경 속으로 도피했다. 


마틴의 말이다. “나는 3-4개월 동안 시편으로 기도하고 묵상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도움을 주었고 내게 향유가 되었습니다.” 쿠퍼러스도 시편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주로 시편 46편 속에 잠겨 살았다. 


라이트볼은 요한계시록 속 일곱 교회에 관한 구절을 바탕으로 목회자를 위한 책을 쓰고 있다. 그는 계시록 2, 3장과 사랑에 빠졌다.


“심지어 요한계시록 1장 5절, 이 구절은 내 정체성의 근거가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속합니다. 나중에 우리는 일곱 별을 손에 들고 있는 예수님의 이미지를 읽는데, 그것은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나를 손에 붙잡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은유입니다.” 


요한이 쓴 편지의 수신자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 시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은 라이트볼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마음을 닻을 내리고 예수님의 충만함,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 그분의 주권, 지혜, 선하심을 상기시켜 준 중요한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고 계속해서 나를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예수님 때문에 내가 누구인지를 똑바로 압니다.” 


또 한 편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교인들은 이게 거의 없지만, 팬데믹이 가져다준 문제를 여전히 처리하고 있는 목회자가 적지 않다고 마틴은 지적한다. “트라우마는 아주 천천히 드러납니다. 따라서 우리 중 일부는 이제야 비로소 그 당시가 초래한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건 아닌지 궁금해합니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게는 어둠과 절망의 순간은 짧았고, 곧바로 그리움과 탐색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말이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주님, 우리는 안도감을 찾고 있습니다. 오로지 당신 안에서만 찾아야 합니다”이다. 


그의 교회에 일어난 분열은 고통스러웠지만, 더 하나된 회중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고백한다. “시간이 지나 주변을 둘러보니 결국 남은 이들은 항상 교회를 섬겨왔고, 함께 선교 사업을 하고, 힘을 다해 우리를 격려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이 교회에 있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일체감을 느꼈고, 그 하나됨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틴은 또한 자신 속에서 일어난 변화도 실감했다. “내가 교인들의 지지를 얼마나 갈구하는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이 모든 게 다 괜찮다고 말해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과거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해야 하고, 나아가서 각기 다 의견이 다를 때, 나는 내가 지지나 격려를 받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그 결과,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이 강해졌기에, 모든 게 힘든 은혜였다고 마틴은 말했다. 어려움을 은혜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는 감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이 일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쿠퍼러스도 내적 변화를 목격한다. 딱딱하고 화난 태도가 누그러졌다. 잃었던 기쁨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그는 생명의 싹을 볼 수 있다.


“2021년 5월에 나는 쉰 살이 되었습니다. 주일이었는데 예배 후 교회에서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거의 9 야드나 되는 풍선과 도넛을 준비했군요. 끔찍하고 힘든 한 해를 보낸 후, 그 축하 행사는 내게 무언가를 전해 주었다. 소중함을 깊이 느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회중에 대한 나의 부름을 재확인했습니다.”


그건 마치 생존을 축하하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의 교회는 더 작아졌지만, 쿠퍼러스는 이제 예전 교회가 아닌 지금 교회를 섬기기로 결정했다.


그가 섬기는 교회는 좋은 곳이다. “우리는 주일에 약 250명과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현재 임산부가 일곱 명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육체적인 새 생명을 통해 우리 회중에도 새 생명과 기쁨이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앞날을 내다보다


미국 문화가 세속화됨에 따라, 교회에 더 힘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마틴의 말이다. “어쩌면 팬데믹은 다른 것에 대한 준비였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앞으로 미국 교회에 어떤 시련을 주실지 몰라도, 그것이 인내와 그분을 향한 사랑이 식지 않기 위한 것임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라이트볼의 말이다. “참되고 옳은 문화를 옹호하고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며 또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는 경우에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아마도 다가올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의지한 채 이 세상을 항해해야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드신다고 믿습니다. 정말로 믿습니다. 나는 계속 그분만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분만을 믿을 것입니다.”


목회 사역은 높고 고귀한 소명이라는 게 라이트볼의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일은 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 고백한다. “목사로서 나를 부르신 것은 십자가의 신학을 전하는 사람, 이것이 예수님이 당신을 위해 하신 일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게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다 주실 것입니다.” 



원제: Why Pastors Aren’t Quitting

출처: www.thegospelcoalition.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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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arah Eekhoff Zylstra

사라 에코프 질스트라는 TGC의 편집자 겸 선임 작가이다. Dordt University에서 영어와 소통(BA), Northwestern University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Christianity Today의 작가였으며, 프리렌서로 지역 신문에도 기고를 하며, Trinity Christian College에서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