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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고난, 오히려 위로
by 전재훈2023-02-05

고난은 고통이며 괴로움이지만 말씀을 떠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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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개인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이 시대 최고의 가치는 개인의 행복이거나 자유, 존엄 같은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고난이란 개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렇기에 고난은 피해야 하는 것, 그럴 수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하게 관리해야 하는 리스크로 취급된다. 심지어 고난을 인간의 가장 큰 적이나 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고난을 싫어할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완벽한 세상이라면 고난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고난이 존재하는 한 선하신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시 하나님이 존재하더라도 무능한 하나님일 거라고 조롱한다. 믿는 사람들조차 고난이 닥쳐오면 하나님을 부정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에게서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와 같은 고난을 겪으셨다. 고난이 악에 불과하기만 하다면 예수님이 그 고난에 무참히 밟히실 리가 없었을 것이다. 성경에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약 1:2) 같은 말도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성경은 우리가 지금 겪는 고난을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며 그 고난이 유익할 때도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고후 4:17). 바울은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있던 그의 제자들에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행 14:22)고 했다.


모든 고난 중에 가장 힘들고 아픈 것은 바로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다. 내 손톱 밑에 있는 가시가 남의 십자가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게 되며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와 찬양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그뿐 아니라 각자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라고 했던 욥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월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에서 주인공 맥이 하나님의 초대장을 받고 자기 딸을 죽인 범인이 보낸 것이라는 생각으로 초대에 응한다. 맥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다. 그때 맥의 친구가 병문안 와서 다소 비아냥거리는 말로 “그래. 하나님은 만났나? 하나님이 내게 전하라는 말씀은 없었나?”하고 묻자 맥이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이 자네를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전하라 하셨네.” 


고난은 고통이며 괴로움이지만 말씀을 떠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고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전재훈, 오히려 위로(아르카)에서 간추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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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재훈

전재훈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발안예향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오히려 위로팀 켈러를 읽는 중입니다(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