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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by D. Blair Smith2022-06-30

하나님을 바라보던 인간의 눈이 타락하여 감각에 빠져 나뒹구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친히 한 몸을 취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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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앞으로 함께 읽을 기독교 고전


• 장 칼뱅_기독교 강요

• 아우구스티누스_고백록

• 조나단 에드워즈_신앙감정론

• C. S. 루이스_순전한 기독교

• J. C. 라일_거룩

• 존 오웬_죄 죽이기

• 존 밀턴_실낙원

• 아타나시우스_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 J. I. 패커_하나님을 아는 지식

• 리처드 십스_상한 갈대  

(글 싣는 순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시대에 살았던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D 373년 사망)는 살아서도 그리고 그 후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아타나시우스의 시대에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권력을 잡자 기독교를 합법화하여 제국 내에서 교회의 운명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이 로마황제는 또 325년에 제1차 니케아공의회를 소집했다. 기독교의 합법적 지위를 부여했다는 사실이 그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제도적 기관으로서의 교회의 성장을 촉발했다면, 니케아신경은 조만간 발생할 한 세기를 집어삼킬 신학적 담론의 홍수를 촉발시켰다.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주교의 비서관으로 니케아공의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주교가 된 그는 4세기 교회와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선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세상에 대항하다


교회 역사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주교직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추방되었다는 사실로 유명하다. 신학 면에서는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완전한 동등성을 부정한 아리우스파(특히 339―343년 사이에 쓴 ‘아리우스파에 반대하는 강론’(Orations Against the Arians)과, 그리고 후에는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완전한 동등성을 부인하는 성령부정론자(Pneumatomachians, “성령을 부정하는 자들”; 아타나시우스가 357년경에 쓴 세라피온에게 보내는 편지(Letters to Serapion)를 참고하라)와 싸우기 위해 수사의 검(rhetorical swords)의 칼을 날카롭게 갈았다. 교회를 지키려는 열정뿐 아니라 성자나 성령을 하나님으로 합당하게 공경하지 않으려는 신학에 반대하는 끊임없는 용기 때문에, 아타나시우스는 “세상에 대항하는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contra mundum)라는 라틴어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항하는 아타나시우스’가 있기 전에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쓴 아타나시우스가 있었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2부작의 두 번째 부분으로(첫 번째 부분의 제목은 ‘이교도 논박’(Against the Greeks)이다), 아마도 그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된 직후(328-335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그의 후기 저작에서 만날 수 있는 논쟁적 어조나 명백한 신학적 목표가 드러나지 않는다(예를 들자면 아리우스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책은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단하면서도 우아한 신학적 묵상에 가깝다. 


작품이 끝나가는 부분에서 아타나시우스는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다.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의 신성한 나타나심에 대한 기본 지침과 개요”(56)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 부임한 목사라면 교인을 지도하고 격려하기 위해 다뤄야 할 주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네 쌍으로 설명하는 구속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에서 아타나시우스가 제시하는 가르침에는 그가 종종 유익한 변증법으로 서로를 유추하게끔 유도하는 여러 쌍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네 쌍에 주목해야 한다. 첫 번째는 창조주-창조이다. 


1. 창조주-창조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창조 속에 드러난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주장함으로써 시작한다. 이 창조의 능력은 아타나시우스에게 있어서 실로 중요한 성화된 논리의 한 요소로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통해 구원의 하나님의 사역이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통한 구속은 창조 사역에서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논리적으로 흘러나온다. 말씀이 성육신하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때, 그는 자신의 본성에 내재된 필연성 때문도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가 독단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도 아니다. 아타나시우스의 논리는 명확했다. 그의 추론에 따르면, 애초에 말씀이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바로 그분 곧 말씀을 통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시는 것은 전혀 “모순”(inconsonant)이 될 수 없다(22쪽).


2. 선함-은혜


아타나시우스는 창세기의 처음 두 장을 따라서 타락을 논한다. 에덴에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는 인간을 통해 죽음의 부패가 세상에 들어온다. 그 결과 죽음이 인간을 법적으로 지배하게 되며, 하나님의 형상이 흐릿해짐에 따라 사악함이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낮은 지점에 이르러서조차 아타나시우스가 돌아가는 곳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선하심 속에 내재된 논리이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그의 창조물에 선함을 심어 주셨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절대적으로 구별되지만, 자신의 손으로 하신 일, 특히 자신과 축복된 관계를 맺도록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향해서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런 인간이 절대적인 부패에 빠지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타나시우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과 선함은 결코 인간을 파멸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게 하는 핵심 요소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피조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능력이 드러내는 것은 나약함일 뿐이다. 또한 모든 인간이 부패에 휩쓸려 소멸하게 내버려 두신다는 것이 선함이라면, 그런 선함은 결국 부적절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공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비참한 상태에 빠진 인간을 도울 수 있을까? 아타나시우스는 단순한 인간의 회개도 하나의 가능한 선택으로 간주하지만, 회개는 “인간을 자연법칙에서 다시 불러들이지도 못한다”(33쪽). 이런 엄중한 상황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인 창조주로 하여금 자신이 창조하신 만물을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기에 충분한 “재창조자”(re-Creator)가 되실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선함이었다. 다시 말해서 은혜 뒤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함이다.


3.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아버지의 형상


아타나시우스가 이 책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눈을 돌리면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을 회복하는 그리스도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원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는 무지한 상태로 살아갔다. 인간은 자연의 계시를 거부했으며 유대 율법과 선지자를 통한 말씀의 계시도 거부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다 잃은 인간의 모습은 특히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가장 중요한 위치인 내면의 형상이 어두워지는 데서 드러난다. 아타나시우스는 다시 묻는다. 과연 하나님이 계속에서 인류를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두실까? 


하나님은 인간이 창조될 때 기준이 된 바로 그 실제 형상을 인간 속으로 보내심으로, 우리 속에 내제된 부분, 다름 아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바로 그 부분을 새롭게 하셨다. 아타나시우스에 따르면, 하나님을 바라보던 인간의 눈이 타락하여 감각에 빠져 나뒹구는 것을 보신 하나님은 “친히 한 몸을 취하셔서” 인간이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는 분이 되어 주셨다”(51쪽). 이로써 말씀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오셨다. 그 결과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가시적 역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새롭게 된 형상을 갖게 된 우리는 이제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4. 썩음-썩지 않음


이 책의 마지막이자 절정을 이루는 쌍은 아타나시우스가 그리스도의 성육신 순간에서부터 부활까지 시종일관 고려하는 썩음-썩지 않음이다. 이 쌍의 기본 구조에는 방향성이 들어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썩지 않을 말씀이 피조물의 썩어짐 속으로 들어가 썩어야 할 인간을 타락에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다. 썩지 아니할 말씀이 몸을 취함으로 인간의 썩어짐을 돌이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빚도 갚아야 하는데,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36쪽)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죽음과 부활은 썩음-썩지 않음이라는 쌍의 진정한 능력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썩음의 궁극적인 목적인 죽음에 대한 빚을 갚았고, 마침내 인간을 저주에서 해방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를 보여주며 모든 사람이 썩지 않을 수 있다는 증거가 되었다. 


“실로 그분은 인성을 취하사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자가 될 수 있도록 하셨다”(139쪽, 필자가 인용한 영역판에는 “He was incarnate that we might become god”(54)으로 되어 있음_편집자 주)라는 유명한 구절을 통해서 아타나시우스는 이 방향성을 기억에 남도록 표현했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인간이 본성을 잃고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분열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아타나시우스는 이미 앞서서 많은 공을 들여 창조에 많은 내용을 할애했다. 오히려 그가 말하는 것은 우리가 사망을 이기신 이를 믿는 믿음을 통해 그의 썩지 아니함을 얻고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은혜로 얻는다. 신자의 삶에 부활의 능력이 넘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아타나시우스는 이 책을 끝맺으면서 성육신의 진리에 대한 복된 증거로서 변화된 삶과 변화된 세계를 지적한다.


아들은 하나님이시다


교회 역사상 수많은 저자가 성육신에 관한 책을 썼다. 단지 그 주제를 다뤘다는 것만으로 이 책이 기독교 고전이 된 것은 아니다. 이 책이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이 된 데에는 신앙의 핵심 신비 중 하나인 성육신을 다루는 아타나시우스의 명쾌한 논리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는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완전한 신비(mysteriousness)와 이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방식,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합리성(reasonableness)을 함께 강조한다. 창조에서 재창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선함에서 은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형상의 상실에서 그 형상의 회복에 이르기까지, 썩을 것에서 썩지 아니할 것으로까지, 이 모든 주제를 다루는 아타나시우스 사상의 일관성은 모두가 다 이러한 합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모든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통일성을 갖고 있기에 C. S. 루이스는 이 작품을 “걸작”이라고 불렀다.


현대 신학은 종종 하나님과 구원의 교리를 분리하지만, 아타나시우스는 그 모두를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다룬다. 후기 저작에서 그는 아들의 하나님으로서의 지위에 직접적인 관심을 두었지만, 이 책에서 아들의 지위는 종종 아들이 하실 수 있는 일에 설명된다. 말씀이 창조하시고 또한 말씀이 재창조하신다면, 그 말씀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신다. 썩을 것을 취하여 썩지 아니할 것과 연합할 수 있는 아들은 그 자신이 썩지 아니할 신성을 가진 아들이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는 성숙을 위한 경건 서적일 뿐 아니라 4세기에 발전하고 구체화된 고전적 삼위일체 신학에 대한 훌륭한 소개이기도 하다. 믿음의 교회에게 삼위일체 신학은 단지 성자나 성령의 지위에 관한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삼위일체 신학은 예배가 진실하려면 무엇이 참되어야 하고, 우리의 구원이 하늘에 닻을 내리려면 무엇이 참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부활하고 승천하셔서 성부의 우편에 앉으신 성육신하신 아들에게 우리의 구원을 묶어 둠으로써 아타나시우스는 가장 큰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께 우리를 굳게 고정시킨다. 



원제: On the Incarnation: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썩지 아니할 말씀이 몸을 취함으로 인간의 썩어짐을 돌이킬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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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D. Blair Smith

블레어 스미스는 미국 장로교 목사이자 샬롯에 위치한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부교수이다. 그는 Harvard Divinity School에서 석사학위(ThM)를 받고, Durham University에서 역사신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