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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QT_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2021-01-28
마태복음 11장 20-30절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화 있을진저회개하지 않으면 책망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21절)라고 책망하신다. ‘책망하시되’라고 번역된 헬라어 ‘오네이디제인’은 ‘욕하다’라는 뜻이다. 또한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과 비교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두로와 시돈’에서 권능을 행했더라면 그들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 심판의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쉽다”(22절).예수님은 갈릴리 바다 가까이에 있는 회개하지 않는 고라신과 벳새다를 향해 이사야(23장)나 에스겔(26-28장)이 선포한 ‘두로와 시돈’보다 더 악화된 상황을 만날 것을 말하신다. 또한 ‘나훔의 마을’이란 뜻을 가진 가버나움에 대해서도 창세기 19장 24-48절에 나온 소돔과 비교하여 책망하신다. “내가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을 것이다. 심판의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쉽다.”이러한 책망을 듣고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에게 계시를 드러내심에 감사한다(25절). ‘나타내심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포칼립토’는 ‘감추이거나 덮인 것을 없애다’, ‘계시하다’, ‘알게 하다’, ‘드러내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시며, 그 아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자들에게만 스스로를 드러내신다(27절).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의 상호 관계성을 알 수 있다.예수님이 행하신 권세있는 행동(이적과 기적)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는가? 그것에 반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계시가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하는가?예수님의 초대예수님께 나아가면 쉼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8절). 이러한 예수님의 초대의 대상은 누구일까? 본문의 25절에 언급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바리새인들이다. 이들은 많은 규칙과 규정들로 인해서 신앙이 수고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운반할 짐과 같이 여긴다.‘바리새’란 ‘분리된 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페루쉼’에서 나온 말로, 율법에서 깨끗하지 않다고 하는 것들로부터 분리하려는 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마태복음에는 이들과 예수님과의 갈등이 자주 등장한다. 산상수훈(마 7:28-29), 안식일의 논쟁(마12:1-14),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삶에 대한 꾸짖음(마 23:23-24) 등이다.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29-30)고 말한다. 멍에는 보통 쟁기나 수레를 끌기 위해 소나 나귀 등의 목에 가로 얹는 막대를 말한다. 대개 멍에는 두 마리의 동물이 한 짝이 되어 끌게 하였다. ‘멍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메드’는 성경에서 멍에로 번역되기도 하고(렘51:23), ‘한 겨리’로 번역되었다(삼상 11:7; 왕상 19:19,21).‘한 겨리’는 암수 한 쌍을 의미한다. ‘멍에’와 ‘한 겨리’의 의미는 함께 짐을 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운반할 짐과 같이 된 이들에게 그 짐을 자신과 함께 질 것을 요청한다.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쉼을 얻을 수 있다.나에게 있어 수고와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쉼이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길 수 있는가? 오늘 예수님이 당신에게 요청한다. “나와 함께 하자!”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이학섭 목사(영광스러운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이 필요한 시대
2021-01-27
마태복음 11장 11-19절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은혜를 소유한 자가 가장 큰 자!시대가 점점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있을 것을 생각했으나, 상상했던 것보다 더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 시대의 흐름 속에 묻혀 원망하고 불평하며 시대에 끌려가는 것은 좋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오히려 시대를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할까?예수님은 세례요한에 대하여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모세나 엘리야가 세례요한보다 더 크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요한은 단지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지만, 모세나 엘리야는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 가지 놀라운 기적을 행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큰 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요한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천국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선지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천국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야만 우리가 천국으로 소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미리 예비한 자였기에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한다.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우리 눈에 크게 보이는 자가 큰 자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천국을 소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직한 자, 그가 바로 가장 큰 자임을 믿어야 한다. 오늘도 천국을 소유한 큰 자가 되어 천국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의 필요14절의 말씀에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고 하셨다. 엘리야는 구약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대의 능력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죽음을 보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승천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엘리야가 다시 와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말 3:1; 4:5). 그래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기 전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냐”고 질문했던 것이다.요한은 왜 엘리야를 언급하고 있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왜 많고 많은 선지자들 중에서 엘리야가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한 것일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종교 개혁을 이룬 사람이다. 다시 엘리야가 와야 한다는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이 문화와 종교적으로 개혁이 필요했던 시기였음을 알려준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즉,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종교, 문화,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섭리가운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세상을 맞이해야 한다.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에 엘리야의 심령과 함께 그에게 부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급변하는 시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하루 엘리야의 심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큰 자가 되어 세상 한 가운데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내가 엘리야의 심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복음의 능력
2021-01-26
마태복음 11장 1-10절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우리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섭리옥에 갇힌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께로 보냈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가 맞는지 확인하는 질문을 하였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행하신 이적들과 복음전파 상황을 요한에게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당시 지도자였던 헤롯 안디바의 불법적인 결혼을 비난하고 책망한 일로 옥에 갇혀있던 세례요한은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서 메시야가 맞는지 확인하고 있다. 이것은 곧 요한이 생각했던 메시야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이루고자 하셨던 메시야의 모습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으로 보여준다. 즉, 요한은 예수를 이스라엘이 처한 국내외적 어려움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고 선악 간의 심판을 행할 정치적인 메시야로 생각했었다(눅 3: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만민을 구원하는 영적인 구원자로서의 메시야로 생각하셨다.이처럼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섭리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즉시 구원받지 않을 때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이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회의나 의심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계속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이사야 55:8-9).오늘 하루 동안의 내 생각과 계획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기대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으로써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회복이 있는 곳에 있는 복음복음의 능력은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나타난다. 오늘의 본문 5절에서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왕국 도래와 관련한 이사야의 예언을 염두에 두신 것이다. 예수님은 곧 메시야요,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다. 이는 복음인 예수가 전파되는 메시야 왕국, 즉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이다.오늘 하루의 삶이 때론 맹인처럼, 때론 나병환자처럼 아프고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다면 반드시 회복될 것이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염려를 평안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은 주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만 적용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복음을 믿고, 끝까지 주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은혜이다. 오늘 말씀처럼 복음이 있는 곳에는 회복이 있음을 믿고 오늘 하루도 복음으로 승리하는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복음의 능력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평안과 생명을 얻는 길
2021-01-25
마태복음 10장 34-42절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참된 평화를 얻으라!예수님은 평안과 생명을 얻는 길을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방식으로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병원을 잘 찾아가고, 의사를 잘 만나면 생명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지는 평안은 참된 평안이 아니며, 참된 생명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된 평안과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34절 말씀을 보면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혼란케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평강의 왕’이라고 했고, 그가 화평을 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진리 하나를 깨달을 수 있다.그것은 참된 평화는 무조건적인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영적투쟁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참된 평화는 오직 불의와 비진리와의 투쟁으로 얻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과 진리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와 타협을 통해 화평을 도모해야 한다. 하지만 신앙과 진리 문제 앞에서는 부단한 노력과 투쟁으로 참된 평화를 얻어야 한다. 비록 삶의 현장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질시를 당할 수 있겠지만, 내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강이 가득 채워지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죽음으로 생명을 얻으라!39절의 말씀을 통해 기독교의 역설적인 부분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서 생명을 얻는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능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기독교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죽어도 산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우리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 내가 얻어야 하고, 내 생명이 아닌 상대방의 목숨을 담보로 뭔가를 얻어내려 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오늘도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필요하다.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죽음으로 생명을 얻게 되는 비결을 실천하며, 진정한 복음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나는 평안과 생명을 얻기 위해 어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고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나는 주님의 소유입니다
2021-01-24
마태복음 10장 24-33절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나는 주님의 종예수님께서 제자도를 가르쳐주시고 열두 제자를 파송하셨다. 본문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나갔을 때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될 고난과 핍박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또한, 이 말씀은 어떤 고난과 핍박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촉구한다.“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라는 말씀은 당시 유대인들 사회에서 많이 쓰인 격언이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형만한 아우 없다”라는 말과 의미가 상통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말씀으로 가벼운 속담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해야 한다. 즉, 우리는 주님의 제자요,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이다.나의 신분에 대한 정체성은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종이란 주인의 소유임을 의미한다. 즉, 종은 주인을 위해 존재한다. 그 의미는 자신의 계획과 가치관 등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제자, 곧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 건강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주님의 종이라는 의식으로부터 나의 삶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오늘 하루의 삶을 살아갈 때 나는 누구이며, 나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의미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의미있는 삶과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나는 주님의 소유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것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담대하게 복음과 말씀을 더욱 풍성한 교훈으로 선포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며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역시 주님의 소유요,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을 은폐하고,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지 않는 성도들도 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숨기고, 세상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분명한 정체성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나는 주님의 종’과 ‘나는 주님의 소유’는 다른 표현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의미이다. 이것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의 의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 마지막 절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 주님의 소유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손병세 목사((The행복한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예비된 고난
2021-01-23
마태복음 10장 16-23절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예비된 고난주님은 그의 제자들을 보내실 때,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이 마음이 쓰이셨다. 잘 알다시피 양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수동적이며 의존적이다. 목자가 없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목자 의존도가 높다. 이런 연약한 양을 집어삼키기 위해 이리는 언제나 기회와 틈을 노려보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로 보내심이, 마치 목자 없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셨다.17절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앞으로 제자들이 겪게 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의 길을 그려내고 있다. ‘끌려가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아크데세스테’는 미래 수동형으로 쓰여졌다. 이는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질 일들을 의미한다.제자들은 공회에 넘김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신실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자들의 고난과 핍박을 통해서 결국 하나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18절). 이로 보건대 우리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겪게 되는 모든 상황과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보이지 않게 전파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나는 고난과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어려움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복음을 전하다 급작스럽게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말들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모습이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직면할 실제의 문제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도중 핍박을 받게 될 때 무엇을 말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여기서 염려는 헬라어로 ‘나누다’는 뜻을 가진 ‘메리조’에서부터 파생이 되었는데, 이 단어는 염려와 걱정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적실하게 보여준다. 염려는 말 그대로 마음이 둘로 나뉘는 것을 말한다. 즉, 핍박과 박해의 한 가운데서 마음이 나뉘어 다른 생각을 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을 집중하여 하나님께 고정하라는 뜻과도 같다.그 이유는 때에 맞는 말들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에 주사 말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베드로 역시 풍랑이 거센 바다 위를 걸을 때 염려하였다. 그의 마음이 예수님에게 고정되어 있었을 때는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풍랑이 치는 바다로 돌려지게 되자 마음이 나뉘어 불안함을 느꼈고 즉시 바다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믿음으로 인한 고난과 박해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음이 분산될 것이 아니라 더욱 집중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믿음으로 인한 핍박과 박해를 곧 당면할 수 있다. 이때 주님은 동네와 동네를 건너 피하도록 권면하신다. 이 권면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무책임함이 아니다. 16절의 뱀 같은 지혜로움이다.사도행전 8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복음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자 오히려 복음이 전 이스라엘과 이방 땅으로 확산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실패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온전히 붙들고만 있다면 장소와 거리에 관계없이 있는 그곳이 복음으로 물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나의 삶 가운데 복음이 온전히 전해지지 못하도록 마음을 분산케 하는 염려과 걱정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하면 더욱 집중하여 일상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교
2021-01-22
마태복음 10장 1-15절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사도, 그 보내심을 받은 자보냄을 받은 자의 사역은 보내신 이의 뜻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직접 선발이 되었다. 여기서 제자로 번역된 헬라어 ‘마테테스’는 배우다, 익히다는 뜻을 가진 ‘만다노’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따라서 제자는 ‘배우는 자’이며 ‘익히는 자’이다. 3년간의 공생애 기간을 통하여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배우게 하셨다.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2절 말씀에 제자들을 향한 호칭이 ‘사도’로 변경된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라는 의미를 가진 ‘아포스톨론’은 익히다는 의미를 가진 제자와는 다르게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가르치시고, 권세를 주신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그들을 보내신다. 보냄을 받은 자는 보내신 이의 뜻대로 행동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곳에서 다시 보내시는 일을 하셨다.코로나로 인하여 기존 형태의 선교와 전도의 양상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 나는 부르신 그분을 위해 어떤 형태의 전도와 선교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며 나아갈 것인가?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교예수님은 불러 모으신 열두 제자를 다시 보내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전하도록 명령하신다. 특별히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의 고을로도 가지 말라 하신다. 이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복음의 긴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주님은 결국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의 문을 확장하여 구원의 은혜를 맛보게 하실 것이다.그런데 예수님이 보내시는 이 선교 여행은 특이한 점들이 있다. 여행을 위한 경비나 준비물 등을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게 하시고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도록 만들어 보내신다.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부족함이 가득한 선교 여행을 통하여 채우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그들로 하여금 먼저 누리고 느끼게 하시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복음을 들고 산으로 들로 향하며 바다를 건너는 일은 제자들이 직접한다 할지라도, 그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고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일은 실패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에 의해서 오늘도 진행된다.14절에 그들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자들을 향하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말씀하신다. 이는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방 땅을 건너 본국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발을 터는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다.‘에크티낙세’라고 번역된 이 의미는 부정 과거 명령형으로, 단 한 번의 행동으로 끝나 버릴 때 사용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거부하고, 거절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를 이방인처럼 대우하고 단호히 돌아서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이기에 그 행위 자체를 매정하게 볼 것이 아니다.불확실한 현실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채우심과 공급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는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가르치고 고치고 전파하신 예수님
2021-01-21
마태복음 9장 27-38절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치유함을 받는 믿음온전한 믿음이 있을 때 치유가 일어난다. 두 맹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고 고백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로마서 말씀(롬10:17)대로 그들은 들음을 통하여 고침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두 맹인은 예수님께 고침을 구하지 아니하고 ‘불쌍히 여기실 것’을 구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두 맹인을 향하여 물으신다.“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믿느냐’로 번역된 헬라어 ‘피스튜에테’의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어의 순서를 보면 믿느냐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테가 가장 서두에 자리를 잡는다. 따라서 이 구절에 대한 바른 순서는, “네가 믿느냐?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음을?”이 된다. 이를 통해 마태가 이 사건을 기록하며 독자에게 알리고자 했던 중심 내용이 단순히 치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유 받는 자들의 ‘믿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결국 그들의 믿음대로 두 맹인은 눈을 뜨게 되었다. 예수님은 엄중하게 그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할 것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31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그들은 온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며 사건을 알렸다.예수님께서 침묵하기를 원하셨던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메시아관이 서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십자가 사역을 통하여 구원자로 오신 메시아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인간적인 욕구와 욕망을 채우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그들은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오늘 나에게도 불가능함 가운데 치유를 일으키시는 주님을 향한 믿음이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가?긍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중심일꾼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 마태복음 9장 35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삶을 살아가시며 이 땅에서 집중하셨던 3대 사역이 등장한다. 그 사역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시는 삶을 사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사역에 임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이다.36절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에는 긍휼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본문에서 ‘긍휼’로 번역이 된 헬라어 ‘에스플랑크니스테’는 내장, 창자를 뜻하는 ‘스플랜’이라는 단어에서 파생이 되었다. 따라서 긍휼의 뜻을 가진 에스플랑크니스테는 내장이 뒤틀리고,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동반한 감정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실 때 바로 이러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사역에 임하셨다는 뜻이다.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심은 단순히 감정에서 그치지 않은 데 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방황하고 있는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영육 간의 구원을 친히 행동으로 베풀어 주시고 채워 주셨다. 주님의 긍휼하심은 항상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의 긍휼히 여기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제1순위로 필요한 도움이다.이어 주님은 때가 가까움을 알리는 추수에 대해 말씀하신다. 추수할 때가 가까워 왔으니 일꾼을 보내어 추수에 동참하게 해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요청하도록 하셨다. 눈여겨 볼 점은 일꾼을 모집하는데 있어서 세상적 기준이나 자의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능력이나 조건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일꾼의 최우선 순위가 된다. 우리 스스로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과 선택하심, 그리고 보내심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발적인 결단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에 의해서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21-01-20
마태복음 9장 14-26절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 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다가와서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행보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가며 금식을 하는데 반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속죄일과 신년제(나팔절)에 의무적으로 금식을 했을 뿐만 아니라,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며 기도를 했다. 따라서 그들은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동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예수님은 혼인집 신랑에 대한 비유를 들어 그에 대한 답을 주신다.일주일간 지속되는 혼인 잔치에는 특별한 자유함이 있었다. 이 기간은 종교적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일을 혼인 잔치에 비유하며 형식보다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더욱 집중해야 함을 은유적으로 들려주셨다.이어지는 생베 조각과 새 포도주 가죽 부대를 통하여 예수님은 새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셨다. 이전에 그들이 전부라 여겼던 율법과 전통을 넘어서서,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본체이신 메시아가 임재하심을 전했다. 의사는 건강한 자가 아니라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로 인하여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온전히 선포하신다.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형식과 습관, 전통에 매여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들이 있지는 않은가?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믿음18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에는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등장한다. 한 관리로 기록된 야이로의 딸(막5:22)이 죽은 사건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한 여인의 사건이다. 평행본문으로 등장한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야이로는 딸이 죽기 전, 긴급하게 예수님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치유를 바라는 그의 부탁에 흔쾌히 야이로의 집으로 발걸음을 향하셨다.이때 12년간 혈루증으로 고통을 당하는 여인이 갑자기 등장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아마도 자궁 출혈로 인해 지속적으로 피가 흐르는 고통을 당했을 이 여인은 레위기에 기록된 율법상으로(레15:25-30) ‘부정한’ 여인이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여인은 최후의 방법으로 지나가는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자 했다. 그 옷깃을 스치기만 해도 자신이 나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문제는 이 부정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을 만졌을 때의 일이다. 율법상 부정한 사람이 닿는 모든 것은 다 부정해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율법대로 한다면 이 여인이 자신이 낫고자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예수님도 부정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여인이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부정함이 전가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결함이 여인에게 전가되었다.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가리켜 신학적인 용어로 ‘의의 전가’라고 한다. 이 여인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적실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정결하고 깨끗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 가운데 거했기에 그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실을 믿고 그에게 나아가는 자마다 주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씀하신다. 여인은 육과 영의 구원을 동시에 맛보았다.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이동하는 도중 그의 딸이 죽게 된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야이로를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이는 “처음 나를 찾아와 딸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믿음이 여전히 너에게 있느냐?”하고 물으시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질문이다. 두려움이 아닌 믿음을 택했던 야이로는 그의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는 영광을 받았다.나 역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절망의 순간에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박길웅 강도사(삼일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말씀 QT_죄 사함을 넘어 병까지 고치시는 주님
2021-01-19
마태복음 9장 1-13절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죄 사함과 병 고침 (1-8절)예수님은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문제도 해결해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본 동네(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다. 이 중풍병자에게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시기보다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그리고 이 모습을 보고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신성 모독을 하였다고 생각한다(3절).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의 악한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5절).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셨을까? 우리는 말씀의 문맥 속에서 예수님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것과 병을 고치는 것 모두다 가능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질문 이후 곧 바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6절). 그러자 병자는 고침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7절). 그 당시 죄를 사하는 것은 제사장도 가능하였지만 병자를 고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신다. 그러자 이 모든 일을 지켜본 무리들은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8절).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을 보며 ‘자기가 뭔데 감히 죄 사함을 선포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말로는 얼마든지 죄를 사한다고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죄 사함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했을 병 고침을 보여주심으로 자신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으심도 여실히 드러내신 것이다.한편, 중풍병자와 그 지인들은 병 고침이 최우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 중풍병자에게는 병 고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죄 사함임을 아셨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먼저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셨다.우리도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자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보다도 나의 더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고자하신다는 응답을 주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을 이루실 능력이 있으신 그분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는가?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 (9-13절)예수님은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세리였던 마태를 보시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신다(9절). 마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따르기로 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10절). 그런데 세리를 비롯하여 당시 죄인으로 여겨졌던 이들과 예수님께서 같이 식사하시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는 문제로 보였다(11절).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자가 아닌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함을 말씀하시며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12절).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13절).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리고 교회는 그런 예수님으로 인해 용서받은 죄인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의 문턱이 높아졌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작가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남루해 보이는 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교회에 갔다가 그 교회 장로님으로 보이는 분에 의해 쫓겨났고, 그 뒤로 교회를 가본 적이 없다고 한 이야기를 들었다.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고 소외받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마음은 무엇이겠는가? 그들을 품기 위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작성자 : 최준영 목사(품는 교회)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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