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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참 등불이신 그리스도

8월 5일 말씀 QT_누가복음 11장 27-36절

2022-08-05

누가복음 11장 27-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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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거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인간이 심판받는 이유


하나님의 은혜는 심판을 피하게 하지만, 인간의 완악함은 그 은혜마저 피해간다. 유대인들은 주님께 메시아로서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였다. 앞선 ‘바알세불’ 논쟁에서 일부 사람들이 주님께 표적을 요구하였다. 그들이 표적을 요구한 이유는 주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난하고 모함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신 주님은 본문에서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마음에 빛이 없어서 이미 주신 표적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다른 표적을 구한 것이다.


여기서 표적을 뜻하는 ‘세메이온’은 신약 성경에서 77회 쓰였다. 이 단어는 ‘신호’, ‘표적’, ‘기적’(요2:11,18,23)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당대의 많은 사람은 주님의 메시지가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떤 표적도 그들에게 보이기를 원치 않으셨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사건이었다. 요나는 후에 니느웨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므로 니느웨 사람들에게는 요나가 하나의 표적이 되었다. 주님도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 즉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사건이 메시아 되심을 보여주는 결정적 표적이 될 것을 암시한다.


왜 이토록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였던 것일까? 주님께서 표적을 안 보여주신 것도 아니고, 보여주신 표적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주님은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자꾸 새로운 표적을 요구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주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의 메시아 되시는 표적을 보고도 완악함으로 인해 또 다른 표적을 요구하였다.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였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죄인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자신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등불


말 한마디는 천 냥 빚을 갚지만,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갚는다. 마태는 이 등불의 비유를 산상 수훈 가운데 소개한다(마5:15). 누가는 표적을 구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 도중에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등불’이 비추는 대상에도 차이가 있다. 즉, 마태는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춘다. 반면에, 누가는 ‘집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비춘다. 이를 통해 마태와 누가의 독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마태는 이미 구성된 교회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마태복음을 저술했다. 그리고 누가는 아직 예수를 알지 못하거나 혹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견고하지 못한 이방인들을 위한 선교적 목적으로 기록했다.


등불을 켜는 목적은 어두움을 밝히기 위함이다. 등불은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어두움을 내어 쫓는 것은 오직 빛뿐이다. 빛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아무리 애쓸지라도 어두움을 물러가게 할 수 없다. 이 세상을 덮고 있는 죄악의 어두움도 참 빛으로 오신 주님만이 내어 쫓을 수 있다. 


나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얼마나 표현하며 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성도인 나는 어두워진 세상을 어떻게 밝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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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정영민(밴쿠버초대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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