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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너희는 이렇게 사랑하라

8월 2일 말씀 QT_누가복음 10장 25–42절

2022-08-02

누가복음 10장 25–4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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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진정한 이웃


참 이웃은 힘들 때, 곁에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웃이 아니라, 나의 섬김이 필요한 사람이 내 이웃이다. 예수님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 이웃에 대한 범위를 넓혀야 한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은 이웃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웃의 범위가 재설정 돼야 유대인들의 편협한 생각과 삶도 재설정된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사마리아인의 이웃사랑 비유는 유대인들의 뼈를 때리는 이야기다.


본문 말씀은 1세기 청중들의 세계관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사마리아인이 선한 일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율법사는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대신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답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웃이 된다는 것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는 진리를 부인할 수 없다. 자기 고정관념 속에 담긴 기피 인물이 누구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또한, 생각의 틀을 바꾸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절)라는 피해갈 수 없는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비록 빗댄 이야기이지만,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의 위선적 모습을 돌아보기에는 충분한 계기를 제공한다. 예수님을 테스트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 더 강력하고 예리한 질문으로 율법 교사에게 되돌아온다. 율법 교사는 자신이 율법을 가르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는 딜레마에 빠졌다. 깊은 곳에서부터 요동치는 양심의 가책을 어떻게 다룰지는 당사자의 몫이다. 회개하면 구원에 이르고 회피하면 죄에 구속된 채 살아가게 된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율법의 기록은 객관적이지만, 읽는 자의 해석은 주관적이다. 율법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읽는 자의 중심의 문제이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나를 폭넓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나를 열어놔야 한다. 나를 여는 만큼 자유로워진다.


진정한 섬김


자기 의가 높은 자는 다른 이의 머리를 아프게 한다.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가 베다니에 살고 있다고 요한복음(11:1; 12:1-3)에 언급된다. 그러나 누가는 그저 한마을로 언급한다. 누가의 관심은 장소보다 그녀들의 태도에 있다. 마르다는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전형적인 집주인의 태도를 보여준다. 마르다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일에 집중하지만,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 듣기에 집중한다. 둘 다 각자가 원하는 일을 선택한 것이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40절). 마르다가 화가 났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 


‘분주한지라’는 헬라어로 ‘페리에스파토’이다. ‘끌어내다’, ‘흩어버리다’를 의미하는 ‘페리스파오’의 3인칭 단수 미완료 수동태 직설법으로 ‘그녀가 끌어내졌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을 집으로 인도한 사람이 마르다 본인이다. 잘 섬기고 싶은 마음에 봉사를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일에 마음이 흐트러지고 뺏겨 예수님을 향해 불만을 토로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리아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다. 섬김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를 잃어버리고 짜증을 내버리는 마르다의 마음이 문제다.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오늘 내가 섬길 이웃은 누구이며, 어떤 태도로 어떻게 섬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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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김영광(The Story Church)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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