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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매일 큐티

복음에 반응하는 삶

7월 4일 말씀 QT_누가복음 2장 1-20절

2022-07-04

누가복음 2장 1-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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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좋은 소식 


어디에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를 얻게 한다. 세상 명령에 반응하면 죽을 길에 들어서고 복음에 반응하면 생명 길에 들어선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으로 온 유대 땅이 혼란스럽다. 그러나 목자들은 묵묵히 한밤중에 양을 치고 있다. 당시 목자는 부정하고 천한 직업이다. 유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런 목자들에게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은 의미 있는 소식이 아니다. 그래서 늘 그렇듯 목자들은 맡겨진 양을 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의 사자가 곁에 서 있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춘다. 두려움에 빠진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좋은 소식을 전한다(10절). 이 장면을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 장면과 교차 된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도 목자들에겐 하나의 소식이다. 그러나 그 소식은 목자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천사들이 전한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좋은 소식이다. 천사들이 전한 좋은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곧바로 베들레헴으로 향한다. 식민지 황제의 명령에도 반응하지 않던 목자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예수라는 ‘좋은 소식’이다. 


우리를 지배한 세상은 끊임없이 명령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고 한다. 세상의 명령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지만 우리는 반응하고 움직인다. 그러나 진짜 좋은 소식인 복음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좋은 소식에 반응한 목자들은 구주를 제일 처음 만나는 은혜를 얻는다. 이처럼 우리도 진짜 좋은 소식인 복음에 반응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나는 세상의 명령에만 반응하며 살고 있진 않은가?


흔들리지 않는 믿음


복음은 듣고 마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복된다. 천사들로부터 좋은 소식을 듣게 된 목자들은 서둘러 베들레헴에 도착한다. 그런데 구주가 태어난 곳이 보잘것없고 냄새나는 마구간이다. 가이사 아구스도가 사는 엄청난 궁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평생을 소외된 삶을 살던 목자들이다. 그러나 그 삶을 끝내줄 구주의 탄생 현장이 마구간이다. 상실감에 빠질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목자들은 조금의 주저도 없이 마리아와 요셉에게 천사들이 전한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간다(20절). 


예수께서 태어난 곳은 화려한 왕궁이 아니다. 누워 계신 곳도 말의 먹이통이다. 누가 보아도 구주가 태어날만한 장면이 아니다. 하지만 목자들은 그 장면을 오해하지 않는다. 말구유에 누워 계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뿐이다. 


성도는 좋은 소식을 듣고, 소식의 주인공이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이사 아구스도처럼 세상의 권력자인 예수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말씀을 통해 말구유에 누워 계시는 예수를 만나면 당황스러워한다. 그래서 예수를 좋은 소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목자들은 비록 천한 자들이었으나 좋은 소식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구유에 누워계신 예수를 구주로 알아볼 수 있게 했다. 그로 인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기쁨이 가득한 장면이다. 이것은 세상의 가치와 다르게 진짜 좋은 소식을 믿는 사람들이 받는 ‘만족’이라는 은혜다.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 하루에 기쁨이 넘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가이사 아구스도와 같은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서둘러 성경에 기록된 좋은 소식인, 구유에 누워 계시는 예수를 영접해야 한다.


나는 구유에 누워 계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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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 8시 말씀 QT가 현대인들이 성경을 쉽고 감동적으로 읽도록 제작한 오디오 성경 '드라마 바이블'과 함께 합니다.

    해당 본문 듣기를 클릭하면 본문 말씀을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성자 : 조병옥(옳은 하루 교회)
출처 : Next세대minis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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