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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존 파이퍼의 갈라디아서 강해

은혜가 은혜되게 하는 복음

저자명 John P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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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조정의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  출판사 개혁된실천사 / 작성일 2022-10-09

본문

율법과 은혜의 갈등 관계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들의 공의회에서 완전히 결판난 이야기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율법을 자기 의를 내세우는 데 사용한 유대교의 폐해, 율법주의는 자기중심적, 행위 중심적인 죄의 본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예루살렘 공의회로부터 이천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죄인이 구원의 문에 들어서는 것을 가로막고, 문을 통과하여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걷고 있는 의인의 풍요로운 삶을 궁핍하게 만든다. 사도 베드로 역시 공의회에서 “우리는(유대인) 그들이(이방인)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라고 담대히 선언했지만(행 15:11),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을 보고 두려워하여 그 자리를 피하는 외식에 빠진 적이 있다(갈 2:11-16).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제1차 선교여행 때(그리고 그 이후로도) 은혜의 복음을 전파한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들에게 쓴 편지로, 주된 내용은 자기중심적으로 되돌아가려는 죄악 된 성향을 꾸짖고, 율법과 은혜의 갈등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처음 전파했던 참 복음을 굳게 붙잡도록 권면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하고 선하고 온전한 뜻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지켜내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으려 애쓰는 죄인의 부질없는 교만과 외식을 말한다. 혹자는 오늘날 교회에게 갈라디아서보다는 야고보서가 필요한 게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성도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방종하며 사는 이들이 더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래 율법과 은혜는 갈등 관계가 아니다. 율법을 바르게 적용하면 그 수평적인 길은 하늘 보좌에 이르는 은혜의 수직적인 길과 맞닿아 있다. 존 파이퍼의 표현에 따르면 죄인은 율법이란 철로를 억지로 뜯어 공중으로 쌓아 올려 하늘 끝에 닿으려 하는데, 은혜 없이는 무조건 실패한다. 오직 은혜만이 우리를 하나님 보좌에 끌어올릴 수 있다. 방종은 단순히 율법을 잘 몰라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은혜를 몰라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율법의 거울 앞에 죄인은 자신의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그 적나라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은혜는 죄보다 더 크고 강력하여 죄인을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만든다. 요컨대 율법은 내버리고 율법만 취하자는 것이 갈라디아서를 통해 바울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 율법과 은혜를 각각 주어진 목적에 따라 바르게 취하자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강해>를 쓴 저자 존 파이퍼는 이 책을 통해 바로 이 부분을 강조하여 다룬다. 율법을 잘못 사용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얻으려 하는 것의 문제를 계속해서 본문을 통해 꾸짖는다. 동시에 파이퍼는 은혜를 선포한다. 어떻게든 은혜에 무언가를 더하려는 옛 자아의 지독한 성향을 가진 우리에게 하나님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 설명한다. 존 파이퍼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설교자이자 저자이다.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광은 드높여진다. 우리에게 주신 율법이 자기 자리를 찾아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은혜로 나아가게 함으로써. 그리고 은혜가 우리 삶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우리가 의지하는 유일한 의의 근거가 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른다. 교회가 이를 부추기고 있다. 교회에 와서 복을 얻으려 하는 문화를 만들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방식으로 교회의 프로그램과 활동을 강조한다.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에 따른 자발적인 반응으로서의 행위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갈라디아서를 비롯하여 서신서마다 강조된 복음의 핵심은 매주 간과되고 복음에 대한 반응으로서 행위만 강조된다. 심지어 은혜의 복음을 기념하게 하는 만찬도 거의 나누지 않는다. 결국 교회가 노골적으로 외식을 가르치거나 율법주의를 심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갈라디아 교회가 겪었던 문제를 겪게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갈 1:6).


그래서 우리에게 지금 <갈라디아서 강해>가 필요하다. 그 속에 담긴 복음의 되새김이 필요하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하는 목적과 이유를 바로잡아야 한다. 율법이 우리를 이끌어 은혜를 만나게 하도록, 은혜가 우리를 이끌어 율법을 사모하며 따르게 하도록.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은혜에 감사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존 파이퍼의 <갈라디아서 강해>를 읽는 모든 독자가 다른 복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가운데 굳건히 서서 참 복음만이 줄 수 있는 자유와 평안과 기쁨과 만족을 풍성히 누리며 살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한다.



* 이 북 리뷰는 ‘크리스찬북뉴스’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