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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에 대한 총 47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사데 교회가 주는 교훈: 시작한 일을 끝내라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David Schuman 작성일 2021-11-01

켄트 휴즈(Kent Hughes)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무려 사십 년이 넘게 목회를 하셨고, 일흔다섯이 되었을 때 이미 은퇴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잠시 비운 신학교의 공석을 메꿔주시기도 했다.내가 필라델피아에 살 때 우리는 같은 교회를 다녔고, 어느 주일인가 우리 부부는 우연히 그 목사님 부부와 나란히 앉았던 적이 있었다. 내가 아내를 소개하자 목사님은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를 물었다. “사실 이번 주가 우리가 결혼한 지 육 개월이 되는 주입니다.” 그리고 내가 던진 같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

성경은 없었지만 예수를 소유했던 베뢰아 사람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Griffin Gulledge 작성일 2021-08-16

보수적인 침례교회에서 성장한 나는 성경 지식만큼 가치 있는 기독교인의 특징은 없다고 믿었다. 주일성경학교에서 성경 암송을 하면 상을 주었고 주일 설교는 늘 성경 말씀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열심히 성경 이야기를 배울 수 있었다. 그런 환경 가운데에서 우리는 마치 베뢰아 사람과 같다는 말을 듣곤 했다.사도행전 17장 10절부터 12절까지는 베뢰아 사람을 “이것이 (바울과 실라가 설교한 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베뢰아 사람과 같다고 확신하는 것은 내게 어려서부터 몸에 배…

선으로 악을 이기는 법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이춘성 작성일 2021-01-28

세상에는 악이 가득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나 현상을 보기 어렵지만 살다 보면 자신이 악행의 피해자가 되거나 악인이 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사실 악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이 악의 노예가 되어 영혼을 팔았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도 악을 행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변명이 있다. 그렇기에 악을 행한 것에 대해서 누군가 처벌하려 할 때, 부당함을 느끼고 자신이 지은 악보다 더 큰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복을 계획한다. 반대로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에 비하여 가해자인 악인이 충분한…

사람을 판단하라, 단 예수님처럼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att Smethurst 작성일 2021-02-08

‘가장 잘못 사용된 성경 구절(The Most Misused Verses in the Bible)'을 쓴 에릭 바저허프(Eric Bargerhuff)는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참담할 정도로 오용되는 ‘인기 구절’을 조사했다.그 중에서 일등은 뭘까? 예수님의 말씀인 마태복음 7장 1절이다.“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바저허프에 의하면 이 구절을 놓고 성경을 통틀어서 압도적으로 가장 잘못 사용되는 구절이라고 주장한 이도 있다고 한다.예수님이 의미한 것이 아닌 것그럼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걸까? 예수님이 이런 …

애통과 위로 사이 성경 속 크리스마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Thomas S. Kidd 작성일 2020-12-23

블랙 프라이데이를 시작으로 해서 우리가 소비로 행복을 추구하는 크리스마스와 많은 이들이 실제로 경험하는 크리스마스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은 분명 그 차이를 경험했을 만한 나이일 것이다. 이제 크리스마스를 축하는 자리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기리는 일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재정 상태로는 크리스마스가 스트레스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교회에 앉아 있는 많은 이들(교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은 이상화 된 크리스마스와 현실의 슬픔, 상실 혹은 불안 사이에서 오는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

야고보서가 기독교적인가 의심하는 당신에게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ichael J. Kruger 작성일 2020-12-20

신약성경 안에는 많은 책이 들어있다. 그 모든 책이 다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 속 모든 책을 다 열심히 읽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인은 주로 바울 서신서(특히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복음서(요한복음 중심으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상 몇몇 책들, 예를 들어 요한3서와 같은 서신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이러한 경향을 고려할 때 왜 특정한 책이 신약성경에 포함되었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덜 유명한 책들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걸까? 이런 질문은 야고보서에 이르면 특히 더 심각해…

세무원 마태가 전하는 크리스마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박용기 작성일 2020-12-16

로마제국 세무원이었던 마태는 숫자 계산에 능숙했다. 그는 숫자 14를 사용해서 성탄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마 1:1-17)를 의도적으로 몇 사람을 누락시키면서까지 14세대, 14세대, 14세대로 구분했다(17절). 마태가 숫자 14를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성탄의 기쁜 소식을 찾아보자. 스스로 존재하는 구원자족보는 한 사람의 뿌리와 근본을 보여준다. 족보의 첫 줄에는 뿌리가 되는 조상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로’로 시작한다. 헬라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다윗(의아들)’ ‘아…

욕설, 분노, 살인: 결코 작은 죄는 없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이춘성 작성일 2020-11-27

산상설교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윤리(마 5:21-22)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e Girard)는 인류는 폭력을 다양한 형태로 확장해 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 안에 있는 잔인한 폭력의 실체를 십자가를 통해 고발하였고, 이러한 신의 죽음은 인간 폭력의 부당함을 세상에 폭로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르네 지라르의 십자가에 대한 해석은 전통 교리와는 결이 다르지만,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 나라에서 제거해야할 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교묘하게 포장된 자기중심성의 폭력이다. 이제부터 …

신약성경엔 삼위일체 설명이 없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Greg Lanier 작성일 2020-11-26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그 어떤 비유도 다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어정쩡한 비유를 썼다가는 오히려 의도치 않게 오래 전 이단들이 저질렀던 오류에 빠지기 딱 좋다. 주변에 곧 안수를 받을 후보자가 있다면 한번 물어보라. 행여 우연이라도 당신이 “하나님은 세 분으로 구성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주변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또는 다섯 살짜리 자녀가 던지는 “하나님하고 예수님하고 똑같아요?”라는 질문에 어떤 식으로 정통 교리를 반영한 대답을 할 것인지, 주변에 아는 부모에게도 한번 물어보라. 이런…

세상 속 그리스도인의 “더 나은 의”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이춘성 작성일 2020-10-23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마태복음 5-7장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산상설교’로 불린다. 산상이란 명칭이 붙은 것은 이 설교가 산 위에서 행해졌기 때문이다. 5장 1절에는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만 보면 예수님만 산에 계시고 무리와 제자들은 산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핑크(Gerhard Lohfink)와 같은 신약학자들은 예수님이 산으로 올라가셨고, 무리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