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상세검색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총 57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신은 알고 계셨나요?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D. Blair Smith 작성일 2019-10-19

대중적인 크리스마스 노래인 “마리아,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Mary, Did You Know?)는 마이클 잉글리시(Michael English)가 1991년에 처음으로 부른 곡이다. 이 드라마틱한 노래는 발표 이후로 꾸준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 가사를 보면, 장차 폭풍을 잠잠케 하고 죽은 자도 살리게 될 한 아기의 어머니(곧 마리아)에 대해 우리가 궁금하게 여길 만한 물음들을 다루고 있다. 이 노래에서 연속되는 그 물음들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모아진다. “마리아, 당신은 그 아기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었나요?”이…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전재훈 작성일 2019-08-17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일로 인해 감옥에 간 이야기가 나온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자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 나타났다.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옥문이 다 열리며,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 것이다. 간수는 죄수가 다 도망한 줄 알고 칼을 뽑아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소리 질러 만류하자 그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묻는다. 이 때 바울이 한 말이 성경의 유명한 구절이 된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예수님의 아름다운 눈물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akoto Fujimura 작성일 2019-09-28

요한복음 11장의 예수님이 우시는 장면은 매우 인상 깊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는 마리아와 막달라로 인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 예수님의 눈물은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의 구체화된 표현이다.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요 11:4)고 예수님은 베다니에 가기를 연기하셨고, 도착해서는 마르다에게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25절)이라고 알려주셨다. 만일 그분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베다니에 왔다면, 그가 정말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는 메시아가 사실이라면, …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놀라운 사랑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John Piper 작성일 2019-10-12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보여주신 사랑은 그 고난을 스스로 받기로 의도적으로(intentionally) 선택하신 매우 의식적인(conscious) 행위였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요일 3:16). 그리스도가 자신의 목숨을 의도적으로 버리셨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우리를 위함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갈보리 길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내…

압도적인 복음의 독특함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Jared C. Wilson 작성일 2019-08-03

예수님에 대해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 스스로가 그 사실을 말했다(마 12:30). 따라서 예수님이 유대 땅을 다니면서 전파하고 가르치고 또 사역을 행할 때 그를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양극화 현상이 일어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찬 경외감으로 그를 대했지만, 또 어떤 이들은 불타는 증오로 그를 맞았다. 현대 사상가들이 흔히 생각하듯 예수님이 그냥 듣기 좋은 가르침을 전했던 선한 도덕 선생이었다면 이런 양극화된 반응이 일어났을 리 없다. 아니, 예수님은 결코 그렇게 안전한 가…

하나님도 고난을 받으시는가?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atthew Barrett 작성일 2019-07-13

스프로울(R. C. Sproul)박사에 따르면, 생각은 결과를 초래한다. 20세기를 뒤돌아보면 심각한 결과를 야기했던 생각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도 고난을 받으신다는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은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치르며 쪼개지고 고난으로 점철되어 버린 이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몰트만은 나치 수용소의 잔학 행위들을 오랫동안 깊이 관찰했다. 유태인들이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며 울부짖었을 때 몰트만은 하나님은 바로 거기 계시며 함…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Jonathan Pennington 작성일 2019-06-29

기독교 신앙 실천에 있어서 본질적인 면을 꼽으라면 무엇을 포함시키겠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 세례는 가장 우선적인 목록에 올라갈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가서 사람들을 제자 삼고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마 28:18-20). 그것은 또한 오순절에 있었던 초대 교회 복음 설교의 핵심이기도 했다(행 2:38). 간단히 말하면, 그 시기와 방식이 어떻든지, 세례를 받는 일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이다.하지만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에는 좀 놀랄 수도 …

'작음'의 참 의미
[교회] 작성자 by Paul Wells 작성일 2019-06-05

가난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복음서의 내용은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교회의 선교 정책에도 영향을 미쳤다. 점점 커지는 세속주의의 위협 속에서 서구 기독교인들은 규모적으로 작은 교회가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이에 따라 선교 정책도 소규모 노선을 따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이는 복음의 전파를 오히려 저해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크고 작음을 논할 때 우리가 정말 세밀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규모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진정한 작음'이다. 예수님에게서 참된 작음의…

십자가,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사랑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전재훈 작성일 2019-06-22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나와 당신이 죄로 인하여 영원한 멸망에 처하지 않도록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 그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는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고 또한 의롭다 여겨지게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자녀가 되었다.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시는 분이면서, 또한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시기에 죄에 대한 분명한 심판을 정해 놓으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 후, 성경의 이야기는 놀라운 반전을 맞이한다. 예수님께서 사라지신 것이다. 이에 대해 누가는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보는데서 올려져서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되셨다”(행 1:9)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 천사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려지셨다”라고 증언한다(행 1:11).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이 반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의 승천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은 이 사건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