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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총 82개의 게시물이 검색되었습니다.
십자가로 가서 거기 머물라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David Mathis 작성일 2020-02-08

어떻게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것만 찾는 시대에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던(행 17:21) 옛 아테네 사람들과 같아지고 있다. 어쩌면 이미 그들을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IT와 디지털 혁명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즉 문자 그대로 “뉴스”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오래된, 영광스럽도록 오래된 진리들을 붙든다. 이 진리는 뉴스에 탐닉하는 이 시대와는 맞지 않는 것이…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Albert Mohler 작성일 2020-01-11

러시아의 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가 쓴 ‘백치’(The Idiot)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기독교적 취지와 신학을 깊이 반영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 이야기에서 다소 이상해 보이는 개념을 상정한다. 곧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개념이다. 흥미로운 아이디어이긴 한데, 기독교의 사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이에 대해 두 가지 성경 본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사야 53장과 시편 27편이다. 먼저 이사야 53장은 메시아를 묘사하며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

복음중심성은 강단에서 드러난다
[목회] 작성자 by Yancey Arrington 작성일 2021-03-13

많은 개척 교회들이 '복음중심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하지만‘그 말이 정확히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교회 개척자가 매 설교마다 예수님을 언급해야 한다는 말인가? 예배마다 구원으로의 초청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는 던져야 한다.개척된 교회가 얼마나 복음중심적인지 '테스트' 해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강단을 관찰하는 것이다. 어떤 교회가 홈페이지에 '복음중심적'이라는 말을 자주 썼더라도, 그 교회가 복음의 중심성을 진정한 가치로 여기는지, 아니면 그저 유행을 따르는 것인지는 주일…

말씀과 긍휼의 사역은 뗄 수 없는 친구!
[선교] 작성자 by Cynthia Ruble 작성일 2019-12-05

18년 전 일본에 선교사로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내 발걸음의 목적을 명확히 해 두어야 했다. 그곳의 비기독교인들은 내 사역의 성격과 의도에 대해 매우 궁금해 했다. 한 일본인 크리스천은 심지어 내게 “일본에는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스도께로 사람들을 회심시키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면, 나의 일은 인기가 없는 일임이 분명했다. 우리의 전도 활동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당신을 회심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섬기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어…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순종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John Piper 작성일 2019-11-30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회복된다고 가르친다(롬 5:19; 고후 5:21; 롬 4:6, 11: 10:3). 이 가르침은 그분이 공생애 마지막 순간, 십자가에서 고통당하고 돌아가신 사역만으로는 우리가 의롭다 칭함을 받거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내용을 함축하는가?이런 질문은 칭의의 원인을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본문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본문은 이러한 것이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

십자가 빛 아래에서 사는 삶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John Smith 작성일 2019-11-02

많은 개혁주의 신자들처럼 필자 역시 내 자신의 구원에 관해서 뿐 아니라 이후 이어지는 삶에서 은혜의 교리를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찬양한다. 내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마침내 알게 되었던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오래 전에 내가 중생했던 것도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닌(요 1:13) 나를 사랑하시고(엡 2:4) 오직 그리스도만 믿는 믿음만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로 나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2:8)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

복음과 율법은 모순되지 않는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Tim Keller 작성일 2019-09-21

나는 칼럼니스트나 학자 또는 언론인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대며 기독교인이 일관되지 않다고 비난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규범 중 일부만 취사선택하여 따른다.” 가장 흔히 듣는 비난은 이런 말이다. “기독교들은 구약성경의 많은 내용을 무시한다. 가령 날고기나 돼지고기 혹은 생선을 먹지 말라고 한다든가 안식일을 어긴 죄에 대해서는 처형하라고 한다든가 아니면 두 가지 종류의 직물로 짠 옷을 입지 말라고 한다든가 하는 그런 내용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동성애에 대해서는 정죄한다. 그러니 자신들이…

형벌적 대속론을 정립해준 세가지 사실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Daniel Hames 작성일 2019-09-14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메시지를 귀에 못이 박히게 강조하는 복음주의 교회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자랐다. 여름 수련회, 휴일 특별 성경공부, 그리고 주일학교 토론회 등의 모든 모임에서 핵심 메시지는 언제나 예수님의 십자가였다. 나를 대신해서 나의 죄와 내가 받아야 할 형벌까지 대신 짊어지고 예수님이 죽으셨다. 그 결과 이제 나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고,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신학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면서 또 내 믿음을 점검하면서,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던 믿음에 대해서 나는 점…

십자가, 하나님의 제단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Donald Macleod 작성일 2019-08-10

모든 신자는 속죄 신학을 믿고 있다.신앙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구세주를 믿는 것이며, 그 속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절대 그 신앙에 이를 수 없다. 우선 십자가에 죽으신 분을 아는 것이 신앙이라면, 그분이 왜 죽었는지를 아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분은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 하지만 신앙은 그러한 기초 지식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신앙은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매일의 삶 속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더 깊이 추구하며 일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가장 먼저 이해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속죄를 …

예수님의 아름다운 눈물
[성경과 신학] 작성자 by Makoto Fujimura 작성일 2019-09-28

요한복음 11장의 예수님이 우시는 장면은 매우 인상 깊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과 이를 슬퍼하는 마리아와 막달라로 인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 예수님의 눈물은 진실과 선과 아름다움의 구체화된 표현이다. 예수님은 왜 우셨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요 11:4)고 예수님은 베다니에 가기를 연기하셨고, 도착해서는 마르다에게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25절)이라고 알려주셨다. 만일 그분이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하여 베다니에 왔다면, 그가 정말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는 메시아가 사실이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