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주의, 그 위험한 사상을 알고 대처하라

과학, 과학주의 그리고 기독교

저자명 James Porter Mor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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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봉현 목사(나무숨교회) /  작성일 2019-07-01

본문

“과학주의가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고 있다.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


목회를 하다 보면 교회를 위축시키는 많은 상황과 사상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의 내부적인 문제와 경쟁적인 사회구조, 다원주의, 세속주의 등을 극복해야할 과제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나에게 그보다 더 큰 숙제가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저자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믿음을 꺼리는 이유가 신앙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 시대의 상식이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앙 갖기를 꺼리고, 이 상식에 물든 우리의 자녀들은 믿음을 부끄러워한다. 저자의 이 지적은 아프고 명확하다. 다른 많은 문제들이 우리에게 있지만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가 이것일 수 있다.


이 일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사람들은 왜 믿음을 비이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과학의 발달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과학은 이것과 상관없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 거의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학의 95%는 기독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메탄의 분자에 들어 있는 수소 원자가 네 개든 열네 개든 기독교와 상관이 없다. 과학의 3%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추가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빅뱅 이론과 열역학 제2법칙은 우주에는 시작이 있다는, 성경만이 가르치는 진리를 과학적으로 확인해준다. 남은 2%는 기독교 신학과 대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나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상관이 없는 지엽적인 본문 해석에 대한 부분이다. 그러니 기독교와 과학은 적당한 거리를 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기독교가 과학을 부정하지 않고, 과학이 기독교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지엽적으로 기독교가 과학의 윤리적인 측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과학이 어떤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은 서로 그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풀어가면 되는 부분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과학주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과학과 과학주의를 분명히 분리해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과학주의는 ‘지식은 자연과학의 세계에 한정한다’라는 철학이다. 이것을 철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오직 과학에 의해 검증될 수 있는 것만 참일 수 있다’라는 진술이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근거 없는 주장이다. 과학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진술로부터 출발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코넬대학교 생물학과 윌리엄 프로빈(William Provine) 교수는, “어떤 종교의 신도 없고, 목적도 없고, 목적 지향적인 힘도 없다. 죽은 후의 삶도 없다. 내가 죽을 때, 나는 죽음의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한다. 그것이 나의 끝이다. 윤리의 궁극적인 기초도 없고,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도 없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 역시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 월리엄 교수의 주장은 과학주의의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 주장이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목적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옳음을 설득하려는 목적으로 이 논문을 썼고, 윤리적 기초와 자유의지의 실재를 부정하지만, 이 자신의 깨달음을 전해야겠다는 윤리적 의무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이 과학주의의 모습이다. 과학자들이 가지는 종교적, 철학적 신념이 마치 과학적 실험을 통해 증거를 획득한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중은 여기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 의사의 영역으로 들어가 환자를 수술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의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니 그럴 권리가 없다고 모두 말할 것이다. 단지 생물학만 전공한 사람이 윤리, 종교, 인생에 대한 답을 말한다면, 모두가 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의 권위를 과도하게 받아들여 그가 인생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그들이 그렇게 비판하는 기독교가 빠졌던 함정이다. 종교의 시대에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이 종교적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과학적 진리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판을 열어 천동설과 지동설 중 무엇이 맞는지 판단하려고 했다. 신앙적인 진리의 영역에서 권위자라도 과학적 진리의 영역에서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고, 대중은 그 권위에 속아 그들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이와 같은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과학의 시대에 과학자들은 자신이 과학적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진리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재판을 열어 종교, 철학, 윤리, 인생에 대해서 판결을 내린다. 과학적 영역에서 권위라고 해도 종교적 영역에서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대중은 그 권위에 속아 그 판단을 받아들이고 있다.


저자는 과학의 한계를 이해할 때, 과학주의의 환상에 빠지지 않는다고 권면한다. 과학주의자들은 과학이 결국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데이터가 부족해서일 뿐이고 어느 지점에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영역은 처음부터 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지 않을 영역을 가지고 있다. 어떤 것은 원천적으로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우주의 한 측면을 설명할 때 다른 측면을 활용한다. 과학적 방법이 사용되려면 이미 우주가 존재해야 한다. 과학은 자연법칙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자연법칙에는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법칙이 있다. 과학은 그 법칙의 기운을 설명할 수 없다. 과학에서 그 법칙은 원래 존재하는 것이다. 과학은 우주의 미세 조정을 설명할 수 없다. 우주에 존재하는 다양한 상수들, 즉 임의적이고, 물리적인 질량들로 설명되는데, 이것은 자연법칙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원초적인 사실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과학은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의식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도덕적, 합리적, 심미적 기준을 설명할 수 없다. 우리는 과학의 한계를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과학은 과학의 기반에 되는 자연법칙과 미세 조정을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을 존재하는 전제로 받아들인다. 과학은 우주 이전과 죽음 이후를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인간의 의식, 내적 가치의 존재,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과학에게 인간의 인격적 가치, 모든 진리의 기반에 되는 진리, 모든 것이 시작되기 이전의 기원, 모든 것이 끝난 이후의 시작에 대해 질문해서는 안되고, 과학은 그것이 대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문학가에게 수학을 묻는 것이고, 수학자에게 시를 묻는 것이다. 과학에게 이런 것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순간 과학은 그런 것은 없다고 결론 내린다. 과학주의자들은 죽음 이후도 없고 우주 이전도 없으며, 인간의 의식, 내적 가치, 인생의 목적, 인생의 의미가 모두 없다고 말한다.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니, 그것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과학에 묻지 않아야 하는 것을 묻지 않을 때, 과학이 대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을 무시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아도 이성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아도 합리적인 믿음일 수 있다. 인생, 삶의 목적, 가치, 자유의지, 종교, 철학, 윤리, 사랑, 정의, 창조, 죽음, 천국 등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는 것이 이성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다.  과학자가 하는 말이면 그것이 과학과 상관없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모두 맞다고 믿던 원시적 과학 우상의 시대에 사용되던 생각이다. 우리가 이렇게 과학주의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나와 우리의 신앙을 바로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과학주의의 문제를 합리적인 설명을 통해 지적하고 기독교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이 책은 자연과학과 철학, 신앙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를 통해 가능한 설명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시대의 상식으로 믿음이 흔들리는 다음 세대들이 꼭 읽어야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