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초월적 사랑의 증거, 예수그리스도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저자명 김남준

페이지 정보

작성자 by 박희찬 목사(별내들풀교회) /  작성일 2019-05-06

본문

저자는 성경 전체의 핵심을 “구약의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향해 달려오고 있고, 신약의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달려 나옵니다”라고 정의한다(12-13). 책의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저자가 집중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다. 저자는 제1장부터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라고 묻는다. 그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것은 현재의 교회들이 본질적인 사명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대신 복음의 내용을 대중화하는 방안을 강구하는데 열심을 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두면, 언젠가 그들의 마음에 미처 거부할 사이도 없이 진리가 스며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쓴 약을 먹일 때, 달콤한 꿀이나 설탕을 듬뿍 첨가해서 함께 먹이듯이 말입니다”(30).


저자는 조국교회(용어에 대해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음)가 선명한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하기보다는 복음을 그저 대중화하려고 노력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현실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그는 이사야 53장 2절을 인용하며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메시아를 소개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책을 읽는 독자에게 엄중한 선포를 한다.


“저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세상의 눈으로 흠모할 만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지 마십시오. 세상이 볼 때에 고운 풍채와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메시아를 찾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당장 여러분 앞에 나타나신다 할지라도 그분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45).


그렇다. 세상은 좀 더 주목받을 만한 화려함과 능력을 요구한다. 실력보다는 외모가, 내용보다는 포장이 더 중요하다. 신앙인들이 예배당을 선택하는 기준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오죽하면 ‘건물이 전도한다’라는 조롱이 나오기까지 할까? 그런 점에서 저자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세상의 안목으로는 전혀 주목할 거리가 없는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그리스도가 초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어쩌면 죄인인 우리의 초라함을 비춰 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위해서가 아닐까?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께 주목 받을 만한 일을 하거나 아름답고 놀라운 성과나 업적을 이루어서가 아니라, 그저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일방적인 사랑으로 얻게 된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 세상의 부와 명예나 권력은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저자는 신앙인들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62). 그리고 그러한 말씀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이심을 증언할 자들이 바로 당신, ‘독자’라고 말한다(79). 신앙인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단순히 육신이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외면할 수 없고 그분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83). 


이처럼 저자의 글에서는 쉽게 읽을 수 없는 무게감이 느껴진다. 만약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적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는 충분하고 온전한 독서를 한 것이 아니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물론 그의 설교에 대한 비평도 있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정용섭 교수는 ‘속 빈 설교 꽉찬 설교’라는 책에서 저자의 설교에 대해 “그의 설교는 신학교 강의실을 방불하게 하는 진지한 내용으로 시작되며, 위트도 넘치고, 때로는 웅변가의 호소력도 엿보인다”라고 평했다. 예배 시간마다 장시간 동안 진지하게 이어지는 그의 설교 내공을 인정하기도 한다. 반면, 그의 설교를 총평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청교도 신앙의 영적 결벽증에 의해 포위되었다”라고 비판적 견해를 내기도 한다. 나도 그의 책에서 느꼈던 두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고 싶다. 


첫째, 현실성의 문제다. 이 설교집을 읽으면 말씀이라는 text, 그리고 말씀을 믿는 신자인 동시에 선포하는 설교자로 살아내야 하는 저자의 삶의 context 사이의 긴장이나 거친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 책에 있는 저자의 글을 인용해 보자.


“거룩함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죄된 행위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성별된 존재가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됨으로써 죄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영적으로 구별되는 것을 말합니다”(180).


저자는 거룩함을 구별이라 말하지만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 제7장 대속의 비밀, 하나님의 지혜 부분에서도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저자는 “내 눈물로 정한수 삼아”로 시작되는 시를 소개한다(149). 결단과 의지는 보이지만 실제 삶에선 어떻게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물론 제8장 십자가와 일사각오 신앙에선 “우리는 사소한 문제만 생겨도 쉽게 요동하고, 조금만 시련이 와도 금세 내면세계가 황폐해집니다. 우리의 입술은 십자가의 사랑을 말하고, 우리의 눈가는 대속의 진리 앞에 촉촉이 젖어들지만, 삶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다시 불순한 집착과 자기 사랑을 버리지 못합니다”(161)라고 큰 개념의 현실문제를 언급하긴 하지만 적용 부분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둘째, 이분법적 논리전개다. 저자는 ‘세상’이란 개념을 ‘하나님’과의 대척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글을 인용해 보자!


“오늘날 자기의 욕심을 따라 탐욕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 못지않게 탐욕스럽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모두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현세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196).


“이 지상에서는 주님과의 사귐이 자주 끊어지는 것을 경험하지만, 이제 그 문을 지나고 나면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와의 찬란한 교제의 빛 아래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결핍에 시달리며 불완전한 것들에 연연하지만, 이제 그 문을 지나 거룩한 천상으로 들어가면 영원하고 완전한 것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팍팍한 현실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자로 살 수 있습니다”(235).


정용섭 교수가 지적한 영적 결벽증까지는 아니라도 일주일 내내 교회가 아니라 매장에서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혼재된 곳에서 떡 카페 영업을 하며 자비량 사역을 하는 나 같은 목사에게 저자의 설교는 이분법적 접근으로 느껴진다. 물론 나만의 편견일 수 있지만, 가끔 현실적이고 불완전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에 연연해 살아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고, 구조적으로 불편한 일을 해야만 생계가 가능한 이들의 처지에서 좀 더 접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반대로 나는 저자의 책이 지닌 탁월한 장점을 언급하고 싶다. 


첫째, 저자의 설교는 철저히 말씀 중심이다. 항간의 유명하다는 설교자들의 설교는 본문과는 상관이 없는 신변잡기와 개인의 경험과 자랑 일색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에게서 이런 변죽만 울리는 엉뚱한 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그의 설교는 읽기가 불편하지만, 자성을 촉구한다. 엄중하나 결단을 요구하고, 진지하지만 다그치지 않는다. 설교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주인이 되신다. 그래서 오히려 문자로만 소통되는 저자의 글은 저자의 목소리, 분위기, 열정을 반감시킨다. 실제로 그의 설교는 현장에서 함께 가슴을 치며 들어야 하는 설교다.


둘째, 저자의 설교는 논리적 전개가 탁월하다. 설교에 붙어 있는 원어와 자료 각주는 생경하다. 그만큼 저자는 오랜 시간 연구하고 자신의 주관적 지식과 경험이 아니라 철저히 객관적이고 검증된 설교를 한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 설교를 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단순히 저자의 골방 기도의 결과물이 아니므로 더욱더 울림이 강하다. 나는 저자의 책을 통해 아주 오랜만에 설교자가 아니라 청중으로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게 되었다. 그래서 저자를 만나게 된다면 흔한 인사를 한마디 하고 싶다. “목사님! 은혜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