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배우는 자비 사역

북리뷰_여리고 가는 길

저자명 Tim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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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봉현 목사(나무의숨교회) /  작성일 2019-01-14

본문

어떤 설교는 본문을 읽는 순간 설교의 전개와 결론이 예상된다. 그 예상이 듣는 태도를 느슨하게 한다. 어떤 책은 서문을 읽는 순간 전개와 결론이 예상된다. 그 예상이 읽는 태도를 느슨하게 한다. 이 책의 처음도 그랬다. 서론을 읽는 순간 전개와 결론이 예상됐다. 선한 사마리아인 본문이라면, 결국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이미 그 결론에 동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지점에서 이 책을 읽어나갈 이유를 잃어버리고 책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놓아서는 안 되는 책이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상하는 지점을 향해 가지만, 그 지점을 지나 더 멀리까지 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주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주제를 훨씬 더 높고, 깊고, 넓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알지 못했다는 내용을 깨닫게 해준다.


저자는 선한 사마리아인 본문을 “자비 사역”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저자가 이 단어에 가득 담은 의미를 이해하고 같이 누렸으면 좋겠다.


먼저 우리가 자비 사역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가 자비 사역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제시한다. 저자는 복음 안에서 이 문제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자아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죄의 결과를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인간의 영혼만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해석은 자비 사역의 문제를 지엽적으로 생각하거나 무시했던 복음주의 신자들에게 중요한 도전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자비 사역은 전도 사역만큼이나 중요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은혜받은 자”라는 정체성에서 찾는다. 복음은 가난한 우리를 하나님의 자비로 부요해지게 한다. 그러니 은혜를 받은 자는 자비를 경험한 사람이고,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게 된다. 자비는 우리가 완성해야 하는 사명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마음이기도 하다. 자비를 사명으로만 이해하면, 당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비는 당위이기 이전에 마음이다. 하나님께 받은 자비로 인해 타인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은혜 받은 자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이 가져올 수 있는 당위적 오해를 해소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지금까지의 내용에 동의하더라도 이 사역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여기서 우선, 자비 사역에 동의하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참여할 수 없다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저자는 사회가 제시하는 평균적인 삶이 아니라 단순한 삶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한다. 자비의 사역을 배제하더라도 성경은 우리에게 검소와 자족을 요청한다. 우리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대부분은 자비의 사역을 위한 여유를 갖게 된다. 저자는 부자인 그리스도인은 있어도 부자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없어야 한다고 도전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이 선량하지 않기 때문에 돕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저자는 향락에 빠진 게으름으로 가난해진 사람을 무조건 구제하여 그들이 악한 삶을 유지하게 하는 일은 옳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 이유로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태도에는 반대한다. 모든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고, 삶에 대해 잘못된 자세를 가진 사람은 그 자세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도움을 멈춤으로써 잘못된 자세에 도전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를 들어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는 이유로 삼을 수 없다고 도전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가 선한 이웃이 되어 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한 훈련과 실천의 과정이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일정한 재정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선한 이웃이 되는 일은 지속적인 학습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이다. 이 과정을 실천할 때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사실 이 부분이 이 책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저자가 자비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고민하고, 실천하며, 결과를 만들어 갔는지를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완전히 압도되었다. 저자의 실천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얼마나 무관심했고, 준비되지 않았으며, 실천하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나는 자비에 관한 성경적인 해석과 담론을 이해하고 있었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고 있었다. 성경 해석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외면한 레위인의 자리에 나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사역을 해나가는 과정이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보니, 나야말로 그 레위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저자는 개인이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가령,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이 되라고 설명한다. 이웃이 되기 위해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푸는 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이웃의 어려움에 대해 겸손하고 정당하게 도움을 주는 일에 대해 설명한다.


더 나아가 교회가 선한 이웃이 되기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이 무엇인지도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는 막연하게 교회가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웃을 돌보는 사역에 부족한 교회에 소속된 개인이 어떻게 교회를 통해 자비 사역을 실천해가야 할지를 구체적인 매뉴얼로 제시한다. 교회 안에서 자비 사역에 대해 동기를 부여하고, 동기가 부여된 친구들을 모으고, 그들을 조직화하고, 기금을 조성하고, 봉사은행을 설립하여 인적 자산을 조성하고, 연계시스템을 만들고, 교회적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리고 미션 그룹을 구성하는 방법과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주시해야 한다고 도전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복음의 사회적 차원과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 대해 무지하며, 중산층을 중시하는 교회가 계층 감금상태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저자는 어떻게 교회 공동체가 사회적 차원의 자비 사역에 참여할지에 대해 그 구체적인 예를 제시한다.


이 책은 탁월하다.


자비 사역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점이 탁월하다. 이것은 자비 사역의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하게 해준다. 이 사역에 사고적 걸림돌을 제거해준다는 점이 탁월하다.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한다. 약한 사람의 악함에 실망해서 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에게 그 사고의 함정을 넘어 자비 사역에 동참하도록 설명하는 점에서 탁월하다.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막연하게 주변에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사회를 향해 어떻게 자비 사역을 할 것인지 실재적인 가이드를 준다는 점이 탁월하다. 의무가 아니라 소망을 준다는 점이 탁월하다. 가난한 사람을 돌봐야 하는 의무라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망으로 자비 사역을 제시하는 것이 탁월하다. 그리고 자비의 사역이 단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점, 나의 세상을 보는 관점, 생활을 방식, 관계의 태도를 변화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 탁월하다.
 

책을 덮으면 숙제가 남는다.


한국 사회의 가난을 공부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저자가 말한 것은 미국 사회에서 말한 미국 교회의 예시이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과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가난이 무엇이고 그것에 대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세상을 공부해야 하는 숙제가 남는다.


이 책을 통해 자비의 사역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으며, 어디선가 그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감동하고, 나도 그 사역에 동참하고 싶은 동기부여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