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삶을 위한 신학 원리

정치적 제자도

저자명 Vincent E. Bac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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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김병완 목사(우리가꿈꾸는교회) /  작성일 2021-04-18

본문

“그리스도인은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신실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으로 작성되었다. 빈센트 바코트(Vincent E. Bacote)는 미국 내 흑인 가정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인권을 강조하는 민주당을 선호하였다. 후에 인권 운동의 한계를 발견하고, 성경적 생명 윤리에 기초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정당 쪽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지만, 그의 가족과 친구들, 동료 목회자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입장이 나뉠 수 있는 것을 인정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가지 정당만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겸손하게 인정했다.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만약 참여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투표를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행사해야 하는가? 민주 사회가 아닌 곳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의를 실현해갈 수 있을까? 짧은 책에 이 모든 것을 넉넉히 다루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신학적인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영역에 참여하기


오늘 날 한국 교계를 들여다보자. 정치적으로 분파가 나뉘어져 대립이 심각하다. 누가 더 성경적인가? 양쪽 모두 각자의 성경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 결과 그리스도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무엇이 옳은가? 저자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공부하며 우리가 정치를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일반 은총 교리’에서 찾는다.


‘창조 세계(creation)’와 ‘세상(world)’를 우리는 종종 혼동한다. 그러다보니 창조 세계에 참여하는 것도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 속에서 사는 것으로 오해한다(성경에서 ‘세상’이라는 단어는 창조 세계라는 의미에 더해 ‘세상의 체제’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뜻을 아우른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The Great Commission)은,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지상 명령과 결을 함께한다. 창세기 1장 26절과 28절은 우리에게 창조 세계를 경작하라고 최선을 다해 관리하여 세상이 번영하게 하라고 명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형상을 드러내는 가장 핵심적인 활동은 최선의 “다스림”을 펼치는 것이다. 저자는 “타락이 지상명령에 초를 친 것이 사실이지만, 창조 질서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은 유효하다”고 말한다. 일반 은총 교리는 세상을 사탄이 지배하는 곳으로 여기기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로서 진지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우리들은 창조 세계의 청지기다. 그의 말처럼 “삶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영토”이다.


우리의 정체성


저자의 정치적인 입장이 바뀐 것처럼, 우리는 종종 혼란스럽다. 변화되는 정세와 흔들리는 소신 속에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할까? 저자가 성경적인 관점으로 제시하는 일곱 가지 정체성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형상”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서로의 지위가 동등하며 상호 존중해야할 근거를 제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된 타인을 존중하고, 세상을 경작함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을 섬긴다.


“아브라함의 자녀”
오늘 날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은 이방인 출신이다. 우리는 이방인이면서 동시에 아브라함의 상속자다(갈 3:6-29).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또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세상에 구원의 축복을 전해야 할 선택된 백성이라는 것과, 다른 모든 나라에 속한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공동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언약의 백성”
아브라함의 유업의 일부로 우리가 언약백성이 되었다면, 이것은 동시에 우리에게도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따르는 자”
예수를 따르기로 선택한 자들은 그분을 탁월한 선생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삶의 주인(Lord)으로 보았다.


“이방인과 순례자”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기에 우리가 현재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가 아닌 것들에 대한 충성에 있어서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시사한다.


“교회”
교회는 다른 세상의 공동체와 구별된 모습을 통해서 “대안적”인 삶의 양식을 제공한다.


“시민”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에게 바울이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에 대한 표현을 삼은 것은, 우리가 충성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을 강하게 대비하고 있다.


공적인 거룩함을 향하여


어떻게 하면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닮은 공적인 삶을 나타낼 수 있을까? 저자는 공적인 “거룩함”을 말한다. 흔히 거룩하다는 말을 우리는 내면적인 것,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무언가를 금하고, 절제하는 것을 거룩해지는 행위로서 여기나 우리의 거룩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말과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성령님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식으로든 원수에게 사랑을 보이도록 부름 받았다. 진리에 대한 헌신과 불의에 대한 분노조차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그들을 존중해야 할 의무를 저버릴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에 성령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성품을 바꾸시며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뤄 가신다.


우리 자신이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능력에 복종하면 거룩함은 경건한 마음의 골방을 넘어 가정과 학교, 문화와 정치의 영역으로 뻗어가게 된다.


경기를 계속하기


저자의 정치적 관점이 바뀐 것에는 민주진영에 크게 실망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세상을 향해 공적인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을까?


저자는 먼저 고통을 직시하며 애통하라고 말한다. 성경적인 애통은 우리 앞에 놓인 절망적인 실상을 하나님 앞에 털어놓는 울음이다. 애통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며, 우리의 절망을 인정하면서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게 도와준다.


또한 기대를 조정하라고 말한다. 복음주의권의 지형이 후천년 설에서 전천년 설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 것처럼 역사의 마무리를 누가 쓸 것인가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다. 저자는 “우리가 할 일은 역사를 종결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되 우리의 불완전한 노력을 그분의 종결 행위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십자가로 향했듯, 공공선을 추구하는 길에는 고난이 따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왜 그럼에도 경기를 계속해야 하는가? 저자는 우리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명령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지상 명령을 주셨고, 그 명령을 거두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후기


개인적으로 이 책이 마음에 든 것은 현실 정치를 아울러 세상의 문화와 공적인 모든 영역에 우리가 나서야할 신학적인 기초를 제공한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아쉬운 것은 그것을 적용하는 부분에서 소극적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2번째 챕터 후반부에 모든 개인은 자신이 속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며,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에서는 투표나 공직에 진출하는 방법으로서 참여하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선한 시민이 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한 시민이 되는 것만으로 부당한 억압이 가능한 체제가 바뀔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나치 시절의 독일이나 최근 홍콩, 미얀마의 경우처럼 만약 그 체제 안에서 선한 시민이 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한다면, 반대로 그들의 어려움을 먼저 발견하고 나서야할 책임이 함께 언약 공동체가 된 우리 형제자매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조금 더 이야기가 나아갔으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