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제3의 길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가

회복력 있는 신앙

저자명 Gerald L. Sitt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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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y 이재웅 집사(평내교회) /  작성일 2020-09-21

본문

‘회복력 있는 신앙’은 그간 소개되었던 고통과 상실에 대한 저자의 책들과는 그 결이 조금 다른,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면모가 십분 발휘된 책이다.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기독교의 형성 과정과 그 가운데 나타난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핵심 교리, 교회, 예배, 학습을 통한 입교, 이웃에 대한 봉사와 섬김 등에 담겨져 있다. 당대의 체계에서 기독교는 어떠한 의미였고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꼼꼼히 다룬다.


그리스도인임에도 세상의 가치관을 기준 삼아 살아간다면 그가 걷는 길은 책에서 소개한 첫 번째 길, 즉 로마의 길이다. 고답적이고 베타적인 태도로 고립된 섬 안에서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는데, 그들은 두 번째 길인 유대교의 길을 걷는 것과 비슷하다. 겸손과 사랑으로 섬김과 희생의 저항을 펼치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왕으로 섬기며 따르는 길이 제3의 길, 즉 기독교다. 책은 이 세 번째 길을 소개하고 그것을 새로운 길로 다시 명명하는 것으로 시작(1장)과 끝(결론)을 엮어 낸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를 따르는 길을 가는 것이 기독교다. 그 길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제3의 길’이다. 매우 당연한 말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겐 어찌 보면 뻔한 말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이 내용이 이상하게도 조금 생소하다는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며 내 삶과 비교해볼수록 이 책에서 말하는 기독교와 교회는 지금과 비교할 때 다소 낯설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을 잊은 채, 늘 생각 없이 뱉던 말들의 의미가 책을 읽으며 새롭게 다가왔다.


책의 2장에서는 서신의 형식으로 쓰인 두 고대 문서를 통해 당대에 기독교가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살핀다. 별다른 불법을 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로마가 위협을 느낀 이유는 이들이 황제를 따르지 않고 ‘예수’를 따르기 때문이었다. 3장과 4장은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정체성(공통점 혹은 다른 점) 문제와 정경의 확정, 잘못된 가르침(이단)과 그로 인해 형성된 중요한 교리(삼위일체 등)를 다루는 데 여기에서도 핵심은 ‘예수’에 대한 논쟁이다. 5장은 종교적 권위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당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성경과 신앙고백, 직분자(주교)를 신앙의 권위로 두었다. 그래서 이는 개인적이고 독창적이면서도 장악하는 식의 권위가 아닌 겸손하고 희생하는 권위였다. 6장은 ‘예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과 그로 인해 생겨난 공동체(연방, 가족)에 대해 말한다. 7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겨난 주일 예배와 성례 등을 다뤘고, 8장은 주후 3세기 세계를 휩쓴 전염병의 창궐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에 충실했던, 그로 인해 이웃 섬김에 헌신적이었던 교회의 모습을 다룬다. 9장에서는 공동체의 형성과 확장에 ‘예수’의 가르침을 학습하는 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모든 장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 점이 당대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뛰어넘는 제 3의 길을 가는 기독교가 가진 독특함의 근원이었다.


초기 기독교와 당시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우리들이 잊고 있던 기독교의 핵심을 재천명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기독교 신앙과 현 교회의 다양한 문제들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재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현실과 부딪히며 실제로 적용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끝까지 점검해야 할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신앙과 삶의 모든 자리에 계시는가이다.


이 책은 우리 믿음과 구원의 근거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시며, 우리 삶의 본이신 그리스도를 다시금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무너진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일으켜야 한다. 다시 모여 예배를 회복해야 하고 계속해서 진리를 배워야 하며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기인한다. 이 그리스도 중심성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옛 길을 걷게 된다. 시대정신에 함몰되거나 폐쇄적 집단성에 고립되는 식의 양극단은 로마의 길이나 유대교의 길을 걷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 두 길 모두 자기중심성과 깊이 관계하고 있다. 선택의 이유를 깊이 파헤치다 보면 결국 자기욕심 또는 자기의를 위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야말로 나와 공동체와 이웃을 살리는 새로운 길이다.


기독교의 힘은 독단과 아집에 있지 않다. 규모와 조직화, 그리고 지혜와 겸손이 배제된 채 신성한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음을 단호히 외치는 엉뚱한 용기에 있지도 않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따라 낮고 천한 곳으로, 머리 둘 곳 하나 없는 황량한 광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에게로 나아감에 있다. 또한 부활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높아지심을 따라 세상의 안녕과 풍요로움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고 담대히 살아가는 데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라면 낮아지셨던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 높아지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2019년에 출간된 책인데 마치 작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지금의 교회가 듣고 생각해봐야 할 통찰들로 가득하다. 이 책의 원제는 Resilient Faith다. 원래의 모양 혹은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성질을 ‘탄성’이라고 하는데, 회복력(resilient)이라고 번역된 이 단어가 지니는 여러 의미들 중 하나다. 기독교 신앙이 원래의 모양, 즉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저자의 간절한 마음으로 읽힐 수도 있다. 저자의 바람과 확신, 그리고 현 시대의 기독교에 대한 안타까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다시 흩어지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생겨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은 교회와 가정과 사회 모든 곳에서 발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질서, 새로운 권위,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정체성이 시대를 넘어 늘 그 빛과 맛을 잃지 않길 바라본다. Sola Christus.